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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전제덕의 하모니카 연주를 듣고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전제덕의 하모니카 연주를 듣고 / 도봉별곡

 

 

청량리에 비가 내린다

열흘쯤 내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시인은

 

한 번 배우면 절대 잊지 않는 것에 대하여

자전거는 한 번 쓰러지면 승부에 진다는 것이고

수영은 물에서 살다가 나와 뭍에서 사는 인류가 다시는 물에서 죽지 않기 위함이며

사랑의 기쁨과 아픔에 대하여 다시는 사랑하지 마라는 것이다 사랑,

그 쓸쓸함은 쓸쓸하기 때문이다 쓸쓸함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을 잃고

시인의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가슴 아픈 미서 시인은 열차를 타고 천안을 간다지만 그 길은 강이 없으니 외롭다

춘천 가는 열차를 타고 북한강을 스치면서 박은옥 정태춘의 새벽안개 자욱한 노래 ‘북한강에서’를 들어야 한다 제발 김유정 문학관에 돈을 바칠 일은 아니다 시인은 돈을 벌거나 내기 싫기 때문이다

 

그래도 믿지 못하겠거든

남한강에 가면서 지금쯤 한참 흐드러졌을 용문사 양귀비꽃은 보아라, 죽을 만큼 아름다운

아직도 사랑을 잃고 죽고 싶다면

용문사 은행나무가 왜 그렇게 오래 살아 있는지를 물어라

시인은 답을 들었다 ‘죽지 못해 산다고’

 

만약 그래도 죽고 싶다면

충주까지 내려가 신경림의 ‘농무’를 추면서 ‘목계나루’가 없어진 이유를 따져야 한다

밤이 되면

영월 동강이 휘돌아가는 옆 산 천문대에 올라 쏟아지는 별빛과 그대의 사랑만큼 희미해진 은하수를 보아라

그래도 죽고 싶은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눈 먼 전제덕의 하모니카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들어라

 

그래도 죽고 싶다면 ‘바람이 사랑을 만나면 무엇이 될까’를 생각하라

네가 바람이 되면 살고 싶어질 것이다

바람이 이루지 못할 사랑은 없기 때문이다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