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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청계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402회 산행)

청계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402회 산행)

2021년 1월 24일(일) 10시 30분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 2번 출구에서 만납니다

 

1.시가 있는 산행

 

자리 / 조용미

 

무엇이 있다가
사라진 자리는 적막이 가득하다


절이 있던 터
연못이 있던 자리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
꽃이 머물다 간 자리


고요함의 현현,


무엇이 있다 사라진 자리는
바라볼 수 없는 고요로
바글거린다.

- 시집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처음부터 본래 아무것도 없던 자리는 적막하지 않다. 고요할지언정 쓸쓸함을 자아낼 수 없다. 진리를 찾아보려던 사람들이 모였던 자리, 자연을 끌어들였던 자리, 사람들의 말과 생각이 오갔던 자리, 꽃이 피고 졌던 자리 따위. 무언가 있다가 사라진 자리의 고요에는 쓸쓸함이 가득하다.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서 선명하게 드러난 고요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오묘하다. 고요함의 현현(顯現)은 현현(玄玄)하다.

 

이렇게 흘러온 시는 마지막 연에 이르러 무엇이 있다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고요가 바라볼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말할 것도 없이 첫 연에서 말한 적막이다. 사라짐이 남긴 쓸쓸함은 도저히 정면으로는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쓸쓸함이 얼마나 펄펄 끓고 북적거리는지 알면서도 차마 그 자리를 냉정히 볼 수 없더라는 실토이다.

-유용선 해석

 

2.산행기

관악산둘레길 산행기 / 이경식

-일 시 : 2021. 1. 9.(토) 10:30

-장 소 : 관악산둘레길 1구간(사당역-관음사-무당골-낙성대-서울대입구역)

-참 석 : 4명(세환, 형채, 종화, 경식)

-동반시 : ‘내일 보자’(김화연) / 겨울기도(마종기)

-뒤풀이 : 푸른목장(서울대입구역 오리구이집)


2021년 아침, 새해가 되었다.
그런데 반갑지 않은 수식어가 하나 붙었다.
이**(70세), 자꾸 봐도 70이 잘못 붙은 것 같다. 마음은 청춘인데 70은 낯설고 내가 아닌 것 같다.
딴 사람들에게는 쉽게 말했다.

세월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시작이 있는 모든 것은 끝이 있다고,

삶의 끝은 하늘이 정해준다고.
무슨 철학자처럼, 운명론자처럼 얘기는 했지만 아직은 수양이 부족해서 늙음을 포용하지 못한다.

공자 성현께서 從心所欲不踰矩, 임 수석은 줄여서 종심이라고 한다.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도와 예에 벗어나지 않는 경계다. 일반적인 해석이다. 별로 이견이 없다. 그러나 60의 耳順은 여러 가지의 해석이 난무한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아무리 거슬리는 말을 들어도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해석한다. 50에 知天命, 곧 하늘의 숭고한 뜻을 알았으므로 60에 귀가 순해져 화를 내지 않을 뿐, 남의 말을 듣지 않을 만큼 세상의 이치를 나름대로 통찰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70줄에 들어선 우리들도 자신의 생각을 너무 앞세워 나 외의 누구에게도 강요하거나 유도하지 않아야 한다. 임 수석의 좌우명이 노자의 ‘上善若水’라 했던가. 낮은 데로 임하는 그의 자세는 항상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겸손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도 저쪽 끝 어딘가에 먼 터널 끝자락이 보이기도 한다. 정남이는 미얀마 스님이 지도하는 명상센터에서 죽음 명상을 하곤 한다고 한다. 물론 자애 명상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한다. 기회가 생기면 나도 죽음이 두렵지 않도록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가끔 TV에서 요양원의 인생선배님들을 볼 때면 예사롭게 그냥 지나치지 않고 여러 생각들이 교차한다.
더군다나 요즈음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도 늙음을 슬슬 실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늙어갈수록 친구들이 좋아진다.
여러 모임 중 그래도 제일 많이 만나서 웃는 친구들이 시산회 친구들이다.

