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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수락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331회 산행)

수락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331회 산행)

집결일시: 2018. 3. 25.(일) 10 : 30

집결장소: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3번 출구

산행 기자: 나창수

 

1.시가 있는 산행

바람의 옹이 위에 발 하나를 잃어버린 나비 한 마리로 앉아
-김선우(1970~ )

시아침 3/22

봄꽃 그늘 아래 가늘게 눈 뜨고 있으면
내가 하찮게 느껴져서 좋아

먼지처럼 가볍고
물방울처럼 애틋해
비로소 몸이 영혼 같아
내 목소리가 엷어져가

이렇게 가벼운 필체를 남기고
문득 사라지는 것이니

참 좋은 날이야
내가 하찮게 느껴져서

참 근사한 날이야
인간이 하찮게 느껴져서


자신이 하찮다는 사실에 마음이 어두워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밝고 가벼워지는 사람이 있다. 어느 한쪽을 편들기는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을 때 우리 영혼은 가벼워지고, 영혼의 가벼움을 알 때 이 삶은 애틋해지는 것 같다. 스스로를 하찮다고 여기는 마음이 무언가를, ‘가벼운 필체’ 같은 걸 지상에 남기고 간다. 자신이 먼지임을 아는 먼지는 근사하다. 인간은 결코 하찮지 않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2.산행기

“시산회 330회 도봉산(광주고 총산악회 시산제) 산행기(2018.03.10,토)/이승렬

 

◈월일/집결 : 2018년 3월 10일(토)/도봉산 입구 광륜사 뒤 운동장

◈참석자 : 19명(갑무, 정남, 종화, 진오, 형채, 상수, 재홍, 윤환, 경식, 승렬, 원무, 윤상, 삼환, 전작, 동준, 광일, 양기, 천옥, 황표)

◈산행코스 : 도봉산입구 광륜사 뒤 운동장-도봉분소-성불사-우이암-원통사-정의공주 묘-연산군 묘-쌍문동 뒤풀이장소

◈동반시 : “꽃잎에 곱게 물든 사랑”/김득수

◈뒤풀이 : 감포왕갈비(02-992-5202)/갈비탕에 소주, 맥주와 막걸리

 

이틀 전 총장님으로부터 산행기자로 지명되어 카톡에 공지까지 된 마당에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수행하기로 하고, 어제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누웠는데, 자기 전에 본 평창 장애인 올림픽 개막식 영상이 머리에 잔영으로 남아 결국 12시가 다 되어서야 숙면에 들었다. 아침 6시 반에 알람이 울어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고 등산준비를 하였다. 평소에 집에서 아침 식사대용으로 먹던 흑임자 인절미 두 팩과 며칠 전에 구리 농산물시장에서 사온 사과를 깎아 배낭에 넣고 8시 반에 집사람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도봉산역에 도착하여 출구를 찾는데 좌측에 에스컬레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보니 그동안 안 와본 사이에 역사가 깨끗하게 리모델링되어 조금 대우를 받는 느낌도 들었다. 미세먼지가 나쁨 단계인데도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줄지어 에스컬레이터로 밀려올라갔다. 역사를 빠져나와 횡단보도 앞에 서니 광일 친구가 진오와 함께 나를 부른다. 반갑게 인사하고 기다리는 사이 카톡에 황표와 동준이 일찍 도착하여 세븐일레븐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데, 길 건너 세븐일레븐을 찾지 못해 황표 커피를 놓치고 말았다. 광일이 감기기운이 있어 약국도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 도봉분소 사무실 앞까지 바로 올라갔다. 북한산 국립공원 도봉분소 앞에서 천옥 회장과 윤상 친구를 만나 함께 기다리다가 분소 앞에서 직원들이 화재예방 행사를 하는데 찬조 출연(?)을 해주었다.

 

재홍이 합류하여 광륜사 뒤 시산제 장소로 이동하였다. 시산제는 예정대로 10시에 시작되었다. 절차에 따라 주요인사와 찬조회원 소개가 있은 후, 각 기별 대표회원이 앞으로 나와 제단에 절하고, 주최 측에서 마련한 막걸리, 시루떡, 사과즙, 등산양말 등 기념품이 분배 되었다.

