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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남한산성으로 모입시다(詩山會 제357회 산행)

남한산성으로 모입시다(詩山會 제357회 산행)

일시 : 2019. 4. 13.(토) 10시 30분

모이는 곳 : 전철 8호선 산성역 1번 출구

 

1.시가 있는 산행

종점
-최문자(1943~ )

시아침 3/5

사랑 없이도 고요할 줄 안다
우리는 끝없이 고요를 사랑처럼 나눴다
우리가 키우던 새들까지 고요했다
우리에게 긴 고요가 있다면
우리 속에 넘쳐나는 소음을 대기시켜 놓고
하루하루를 소음이 고요 되게
언제나 소음의 가뭄이면서
언제나 소음에 젖지 않으려고

 

고요에 우리의 붓을 말렸다

서로 아무렇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든 간에
시끄러운 가을 벌레들처럼
우리는 아주 오래 뜨거웠던 활화산을 꺼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고요는 침묵일 것이다. 아마 서로 강요하고 눈감아준 것이었겠지. 그런데 침묵은 사랑을 무마한다. 그때 사랑은 소음이란 뜨거운 대화를 통과했어야 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가을이 돼서야 활화산처럼 말문이 터지는 건 늦은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차에게도 사람에게도 아쉽고 부산한 종점 부근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2.산행기

일시 : 2019. 3. 24.(일)

간 곳 : 파주 마장호수 출렁다리

참석자 : 종화, 황표, 윤환, 경식, 삼모, 일화, 갑무, 정남, 양기, 해황, 근호, 정우, 진오, 천옥, 세환, 재홍, 형채, 재웅, 문형(19인의 산사나이들)

 

얼마 만에 따라가는 산행인가. 장자에 나오는 소요유에 가깝다. 명상센터에 있으면서 오르는 뒷산은 거처와 160미터의 표고 차이가 난다. 처음에는 부상의 후유증이 이렇게 큰 줄을 모르고 시작했지만 무려 10번을 쉬면서 올랐다. 부상 전에는 한 번도 쉬지 않을 높이다. 재활이라고 생각하여 등산이라 할 것도 없는 산행을 꾸준히 했더니 두 달 후에는 세 번만 쉬어도 오를 수 있었다. 내려오면서 다리에 힘이 없어 아래만 보다가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대신 나뭇가지에 눈의 위아래에 상처를 입었다.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쉽게 아물지 않고 흉터가 남았다.

 

마침 조문형 동창회 총장께서 좋은 일이 있는지 교통편과 생선회를 대접할 테니 파주 마장지 출렁다리로 가자는 제안을 하고 모두 흔쾌하게 받아들인다. 평지코스로 걷는 거리가 4키로 정도이니 무리가 없을 것 같아 나도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허리가 아픈 기세환 산우가 참석해서 무척 반가웠다. 아직 이른 봄이라 사람이 붐비지 않았으나 한철에는 차가 들어가지 못할 만큼 사람이 모이는 유명관광지가 됐다고 한다. 호수 주변과 출렁다리, 주변의 건물을 소요하고 나니 약간 배가 고파 올 무렵 생선회가 도착했다. 마음이 맑고 따뜻한 모드로 가득 찬 이재웅 산우가 넓은 깔개를 펼치고 둘러앉았다. 음식을 차리고 동반시를 경건하게 읊은 후, 건배를 하고 동시에 음식을 들기 시작해야 모두에 대한 예의인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참지 못하는 몇 산우는 후에 조 총장에게 서운한 소리를 들었다. 나도 항상 주장하는 바지만 그것은 옥의 티였다. 음식을 준비하는 입장이나 시를 조용히 읊어야 하는데 시끄럽기 그지없다. 초기부터 주창했으나 언제나 고쳐질 것인가. 나이 들어 고칠 수 있는 나이가 지났는데 아쉬움으로 남는다. 천옥 회장은 산우들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멋있게 찍어주었는데 그 노고를 감사드린다.

 

각설하고, 여러 번의 건배를 하고 몇 순배의 술이 돌았지만 워낙 많이 준비한 터라 회가 남았다. 오랜만에 나왔는데 이제는 술이 약해졌는지 술을 마시는 속도가 전 같지 않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나이에 맞게 주량도 줄이고 욕심도 줄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래야 건강한 몸으로 산행을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당구를 즐기는 산우들이 늘다보니 2차를 가는 경우도 거의 없어진 듯하다. 강북에 사는 나와 삼환과 재홍이도 2차를 가자는 경우가 없어졌다.

