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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관악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315회 산행)

관악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315회 산행)

산 : 관악산

코스 : 일정 끝나고 뒤풀이 추천 요망(낙성대 부근)

일시 : 2017. 8. 12.(토) 10시 30분

모이는 곳 : 사당역 6번 출구 앞 소공원

준비물 : 안주, 간식, 과일, 막걸리

연락 : 한천옥(010-4324-6698)

카페 : cafe.daum.net/yc012175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1.시가 있는 아침

사진관 의자
-유홍준(1962~ )


참 이상한 곳에 놓인 의자군,
아무도 이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기지 않고
아무도 이 의자에 앉아 졸지 않고
아무도 이 의자에 앉아 창밖
지나가는 차 바라보지 않네
참 적막한 곳에 놓인 의자
외톨박이 의자군, 오늘도
혼자뿐인 의자 단 한 번도
엉덩이가 따뜻해져 본 적이 없는 의자
누구랑 마주 앉아서
얘기를 하나, 얘기를 듣나
오늘도 검은 커튼 뒤에 앉아
혼잣말만 하는 의자
독백의 의자 그래도 조용하고
단정한 의자군, 진짜보다 더
예쁜 가짜 꽃바구니 두어 개
제 곁에 갖다놓고 누구는
이 의자 한가운데 앉아
돌사진, 독사진을 찍고
누구는 졸업사진, 영정사진을 찍고
나는 또 새 이력서에 붙일
굳은 표정의 증명사진 몇장을 찍네
시선이 없는 내 청춘의
무표정 몇 장을 남기네


사진관 의자. ‘앉는다’는 기능만 가진 생략된 의자. 의자는 보통 마주 앉는 상대방을 상정하게 되지만 사진관 의자는 독백의 의자요 외톨박이 의자. 흘러가는 시간의 바람을 홀로 응시하는 의자. 영원 속에 내 흔적을 박아주는 고마운 의자. 고마운 존재는 늘 그렇게 적막 속에 홀로 남겨져 있는 법.
<김승희·시인·서강대 국문과 교수>

 

2.산행기

 

시산회 314남이섬탐방기” < 2017. 7. 23() > / 김종화

 

▣ 탐방일/집결장소(시간) : 2017년 7월 23일(일) / 경춘선 가평역 (11시)

▣ 참석자 : 9명 (종화, 창수, 윤환, 원무, 윤상, 삼환, 문형, 양기, 천옥)

 

▣ 탐방코스 : 가평역-점심식사-가평나루-남이공화국(남이나루-관광정-남이장군묘-은행나무길-송파은행나무길-메타세콰이어길-중국굴피나무길-강변산책로-단풍길-중앙잣나무길-노래박물관-천리포목련원-유니세프홀-은행나무길-남이나루)-가평나루-가평역

 

▣ 동반시 : "주점에서" / 김병연(김삿갓)

▣ 앞풀이 : '생불고기'에 막걸리 / "한우명가“ < 가평역 근처, (031) 581-1592~5 >

 

여름중의 여름인 대서(大暑) 날이다. 24절기의 열두 번째인 대서는 소서와 입추 사이에 들며, 가장 덥고 습하여 낮 동안 활동에 힘겨운 시기이다. 더위가 심해 찜통더위라고 하는데, 밤에도 열대야 현상이 일어나며, 더위 때문에 “염소 뿔이 녹는다”라고 할 정도이다. 소서 때로 부터 장마전선이 한반도 남북으로 걸쳐 제법 긴 장마기간을 겪는 것 같다.

 

지난번 ‘수락산’ 산행 때도 장마기간이라 비가 와서 문화행사(영화관람)로 대체하였는데, 오늘 ‘굴봉산’의 산행인데, 어제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 10시경까지 상봉역에서 집결하는데, 카톡이나 전화상으로 협의, 굴봉산 산행은 하질 못하고 가평역에서 집결하여 점심식사를 한 후에 비가 그치면 굴봉산을 가던지, 비 오면 그냥 돌아가기도 그러하니 '남이섬'을 탐방하기로 하였다.

 

1110분 전후, 가평역에 9명의 산우들이 집결(천옥 춘천서 이동, 창수, 문형인 용산역에서 ITX, 나머지는 상봉역에서 전철을 탐)하였다. 비가 꾸준히 내리니 걷기 운동을 방해하였다. 빠른 시간이지만, 앞풀이 장소(가평축산농협 한우명가’)를 정하고 막걸리의 안주로서 적격인 생불고기에다 잣막걸리를 한 잔씩 하며, 동반시(‘艱飮野店’/김병연)를 나 원장이 낭송하였다.

