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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질투는 힘의 원천 / 도봉별곡

질투는 힘의 원천 / 도봉별곡

 

 

 

1.

질투는 사랑의 힘

 

질투가 쌓여 바람이 되면 가을의 낮은 소슬하게 변하고

질투만 한 반달 떠서 그리움 희미해진다

 

그 치욕의 20대로 다시 돌아가기 싫어도 그런 사랑하고 싶었어라

다시 돌아갈 마음이라곤 전혀 없어진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옛사랑들 민낯으로 만나고 싶어라

 

여학생 하나 없는 법학을 전공하지 않고 사랑학도 나오는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어라

새 학기가 시작되어도 갈 수 없는 나라로 변한 슬픈 시절이 되어

개여울을 지나

비 온 후

썩은 나무 뒤 보름달 닮은 느타리버섯 따러 가는 막연함과

고개 들어 북쪽 하늘을 보는 절간의 오후에

이정환의 샛강 바람이 불어오면

산 너머 중학교 국어선생 떠오르고

늙은 여승 뒷바라지 학생의 비밀스런 질투를 모른 체 했다

그때 시가 울었다면 좋았을 것을

질투가 시로 변했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을

 

질투는 나의 것이 아니라는 아집 버리고

질투하고 실망하고 슬퍼하고 비록

과장된 사랑이라도 사랑 한 번 해봤으면

 

질투를 외면함은 사랑에 대한 모독이었어라

 

2.

질투에 관한 문학적 고찰에 대하여

 

내일 토요일 광화문에 노란 슬픔이 번득이며 날을 세우고 강원도의 파란 하늘엔 노란 리본이 그려졌다지

노란색은 질투의 빛

만약 온 세상이 노란색으로 일렁인다면 사랑으로 꽉 차서 볼만 할 게다

 

3.

소나무의 힘

 

태초에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이 있었느니라

여기서 우두머리는 엘렐이라 불리는 바람이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자연이라 불렀으니 바람만은 신이라 불렀다

 

만물은 서로 자연스럽게 살았으며 처음에는 소나무가 울울창창했더라

사철 푸른 잎은 늠름하고 아름다웠고 송이버섯은 덤으로 생겼다

송이버섯의 동그란 모습과 하얀 색깔은 우아했으며 맛은 부드러웠다

참나무는 거무스름하고 모습과 딱딱한 맛을 가진 표고버섯에 만족하지 않고 송이버섯에 샘이 났다

육 형제로 이루어진 참나무는 힘을 모아 소나무를 쫓아내기 위해 잎을 넓이고 씨앗을 키웠다

참나무는 그것만으로 부족해서 키를 키웠다

해를 볼 수 없었던 소나무는 자꾸 위로 올라갔다

그래도 참나무는 형제를 늘리고 더 키를 키우고 잎을 넓이면서 쫓아왔다

쫓기던 소나무는 마침내 바위틈으로 도망가거나 참나무가 살 수 없는 척박한 곳으로 옮겨갔다

소나무는 잎이 가늘어 바람을 견딜 수 있었고 많은 물이 필요 없었다

잎을 넓이고 키를 키운 참나무는 바람을 견디기 어려웠고 물이 적은 곳까지는 쫓아갈 수 없었다

참나무는 키를 줄이고 잎을 줄여서라도 기어이 쫓아갔다

이를 보다 못한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은 회의를 하고 참나무를 혼내주기로 결정했다

땅은 바위를 만들고 물과 불은 가뭄을 만들었고 바람은 잎이 떨어지게 세차게 불었다

그러나 형제가 많은 참나무들은 어렵게 이겨냈다

특히 바람의 신은 참나무가 괘심해지기 시작했다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은 서로 힘을 모아 참나무 에이즈라는 잎마름병을 내려보냈다

참나무들은 에이즈를 이기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기 시작했다

소나무들은 날개가 달린 씨앗을 바람의 힘을 얻어 산 밑으로 날려 보냈다

소나무들은 다시 산 밑에서 떼를 이루었다

 

한동안 평온을 이어갔지만

 

세월이 지나 시련을 이겨내고 다시 힘을 얻은 참나무들은 열매를 튼튼하고 동그랗게 만들어 산 밑으로 굴리기 시작했다

참나무는 쫓는 자가 되어 다시 소나무를 쫓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참나무들은 높은 산과 바위틈으로는 가지 못했다

참나무를 피해 바위의 갈라진 작은 틈에서 살아남은 소나무는

비록 구부러지고 키가 작아졌고 옆으로 퍼져 여러 가지로 갈라졌지만

사람들은 ‘그놈 우리 집 분재같이 참 잘 생겼다’고 쓰다듬으며 칭찬하고 지나간다

오늘도 소나무는 칭찬의 힘만으로도 넉넉하게 살아간다

 

 

4.