 

그날 조문형 총장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하고 맛있는 광어회와 주꾸미, 멍게 등 내륙에서 바다회를 먹었으니 무척 고마운 일이다. 특히 만수무강하기 바란다. 종신 총장을 하면 좋겠지만 희망사항이다. 좋은 날, 좋은 안주와 술, 좋은 친구들 덕분에 모처럼 즐거운 날이었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2019. 4. 12. 김정남 올림

 

3.오르는 산

이번에 오르는 산은 남한산성이다. 저번 일요일에 산행을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홀로 도봉산에 올랐다. 다른 사람과 오르다보면 민폐를 끼칠 것이 분명하므로 가다가 힘들면 내려오겠다는 마음도 함께 가지고 갔다. 오르다 쉬면 더 오르기가 힘들 것 같아 아주 천천히 부상자 페이스로 올랐다. 오르다 슬그머니 욕심이 생겨 도봉산 코스 중 가장 힘든 코스로 올랐다. 다름 아닌 도토리가 가장 많은 만월암 뒤에서 만장봉과 자운봉 사이로 오르는 코스다. 이 코스는 경사가 심하고 험해 암벽 등반하는 사람이 아니면 거의 모르는 코스다. 그 된비알길을 오르다 넘어지고 긁히고 부딪치다가 다쳐 집에 오니 열 개 정도의 생채기가 나있다. 그래도 훈련은 잘 했다. 내려와서 근육이 아플 줄 알았으나 전혀 그런 기색이 없는 것을 보니 한 번 다져진 근육은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만 오르는 속도가 느렸다는 것을 빼고, 앞으로 몇 번의 훈련을 거치면 다시 산우들과 산행을 해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지난 1월 22일에 명상센터에 들어가서 3월 30일에 나왔다. 대충 70일간을 그곳에서 지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아예 눌러앉아 살고 싶다는 생각 등 여러 생각을 했으나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고 가족을 설득할 자신도 없어 일단 하산했다. 달리 할 일이 없어 새벽에 깨면 명상하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심심하면 음악 듣고, 더 심심하면 책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시도 쓰고 글도 썼다. 쓴 글 중 하나를 올린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기 바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 글은 글일 뿐.

 

우리는 이루고 사는 것보다 모르고 사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붓다는 이기적인 탐욕, 끝없는 분노, 그로 인한 어리석음, 공자는 도(道)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노자와 장자는 사는 게 도다, 소크라테스는 너가 아는 것보다 모른 게 더 많다는 사실을 모른다. 예수는 사랑받고 싶거든 남을 더 사랑하라는 인류애 등이면 칠십을 살아온 내가 많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평범한 것들을 제거하거나 알고 행 한다면 후대의 현자들이 현재의 세태를 왜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또는 절망하겠는가. 혹시 날로 발전하는 인공지능(AI)가 해결해줄 것을 기대해본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진화론상 지구생물은 30억 년에 단세포로 시작해 오늘의 호모 사피엔스, 즉 현생인류까지 왔다. 물론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자들은 자기의 신념에 의한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그것 또한 자기존재의 이유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쉽게 자기주장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가와 유가, 불가의 사상이 모아져서 격외불교라고 하는 선불교도 自性佛性 또는 平常心是道라고 하여 평상심의 불성화를 주장한다. 지난 한겨울 70일 동안 천안위빠사나명상센터에서 지냈다. 추워서 생기는 끊임없는 통증이 심신을 괴롭혔기 때문에 따뜻하고 외부와 단절하고,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한적한 산골로 들어간 것이다. 지내는 동안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심심하면 음악을 듣다가 낮에는 뒷산에 올라갔다. 해발고도가 겨우 160미터의 차이에 열 번을 쉬며 올라갔고 다리에 힘이 없어 거기에 신경을 쓰느라 내려올 때 부러진 가지에 얼굴을 두 번 찔려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다. 혜덕암이라 이름 짓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시늉을 내며 머리 깎고 눌러 앉고 싶은 갈등이 일어났지만 구도의 길은 쉽지 않고 팔자가 중이 되기에는 너무 세속적이어서 마음을 돌리고 내려왔지만 마침 태어난 외손녀는 마음을 완전히 돌려놓았으며, 불가의 심우도에는 열 가지의 그림이 있어 마지막 단계는 입전수수(立廛垂手)라 하여 저잣거리에 내려와서 중생과 함께 지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앞부분에 언급한 대로 도는 산중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으며 거기에서 찾으면 된다. 팔정도와 육바라밀 혹은 십바라밀의 실천을 제대로 하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더구나 내게는 구도의 길 같은 시가 있지 않는가. 죽을 때까지 쓸 수 있다면 그것으로 괜찮으며 충분하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살았을 때 통증을 친구삼아 역마살이 깃든 몸으로 유랑하고, 죽으면 저 세상에 의탁하고 산다고 생각하면 삶과 죽음 모두 즐거운 일이라 하겠다.

 

4.동반시

안재동 / 벚꽃

 

천지(天地)에 저뿐인 양

옷고름 마구 풀어헤친다

 

수줍음일랑 죄다

땅 밑으로 숨기고

백옥같이 흰 살결 드러내

하늘에 얼싸 안긴다

 

보고 또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자태

찬란도 단아도

이르기 부족한 말

 

수십 여일 짧은 생

마른 장작 타듯 일순 화르르

온몸을 아낌없이 태우며

세상천지를 밝히는

뜨거운 사랑의 불꽃

아무리 아름다워도

찰나에 시들 운명,

 

순응이나 하듯

봄비와 산들바람을 벗삼아

홀연히 떠나버린 자리에

오버랩되는

고즈넉한 그리움

 

2019. 4. 12.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