 

“艱飮野店”(간음야점) / 김병연(김삿갓)

 

千里行裝付一柯(천리행장부일가) 천리 길 나그네 가진 것 겨우 지팡이 뿐이니

餘錢七葉尙云多(여전칠엽상운다) 남은 돈 일곱 닢 오히려 많다 하겠네

囊中戒爾深深在(낭중계이심심재) 주머니 속에 깊이깊이 간직하자 다짐했건만

野店斜陽見酒何(야점사양견주하) 석양에 주막을 만나니 아니 마시고 어쩌리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여 팔도를 떠도는 방랑자의 신세가 된 오랜 세월, 거지꼴과 무엇이 다르랴. 어디서 얻었는지 일곱 냥의 엽전이 주머니에 있으니, 큰 위안이 되었다. 아, 그러나 어이하랴! 소중히 간직했던 일곱 냥의 엽전이 나갈 일이 생긴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끝구를 보면 알 것이다. 野店斜陽見酒何(“황혼녘 들판의 주막에서 술을 봐 버렸으니 어이할까”).

이런 상황을 겪어본 이라면, 몸서리치도록 공감을 일으킬 것이다. 목마른 술꾼이 주막집 술을 봐 버렸으니, 무슨 수로 참을까... 아무리 인내심이 강해도 이 순간은 절대 참지 못하리라. 이 시는 역시 ‘방랑시인 김삿갓'이란 칭호에 걸맞게, 재치와 소탈함으로써 감정의 세계를 무한히 자극한 작품이라 하겠다.

이 시는 일생을 방랑하며 살아온 김삿갓의 고달픈 인생 역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시이다.방랑시인 김삿갓이란 이름을 들었을 만큼 일생을 방랑하면서 무수한 일화와 멋진 시를 남긴 사람이다. 방랑자가 된 것은 홍경래의 난을 막지 않고 항복한 김익순(金益淳)이 祖父였었는데, 과거시험에서 김익순을 만고의 역적이라면서 신랄히 비판을 하였다.

김립(金笠,1807~1863)의 본명은 김병연으로 6세였을 때에 하인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을 받아 형(김병하)과 함께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후에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장원급제를 하였다.

 

그러나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전국을 방랑하며 각 지에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리운다.

 

전국을 떠돌면서 수많은 일화와 시를 남겼는데, 그의 시는 기존 漢詩의 틀을 벗어난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대단한 반향을 불렀다. 김삿갓은 전남 화순군 ‘적벽’경치를 특히 좋아했는데, 전국을 떠돌다 마지막을 맞은 곳도 바로 그곳이다. 김삿갓이 생전에 좋아했던 동복면 명승지 '적벽'을 읊었던 “將遊赤壁歎有客無酒”(장유적벽탄유객무주: ‘적벽’을 유람하려는데, 술 없음을 탄식함)이라는 詩가 가장 기억에 남을 詩이다.

 

1978년 김병연의 후손들이 방랑시인의 終命地인 화순 동복면 구암마을 무등산 기슭에 세워진 삿갓동산엔 그의 일대기와 그가 남긴 시들이 돌에 조각되어 있다. 또한 영월 김삿갓면에 있는 마대산(1,052m)은 산자락에 김삿갓문학관, 생가, 묘역, 시비동산 등 김삿갓 시인과 관련된 유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산이라고 하니 꼭 가 보시길 바란다. 시비를 하나하나 읽는 동안 세월이 함께 흐른다. 김병연의 저술로는 ‘김립시집’(金笠詩集)이 있다.

 

비가 그치길 희망했지만, 뇌우성이 치고 비가 내리다가 잠시 멎는다. 점심식사를 한 식당에 부탁을 하여 남이섬으로 가는 가평나루터까지 이동하였다. ‘나미나라공화국’이란 남이섬의 명칭이 안내 팜프렛과 출입구 위 부분에 별도의 국기와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짚와이어를 한 번 타볼까 싶어 알아봤더니 입장료를 포함, 38천냥/1인 이라고 하여 포기를 하고, 남이섬 탐방표(도선료 포함 1만냥/1인)를 나 원장이 협찬하여 배를 탔다. 잔뜩 구름은 끼었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모터보트를 타고 북한강을 달리는 관광객도 있었다. 보트에서 손님들끼리 나누는 말투로 보아 일본, 중국의 사람들도 제법 많은 것 같다.

 

남이섬이란 명칭은 조선 세조 때에 무관인 남이(南怡) 장군의 묘가 있다고 하여서 지금까지 그렇게 불리어 왔으며, 남이섬은 청평댐의 완공으로 수위가 높아져 가랑잎처럼 청평호수 위에 떠있는 북한강의 완전한 섬이 되었다. 총 면적은 약 46만㎡이며, 그 둘레는 약 5km이다.