 

이날 참석한 우리 20회 시산회 회원은 모두 19명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시산제에 참석한 정남 친구는 등산에는 동참하지 못하고, 나머지 18명이 우이암을 목표로 삼환 친구를 앞세워 시산회 제330회 등산을 시작하였다.(10시 45분)

 

오르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김수영 시인의 시비(서울 미래유산 2013-040)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봄을 준비하는 겨울 끝자락의 산천을 틈틈이 구경도 하면서 기자로서 약간의 긴장감을 간직한 채 발걸음을 옮겨본다. 조금 올라가니 우이암 2.6km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개울물도 보이는데 소리 없이 깨끗한 낙엽과 바위 사이를 흐른다.

 

곧바로 오른쪽에 청량교라는 묵직한 돌다리를 건너 금강암이 서있고 이어지는 개울에 겨울을 간직한 하얀 눈이, 오는 봄을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한 10분쯤 더 올라가다 바위와 소나무가 있는 공터를 만나 1차 휴식 겸 간식시간을 갖는다. 황표 친구가 삶은 계란 20개를 분배하고 나도 아침에 준비한 사과를 내놓았다. 막걸리와 웰빙 차들도 비워지고 있었다.

 

반시간 더 오르자 성불사 극락전이 오른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웅전과 극락전의 차이에 대한 토론이 결론을 맺지 못한 채 너럭바위(?)에 도달하여 기념사진을 또 찍었다. 30분쯤 지나 2차 휴식을 가진 뒤 가파른 길을 더 올라 우이암 직전 포토 존에서 오봉과 칼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부터 다리 힘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우이암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곳에서 모 산우가 사진촬영하다 스마트폰을 절벽으로 떨어뜨렸는데 소나무아래 육안으로 보이는 곳에 걸렸다. 마침 근처에 있던 전문등산가 한 분이 빌려준 로프를 허리에 묶고 스마트폰을 회수하여 시산제의 효험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 회장이 시산제에서 받은 시루떡과 사과즙을 그분께 건네며 감사를 표하였다. 산우들이 말하길 ‘오늘 산행기 소재는 이 건만 가지고도 충분하다.’고 산행기자를 위로(?)하기도 하였다.

 

우이암을 지나 10여분 내려가다 넓은 공터를 만나 점심시간을 갖기로 하고 자리를 폈다. 남은 막걸리와 한 회장이 가져온 홍주, 그리고 홍어와 한라봉, 겨우살이, 여러 산우들이 정성껏 준비해온 밥과 과일, 김치 등 푸짐한 식단으로 겨울산행의 맛과 멋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동반시를 큰 목소리로 기자가 낭독하였는데, 김득수 시인의 “꽃잎에 곱게 물든 사랑”이었다.

 

꽃잎이 지고 나면

우리 사랑은 다 한 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휘날리는 꽃잎에

우리 사랑은 새롭게 열매 맺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곱게 물들어 가던 사랑

다가갈수록 가시밭길을 걷듯 우리에게 수많은 아픔이 찾아 왔어도

변함없는 사랑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놓고 두 손을

꼭 잡게 했습니다.

 

수천 번 꽃이 피고 져도

우리 사랑은 지지 않고 서로 바라보며 거센 비바람을 이겨내듯

함께할 수 있었기에

사랑은 성숙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14시경에 점심을 마치고 내려가기 시작하여 10여분 만에 천년고찰 원통사에 도달하였다. 원통사는 신라 경문왕3년 서기 864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고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하였다는 석굴도 경내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원통사에서 우이암이 바로 보이는데 원래는 관음봉, 사모봉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이어서 가파르고 험한 내리막길을 1시간 20분 정도 조심스럽게 내려와 북한산 둘레길 방학동 구간에 도달하였다. 몇몇 친구들이 연산군 묘를 보자고 하여 20분 정도 둘레길을 따라 걷다가 세종대왕의 따님인 정의공주 묘역 앞에 도착하였다. 정의공주는 세종대왕의 둘째 따님으로 금슬이 좋았다는 부마 양효공 안맹담과 합장되어있다. 5분 정도 더 걸어서 연산군 묘역에 다다르니 언덕위에 조선 제10대 임금인 연산군과 부인 신씨의 묘, 그 아래에 연산군의 딸과 사위의 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연산군 묘역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니 이제 뒤풀이 장소까지 이동하는 문제가 남았다. 다수의 친구들이 택시로 이동하자는 의견에 4명씩 분승하여 정의여고 부근(정확히 말하면 소피아관광호텔 맞은편)에 있는 ‘감포왕갈비’(구, 감포면옥)로 이동하였다. 삼환 친구가 미리 예약을 하여 준비된 2층 방으로 올라가 배낭을 내려놓고, 맛있는 김치와 깍두기가 곁들인 갈비탕에 시원한 맥주와 막걸리를 마시며 뒤풀이가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순배가 돌아가자 이 총장께서 안건토의를 제안하였다. 다음 산행지 검토와 관련한 안건은 원래 계획대로 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어 집행부에서 결정하여 공지하기로 하였고, 두 번째 안건인 신원우 회원 병문안과 관련해서는 시산회 명의로 백만원을 거출하여 원우 부인께 전달하기로 하였다.(17시 35분)

