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386회 산행)
일시 : 2020. 5. 24.(일) 10 : 30
모이는 곳 : 청계산역 대합실
준비물 : 잔뜩
1.시가 있는 산행
늙음에게 / 이대흠
눈이 먼 것이 아니라
눈이 가려 봅니다
귀가 먼 것이 아니라
귀도 제 생각이 있어서
제가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다 내 것이라 여겼던 손발인데
손은 손대로 하고 싶은 것 하게 하고
발도 제 뜻대로 하라고 그냥 둡니다
내 맘대로 이리저리 부리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눈이 보여준 것만 보고
귀가 들려준 것만 듣고 삽니다
다만 꽃이 지는 소리를
눈으로 듣습니다.
눈으로 듣고 귀로 보고
손으로는 마음을 만집니다
발은 또 천리 밖을 다녀와
걸음이 무겁습니다
『불교문예』 2019년 봄호
꽃이 나무에 붙어 있을 때는 내 것 같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어 꽃이 지는 바람 탓만이 아닙니다. 나무에 붙어 있기 피곤해서, 비에 맞아 아파서, 잎을 피워야 자식을 낳겠기에 등의 이유로 아스팔트에 차마 보이지 않게 발자국을 남기고 떠나갑니다. 마치 우리의 ‘늙음’을 닮았습니다. 창밖에는 빗소리가 오랜 삶에 피곤한 귀를 위무해줍니다.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385회 청계산 산행기 / 한양기
산행일: 2020. 05. 16.(토)
산행코스:
석수역-호압사 방향 서울둘레길-인공폭포-호압사까지 나무데크 하늘길 왕복-시흥계곡
-시흥계곡복합환경생태공원
참석자(8인): 고갑무, 김정남, 이윤상, 위윤환, 정동준, 한양기, 홍황표, 조문형(뒤풀이 참석)
뒤풀이 식당: 강태공(병어회, 생선찜)
동반시: 정-안도현/옆모습, 부-헤어지는 연습을 하며/조병화
아카시아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는개로 어두침침하더니 집결지에 도착해 보니 짙은 안대로 변했다.
오늘 같은 날 아카시아 향을 포기해야 하니 무척이나 아쉽다.
산행회원 7인중 2인이 환자급이다.
삼성산의 백미인 능선길을 접어두고 서울둘레길 표지에 따라 걷기로 한다.
위윤환 군이 몇 번 탐방했다고 향도를 자청한다.
석수역에서 호압사까지 3.2KM.
2KM는 평지 같은 숲길, 1.2KM는 나무다리로 만든 하늘길이다.
하늘길이 시작되는 인공폭소 숲속 정자에서 새참을 들기로 한다.
시산회 자랑인 시낭송도 겸한다.
오늘의 기자는 비장했던 조병화 시인의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를 소개한다.
우리 또래의 교양인이면 누구나 음미해 본다는 유명시다.
시 소개를 즐겨하는 한 산우의 권유에 따라서 안도현 시인의 “옆모습”은 홍황표 산우가 낭송한다. 잣나무 숲속 나무다리 하늘길 호압사까지의 1.2KM를 왕복한다.
이제는 안개도 걷혀서 쾌적하기 그지없다.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한다. 아카시아 꽃망울이 벌어지기 전 꽃송이 튀김이 일미였는데...
황사, 미세먼지 등 기후변화 현상이 표출된 이후 20여 년간 아카시아 꽃 튀김을 잊은 지 오래다.
하늘길이 좋아선지 1.2KM를 왕복하는데 2시간을 소요한다. 느림의 미학을 시현하는 것인지 2시 반에야 인공폭포 하늘길에서 시흥5동 성당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성당까지는 내리막길이라서 20분이면 족하지만 예약한 식당까지는 30분은 걸어야 한다.
때맞춰 조문형 군이 리무진급 신차를 몰고 와서 8인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편의를 제공한다.
상춘행락에 대마장식도 시산회급이다.
