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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천하제일 도봉산에 오릅니다(詩山會 358회 산행)

천하제일 도봉산에 오릅니다(詩山會 358회 산행)

산 : 도봉산

일시 및 장소 : 2019. 4. 28.(일) 전철 1, 7호선 도봉산역 1번 출구 10시 30분

 

1.시가 있는 산행

 

첫 기억
-문태준(1970~ )

시아침 2/26

누나의 작은 등에 업혀
빈 마당을 돌고 돌고 있었지
나는 세 살이나 되었을까

볕바른 흰 마당과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깰 때 들었던
버들잎 같은 입에서 흘러나오던
누나의 낮은 노래

 


아마 서너 살 무렵이었을 거야

지나는 결에
내가 나를
처음으로 언뜻 본 때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언제쯤 것일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기억이 멀수록 더 어린 날이다. 잘해야 누나 등에 업혀 칭얼대는 젖먹이 정도? '기억하다'를 '보다'로 바꾸면서 나는 내 인생의 나그네가 된다. 내 가장 먼 바라봄이 어린 나의 첫 기억이다. 나는 그때 어린 나를 언뜻 보았다. 어린 나는 지금 나를 초롱하게 보고 있고.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2.산행기

 

시산회 제357회 남한산성 산행기

1.일 시 : 4. 13(토) 10시30분

2.집결지 : 복정역 (산행 당일 아침 산성역에서 바뀜)

3.참석자 : 임삼환, 홍황표, 김종화, 정한, 한양기, 이경식, 이윤상, 김삼모(8명)

고갑무, 정동준(뒤풀이 참석)

4.코 스 : 복정역 ~ 위례 신도시(창곡천)~골프장 뒤편 능선길~남한산성 제6암문~서문~위례신도시 옆길~거여동 아구찜~배시킨 라빈스~거여역

 

9시경 집합장소가 산성역에서 복정역으로 변경된다고 카톡이 들어온다. 확인 안 된 친구들이 산성역으로 갈 수 있어서 복창 확인을 해 본다. 모두를 복창을 하는데 전과자(?)인 양기만 복창이 없다. 양기는 전에 서울대공원역에서 독립문역으로 바뀌었을 때에 혼자만 서울대공원역으로 가셔서 다른 산우들이 독립문역에서 양기가 올 때까지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참석자 모두 무사히 정시에 도착하여, 10 : 40에 복정역을 출발하였다.

 

말로만 듣던 뉴타운 위례신도시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다.

아름답다. 청량산(497m) 자락에서 맑은 시냇물 (창곡천)이 흐르고 좌, 우에 아름답고

높지 않는 새 아파트들이 서있다. 조경도 어울리게 잘 되어 있어서 어느 대형 리조트에 온 기분이다. 이 쾌적한 동네에 위윤환, 김종화 산우가 살고 있다. 종화는 수없이 이 창곡천 길을 걸었다.

오늘 산행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종화의 발길만 따라가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앞서 가던 종화가 막걸리 사러가는 사이에 우리는 생각 없이 직진 했는데, 아니라고 하여 전화해 보고 다시 내려와 왼쪽으로 가니 아파트 단지 상단에 팔각정이 보인다.

팔각정(위례정), 쉬는 곳이다!

 

모두 올라가 가져온 간식을 꺼내서 안주로 하고 방금 사온 막걸리를 죄다 해 치웠다. 얼마나 걸었다고......, 시산회가 아니고 술산회다. 말하자면 산에 발도 딛기 전이다.

그래도 목표가 있다. 남한산성.

얼마 걷지 않았는데 왼쪽 발아래 골프장 같은 것이 있다

미군용 골프시설(무단 출입 시 한국 경찰이 체포한다)을 지나 오른 쪽으로 우회전하니

가파른 등산로가 시작된다. 숨도 가파져서, 중간에 두 번 쉬고(이번엔 간식 없음)

한참 오르니 남한산성이 보이고 제6암문이 발 앞에 있다

알려진 대로 암문은 일종의 비밀 통로도 크기도 작아서 적에게 쉽게 관측되지 않도록 되어 있다. 인조 15년(1637년 1월 23일)에는 한 밤중에 습격해 온 청병을 크게 물리친 곳이라 하여 이 암문 부근을 서암문 파적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문을 통하여 들어서니 남한산성이다. (1시 반). 우리는 여기서 단체사진 한방 찍는다.

