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에서 - 맹골수도猛骨水道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소리 / 道峰 김정남
아열대기후로 접어든 것인지 구별이 안 되는 날들이 계속되고
하던 일들이 심드렁해지는 날도 계속 진행 중이던 때
나는 방랑벽이라 하고 마나님은 역마살이라 하며 맞은 낱말 찾기를 다투듯 즐기던 날
무엇에 씌웠는지 남도 끝으로 떠났다
의지의 반은 남도에 안주하기 위한 비장함을 간직하고 떠나 오후 늦게 도착했다
친구와 갯장어구이로 한잔 하고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 들른 진도 팔경 중 세방에는 낙조를 보러온 사람들, 많다
수평선 멀리 일 년에 몇 번 바다안개가 끼지 않은 운수 터진 날이다
하늘과 바다가 뚜렷하게 섬 사이에 낀 바다로
세월이 다해 목숨이 지듯 해가 물속으로 잠긴다
어둠이 밀려오고 인파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가까운 팽목항으로 몰려간다
미완성의 노란 뫼비우스의 띠의 일부를 자른 방파제에서
맹골수도猛骨水道의 바닷바람이 우는 줄 알았다
한 처자가 앞면과 뒷면의 구별이 없고 좌우의 방향을 정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를 붙이면 남은 네 사람도 돌아올 거라며
살아남았으면 비슷한 또래의 처자들이 울기 시작하자
남정네들은 차마 등을 돌렸다
눈물은 전염되는가보다
짙은 어둠 속
깜박거리는 세 개의 등대가 암초처럼 솟아오르고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세 개의 십자가 중 가운데 매달린 정경처럼
로마 병정의 날카로운 창이 되어 옆구리를 쓸고 지나간다
그날
아직도 세월은 가지 않았다
물결은 저주처럼 밀려오고 있다
몸을 돌리는데
파란 혼불이 바다 위를 달리는 환시에 빠졌다
환시는 초월적 현상이라니 문제없다지만 환청은 정신병이라는데
혼불이 바다 위를 달리는 소리 들린다
*제3시집 <방랑자의 노래>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