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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영장산에서 만납시다(詩山會 제398회 산행)

영장산에서 만납시다(詩山會 제398회 산행)

모이는 날, 장소 : 2020. 11. 22. 10 : 30. 이매역 2번 출구

 

1.시가 있는 산행

 

오래된 서랍 / 강신애

 

나는 맨 아래 서랍을 열어보지 않는다
더 이상 보탤 추억도 사랑도 없이
내 생의 중세가 조용히 청동녹 슬어가는


긴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서랍을 연다
노끈으로 묶어둔 편지뭉치, 유원지에서 공기총 쏘아 맞춘
신랑 각시 인형, 건넨 이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코 깨진 돌거북, 몇 권의 쓰다 만 일기장들....


絃처럼 팽팽히 드리운 추억이
느닷없이 햇살에 놀라 튕겨나온다

실로 이런 사태를 나는 두려워한다

누렇게 바랜 편지봉투 이름 석 자가
그 위에 나방 분가루같이 살포시 얹힌 먼지가
먹이 앞에 난폭해지는 숫사자처럼
사정없이 살을 잡아채고, 순식간에 마음을
텅 비게 하는 때가 있다


겁 많은 짐승처럼 감각을 추스르며
나는 가만히 서랍을 닫는다

통증을 누르고 앉은 나머지 서랍처럼
내 삶 수시로 열어보고 어지럽혀왔지만
낡은 오동나무 책상 맨 아래 잘 정돈해둔 추억
포도주처럼 익어가길 얼마나 바래왔던가


닫힌 서랍을 나는 오래오래 바라본다
어떤 숨결이 배어나올 때까지

 

-1996년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시

 

2.산행기

"시산회 397회 '도봉산' 산행기"<2020.11.14(토)> / 김종화

 

◈ 산행일/집결 : 2020년 11월 14일(토) / 1호선 망월사역 3번출구 (10:30)

 

◈ 산행코스 : 망월사역-대원사-원도봉입구-심원사-다락능선길-두꺼비바위-만월암 옆-은석암-녹야원-광륜사-도봉산역

◈ 참석자 : 7명 (종화, 진오, 승렬, 전작, 일정, 정한, 양기)

◈ 동반시 : "허허" / 김승동

◈ 뒤풀이 : 모듬회에 소·맥주 및 막걸리 / "서울수산물회센터"<중량구 묵1동, (02) 948-9880>

 

7명의 산우들이 망월사역에 모였다. 개인의 사정상 홍 총장님의 불참으로 집결장소인 망월사역에 가장 먼저 도착한 진오 산우가 임시 총장을 맡기로 하였다. 집결지에 조금 늦게 도착한 난 그 죄로 산행기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산성역 앞 집에서 8호선 천호역, 5호선 군자역, 7호선 도봉사역 및 1호선 도봉산역에서 그 다음의 역인 망월사역에 도착할 때 까지 몇 번을 환승하였다. 15분이 늦은 10시 45분에 도착, 망월사역(3번 출구)을 출발하여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사무소 및 원도봉입구에서 원도봉탐방지원센터 쪽으로 갔어야 되는데, 심원사를 지나 위험한 암반을 타는 다락능선길을 올라갔다.

 

재작년 9월 하순경에 윤환 친구와 함께 갔었던 도봉산 다락능선길, 조금 힘든 코스였지만 2년 전만해도 그런대로 잘 올랐던 코스이며, 망월사 옆을 지나 도봉산의 정상인 자운봉을 찾아 갔었다. 금년에 우린 험한 암반길을 통과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승렬이는 오이를, 진오 임시 총장님은 단감과 메론을, 전작 산우는 모찌를 제공하신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갈 길을 고민하다가 망월사, 포대능선을 포기하고 은석암 쪽으로 하산을 하였다.

 

은석암 옆 전망대에서 돗자리를 펴고, 배낭에서 꺼낸 떡, 유부초밥, 김치, 단감 등 먹거리에 막걸리를 한 잔씩 하기 전에 일정이 친구는 동반시("허허" / 김승동 시인)를 씩씩하게 낭송하였다.

