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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청계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348회 산행)

청계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348회 산행)

집결일시: 2018. 11. 25.(일) 10 : 30

집결장소: 전철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 대합실

 

1.시가 있는 산행


-김윤성(1925~2017)


시아침 11/21

달팽이가 돌 위에 올라앉은 아침
뒷발을 뱀에게 물린
개구리가 버둥대며 마지막 보는 돌
삼분지 일쯤 땅에 묻혀 있는
늘 그날이 그날 같은 돌의 생애

 


나뭇잎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돌
한 번도 사람 손에 닿아본 적 없는
잡초 속에 호젓이 굴러 있는 돌
(…)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때의 너는
아무 시선도 끌지 못하는 무명의 돌이다
이 넓은 강가에 깔린 돌들처럼
어느 곳에 너는 섞여 있는가?

돌은 멈춰 있거나 버려져 있다. 하지만 고장 난 시계가 하루 두 번 맞듯이 인간도 가끔 돌처럼 멈춰 생각이 없어진다. 그때가 인생 시계가 맞춰지는 때인가. 돌은 무명의 인간이 되고 인간은 이름뿐인 돌이 되는 상상의 한 때. 그리고 여기는 인산인해로 돌들이 우글대는 고독한 강변.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2.산행기

시산회 347회 청양 ‘칠갑산’ 산행기/ 전작

○ 집결지(일시/장소) : 2018년 11월 3일(토) 07:15 / 지하철 2,9호선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 산행코스 : 천장리(주차장)-천장호-출렁다리-칠갑산(정상)-<원대복귀>-주차장-뒤풀이 장소(8Km)

○ 참석자 : 14명(갑무,종화,진오,형채,재홍,윤환,경식,윤상,원무,작,동준,한,문형,양기)

○ 동반시 : 가을노트 / 문정희

○ 뒤풀이 : 한우소머리곰탕에 막걸리 / 곰탕집(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156-44, 041-944-1835)

 

오늘은 재경광주고동문회 산악회에서 주최하는 하반기 정기산행 겸 시산회 347회 산행 행사로 148명의 대식구가 4대의 버스를 타고 간다. 칠갑산은 지금까지 가 본적이 없고 “콩밭매는 아낙네야 배적삼이 흠뻑 젖는다”로 시작하는 애달픈 노래 가락, 어머니 품 같은 산에 오르면 무언가 아련한 그리움이 피어오를 같아 가보고 싶은 산이었다.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종합운동장역에 도착하니 총동창회 산악회 집행부가 반가이 맞이한다. 단풍철이라 장사진을 친 관광버스와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헤매다 진오를 만나 배정된 2호차에 탑승하였다. 시산회 14명과 16회 16명, 22회 3명, 33회 4명 총 37명이 배정된 2호차는 거의 정시에 칠갑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출발 하자마자 2호차 총무를 맡은 33회 윤종오 산학회 기획이사가 김밥과 행사안내문을 나누어 주고 산행계획을 설명한다. 동문이라는 인연으로 수고하는 후배가 고맙다. 안내문에 산행 들머리인 천장리 도착시간은 10시. 내비를 찍어보니 12시다. 무언가 이상하다. 아니나 다를까 경부고속도로에 접어드니 차들이 꼼짝 안는다. 남도의 늦단풍 구경 가는 교통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듯하다.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 옆자리의 입담 좋은 동준이가 지루함을 덜어 준다. 재수 좋은 날이다. 생리작용이 느껴질 무렵 정안휴게소에 도착. 내 평생에 화장실이 이리 붐비는 건 처음. 발 디딜 틈이 없다. 잽싸게 젊은 사람 뒤에 가서 해소. 사람이 많으니 여기서 또 지체다.

 

12시경 산행들머리인 천장리 주차장에 도착. 시간이 많이 늦어 다들 잽싸게 배낭을 챙겨 메고 하차하여 총무 앞으로 모인다. 15시50분 원점 회귀 지시를 듣고 기수별로 산행 시작. 역시 일사불란한 광고동문들이다. 시산회는 천장호 출렁다리를 건너서 정상을 가기로 하고 삼삼오오 출발. 원무총장님은 막걸리 점검 후 부족한 막걸리를 사러간다. 노령신사이신 총장님이 고맙다. 들머리에 있는 중국풍의 조잡한 조화와 조형물들이 별로다. 호미든 아낙네 조각상과 황룡정을 지나 청양의 대표 농산물인 빨간 고추와 구기자 조형물로 장식한 출렁다리를 건너 전망대에서 원무총장님을 기다리며 잠시 휴식. 양기가 가져온 생고구마로 요기. 맛이 일품이다. 양기 내자에 감사.

