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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예빈산과 두물머리(詩山會 제280회 산행)

예빈산과 두물머리(詩山會 제280회 산행)

 

산 : 예빈산

 

코스 : 팔당역-정상-천주교묘역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6. 3. 13. (일) 오전 10시 30분

 

모이는 장소 : 중앙선 팔당역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간식, 과일

 

연락 : 염재홍(010-4948-6975)

 

카페 : cafe.daum.net/yc012175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1.시가 있는 오후

 

산숙(山宿)<산중음(山中吟) 1> - 백석(1912~96)

 

여인숙이라도 국수집이다

모밀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어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木枕)들을 베여보며

이 산(山)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굴과 생업(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

 

북방의 어느 산중에 있는 여인숙을 그려보라. “들믄들믄” “그즈런히” 북방의 사투리들이 두런거리는 이 여인숙은 국수집을 겸하고 있다. 시인은 국수분틀 옆에 “나가 누어서” 그 방을 스쳐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은 지금쯤 어느 그늘을 유랑하고 있을까. 아무런 논평도 해석도 없는 이 그림은 조촐해서 정겹고 국수 국물처럼 따뜻하다. 수많은 “얼굴”과 “생업”의 유랑인들이 거쳐 간 산속의 여인숙. 거기서 국수 한 그릇 먹고 그즈런히 눕고 싶지 않은가.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시를 쓰는 나는 자주 백석의 시 같은 것을 쓰고 싶다. 물론 미당의 시도 좋아하고 기형도의 시도 좋아한다. 한동안 시를 쓰지 못하다가 매주 숙제를 내주는 시 교실의 일원으로 겨우 돌아와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명상과 상상력의 비실재적 시공간인 시는 분명 같이 가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두 개를 동일선상에 놓기로 작정했다.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시의 길을 걷겠다.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279회 도봉산 산행기 2016. 2. 27/최근호

참석자 : 10명 (고갑무, 김정남, 염재홍, 이재웅, 이원무, 이윤상, 정한, 조문형, 조영훈, 최근호)

코스 : 광륜사 뒤 행사장 – 도봉산 둘레길

소요시간 : 3시간

일시 : 2016년 2월 27일(토) 9시 30분

모이는 곳 : 광륜사 뒤 행사장

뒤풀이 : 굴찜집

오늘 산행 코스는 광주고 총산악회 시산제가 개최되는 도봉산이다. 이전 산행(제278회)때 시산제를 지냈던 곳이었기에 산행이라기보다는 총산악회 시산제에 참석하는 의미가 더 크지 않나 생각한다.

 

금번 산행 모임은 평소보다 1시간이 빠른 시간이어서 기상시간을 당겨 일찍 일어나 서둘러야만 했다. 지하철을 타고 도봉산역에 도착해보니 고갑무 산우가 기다리고 있었으며, 조금을 기다리니 이원무 산우가 도착했다. 행사시간은 다가오고 해서 3명이서 총산악회 시산제가 개최되는 도봉산 광륜사 쪽으로 향했다. 행사장에 도착해보니 염 총장과 정남 산우가 먼저 와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나머지 산우들도 도착하여 행사에는 두 자릿수 참석인원으로 총동창회 행사의 20회의 체면은 유지하게 되었다.

 

총동창회 시산제 행사는 순서에 의해 진행되었고 과정에서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인 1회 선배님과 56회 후배와의 만남이 있었는데 뜨거운 포옹으로 모교의 유구한 전통이 새삼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행사가 끝나고 각 기별로 산행을 시작했다. 우리는 산행코스는 도봉산 정상이 아닌 둘레길로 정하고 산행이라기보다는 산보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둘레길 코스를 한참을 걸은 후 시산제에서 가져온 제물과 각자 가져온 음식으로 넓은 장소에 좌판을 벌여 화기애애한 가운데 시 낭독을 시작으로 먹걸이에 들어갔다.

 

귀거래사 / 도연명

 

돌아가자!

전원이 황폐해지거늘 어이 아니 돌아가리

지금껏 내 마음이 몸의 부림 받아왔으니

이미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겠지만

다만 앞으로의 일은 올바로 할 수 있음이려니

실로 길은 어긋나버렸으나 멀어진 건 아니로다

 

돌아가자!

사귐도 어울림도 이젠 모두 끊으리라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나기만 했으니

다시 수레를 몰고 나간들 어찌 무엇을 구하겠는가

 

아서라!

세상에 이내 몸이 얼마나 머무를 수 있으리오

가고 머무름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닐진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그리 서둘러 가려 하는가

이렇게 자연을 따르다 끝내 돌아가고 말 것인데

천명을 즐겼거늘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

 

도연명이 41세 때, 지방 현령(지금의 동장 정도)을 하다가 중앙정부의 관리가 시찰을 나오니 의관을 정제하고 마중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겨우 五斗米(오두미, 쌀 다섯 말. 당시의 월급)를 받기 위해서 새파란 핏덩어리의 영접을 하란 말이냐” 하면서 벼슬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쓴 것이라고 한다. 무릇 봉급생활자는 예나 지금이나 생활급을 받기 위해 조직에 매인 몸이 된다. 나이 들어 은퇴할 나이가 됐으나 그때를 생각하면 회한이 없을 수 없다. 불교에 정통한 산우에게 들은 유명한 선승 임제 선사의 구절이 생각난다. 불수위위지 수처작주 입처개진 (不隨萎萎地 隨處作主 立處皆眞). “아무리 어려운 곳에서도 꺾이지 말고 서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네가 서 있는 곳이 모두 참된 자리이다”라는 말이다.

