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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맹자와 고자의 본성 논쟁

맹자와 고자의 본성 논쟁

 

고자(告子)라는 전국시대 제나라 사상가가 있었다. 子란 글자가 붙은 것을 보면 스승이라 할 만큼 지혜를 갖춘 인물이었던 것 같다. 초기에 맹자 문하에서 배우다가 묵가의 사상을 받아들여 맹자 문하에서 떠나갔다.

맹자 고자편을 보면 인간의 본성을 두고 맹자와 고자가 나눈 문답, 논쟁의 핵심은 '의(義)가 타고난 본성인가 아닌가'인 것 같은데, 둘 다 약간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그런데 게 중 기억해둘 만한 내용이 있어 기록한다.

告子 : 본성(性)이란 마치 버드나무와 같은 것이고, 의(義)란 마치 (버드나무로 만든)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본성(性)으로서 인의(仁義)를 행한다는 것은 마치 버드나무로 (그것을 구부려)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孟子 : 당신은 버드나무의 성질(性)을 순하게 해서 그릇을 만드는가? 아니면 그것을 손상시켜서 그릇을 만드는가? 만약 버드나무의 성질(性)을 손상시켜 그릇을 만든다면 그건 또한 사람도 손상시켜야 인의(仁義)를 행한다는 것이 아닌가? 천하의 사람을 이끌면서 인의를 해치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그대의 말이다.

告子 : 사람의 본성(性)이란 마치 단수(湍水, 여울물) 같은 것이라 동쪽으로 트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흐릅니다. 사람의 본성이 선과 불선을 구분하지 않는 것은 마치 물이 동서를 구분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孟子 : 물은 확실히 동서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하의 구분도 하지 않느냐? 사람 본성의 선함이란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에게 불선함이 없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지 않는 법이 없는 것과 같다. 지금 물을 쳐서 물방울이 튀어 이마를 지나가게 할 수도 있고 물을 세차게 내보내서 산에 닿게 할 수도 있지만 이게 어찌 물의 본성이겠는가? 그 기세가 그러한 것뿐이다. 사람도 불선을 행하게 할 순 있지만 사람의 본성이란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아서 결국은 선한 쪽으로 흐르게 되는 것이다.

告子 : 타고나는 것을 본성(性)이라 합니다.

孟子 : 타고나는 것을 본성이라 한다 함은 마치 흰 것을 희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인가?

告子 : 그렇습니다.

孟子 : 흰 깃털의 흰색이 흰 눈의 흰색과 같고, 흰 눈의 흰색이 백옥의 흰색과 같은 것인가?

告子 : 그렇습니다.

孟子 : 그렇다면 개의 본성과 소의 본성과 사람의 본성이 다 같은 것인가?(*주 : 개도 타고나는 성향이 있고, 소도 타고나는 것이 있고, 사람도 타고난 성향이 있으니, 다만 타고난 것을 본성이라고 하면 이런 논리가 성립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약간 억지스런(?) 맹자의 주장입니다.)

告子 : 식욕과 색욕이 본성입니다. 인(仁)은 그런 사람의 본성에 내재(內在)하는 것이고 밖에 있지 않지만 의(義)는 외재(外在)하는 것이지 사람의 본성 내에 있지 않습니다.

孟子 : 어찌 인(仁)은 안에 있고 의(義)는 밖에 있다고 말하는가?

告子 : 그가 어른이어서 내가 그를 어른으로 여기는 것이지 나에게 '어른으로 여김'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그의 머리가 희게 세어서 내가 희다고(나이 많다고) 여기는 것과 같아서 외면의 흰 것을 보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가) 외부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孟子 : 흰말의 흰색과 백인의 흰색이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잘 알진 못하겠으나 늙은 말을 늙었다고 여기는 것과 어른을 공경(長)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냐?(*주 : 원문에서 이 부분의 표현에 말이 심하게 꼬여 있어 그 의도만 취해서 기록합니다) 또 어른을 의(義)라 말하는가? 아니면 그를 어른으로 여기는 것을 의(義)라 부르는가?(* 주 : 고자가 의를 외재적인 것으로 보고 내 안에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드신 어른을 보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말하니, 맹자는 의란 당신이 본다는 외재하는 어른 자체가 아니라 어른을 공경하는 내 안의 마음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告子 : 내 동생은 그냥 사랑하지만 진나라 사람의 동생은 그냥 사랑하지 못합니다. 이는 내 안의 이유로써 기뻐(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仁을) 내재된 것이라 하는 겁니다. 초나라 어른을 어른으로 여기면서 또한 나의 어른도 어른으로 여기는 것은 그가 어른이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義)가 외부에 있는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孟子 : 진나라 사람이 구운 고기를 즐기는 것과 내가 구운 고기를 즐기는 것이 다르지 않다. 대체로 우리가 사물을 대하는 것엔 그런 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구운 고기를 좋아하는 것까지 외부에 있는 것이냐?

그러니까 고자(告子)는 사랑처럼 인(仁)은 타고난 본성으로 각자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것이지만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처럼 의(義)는 외부에 존재하는 사회적인 것이란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해 맹자는 초지일관 의(義)도 타고나는 사람의 본성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맺음말

맹자가 고자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가 좀 억지를 부린 면도 없진 않은데 그건 제가 원문을 잘못 읽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처]맹자와 고자의 본성 논쟁|작성자오디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