 

12시45분경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 정상을 향해 출발. 계단을 한참 오르니 낙엽이 널브러진 흙길이다. 한참을 가도 단조롭고 지루한 능선이다. 원점 회기시간에 맞추기 위해 마음이 바쁘다. 능선은 부드러우나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한다. 칠갑산 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르기에는 힘이 부친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올 해 들어 시산회에 자주 참석 못한 내 탓인 것을. 가도 가도 정상은 멀리 있다. 한 참을 가다보니 선두그룹이 보이지 않는다. 일부 산우는 정상 정복을 포기하는 가운데 형채, 양기, 재홍, 동준이랑 고지가 바로 저긴데 하면서 에라 올라가보자 하고 진군. 정상 바로 아래에서 1회 안원태 선배님이 하산하신다. 대단하십니다하고 인사드렸더니 죽기 살기로 갔다 왔다고 하신다. 20회는 청춘 아닌가. 정상에 오길 잘 했다. 1회 선배님을 보니 앞으로 이정도 산 정상은 20번은 오르겠다고 다짐해본다. 도로아미타불이 될지라도.

 

14시 30분경 561미터 칠갑산 정상에 도착. 선두그룹의 종화, 윤환, 경식, 원무는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가려한다. 후미그룹도 내려가려는 이총장님을 붙잡고 정상석 사진 찰칵. 얼마 만인가 정상석 사진. 하늘빛이 환상인 정상에서 동서남북으로 한 바퀴 둘러보고 바로 하산. 하산 길 평평한 이름 모른 곳에 돗자리를 펴고 둘러 앉아 청양막걸리에 준비해온 음식을 정성껏 차려 놓고 오늘의 기자인 소생이 문정희 시인의 가을노트를 휴대폰에서 찾아 낭송 후 산우들과 환담을 하며 늦은 점심을 했다.

 

가을노트 / 문정희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한 말

못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잎 두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15시경 쓰레기를 봉투에 담아 하산시작. 다시 단조롭고 지루하고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능선을 따라 다들 빠른 걸음으로 하산을 재촉한다. 조망도 좋지 않다. 누군가 청양은 충청도의 무진장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산은 높지 않으나 첩첩산중 분위기다. 또 누가 산세도 구불구불 오르랑내리랑 밋밋한 것이 충청도 사람 마음 같다고 거든다. 한 참을 내려오다 숨을 고르기 위해 이름 모를 벤치에서 잠시 휴식. 오늘 단체사진을 지나가는 후배에게 부탁하여 14명 모두 오른 손을 불끈 쥐고 한 컷. 하산시간을 맞추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여 내려간다. 다들 내려오면서 조망 좋은 곳에서 천장호와 출렁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출렁다리 호랑이상 옆에서 잠시 휴식 후 원점으로 출발.

 

 

15시50분경 시산회원 전원 약속시간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뒤풀이 장소인 곰탕집으로 이동. 우리차가 마지막 도착. 이미 식당은 거의 만원이라 시산회원은 빈자리를 찾아 흩어져 한우소머리곰탕에 막걸리로 저녁 식사.

 

16시30분경 재경총산악회장의 이취임식과 산행에 참가한 전원의 기념사진을 찍고 서울을 향해 출발하여 어둠이 깔린 19시30분 경 종합운동장에 도착하여 해산. 차가 많이 막히고 연로하신 선배와 대인원이 참석한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헌신적인 노력을 한 집행부에게 감사를 드리며 산행기를 마친다.

 

마지막으로 내려오면서 천장호 옆에서 보았던 붉은 애기 단풍이 잊혀 지지 않을 것 같다.

시산회원 모두의 건강을 바란다.

2018. 11. 24. 전작 올림

 

3.오르는 산

자주 오른 산이라 더 거론할 것은 없다.

대신 제주도 한라산백록담 올라간 얘기를 조금 하겠다.

제주에 76세 누님이 사시고, 추전이 서귀포에서 자리를 잡았다. 추전은 백록담까지 오를 체력은 없으나 영실은 매주 다닐 만큼 체력이 회복되었다며 영실에 함께 오르자며 와서 자고 가라고 하고, 대한항공 기장을 아들로 둔 누님은 서울에서 함께 살자는 효자를 두고 제주에서 홀로 사시는데 두 여인네가 보고 싶다며 오라는데, 내가 아무리 목숨이 하나뿐이라지만 영구마일리지도 무지 많이 남았고 산림청이 발표한 100대 명산 중 88개를 올랐으나 남은 12개 산 중, 여러 번 시도했으나 실패한 한라산은 올해 안에 꼭 오르고 싶었다. 가족들은 당연히 반대했지만 원래 남의 말을 잘 듣는 편도 아니고, 무릎을 굽히고 사정하느니 목을 내놓고 말겠다는 결기도 있고, 하지 말라면 더 하는 묘한 성정을 가지고 있어 결행했다. 비행기표를 발급하는 순간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리 금요일에 표를 발급받아 기다리는 기간을 최소로 줄였고,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 욕심낼 것 없이 무소유 상태로 환원해버린 터이며, 남은 애장품도 나눠주고 박물관에 보내는 중이라 죽음에 초연해지기 시작했으니 견딜 만했다.

