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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호명호수로 피서 갑시다(詩山會 제363회 산행)

호명호수로 피서 갑시다(詩山會 제363회 산행)

일시: 2019. 6. 29.(토) 10시 30분

만나는 곳: 경춘선 상천역 1번 출구

 

1.시가 있는 산행

첫 기억
-문태준(1970~ )

시아침 2/26

누나의 작은 등에 업혀
빈 마당을 돌고 돌고 있었지
나는 세 살이나 되었을까

볕바른 흰 마당과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깰 때 들었던
버들잎 같은 입에서 흘러나오던
누나의 낮은 노래

 



아마 서너 살 무렵이었을 거야

지나는 결에
내가 나를
처음으로 언뜻 본 때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언제쯤 것일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기억이 멀수록 더 어린 날이다. 잘해야 누나 등에 업혀 칭얼대는 젖먹이 정도? '기억하다'를 '보다'로 바꾸면서 나는 내 인생의 나그네가 된다. 내 가장 먼 바라봄이 어린 나의 첫 기억이다. 나는 그때 어린 나를 언뜻 보았다. 어린 나는 지금 나를 초롱하게 보고 있고.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2.광교산 산행기 / 고갑무

1. 산행일시: 2019. 6. 23.(일요일) 10시 30분

2. 참석자: 황표, 천옥, 원무, 세환, 재홍, 양기,승렬, 갑무(8명)

3. 산행코스: 광교역-웰빙타운-천년약수터-형제봉

4. 동반시: 감각/아르튀르 랭보

5. 뒤풀이: 더먹소 고기집

 

맑고 구름 한 점 없는 한여름의 아침햇살은 따가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집에서 전철을 이용 광교역까지 가는 거리는 만만치 않았다 거의 1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역에 도착해보니 부지런한 원무 친구는 벌써 도착해 있고 승렬 친구 또한 바로 도착해 원무 친구가 건넨 두유로 목을 축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양기 친구가 도착해 8명 전원이 인터넷에서 검색한 대로 2번 출구로 나가 광교산으로 향하였다.

 

엊그제가 하지인지라 정말 한여름의 땡볕이 광교산 입구도 들어서기 전에 등허리를 땀으로 흠뻑 적시게 하고 굵은 땀방울은 연신 얼굴로 흘러내린다.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몇 번을 물어본 후에 광교산 입구를 찾아 숲으로 들어서니 숲속은 밖의 풍경과 다른 시원한 그늘과 제법 산들거리는 바람까지 불고 있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대략 30여분 조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몇몇 친구들이 휴식을 유도하더니 곧바로 배낭무게를 던다는 핑계로 배낭 속의 음식물을 주섬주섬 꺼내 친구들에게 돌리기 시작하니 어떤 친구는 바로 막걸리까지 한 병 재빠르게 분배한다. 시산회가 별칭 먹산회니 먹을거리를 돌리는 것 자체가 시산회 설립취지와 크게 벗어나진 않으리라 생각하니 먹으면서도 마음이 가볍고 입이 즐거우니 음식 돌린 친구가 고맙기조차 하다. 잘 먹고 서거하신 귀신은 때깔도 곱다나 어쩐다나.

 

맘 같아서는 바람도 살살 불고해서 이 자리에서 그냥 개기고 싶지만 그래도 산행에 의미를 두는 친구들도 많아 아쉽지만 다시 산 정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 보니 어느새 천년약수터에 도착하였다. 천년약수터라! 이름부터가 범상하지 않는 느낌이다. 천년을 견디어 온 약수터란 말인가? 대략 연도로 따지면 통일신라 말기부터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던 약수터란 애기인데 지금까지 이렇게 관리가 되고 있다고? 누구 말하기 좋아하는 친구가 뻥을 친 것 같은데 확인할 방법은 없고 그냥 믿어야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내려가서 물맛을 보니 시원한 느낌이 그런대로 좋다 약수터 좌우에 현판이 걸려있는데 우측에는 山中好友林間鳥요 좌측에는 世外淸音石上泉이라고 적혀있다(번역: 산중의 가장 좋은 벗은 숲속의 새이고 세상 밖 맑은 소리는 바위 위를 흐르는 물소리네) 이 한시는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에 춘탄 이지영선생이 지은 정자 춘탄정에 있던 한시인데 아쉽게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고 한다.