인사동 한담閑談

 

시인과 화가와 성악가와 소설가와 무사가 인사동 주막집에서 모였다

-시인들은 좋겠다 시를 쓰는데 비용이 들길 하나 시간이 걸리길 하나 장소가 필요하나 팔아먹지 않아도 배를 굶길 하나 나이 들어도 쓸 수 있고 화가는 시간이 걸리지 물감 값은 좀 비싸나 가짜도 많고 전시회 비용은 얼마나 많이 드는데 오래 팔리지 않으면 좀도 쓸고 습기 차 곰팡이도 생기고 팔리지 않으면 굶어 죽기 안성맞춤이니 사달라고 머리 숙여 사정해야 하고 동냥과 다를 게 뭐 있나

-시인들은 좋겠다 음악은 저장할 수도 없어 기계의 힘을 빌려야 하고 콩쿠르 대회에 나가 입선하지 않으면 무대에 서기도 힘들고 그러면 밥도 못 먹는데 공연 한 번 여는데 비용은 좀 비싸나 많이 와달라는 홍보비도 만만치 않아 특히 문화부 기자들은 거의 양아치와 강도 중간 수준이야 솔직하게 말해 우리나라 기자들이 기자야? 그냥 기레기 글쟁이에 불과해 공무원 시험을 노래로 보면 좋겠다 예부터 과거시험을 시로 봤다지 알고 보면 그때부터 우리는 광대 풍각쟁이 사당패로 불렀지 아빠가 들인 돈과 노력에 비해 나오는 대가가 낮으므로 가성비가 낮다고 가지 마라고 할 때 가지 말 것을 교수들 성희롱은 좀 많아

-시인들은 좋겠다 몇 자 쓰지 않아도 작품이 되니 나는 어깨와 다리와 손목이 문드러지도록 써야 하니 허리인들 견딜 수 있나 일본의 어느 작가는 일 년 쓰고 일 년 신나게 놀고 일 년을 다듬어 세상에 내놓으면 베스트셀러가 되어 돈방석에 앉고 가족이 없으니 돈 있어봐야 쓸 데가 없으니 말짱 헛일이고 한국의 여류작가는 단편 하나 쓰려고 지리산 근처 골방에 꼼짝 않고 15일을 버텨야 한 편이 나온다니 어느 인기 작가는 잘 써서 호평을 받고도 레드컴플렉스가 있어 입을 잘못 놀려 분서를 당한 경우도 있다지 얼마나 황망한 일이야 문하생들 작품을 제 작품인 양 호도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고 그럴 일 없는 시인들은 좋겠다 100살에도 정신만 튼튼하면 자기만의 시를 쓸 수 있어서

-시인들은 좋겠다 전쟁이 나야 써먹을 곳이 있는 우리는 항상 배가 고파 힘을 써야 하니 잘 먹어야 하지 하루에 한 번 불암산 정상을 다녀와야 하지 변방으로 빠지면 마누라 얼굴도 한 달에 한 번 볼까말까 도무지 서울을 떠나 따라올 생각을 하지 않아서 두 집 살림을 해야 하니 돈을 모을 날이 없어

-시집은 한 번에 300권 내는데 100만 원이면 뒤집어쓰니 안 팔리면 그만이고 팔리면 고맙고 그런데 왜 유독 시인들만 사람 인人 자를 붙여주는 거야 우리는 사람도 아닌 쟁이고 장이인가

 

옆에서 오가면서 그들의 말을 건성으로 듣던 주모 겸 사장의 말

 

-쳇 저게 돌려서 질투하고 샘내는 거지 뭐여 시인들이 시에서 말을 아껴선지 말은 많지만 생각이 깊고 낭만적이고 점잖기는 하지 진짜 사람 냄새가 나지 그러니 ‘사람 인人’ 자를 붙여주지 다른 사람들은 술 마시면 뒤끝 안 좋고 다 장사꾼이고 쟁이여 쟁이 ‘집 가家’를 붙이는 것은 파자破字하면 너희들은 집 안의 돼지라는 뜻이여 그것도 몰라 내가 인사동밥 30년 먹은 사람인데 당신들은 시인들에게 샘낼 자격이 없어 시인들은 돈 안 되는 시를 쓰니 가난해도 절대 술값은 안 떼먹어 당신들이 떼먹지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씨를 빼먹지 내 술값을 떼먹냐 어떤 돈인데 니들은 진정한 예술가가 아녀

 

 

*한자 집 가家 풀이 : 宀 집 면(갓머리) 아래 豕 돼지 시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