 

무서움을 줄이고 이왕이면 바깥 하늘과 바다, 땅구경도 할 겸 일부러 창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륙하고 수평으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아직은 손은 땀으로 찼으나 옛날만큼보다 양은 많이 줄었다. 그랬더니 착륙할 때는 아름다운 제주의 바람과 산하를 즐기기 시작했다. 은밀한 고백이지만 내게는 바람의 색깔이 보인다네. 믿거나 말거나. 지긋지긋한 고소공포증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기분 좋은 전설 같은 실화다. 사실 아내는 해외여행기금도 많이 쌓아놓았다. 다음 날 아침 누님이 싸주는 물병 두 개와 김으로 말은 주먹밥, 비스켓 등으로 무장하고 제주터미날에서 서귀포 가는 6시 58분 출발 버스를 탔다. 정확하게 성판악에 7시 35분에 도착하고 지형 정찰 겸 화장실에 들르고 궁금해서 매점에 갔더니 김밥의 가격은 3000원이다. 멀리 백록담을 품으며 담고 있는 정상을 바라보며 산행 출발선에서 고도계에 있는 시계를 보니 7시 42분이다. 완만하지만 제주 특유의 현무암이 불규칙하게 깔린 돌길을 걸어가는데 젊은 사람들은 나를 제치고 앞으로 잘도 나간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내가 가장 고령임에 틀림없다. 완만해서 땀은 나지 않았지만 걸음은 점점 느려진다. 원래 혼자 산에 오를 때는 한 번도 쉬지 않는 편이라 쉬지 않고 걷는다. 중간 곳곳에 고도 표시석이 서있고 길 양 옆은 온통 산죽으로 무성하다. 진달래밭대피소에 12시까지 도착해야 백록담 올라가는 길을 열어준다고 여러 푯말이 붙어있어 그때 봐달라고 사정하느니 그 안에 도착하자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거의 경사가 없으므로 오른다기보다 걷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사라오름을 지날 무렵 12시 안에 도착할 수 있다는 자신이 붙었다. 11시 40분, 드디어 진달래밭대피소 도착. 15분 동안 점심 먹으면서 휴식. 11시 55분, 안내방송을 듣고 모두 일어선다. 젊은 사람들은 1시간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약간의 경사도 있어서 1시 55분에 도착했다.

 

중간에 1시 30분 이후에는 백록담 오르는 길을 차단한다는 안내문을 적어놓았지만 산우들은 내가 그 말을 믿을 사람도 들을 사람이 아님을 잘 아실 거다. 물론 형식적으로 막기는 하지만 "목숨 걸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왔다"고 하니 순순히 비켜준다. 10분 정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다만 규정이라며 백록담은 내려가지 말 것을 부탁한다. 내가 마지막이니 걱정이 됐는지 직원이 동행해준다. 한라산 정상에 바람이 없고 안개가 없고 구름이 없는데 백록담이 물이 고여있으면서 하늘이 맑은 날은 1년에 몇 번 없다며 어르신에게는 행운의 날이라고 조심해서 내려가자고 한다. 빈 말이라도 기분이 좋아진다. 남이 듣기 좋은 말은 자신에게도 좋은 법, 남 속 상하게 하려면 자기 속부터 썩는 법이라는 경구가 생각난다. 나도 앞으로 죽는 날까지 그렇게 살려고 한다. 죽음을 자주 생각할수록 스트레스가 사라져 수명이 연장된다는 신문기사를 봤는데 정작 기자들은 타인의 마음을 갈구어야 하는 직업이라 가장 수명이 짧은 직업군이라는 것은 약간 역설적인 수사법이다.

 

천천히 내려오는데 직원의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올라갈 때 아프다는 여자를 봤는데 그 여자가 심각하게 아픈 것 같다. 자기는 빨리 내려가야 하니 마침 3팀이 늦게 내려가는데 8명 중 남자는 나혼자라며 끝까지 함께 내려오는 책임을 져주라 한다. 젊었을 때 대한산악연맹회원일 때 내가 맨 마지막을 책임지는 역을 맡았던 경험을 오래 했다. 염려마라며 급한 환자부터 구하라 했다. 겨울의 산은 어둠이 빨리 밀려온다. 진달래밭대피소를 지나면서 약간 어둠이 깔려오기 시작한다. 폰의 라이트를 켜고 한참을 내려가는데 그 직원이 쓰레기 운반용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왔다. 날이 어둡고 추워지기 시작해서 걱정이 돼서 올라왔다고 한다. 그러면 가장 연장자인 나와 조금 아래인 사람과 그 사람의 자식을 태운다. 편하고 신나는 일이다. 중간에 한 사람은 부상자로 바꿨지만 편하게 성판악까지 내려왔다. 시간을 보니 6시 30분이다. 모레 추전과 영실에 오르기로 했지만 추전은 귤 수확철이라 도저히 사람을 구할 수 없다며 혼자 올라가시라 한다. 중간에 미리 예약을 앞당긴 상태라 걱정마시라 하고 8시 55분 출발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으로 바로 갔다. 가는 길에 누님에게 얘기했더니 갈치와 고등어를 구해놓았다며 무척 서운해하신다. 서운해하는 두 여자를 두고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골아떨어졌다. 옆자리의 여자가 깨우길래 눈을 떠보니 김포공항이다. 내년 봄에는 울릉도 성인봉에 오를 예정이다. 100대 명산 등정 버킷리스트는 채워야지.

 

4.동반시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면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2018. 11. 24.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