모든 회원들에게 시산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큰 차이가 있겠지만, 나에게 시산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모임이 아니고 꼭 있어야 되는 모임이다.
그러기에 20년만의 추위라고 떠들어대는 매스컴에서 나오는 추위 멘트는 외면하고 1월9일 관악산에 갔다
2021년 첫 산행, 추위와 코로나 때문에 썩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으나 금년 첫 산행을 지나칠 수는 없었다.

 

완전무장하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방송에서는 추우니 옷을 두껍게 챙겨 입으라고 요란을 떨었지만, 실제는 별것도 아니었다. 하여튼 기자들 구라와 뻥은 아무리 먹고 살기 위한 짓이라도 과장이 너무 심하다. 물론 그래야 관심을 가져주고 그것이 시청률로 연결되고 시청률은 광고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광고비로 회사를 운영하는 언론사들의 서글픈 운명이다. ‘갑’인 듯 ‘을’이다. 을은 항상 서럽다.

오늘의 추위는 언론의 허장성세가 저 멀리 밀어내고, 실속 없이 말만 부풀렸다.

 

사당역 4번 출구에 세환, 형채, 종화가 먼저 나와 있다.

4인 1조로 준법산행을 시작했다.

코로나에 대한 조심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오늘 나온 친구들은 실내생활의 답답함과 하얀 설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나왔다.

 

관악산둘레길(1구간)로 접어 들었다.

따스한 햇살과 햇살사이의 하얀 눈길은 평온했다.

바람도 잠잠했다.

그리고 사람은 한적했다.

산행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사아싹 사아아싹 눈 밝는 소리를 즐기다 보니 강감찬장군 동상 근처까지 왔다.

 

그래, 그래도 시는 읊어야지. 눈을 때리는 눈바람 속에서 평소에는 읊지 않는 ‘산행이 있는 시’와 동반시 2편을 다 읊었다. 눈바람 속에서 읊는 시 맛을 그 누가 알리.

 

내일 보자 / 김화연<기세환 배급>

 

어느 날은 비가 내리고

또 눈이 쌓인 짙푸른 나무들이 있는 내일

내일 보자라는 인사의 유래는

오늘의 햇살 아래서 자란 말투

 

내일은

잠의 신과 내가 하는 일

누가 먼저 잠 깨느냐가 아니고

그 잠 속에서 꿈을 챙겨

꿈 밖으로 나오는 일

 

내일은

방금 헤어진 사람이

오늘을 버리고 돌아올 거리는

설레는 끈을 놓지 않은

그다음 날인 날

 

내일 보자

몇 만 년 후의 얼굴로

판도라에서 꺼낸 말

듣기만 해도 좋은, 한쪽 눈이 방긋한

스무 살 눈동자의 웃음.

 

겨울기도 / 마종기

 

하느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겨울에 살게 하소서

여름의 열기 후에 낙엽으로 날리는

한정 없는 미련을 잠재우시고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긴 뜻을 알게 하소서

 

날머리인 서울대역 입구 쪽에 도착함으로써, 오늘의 산행도 끝났다.

몇 년 만에 사용한 아이젠도 풀었다.

근처 ‘푸른목장’ 이라는 곳에서 생오리구이에 소주와 막걸리를 들었다.

비용은 세환친구가 지불했다. 고맙네, 언제나 밝은 친구여.

이경식 씀

 

3.청계산에 오르면서

아직도 2021이 낯선 것인지 2020이 보내기가 아쉬운 것인지 잘못 써서 년도를 고치는 경우가 잦다. 아마 두어 달은 지나가야 없어질 일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산회의 상황에 대하여 한마디 올린다. 어떤 산우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걱정하는 상태라고 한다. 최초발기인 3인 중 종렬이는 광주로 가버렸고 秋夢 임 수석과 도봉이 남았으니 약간의 사명감으로 잠시 통화를 했다.

