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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어머니와 수세미 / 도봉별곡

어머니와 수세미 / 도봉별곡 

 

 

 

수세미는 일년생 풀이라 일 년의 수명뿐이겠네

수세미가 귀했을까

수세미를 보면

제사 때마다 볏짚에 재 묻혀 닦아

윤기 나던 놋그릇과 촛대, 술잔으로 기억 돌아가

어머니 생각에 눈물겹다

 

생뚱맞게도

영국 축구 손흥민의 토트남 팀 잘 생긴 감독 포체티노가 귀티나게 웃는 것을 보면

잘 닦아 윤기 흐르던 놋그릇 생각난다

 

열 세 번의 기제사

시제 때는 온 마을이 떠들썩했다지

온갖 생일과 초사흘마다 쪘던

하얀 시루떡은 지금도 먹지 않는다

“엄마는 10대 종가 맏며느리여서 경제 걱정은 안 했지만 제사 치르다 아까운 청춘 다 보냈다”

어머님 말씀 한이 되어 50년이 지난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여호와의 증인이 되어 제사 때 코배기도 안 비치던 숙모

배다른 형제라 얼굴을 내밀지 않던 숙부의 숙모

자신의 부모 제사 때도 얼굴 내밀지 않았던 고모와 그 남편

 

어머니를 구박했던 고모에게 어머니의 분풀이를 했다 문상도 가지 않았고 고모부와 사이가 좋지 않아 죽어 자기 아버지 곁으로 가고 싶어 선산에 묻어달라고 했지만 내 땅이라고 면박을 주고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는 팔 남매 중 유난히 나와는 서로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

수세미가 시장에 나와 편해졌지만

밤늦도록 마지막까지 닦고 있는 사람은 어머니와 형제 중 나뿐

 

그렇게 독하게 구박하셨다던 시어머니 뭐가 좋다고 그 많은 제사 다 치뤘을까

첩 피해 목포로 왔던가

고생한다고 외할아버지가 피신 시켰을까

영광에서 목포로 가는 길 홀가분하셨겠다

 

아버지 돌아가시자 바로 줄여버린 제사들

어머니 돌아가시자 바로 팔아버린 놋그릇 제기들

목기들만 남겼다

형수 어깨는 가벼웠겠다

살아계셨으면 어머님 어깨도 그 무게만큼 가벼워졌을 텐데

수세미를 보면 생각나는 어머니와 놋그릇

그 힘들었던 기억도 고모에게 모질게 대했던 것도 업인가

 

업이란 무엇인가

질문이 답이라는데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