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손가락과 달 사이 / 도봉별곡
1
수종사 범종 소리에 두물머리가 갈라지는 남한강 지나는
열차를 타고 용문사 올라가는 숲길을 좋아하는 이유는
긴 숲과 길 사이 작은 도랑으로 흐르는
동갑내기 여자 도반의 마음 닮은 맑은 물 때문이다
존경과 우정 사이
숲 사이로 보이는 파아란 하늘이 눈을 찌르듯 궁금하다
나와 우주 사이
달마가 동쪽에서 온 까닭과
달마가 서쪽으로 간 까닭의 사이는 모르겠고
검정과 흰색 사이 회색은 틀렸고
손가락과 달 사이
견월지망見月指忘, 달을 보라는데 왜 손가락 끝만 보는가
손가락은 문제고 달은 답인데
가장 큰 틈은 탐욕의 소유와 해탈의 무소유 사이
모든 사랑이 들어있다
2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사이에는 뚜렷한 공극空隙이 있다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구분한 사람조차 예상하지 못한 간격을
현자는 영零이라 한다 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시는 죽음의 강, 베다라니와 망각의 강, 레테라고 한다
그 사이에 신이 존재한다는 종교는 왜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지적설계론에는 결정적 또는 치명적인 약점이나 결점이 16가지나 있는 게 분명하다
철학은 철학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과학은 과학대로 영역을 지키며
인류가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으며
행복해지는 방법을 연구하며
실천하면
모든 불행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데
신은 철학에 관심이 없고
철학은 자기를 통해 신에게 접근하지 마라는 것이고
과학은 실험기구를 통하지 않고는 존재 또는 실체의 증명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마라고 한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
과학은 가장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방법으로 행복해지는 생활을 위한 영역
고통으로 기쁨의 크기를 잰다한 들
종교는 인간의 필요를 위해 만든 가장 잔혹하며 실패한 작품
우주 및 시간의 시작과 끝은?
신과 영혼의 존재 여부는?
선악의 인과응보의 결과는?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다는 3대 명제에 대하여
붓다는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물음이라며 답하지 않았고
공자는 인간도 세상도 선도 모르는데 하늘과 신과 악을 어떻게 알며
소크라테스는 왜 물어보느냐고 반문을 했고
예수는 빛이요 진리요 길이라 답했다
가장 정직한 영역 – 불가지론은 존재 증명의 책임은 논리적으로 존재를 주장하는 측에 있으며 증명이 불가능하여 모른다면 솔직하게 인간의 능력을 뛰어 넘으니 종교의 영역으로 맡기자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실익이 없는 논쟁이기 때문이다
3
세상사 모든 갈등은 이것과 저것의 틈이 벌어진 까닭
그 틈과 사이에서 삼라만상이 온갖 지랄과 방정을 떨며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지낸다
특히
사랑과 우정 사이를 눈치 채지 못하게 즐기는 사이에
반가사유상도 있고 히말라야도 있다
반가사유상을 보고 싶은데 한 달 지났네
지난겨울 삶과 죽음 사이의 간격이 넓었다 해도
산에 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사이에 서서
의사는 산에 오르지 마라고 한다
내 얼굴에 산그림자가 비췄거나
산바람 소리가 들렸거나
손가락이 새를 닮았거나
의사가 미쳤거나 신 들렸거나
나는 의사에게 산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내 부러진 목 사이를 채운 인공뼈는 나를 장애인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바람이 모든 것을 잠재우며
밤에 홀로 피는 반달은 아름다워서 처절하다 못해
어둠과 밝음 사이에 핀 반달에서 어머니 냄새가 애달프게 일고
내 혼魂과 백魄은 무엇을 위해 잠 못 이루고 아침을 맞는가
우리는 무엇에 쫓기며 살며
애끓은 답을 찾지 못하고 기웃거리는가
사람아, 사랑아
버리거나 비우거나 가벼워질 필요조차 없어져 버린 것들아
천千 조각으로 기운 분소의糞掃衣, 나무 발우, 나무 아래 땅이면 그냥 만족하고 살아라
만족도 병이거늘
죽지도 못하거늘
뭘 메우란 말이더냐
그토록 궁금한 건 사람과 사랑 사이의 틈이다
사랑을 ‘뜨거운 관심’이라 답했다가 손을 데었으니 답은 결코 아니고
그 틈이
비논리적 은유와 반어법의 상징과 나만 아는 축약과 생략의
시가 아닌 것은 안다
4
이쯤에서
장성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혼재한 ‘치유의 숲’ 속에서
낮이면 그들과 얘기하다가
밤이 되어 외로워지면 서울에는 없는 벽오동을 안고
석 달 열흘쯤 지내다 오고 싶다
다만 무소유를 지향하다보니 거기 갈 여비가 없다
머리 깎고 주머니 없는 중옷 입으면 봐 줄려나
손 벌리기는 싫고 벌린다고 믿어줄 사람도 없으니
내가 세상은 잘 살아온 편이라고 믿어본다
새벽 중랑천 가에서
법륜공法輪功을 펼치는 눈 밝은 노인이 돈 받지 않으니
와서 배우라 한다
멀리 중랑천 가운데서 쇠백로가 물속으로 주둥이를 넣는다
새는 몸 말고는 가진 게 없기 때문이다
내게 날개가 달린다면 장성 치유의 숲으로 날아갈 판이다
(내 시가 유난히 길어지는 이유는
가슴 한 가운데로 동그랗게 뚫린 구멍을 애긋은 샛바람만 오고 가므로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