 

‘남섬’으로도 불렀던 ‘남이섬’ 지명의 유래는 북쪽 언덕의 돌무더기에 남이장군이 묻혀있다는 오랜 민간전승에 기인하여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다산 정약용의 著書 천우기행(穿牛紀行) 및 산수심원기(汕水尋源記) 등에 따르면 이러한 민간전승 내용과 함께 일찍이 ‘남이섬’을 ‘남이서’(南怡嶼)로 부른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있다. 島가 큰 섬을 가리키는데 반해, 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작은 섬을 뜻한다.

 

민영휘의 손자 민병도는 1965년 남이섬을 구입, 조성초기에 남이장군의 넋을 위로하고 장군의 기상을 기리기 위해 돌무더기 주위에 봉분을 쌓고 추모비를 세웠는데, 노산 이은상 선생이 추모글을 짓고, 일중 김충현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남이장군이 묻힌 장소는 정확하지 않으나 경춘관광개발주식회사에서 잘 꾸며 현재의 묘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조성된 묘역에는 장군과 부인이 합장되어 있고, 봉분은 2기이며 좌우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1쌍이 있었다.남이장군을 알아보니 남이장군은 세조 3년(1457)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세조 13년(1467)에는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여 적개공신 1등에 봉해진 후, 여진을 토벌하여 이등군공에 올랐으며, 26세의 나이에 병조판서에 올랐었다.

 

조선시대 세조(수양대군)의 총애를 받던 남이는 재위 14개월에 불과한 예종 때 유자광의 모함으로 죽는다. 1468년 예종이 즉위하자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모에 꾀여 28세 때 처형을 당하였다. 그 뒤 순조 18년(1818)에 복직됐으며, 서울 용산의 용문사 및 충민사에 배향되었다.

 

白頭山石 磨刀盡 (백두산석 마도진) 백두산 돌은 칼 갈아 다 닳이며

豆滿江水 飮馬無 (두만강수 음마무) 두만강 물은 말 먹여 다 없애리

男兒二十 未平國 (남아이십 미평국)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 못하면

後世誰稱 大丈夫 (후세수칭 대장부)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위의 시는 남이장군이 백두산에 올라 지은 詩인데, 웅장하고 기세가 넘치는 詩이다. 그렇지만 이 시가 나중에 後患이 된다. 간신이었던 유자광(柳子光)은 이 시의 한 구절을 고치고 남이를 역모죄로 몰아 죽인다.

 

유자광이 '평'(平)을 '득'(得)으로 고친 꾀가 가히 모략의 천재 솜씨라 할만하다. 이렇게 고쳐 남이장군은 참수를 당한다. 그렇지만 유자광은 그 후에도 자신의 출세와 부귀를 위하여 남을 모함한다. 간신 노릇하는 신하는 도대체 왜 그런 못된 짓을 꼭 해야만 하는 것일까?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남이장군은 결국 누명을 쓰고 죽는다.

 

예종은 눈은 있으나 볼 수가 없고, 귀도 있으되 들을 수가 없는 밥병신이다. 1818년이 되어서남이장군의 누명이 벗겨져 병조판서에 복직이 된다. 시대를 잘못 만나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남이는 조선의 신이 되었다. 불과 20세의 나이에 이렇게 기개 있는 시를 지었다는 것은 대단한 대장부임은 틀림이 없었다.

남이섬은 밤나무숲과 백자작나무길, 잣나무길, 메타세콰이어길 등 운치 있는 숲길이 떠오른다. 드라마 ‘겨울 연가’의 촬영장소로서 해외의 관광객도 남이섬을 많이 찾아오고 있다. 이곳에는나미나라 기상대가 있으며, 남이섬의 내부에는 밤나무, 포플러나무를 둘러 심었고, 중앙부에는 잔디밭과 오솔길이 조성되어 있어 전원의 풍치를 느낄 수가 있었다.

 

잣나무가 조성된 길에는 詩畵판이 있었으며, 많은 詩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각종 레저시설과 동물원, 유선장 등 각종 오락시설 및 숙박시설, 식당 등이 잘 정비되어 있었고, 별장 마을을 지나 헛다리를 건널 수가 있었다. 특히 유람선, 모터보트, 수상스키 등이 있어 젊음의 낭만과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쾌적하고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지고 있다.

 

행복한 상상이 꿈틀대는 북한강 대자연 위에 이 세상에 하나뿐인 대한민국 속의 꼬마나라,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인간의 숨소리와 하나 되어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노래의 섬 남이섬에 상상과 창조의 자유를 마음껏 구가할 수 있는 꿈의 세상, 나미나라공화국을 만든다. 남이섬에서는 모두 나미나라 국민이다.

 

나미나라공화국(Naminara Republic)은 남이섬 위에 세워진 국가 개념을 표방하는 특수 관광지로, 독자적인 외교와 문화 정책을 펼치고 있단다.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동화와 노래를 선물하는,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상상공화국이라고 한다.