뱃속의 포만감을 느끼면서 파장을 하고 다시 둘레길 코스를 한참 걸은 후 1128번 마을버스로 지난번 시산제 때 뒤풀이 했던 굴찜집 장소에 도착하여 생굴과 굴찜, 굴파전, 막걸리로 배를 채우게 되었는데 화기애애한 가운데 화제는 역시 나이 탓인지 건강이 주요 대상이 되었으며 신체는 쓰면 쓸수록 발달한다는 용불용설, 쓰지 않으면 퇴화된다는 자연도태설 등을 화두로 과유불급이라는 단어를 새기면서도 다시 조금밖에 비어있지 않은 뱃속을 빵빵하게 채우게 되었다. 음식이 맛있어서인지 바닥을 비울 때까지 한없이 먹고 나니 포만감에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달아나는 것 같아 좋기는 했으나 나이 탓인지 육체적 피곤은 어쩔 수 없었지만 산우들과 산행 후 마시는 한잔의 술은 한여름 마시는 청량제에 다름 아니다. 그런 의미로 술과 달을 좋아했던 광인(狂人) 두보와 더불어 당시(唐詩)의 양대 거목이었던 이백의 ‘장진주(將進酒)’에 나오는 구절로 호기로운 음주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장진주는 장편의 악부시(한시의 한 형식). 앞부분을 음미해 보면서 산행기를 마친다. 모두 백세까지 건강하자.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의 물이 천상에서 내려와/ 마구 흘러 바다에 들어가서 다시 돌아가지 못함을/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높은 집 맑은 거울에 비친 백발을 슬퍼하는 모습을/ 아침에는 검은 비단실 같더니 저녁에는 눈빛처럼 흰 것을/ 인생에서 뜻 얻으면 한껏 즐길지니/ 황금 술잔 들고 공연히 달을 마주하지 말라/ 하늘이 나 같은 재목을 낸 것은 필시 쓸모가 있음이오/ 천금을 다 써 버리면 또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법/ 양을 삶고 소를 잡아 한바탕 즐기련다/ 모름지기 한 번 마시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君不見, 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成雪. 人生得意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 天生我材必有用, 千金散盡還復來. 烹羊宰牛且爲樂, 會須一飮三百杯).”

 

2016. 3. 9. 최근호 올림

 

3.다음 산행지

3월은 물오름달 - 뫼와 들에 물 오르는 달이다. 인디언 호피족은 '바람이 속삭이는 달'이라 했다. 이 좋은 3월에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겠는가.

이번 산행지는 예빈산으로 정한다. 매번 한 번은 가는데, 높지 않고 풍광이 좋아 근교의 산행지로 인기가 높다. 특히 내려다보이는 팔당호의 두물머리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다만 작년에 길을 잘못 잡아 예봉산 밑까지 갔다가 1시간 반을 지체하고 돌아온 경험이 있으니 첫길을 잡는 산우가 선도를 잘 해야 한다. 갈림길이 나오면 무조건 오른쪽으로 가야 함을 잊지 말기 바란다. 도움쇠는 사정이 생겨 함께 산을 오르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한다. 개근은 어려워졌으나 정근을 다짐한다.

 

 

4.동반시

해방 후 통영여중 교사로 부임한 청마는 그곳에서 수예와 가사를 가르치던 시조시인 이영도를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청마는 이미 부인이 있는 유부남이었습니다. 이영도는 21살에 남편과 사별하여 딸 하나를 둔 청상과부의 미망인이었습니다. 청마는 서른여덟, 이영도는 스물아홉. 이미 가정이 있었으나 청마는 이영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가둘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스무 살에 치뤄진 결혼과 철이 들면서,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과는 다른 것입니다.

 

당시의 보수적인 규범 때문에, 여자인 이영도 시인은 마음의 빗장을 잠그게 됩니다. 청마에게 편지를 보내지 말라는 이영도의 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보내오는 청마의 연서에 그녀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답장을 하게 됩니다. 1947년부터 67년까지, 20여 년 동안 청마가 교통사고로 숨지기 전까지 두 사람의 ‘플라토닉 사랑’은 주변을 감동시키며 계속 됩니다.

 

뒤늦게 만나서 찾은 사랑의 발견과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그 애틋함은 두 사람의 마음을 편지로 주고받으면서 더 깊어지고 정화된 ‘사랑의 시’를 수없이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지금도 청마가 편지를 부치던 통영에 있는 우체통은 ‘청마우체통’으로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우체통이 되었고, 청마가 편지를 보내던 통영의 중앙우체국 옆에는 청마의 ‘행복’이란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고통과 고독은 마침내 예술을 낳나 봅니다. 이 두 사람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은 그 절망과 갈증, 애련의 깊이만큼 수없는 시를 만들어 내게 합니다. 이영도 시인은 4월의 노래를 쓴 기품과 단아함을 갖춘 시인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청마의 시보다도 이영도 시인의 '진달래'를 더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시는 못이룬 사랑과 함께 ‘4월혁명’을 노래한 시이기도 합니다.

 

진달래 - 다시 4.19 날에 / 이영도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爛漫)히 멧등마다,

그 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恨)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戀戀)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山河).

 

늘 한복을 입고, 마음을 단정히 했던 이영도를 향한, 청마의 순수한 사랑이 만들어 낸 시입니다.

 

동반시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갈라지는 두물머리가 내려다보이는 예빈산에서 사랑과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며 시인이 되어보자.

 

행복 / 청마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2016. 3. 9.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이 모인 詩山會 도봉별곡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