 

아, 남한산성!

우리 굴욕의 역사의 현장이다. 우리가 걷는 성곽길에서 춥고 배고프던 조선의 병사들은 청군의 칼에 낙엽처럼 쓰러졌던 그 곳이다. 수어장대는 그냥 지나치고.......,

 

신라 문무왕이 축성한 주장성 옛터를 인조 2년(1624년)에 축성하여 인조 14년(1636년)에는 군사훈련도 했는데 그해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싸워 보지도 못하고 45일간 이 성안에 갇혀 있다가 곤룡포를 벗고 청의 하급관리가 입는 남색 옷을 입고 죄인들이 출입하는 서문을 나가 이 가파른 길을 내려가 삼전도에서 청 홍타지에게 3배 9고두(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박았을 때 왕의 머리에서 피가 줄줄) 하였던 역사의 길을 우리는 웃으면서 내려간다.

 

“죽음은 참을 수 없지만, 수모는 참을 수 있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의 말을 생각하게 한다.

죽고 나면 모든 게 끝이다. 나만 죽으면 백성의 목숨은 어떡하란 말인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어떤 수모도 각오했던 인조에게 동정심이 간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하산 도중 남은 간식을 먹고 약속한 거여동 아구찜 식당을 찾아간다. 여기서 산행하지 못한 고갑무와 정동준을 만난다,

한이가 추천한 송파아구찜 집이다, 한의 설명대로 맛있는 식당이다. 산상에서 낭독하지 못한 시를 낭송한다(홍황표).

 

안재동 / 벚꽃

 

천지(天地)에 저뿐인 양

옷고름 마구 풀어헤친다

 

수줍음일랑 죄다

땅 밑으로 숨기고

백옥같이 흰 살결 드러내

하늘에 얼싸 안긴다

 

보고 또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자태

 

찬란도 단아도

이르기 부족한 말

수십 여일 짧은 생

 

마른 장작 타듯 일순 화르르

온몸을 아낌없이 태우며

세상천지를 밝히는

뜨거운 사랑의 불꽃

 

아무리 아름다워도

찰나에 시들 운명,

순응이나 하듯

봄비와 산들바람을 벗삼아

홀연히 떠나버린 자리에

 

오버랩되는

고즈넉한 그리움

 

그리고 배스킨 라빈스에서 달콤함과 차가움으로 피로를 녹인다.

산우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남한산성을 오르는 모두 건각들인!

감사합니다.

산행기자 홍황표 올림

 

3.오르는 산

얼마 전에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한국의 자연경관에 관하여 조선 후기의 여러 문헌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의 에상을 뒤엎고 도봉산, 금강산, 포천 청수정 순으로 되었다. 그만큼 뒤어난 곳이니 많이 참석하라는 의미로 다시 올렸다. 나는 사정이 있어 부득이 천안명상센터에 들어와 있다. 코스가 워낙 쉽고 다양하다보니 지금도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언젠가는 개인적으로 도봉팔경을 선정해 시로 쓸 것을 다짐했으나 아직 준비하지 못했다. 물론 마음에 둔 곳은 있다. 다른 사람이 도봉팔경이라고 선정한 곳도 있으나 나와 견해가 다르므로 그냥 무시한다. 부디 즐거운 산행이 되기 바란다. 내가 가지 못하므로 도토리가 많은 만월암 뒤에서 만장봉과 자운봉 사이로 오르는 길을 추천하고 싶다. 도봉산 코스 중 가장 어려운 코스이나 오르면 그만큼 성취감도 있을 것이다.

 

4.동반시

 

널 위해 피고 싶어 / 이경옥

 

아직은 몸을 움츠리며

세상을 향한 몸짓은 못하지만

내가 피어난다면

널 위해 피고 싶어

 

얼음이 온몸을 덮어 와도

널 향한 마음은

따듯하기에

베시시 웃을 수 있어

 

깊은 밤 잠 못 들어 헤매어도

원망은 하지 않으리

너에게 다가갈 날이

서서히 오고 있는 걸

 

침묵의 시간이 흐르면

동동 거리는 발걸음 멈추어 질 때면

하늘 바라보는 여력도 있을 테니

아직은 봉오리 몸짓이지만

 

2019. 4. 27.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