 

매직홀(Magic Hall)에는 김현미의 소울재즈 공연이 시작되고 있다. 재즈 보컬리스트 김현미는 버클리음대 출신으로 남다르게 노래실력을 자랑하는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특색 있는 보이스를 지니고 있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무대 매너로 공연을 선보이는 감성재즈 보컬리스트이며, 재즈를 사랑하는 팬들은 김현미의 목소리에 매료되었는지 제법 많이 참석하였다.

 

남이섬은 문화예술 자연생태의 청정정원으로 다양한 전시와 문화행사나 콘서트 등을 꾸준히 개최하여 오고 있으며, 어린이들에겐 꿈과 희망을, 연인들에게는 사랑과 추억을, 문화계 인사들에게는 창작의 터전과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

 

7. 1일~7. 30일 까지 매주 토,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남이나루 선착장 특설무대에서 에콰도르 음악그룹 '가우사이'의 특별공연을 한다고 되어있다. 우천 시에는 자유무대 공연으로 유니세프 에코스테이지에서 공연을 하기로 되어있어 섬의 중앙부위를 따라서 걷기 운동을 조금 하다가 에콰도르 음악그룹 '가우사이'의 공연장으로 들어가 끝날 때까지 노래를 감상하였다.

 

'가우사이'(KAWSAY)는 아시아 유일의 남미음악 전문 공연단으로서, 1998년 서울 정동극장 전속 활동을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고 한다. 1983년 지금 멤버의 아버지들에 의해 결성되었고, 이후 에콰도르를 비롯한 남미각국의 문화축제에 참가하며 명성을 떨치면서 지금은 3대째 이어내려오는 음악 그룹이다. 지난 여수세계박람회에선 세계 각국의 유수한 공연팀 중 최우수공연팀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현재 국내 외국인 공연단 최초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며 전국 문화예술회관 초청콘서트, 한국 전통음악과의 콜라보레이션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남미의 안데스 악기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악기를 비롯해 중국의 전통악기 또한 한 무대에서 보여주는 다양하고 감칠맛 나는 공연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300년이라는 식민지 기간 동안 자신들의 문화를 상실 없이 지켜온 민족적 열정을 이어받아 앞으로도 문화적 편견에 부딪치지 않고 잉카스의 혈통으로 진실된 문화를 알리는데 사명감을 갖고 활동하고 있었다.

 

구름이 잔뜩 끼어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만 같은 날씨인데, 흥겨운 노래로 마지막을 장식하여 공연의 마지막은 멋있는 시간이었다. 오후 3시경 공연장에서 발길을 서둘러 선착장으로 이동, 집결지인 가평역으로 왔으며, ITX열차나 또는 경춘선 전철로 귀가를 하였다. 가고 싶은 굴봉산 산행은 못했지만, 남이섬의 탐방은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산우들의 건강을 빌면서...

 

2017년 7월 25일 김종화 씀.

 

3.오르는 산

서울 둘레길 위주로 돌아 낙성대로 내려와 부근에서 뒤풀이를 할 예정이다. 나이 들어 어려운 길을 가지 않아도 만나면좋은 친구들 아닌가. 벌써 300번을 흘쩍 넘어 315회로 접어들었다. 알다시피 도봉은 당분간 오르지 못한다. 가족과 주치의는 물론 백병원 외과의사였던 막내동서는 자기 허락까지 받으란다. 자기 경험상으로 봐도 흔하지 않게 살아있는 경우라 하니 더 할 말이 없다. 심지어 딸들 이사에도 오지 못하게 한다. 장모님 양평 제사도 거르고 생일도 건너 뛰자고 하니 내가 그렇게 중환자인가. 내가 보통 고집인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에고 내 팔자야. 내 몫까지 잘들 다녀 오시게. 특히 목은 조심들 하시고. 우선 수술비가 만만치 않네. 손가락 끝과 손목, 손가락 근육이 아파 오래 자판을 두드리지 못하네. 안산들 하소.

 

 

4.동반시

관악산의 별/ 시 오선장이계향

 

서울의 별이 가장 아름다울

관악산을 오르면

마음속에 뜨는 그대별

 

봄빛이 채 푸르기도 전

함께 만나자던

632미터 정상의 설레임

 

주인을 기다리는 연주암

아직도 주인은 오지 않았는지

날마다 올라도 그리움만

 

삼막사 능선을 오르자니

그 옛날 원효별 목탁소리로 울리고

염주로 낭랑한 의상대사별

 

진달래 분홍빛 완연하면

꽃망울마다 속삭이는 그대미소

속깊은 관악산의 별

 

2017. 8. 10.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