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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시를 쓰시려거든 – 자유를 향한 여행 / 도봉별곡

시를 쓰시려거든 – 자유를 향한 여행 / 도봉별곡 

 

 

 

시를 쓰고 싶은가 내 안의 ‘나’와 대화하는 것이다

시인이 되고 싶은가 인간과 신의 중간이 되고 싶은 거다

무욕의 마음가짐으로 시작하시라

그만큼 시가 깨끗해지므로

 

시간이 드는가?

돈이 들지 않고

돈이 되지도 않지만

돈으로 쓸 수 없는 것을 시라 알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자유로운 여행을 시작한 무욕의 시인이다, 그것도 예술에서 유일하게 사람 ‘인’ 자를 붙여주는

 

진정으로 시를 쓰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시란 상상력의 비실재적 시 · 공간이며 시간의 흐름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주어지며 지구라는 공간 또한 같다

 

시인의 정의는 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임을 잊지 마시고 딱 그 중간에서만 머무시라 신과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니까 붓다의 중도와 공자의 중용은 이미 검증된 덕목이다

 

인간은 고해의 바다를 떠다니는 외로운 존재이고 신은 자신의 형체를 내보일 방법을 모른 채 떠도는 무능한 그림자일 수 있으니까 오죽하면 신화를 인간이 만들어낸 허황한 이야기라 했을까

 

문득

이미지 하나쯤 떠올려 제목을 정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보시라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내고는 체험이든 상상력의 힘으로든 쓰다가 행과 연을 가르면 운문시가 되고 그대로 놔두면 산문시가 되고

 

시는 귀한 미적 결과물이니 굳이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시는 시간과 산과 술과 삶처럼 어느 방향을 바라보느냐의 차이와 구별은 있어도 비교의 대상은 아니니 결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나 발표할 수 있는 한 번의 용기만은 필요하다

 

돈이 필요 없어졌다면 남의 눈치를 볼 일이 있는가

 

직유는 온전히 마음을 드러내서 좋고, 은유는 마음을 감출 수 있어 좋고, 제유와 환유법은 반은 드러내고 반은 감출 수 있어 좋고

 

쓰다가 생략하거나 줄여도 축약이라는 기법이라고 봐줘서 괜찮고

동물이 되고 싶거나 식물이 되고 싶다면 의인화의 기법이 있으니 활용하시고

산이나 바다가 바람이 불이 되고 싶거든 동일화라는 의인화와 비슷한 의미의 기법을 배우시라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주니 좋은 일 하는 거고

 

그러나

직유는 격이 떨어지지 않게 하나의 시에 두 번까지만 사용하시라

적당하고 적절한 은유와 상징은 시를 폼 나게 하나 오용과 남용은 시를 어렵게 하며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드는 단점을 내포하니 잘 극복하시라

 

최후의 은유적 상징을 찾아내고는 절묘하게 구사하는 것이 시와 시인의 최고의 덕목이니 끝까지 잘 찾아보시라

 

지나친 형용사의 구사는 미사여구의 유혹에 빠지기 쉬우니 ‘형용사의 동사화’라는 고급 기법을 배우시라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올바르게 배우지 않으면 시의 품격이 떨어지니 조심하시라

제목을 정하지 않고 시작했다면 다 쓰고 제목을 붙일 때 시를 쓴 만큼의 열정을 쏟으시라

 

체험은 삶이 힘들었던 만큼

상상력은 당연히 간접 경험이 많을수록

폭이 넓고 깊어지며 간접경험의 대부분은 책에서 얻어진다

유명 시인은 불경과 성경과 삼국유사를 꼽았지만 불경은 너무 어렵고 방대하니 조심하시라 잘 하면 시인이 되기도 전에 먼저 책 속에 빠져 중이 될 수도 있으니

 

옛날 과거시험에 시와 역사는 필수였나니 해서 정치유전자는 시적 감성과 역사적 통찰이었지만 잘못 쓰면 당쟁싸움이나 하게 되는 소인배를 만드나니

 

아직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이름조차 모르는 ‘시의 신’이 내리는 엄중한 경고와 동시에 뜨거운 관심일 것이다

 

기도와 명상은 집중을 위한 훈련의 하나이고 시는 연상聯想의 뇌 작용이 필요하므로 두 가지의 동시 작업은 어렵다는 것을 아시라 그러나 명상의 ‘시각적 형상화’를 부작용 없이 온전히 내 것으로 학습할 수 있다면 한 번 해보시라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니

 

남녀의 시 경향의 차이는 그림으로 치면 산수화와 정물화의 구별이므로 높낮이가 끼어 들 공간이 없고 주정시와 주지시의 경향이 있을 뿐

 

등단은 그들만의 리그에 휘말릴 위험이 있으니 조심할 자신이 있다면 뛰어들어도 좋겠지만 아니면 시간 낭비에다 마음 상할 수 있음을 잊지 마시라

 

다만

시에 목숨을 걸었다면

시를 통한 세상의 혁명이라도 거창하게 꿈꾸었다면 당연히 나서서 싸우시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세상의 비평에 맞설 자신이 붙었다면

목적시나 참여시든

사랑시나 연애시든

구도시나 종교시든

잠언시나 경구시든

주정시나 주지시나 주의시든

마음 놓고 써보시라

어차피 남의 얘기란 사흘을 넘기지 않는 법

일생에 한 번쯤은 대서사시를 써볼 꿈을 꾸시라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말고 판소리 열두 마당 춘향가 닮은

 

소설을 쓰다가 굶어죽었다는 얘기는 자주 들었지만 시 쓰다가 굶어죽은 사람은 없고

 

공지영 작가는 단편소설 원고지 80매를 메꾸려고 15일간 작정하고 지리산 행복학교를 찾는다니 소설은 우선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주제의 일관성, 절제하고 정제한 묘사, 적절한 품사와 시어의 구사

위와 같이 고상한 말투는 복잡하니 때로는 무시하시라

매일 시 메모와 국어사전 읽기, 시 일기, 시 읽기는 빼지 마시라

써놓고 고칠수록 빛이 난다는 사실도 알아두시라

 

그래도 쓰고 싶다면 그냥 쓰시라

그리고 꼭 발표하시라 시는 일기가 아니고 시는 자유를 향한 여행이므로

그런 마음이라면 문우들에게 따뜻한 축하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절대로 버리지 말고 간직하시라

당신만의 심장으로 당신만을 위하여

자유롭게 겸손한 언어로

검소하게 쓰시라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