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 허균, 자신을 중용한 선조와 광해를 똥이라 여기다 / 도봉별곡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고 저승에서는
봄날의 바닷가에 핀 유채꽃만 처절하게 아름답다
사랑법에 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것과 같이 똥 같은 것의 이로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랑 없이 사는 것과 똥 없이 사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도 같다
왕조를 지키지 못한 광해와 인조반정 후에도
조선을 왕의 나라라고 잘못 알고 있는 자들에 대한 경고다
홍길동전
그들만의 모국어로 쓴 혁명시는 사라지고 똥군이라 불리는 선조와 그 아들, 아들이 뽑은 신하들, 사대부들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백성은 소똥보다 못하지 않았는가 소똥은 거름에라도 쓰고 북국에서는 긴 겨울날의 땔감으로 유용하지
혁명가의 동생 초희, 許蘭雪軒(1563 ~ 1589)의 한恨도 세 가지 똥에 대한 푸념이었다
왕과 신하들의 나라 조선,
남편 김성립,
조선 남자의 여자
왜수만복倭水滿腹*과 호수만복胡水滿腹*이 낳은 아이들은 똥이 되었다
두 개 또는 두 번의 죽음 사이에서 ㅡ 생물적 죽음 상징적 죽음
똥은 죽음이다 분리다 ㅡ 두 개의 개념 사이에서
죽어보지 않은 사람의 변명이다 변은 똥이다
마침내 산벚꽃은 별이 되어 동풍에 날려 꿈처럼 내리고 똥 위에 앉았다
여름엔 빗물이 섞이고
지친 잎을 내리는 것은 가을의 몫이다
추위가 내리고 눈이 덮고 눈 속에서 겨울을 지내다
봄이 오는 것은
기막힌 상징 아니겠는가 하찮은 똥의 생애에 대한 비유를 사유하며
시간과 사랑과 자연과 죽음을 만난다는 건 하찮은 짓이며 우연과 필연이 아니다 죽으면 그림자가 된다는 사실에 들어가 보라
그러나 바람은 우연 아닌 필연이다
똥이 바람을 만나면 사랑이 된다 굳어버린 사랑이 되기 전에 사랑할 일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행불행은 몰아치면서 온다 똥도 한꺼번에 해치우는 게 낫다 좁아터진 항문 덕분에 변기는 유채색으로 아름답게 변한다
똥은 피를 부르고 하필 또 선조를 떠올린다 똥보다 못난 놈들 편에서는 박정희와 이승만이 나타난다 악몽의 주연이 되어
역사의 기록 이조실록과 수정실록은 강자의 되새김질이거늘 뱃속에 들어간 것을 마저 꺼내어 샅샅이 뒤집는 그 짓이거늘, 헛수고를 하는 자들 가증스러워 문벌과 학벌의 세계를 증오한다
우리가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은 똥 밟았다고 치자
그렇다고 벽에 똥 처바를 때까지 살 일은 아니다
밥은 남의 집에서 얻어 처먹어도 똥은 제 집에서 싸라
변소에서 세 번 빠지면 그 사람은 죽는다
변소 안에다 비를 두면 귀신으로 변한다
속담조차 재미있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은 어떤 것으로 비유하랴
부조리와 부정한 나라의 해법을 어디에서 찾을까?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서? 아니면
부조리하고 부정한 나라의 속담에서 찾을까?
허균은 실패한 혁명가였으므로 정답은 아니다
*왜수만복倭水滿腹 :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유린당한 조선 여자들에 대한 상징적 · 은유적 표현
*호수만복胡水滿腹 : 병자호란 때 청군에 유린당한 조선 여자들에 대한 상징적 · 은유적 표현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