 

"허허" / 김승동

 

그리운가

잊어버리게 여름날

서쪽 하늘에 잠시 왔다가는 무지개인 것을

그 고운 빛깔에 눈 멀어 상심한 이

지천인 것을

 

미움 말인가

따뜻한 눈길로 안아주게

어차피 누가 가져가도 다 가져갈 사랑

좀 나눠주면 어떤가

 

그렇게 아쉬운가

놓아버리게

붙들고 있으면 하나일 뿐

놓고 나면 전부 그대 것이 아닌가

 

세상의 그립고 밉고 아쉬운 것들

그게 다 무엇인가

사랑채에 달빛 드는 날

묵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잔이면 그만인 것을

 

김승동 씨는 이근배 선생의 문하에서 시를 공부하였고, 1998년 '시대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아름다운 결핍', '외로움을 훔치다', '그리움 쪽 사람들', '카테리니행 기차' 등 4권의 시집을 출간, 시인으로서 감성적 리더십과 가톨릭대대학원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 이론적 바탕을 갖춘 사람이다.

 

그리고 산문집 '참 그리운 당신'과 칼럼집으로 '사랑하면 보이는 것' 등이 있으며, '연필 깎는 열아홉', '당치 않은 꿈', '보이는 것에 대하여' 등 여러 권의 동인시집이 있다. 부천시에서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하였고, 영화, 만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산업을 부천의 미래전략산업으로 기획하고 추진했던 사람이다. 부천시의원과 국회의원 보좌관 및 지구당 사무국장을 하기도 하였다.

허허, 망월사 계곡에서 그 아름다운 단풍 구경을 놓쳤단 말인가? 오늘 코스를 잘못 들어서서 약간 늦은 느낌도 들었지만, 마지막 잎새가 아름답듯이 도봉산(망월사 계곡) 단풍의 백미가 될 것인데, 산우들은 막걸리 한 잔이면 그만인 것을 늦가을의 한 순간을 보내며, 망월사에 못간 아쉬움을 달랬다.

 

도봉산 다락능선까지의 힘들었던 산행으로 인한 피곤함 때문에 은석암 옆에서 도봉산역으로 하산하다 녹야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였고, 도봉탐방지원센터 및 국립공원생태탐방연수원 앞에서 단체로 증명사진 촬영을 남겼다.

 

뒤풀이는 태릉입구역(7번 출구) 근처의 서울수산물화센터로 진오 친구가 강력히 주장하여 이동하였다. 싱싱한 모듬회와 산낙지 등을 안주로 소·맥주와 막걸리를 맛있게 한 잔씩 마시고, 도봉산 산행 일정을 마쳤다. 친구들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산행기를 마칩니다.

 

2020년 11월 15일 김종화 씀.

 

3.오르는 산

영장산은 기 회장이 허리 부상으로 멀리는 못 가니 가까운 영장산으로 오면 가겠다는 여망을 담은 부탁으로 가게 된 산이다. 무척 오르기 편하면서도 능선길은 매우 편편해 워킹 수준에 가깝다. 그러므로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좋은 산이다. 도봉은 100대 명산을 오르다가 88회까지 올랐다가 2018년에 한라산 백록담을 다녀왔다. 과장을 조금 섞으면 죽다 살았다. 그것을 산행기로 남기면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11개의 산은 울릉도 선인봉을 제외하면 영남에 치우쳐있다. 각설하고 100개 전부를 채우지 못하면 죽지 않을 작정이다. 역사적인 400회 산행을 앞두고 있다. 적어도 1000회는 채울 작정이니 마음 단단히 먹으시라.

 

4.동반시

역시 형채 산우가 결정적인 순간에 도봉을 구원했다. 다른 글을 쓰는 바람에 동반시 포함 산행 메일을 올리는 것을 깜빡의 경계를 지나 아예 무의식의 상태에 있었다. 지금도 새벽에 일어났지만 다른 짓을 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을 잊지 않겠다.

 

바닥 / 문태준(1970년생)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누군가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가랑잎이 지는데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2020. 11. 22.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詩山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