 

오늘 산행은 모처럼 시산제가 같이 진행되어 큰 의미가 있었으나, 산행코스는 회원 평균수준을 상회하는 조금은 무거운 코스가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다음 산행 때는 이를 참고했으면 하는 기자 개인생각을 감히 덧붙여 본다.

2018년 3월 11일. 이승렬 씀.

 

3.오르는 산

도봉산 성불사에서 대웅전과 극락전에 관해 설왕설래했다기에 잠시 설명을 붙이지만 관심이 없는 산우는 밑줄 친 부분만 읽어도 무방하다. 산우들이 정상까지 올라갈 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도봉구청 앞 나의 집에서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잘들 다녀오시라.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은 중앙에 불단을 설치하고 그 위에 불상을 모시는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 봉안한다. 격을 높인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며, 각 여래상 좌우에 협시보살을 봉안한다. 삼신불을 봉안하기도 하는데 삼신불은 대개 비로자나불, 아미타불·약사여래, 석가모니불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대웅전에는 보통 비로자나불·노자나불·석가모니불을 봉안한다.
불상을 안치하고 있는 불단을 수미단이라고 하며, 내부는 화려하고 장엄하게 만든다. 불단의 조각은 매우 섬세하며, 천장에는 보상화무늬와 연꽃무늬 등을 조각하여 천우보화의 의미를 상징한다. 많은 탱화들을 봉안하는데, 석가모니불의 후불탱화로는 주로 영산회상도를 봉안하고, 삼신불의 경우에는 삼여래 탱화를 봉안한다.

 

극락전은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法堂)이다. 극락이란 명칭은 즐거움이 있는 곳(sukhavati)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안양(安養)으로 번역된다. 아미타불은 성불 전에는 한 나라의 임금의 지위와 부귀를 버리고 출가한 법장비구(法藏比丘)로서 여래의 덕을 칭송하고 보살이 닦는 온갖 행을 닦아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을 세웠으며, 마침내 아미타불이 되었다. 아미타불은 그 광명이 끝이 없어 백천억 불국토(佛國士)를 비추고(光明無量), 그 수명이 한량없어 백천억 겁으로도 셀 수 없다(壽命無量). 따라서 극락전을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한다. 한편 주불의 이름을 좇아 미타전이라고도 한다. 고해의 세상에서 번뇌하는 중생은 누구나 절대적 행복으로 충만되어 있는 이상향인 극락정토를 추구하고자 함은 매우 절실하다. 극락정토에 태어나는 방법으로 염불을 중시하며 그런 사람은 사람 가운데서 깨끗한 연꽃으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아미타불은 일반 중생에게 매우 설득력이 있는 대상이었다. 그런 결과로 우리나라 사찰의 법당 중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다음으로 많은 불전이 극락전이다. 즉 1600년의 한국불교사에서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극락전에는 당연히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다. 그 좌우에는 고해의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극락전은 여타 불전과 특별히 다르지 않으나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보듯이 남향의 무량수전에서 아미타불은 서향을 하는 점이 특이하다. 충남 부여의 무량사 극락전, 전남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4.동반시

 

구름에 깃들여/천양희

 

누가 내 발에 구름을 달아놓았다

그 위를 두 발이 떠다닌다

발, 어딘가, 구름에 걸려 넘어진다

생(生)이 뜬구름같이 피어오른다 붕붕거린다

이건 터무니없는 낭설이다

나는 놀라서 머뭇거린다

하늘에서 하는 일을 나는 많이 놓쳤다

놓치다니! 이젠 구름 잡는 일이 시들해졌다

이 구름,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구름기둥에 기대 다짐하는 나여

이게 오늘 나의 맹세이니

구름은 얼마나 많은 비를

버려서 가벼운가

나는 얼마나 많은 나를

감추고 있어서 무거운가

구름에 깃들여

허공 한 채 업고 다닌 것이

한 세기가 되었다

 

2018. 3. 24.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