2020 .05. 16. 한양기 올림
3.오르는 산
청계산의 날이지만 비가 내려 산행을 막는다. 비로 만든 집에서 살고 싶을 만큼 비를 좋아했던 때가 있었다. 비록 고통을 수반하지만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마음은 셀 수 없는 세포로 이루지만 그들 사이의 소통은 빛의 속도로 빠르다. 물리∙화학∙생물학적 관점에서 마음이 있을까? 종교적 측면에서 1500년 전 요가를 수행의 방편을 삼는 유가행파는 오랜 수행 끝에 겨우 백 가지의 마음을 분류해냈다. 용어로 오위백과五位白果라 이름 붙였다.
어제는 시산회의 보물 종화 산우의 천금보다 무거운 딸 결혼식이다. 때가 맞지 않지만 작은딸 결혼식 이래 입지 않은 양복을 꺼내어두었는데 갑자기 세종시에 사는 큰딸 내외가 집을 사기 위한 의도로 부른다. 계약내용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부평 GM코리아자동차연구소에 근무하던 사위가 철마다 부는 감원열풍에 시달리다 그만 두고 무작정 살림을 합치자고 내려와서, 다행히 관련 업무인 자동차배터리 회사인 청주 인근 LG화학에 입사했다. 14년늬 경력을 인정해주고 책임연구원으로 채용한 것이다. 30분 거리의 통근버스도 있다니 떨어져 있기 싫다는 두 사람의 사랑의 대가라 본다. 그만큼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새옹지마가 딱 맞아 떨어지는 모양새를 갖추는데 부족함이 없다. 계약내용이 복잡해 아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데 후에 종화의 양해를 구하고 내려가야 했다. 축하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괜히 죄 없는 구름을 찌른다. 무엇으로 보상할까. 그 마음을 글로 보낸다. 꼭 전해지기 바란다. 시집을 보내고 싶어 했던 종화의 마음에 날개가 달렸다. 온 마음으로 축하한다. 여독으로 참석하지 못하지만 빗길 산행이 마냥 즐겁기 바란다. 잘들 다녀오시라.
4.동반시
박형채 산우가 추천한 시다. 그는 산행의 날에 비가 와서 꽃이 떨어질 것을 예상한 예언자를 닮았다. 그의 눈은 아닌 척 세상과 관계없는 모양새를 하고 산다. 보는 사람만 본다. 항상 고맙다. 그리고 때가 맞지 않아 집을 지을 때 가장 아프고 바깥출입이 위험해서 도와주지 못했음을 지금까지 미안해한다.
낙화는 우리의 시절과 맞아떨어진다. 나이가 든다고 시간을 탓하라. 다시 태어나면 되고 천국에 가면 된다. 2000억 개의 별로 구성된 2000억 개의 은하로 구성된 우주, 다중우주와 평행우주, 초끈이론, 양자역학 등으로 구성되는 현대물리학에서 인간의 존재는 시간과 공간을 통 털어 관심꺼리가 되지 않을 만큼 작다. 그런대로 뇌를 구성하는 세포 중 하나인 신경세포인 뉴런은 1000억 개를 유지하고 그들 사이를 연결하는 접합부위인 시냅스가 200조 개를 넘는다면 우주와 한 인간의 뇌, 양자 사이의 관계를 누가 규명해낼까.
중언은 번거롭지만 강조의 의미로 꽃이 나무에 붙어 있을 때는 내 것 같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어 꽃이 지는 것은 바람 탓만이 아닙니다. 나무에 붙어 있기 피곤해서, 비에 맞아 아파서, 잎을 피워야 자식을 낳겠기에 등의 이유로 아스팔트에 차마 보이지 않게 발자국을 남기고 떠나갑니다. 마치 우리의 ‘늙음’을 닮았습니다. 창밖에는 빗소리가 오랜 삶에 피곤한 귀를 위무해줍니다.
낙화(落花) /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상아탑] 5호(1946. 4) -
2020. 5. 24.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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