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맹자의 많은 부분을 보지는 못했지만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읽을 때 드문드문 발췌해서 본 원문이나 지금까지 맹자 양혜왕 편에서 본 맹자의 생각은 절대군주제였던 전국시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적이고 민본적입니다. 아니 그것을 넘어 거의 혁명적이기까지 합니다.
여민락(與民樂)하지 않는 군주, 의(義)롭지 못한 군주는 아예 군주 취급도 안 해줍니다. 백성과 함께하지 못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군주는 과감히 쳐죽여서 바꾸는게 낫다는 말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군주들 면전에서 말입니다. 옛날 중국 통치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사직단, 그곳에서 정성스레 제사지내도 가뭄과 홍수가 들어 백성들이 힘들면 그런 사직단은 과감하게 허물고 새로 만들면 된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뭐 이쯤되면 간이 배 밖에 나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의 글인 맹자서는 역성혁명 논리의 근거요 출처가 되어 후대 왕들이 싫어하는 첫번째 책이 됩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아예 문묘에서 맹자의 위패를 없애버리라고 명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조선 건국의 빅픽쳐를 그린 정도전이 맹자서를 열독했다고 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강의 기록 때 한 번 언급한 내용이지만 후대 사람들이 역성혁명의 근거로 삼고 있는 맹자의 언급 내용을 아예 원문으로 기록해 놓고자 합니다.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1. 齊宣王問曰 湯放桀 武王伐紂 有諸 (제선왕문왈 탕방걸 무왕벌주 유저)
> 제선왕이 묻습니다. 은나라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추방했고,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쳤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2. 孟子對曰 於傳有之(맹자대왈 어전유지)
> 전해오는 문헌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3. 曰 臣弒其君可乎(왈 신시기군가호?)
>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4. 曰 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왈 적인자위지적 적의자위지잔)
> 어진 이를 해치는 사람을 적(賊, 도적)이라 하고, 의로운 이를 해치는 사람을 잔(殘, 잔인한 사람)이라 합니다.
5. 殘賊之人 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弒君也(잔적지인 위지일부 문주일부주의 미문시군야)
> 잔혹한 놈과 도적놈을 '일부(一夫, 하찮은 사람)'라 말합니다. 저는 일부일 뿐인 주(紂)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맹자의 답변이 거침이 없습니다. 하나라 마지막 군주인 걸(桀)과 은나라 마지막 군주인 주(紂)는 혼군(昏君)과 폭군(暴君)의 대명사입니다. 맹자의 말은 백성을 괴롭히는 군주는 주살(誅殺)했다고 하는 것이지 시해(弑害)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란 소리입니다. 한마디로 군주답지 못한 군주는 백성을 위해 죽여도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 논리가 성립되면 후대 왕들은 무지 곤란해집니다. 백성의 삶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자기가 왕인데도 불구하고 하찮은(?) 백성의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목이 달아날 수 있으니 말이지요. 이거? 왕 입장에서는 무지 피곤한 일이지요. 그래서 주원장이 맹자 위패를 치우라 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