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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카뮈의 해를 그리워하며 / 도봉 김정남

카뮈의 해를 그리워하며 / 도봉 김정남

 

 

세상은 욕망으로 불타고 있다는 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이방인이 되어 남한강 가는 전철을 타고
반짝이는 물결도 기억하여야 한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서른 가지도 기억해야 한다
어릴 적과 청년기에 읽고 그런 것을 쓰고 싶다는

‘토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지금은

시시해진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문학이 세상의 부조리를 치유한다는 망상은 버리고

지금 여기서 남은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현실에 놀라며
카뮈의 이방인에 대한 수상한 부조리를 이해하며
그때는 이해하지 못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빌리려 도서관에 가며

그 책도 시시하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사랑했던 소녀들에 대한 회한은 보상이 필요할까마는
북한강을 지나는 전철을 타고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아야 한다
카시오페이아는 죄를 받아 끝없이 북극성을

거꾸로 돌아야 한다는 이유를 궁금해야 한다
슬픔은 해와 같은 것
저 먼 아즈텍*은 매일

태양이 뜨기 위해 한 사람을 죽여야 했다는 것도
삶이란 부조리의 역사인 것을 비웃어야 한다
내일은 왕궁에서 쫓겨난 붓다의 고뇌 서린 눈물을 읽어야 한다
나는 무엇인가를 의심하는 봄의 길목에서
바람 속에서 피는 안개인 나는 존재의 이유인 별*을 바라보아야 한다

 

*아즈텍은 현재의 멕시코 지역이며, 태양신인 '위칠로포치틀리'는 밤의 신 '테스카트리포카'와 적대관계였다. 만약 '위트로포치트리'가 지면 더 이상 태양이 뜨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태양신의 보양식으로 인간의 심장을 계속 바쳤다고 한다. 물론 아즈텍이 스페인에 의해 멸망하고 더 이상 인신공양을 하지 않음에도 태양이 계속 뜨는 것을 보면 이러한 생각은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불교 수행자 중 독각獨覺(연각緣覺) 또는 벽지불辟地佛, 성문聲聞, 보살菩薩의 세 가지 부류가 있는데 붓다를 온 세상을 비추는 환한 달로, 홀로 인연법의 이치를 알아 깨달은 독각승을 밤하늘에 떠있는 작은 수많은 별로 비유한다.

 

*제3시집 <방랑자의 노래>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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