 

수원 근교에 위치한 광교산은 산행로가 가파르지 않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많은 시민들이 손쉽게 찾아오는 명산인데 정상으로 다가 갈수록 제법 많은 수의 등산객이 한여름의 더위를 잊은 채 땀을 흘리며 열심히 올라가고 있었다. 쉬다가 가다가 웃다가 떠들다가 하는 사이 어느새 형제봉에 도달하여 인증샷을 찍고 조금 더 위에 있는 시루봉까지 올라 가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더위도 만만찮고 시간도 여의치 않아 다시 오르던 길로 내려가다가 점심을 먹기에 적합한 장소가 있어 준비한 음식물로 요기를 하며 벼라 별 소리를 다 해 대니 친구 만나 떠드는 즐거움에 엔돌핀이 팍팍 분비되는 느낌이다. 하산하여 뒤풀이를 고기 집에서 하였는데 황표 말대로 가성비가 좋아 담에 또 광교산에 오면 뒤풀이는 이 집에서 해도 될 것 같다.

 

오늘은 일기관계도 있고 6월에는 산행이 다른 달과 달리 3번씩이나 있어 친구들의 참석율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하였지만 인원이 너무 적으면 안 될 것 같다고 한걸음에 달려온 천옥이 친구처럼 상대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해준 친구가 고맙기도 하다.

 

내가 지금은 시산회의 총무를 맡고 있지만 이제 6개월만 지나면 새 친구가 또 총무를 맡을 것이고 시산회 회원이라면 누구든지 한번은 총무를 맡아 봉사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친구들에 대한 그리고 우리 시산회에 대한 조그만 배려와 관심이 평소 웃고 떠들며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밑바닥 아래에 묵직하게 흐르고 있는 질서와 협조의 정신으로 구현되어 나타날 때 우리 시산회는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믿음직스럽고 많은 친구들이 참여하기를 원하는 아름답고 뜻 깊은

모임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온 14년과 함께 같이 가야할 14년(너무 짧게 잡았나?)이 우리 친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후원 속에 아름드리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한마음 한 뜻으로 노력하기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산행기를 마치네. 친구들! 앞으로도 함께 가야할 14년 아니 그 이상의 기간 동안 건강하게 자주 보며 잘 지내도록 하세.

 

동반시

 

감각/아르튀르 랭보

 

여름날 푸른 석양녘에 나는 오솔길을 걸어가리라

밀 이삭에 찔리며 여린 풀 밟으며,

꿈꾸듯 내딛은 발걸음.

나는 산뜻한 풀잎들을 발에 느끼며

들바람이 나의 맨머리를 씻게 하리라.

 

아무 말로 하지 않으리, 아무생각도 하지 않으리,

그러나, 맘속에 솟아오르는 끝없는 사랑

나는 가리라, 멀리 더 멀리 마치 보헤미안처럼

자연 속을 여인과 함께 가듯 행복에 젖어

2019. 6. 23 고 갑 무 씀

 

3.오르는 산

이번에 오르는 산은 호명산 호명호수이니 가깝고 낮은 곳은 아니어서 그런지 현재까지 참석 예정자가 세 명이라 슬그머니 걱정된다. 비 예보가 있지만 땅으로 떨어져야 비고, 하늘에 그냥 떠있으면 구름이다. 여명이 많이 남지 않아선지 도서관에서 1년에 한 권의 책을 내자는 다짐에 충실하려고 머리를 부여잡고 자판을 피아노 삼아 인생교향곡을 두드리며 도서관에서 지낸다. 우선 시원해서 좋다. 물론 집은 자연풍이 들어와 더 시원하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운동을 시작한다. 잘들 지내시라.

 

4.동반시

그 해 여름밤/김홍표

 

반딧불 하나 둘

별이 되려고 사락사락

살찌는 들녘에서 피어나면

철둑길 따라 흐르는 봇물에

개구리 한바탕 울어댔지

 

코끝에 실리는 오이꽃 향

머리 푼 연기만 너울너울

 

담 밑에 함박꽃 함박웃음

박꽃은 달빛에 수줍은데

덕석에 누운 누나의 꿈은

오붓한 가슴에 소록소록

무섭던 아버지도 정다웠지

 

엄마의 몸에선 흙냄새가

뒤뜰에 돋아나는 감꽃 향기

단 수수 잎사귀 사각사각

힘없이 부채마저 잠이 들면

시름시름 여위는 모깃불

어머니 무릎에 잠든 동생은

봇물에 첨벙첨벙 뛰어드나 봐

 

처녀들 노랫소리 잦아들면

달은 새벽으로 기울어

풀벌레 찌르르르 코 고는 소리

뱃속에선 쪼르르르 시냇물 소리

아버지 엄마는 단잠이나 드셨을까?

긴 긴 여름밤 쓰르르르

아득한 가슴에 사무쳐라

 

2019. 6. 28.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