 

경식 산우가 산행기에 잠시 언급하고 형채 산우가 의사결정의 과정에 대하여 의견을 올렸다. 맞는 말들이다. 도봉의 견해는 1000회를 달성하기 위한 성장통으로 생각하고 싶다는 것이다. 도봉이 강의했고 간혹 언급하는 경우로서 붓다는 석가 족이 멸망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공자는 세상에 도를 펼치고자 했지만 13년간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도 거룩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와 춘추라는 역사서를 남겼다. 맹자는 무능하고 백성을 보살필 줄 모르는 지도자는 갈아치워야 한다고 마치 2000년이 넘는 그 과거시대에 박근혜 대통령을 몰아낸 촛불혁명을 예고하듯 가르쳤다. 장자는 아내의 죽음을 냉소적인 웃음으로 맞이했다. 노자는 가장 좋은 지도자는 있는 것조차 느끼지 못해야 하며, 겸양의 대명사인 上善若水를 가르치고 조용히 사라졌다. 소크라테스는 탈출할 수 있었으나, 권력자들도 탈출하여 없어져주기를 바랐지만 그들의 뜻대로 하지 않고 죽음의 향연을 맞이했다. 예수는 기존의 권력과 이념에 타협하지 않고 맞서다 영원의 성스러운 상징인 십자가를 남기고 장렬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렇듯 성인들도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해서 손해를 본다. 공자는 60을 耳順이라 했으니 이 나이가 되면 타인의 설득에 따라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경식의 교훈적 해석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만든 작은 모임에 분노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통이 부족한 것은 분명 일방의 잘못만은 아니다. 산우들의 의견을 수렴한 해황이는 공의에 따르겠다는 것을 동의로 받아들인 것은 실수가 아닌지 돌아보고 잠시의 실수를 인정함으로써 조용히 복직하여 1년간 봉사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 우리는 다시 봐야 하며 산우들이 동창회를 주도하니, 부디 늙어가면서 친구의 소중함은 금강석보다 단단하여 비교할 것이 없으므로 다시 보지 못할 껄끄러운 짓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지난 일을 회고하건대 종화가 초안을 주면서 회칙을 만들자고 했을 때, 도봉은 조그만 모임에서 서로 양보하고 마음을 맞추면 되는데 굳이 회칙을 만드는 일은 하지 말자고 반대했네. 곧 관습과 도덕, 우정의 힘으로 가자는 것이 내 의도였네. 모든 산우들이 알아야 할 것은 최고결정권은 회장이 갖는 것이며, 도봉이 산행을 주도할 때는 갈림길 같은 경우 회장의 결정에 맡겼다. 그런데 시간도 모르게 슬그머니 총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쪽으로 갔지만 당초의 관행대로 앞으로 모든 일은 회장과 상의하기 바라네. 혼자보다 둘이 더 자연스럽고 슬기롭지 아니한가. 비 온 뒤에 굳는 땅은 비가 거칠수록 더 아름답다네. 부디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海恕하시게. 자네의 떡은 항상 맛있어서 지금도 생각나네. 도봉은 명상센터에서 자애명상을 자주 하므로 욕심내고 분노하는 마음이 없어지니 얼굴이 편해지네. 얼굴이 편해지니 마음도 편해지네. 사람이 신에게 말을 걸면 기도요, 신이 사람에게 말을 걸면 정신병이고, 명상은 내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거라고 하네. 자주 해보소서.

 

4.동반시

매번 형채가 보내주는 시가 시산회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형채의 사정이 좋으니 신경 쓸 일은 아니므로 이 시국에 택배회사를 차려 봉사해도 잘 할 것이다. 매번 감사하는 마음을 형채에게 둔다. 단종을 유배지에 두고 온 왕방연의 둘 데 없는 마음은 안타까움이 하늘을 찔렀을 게다. 도봉에겐 형채가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다. 도봉의 시에 이런 주제로 쓴 것이 있다.

 

겨울나무로 서서​ / 이재무<박형채 배급>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잎들을 떨군다.​

여름날 생의 자랑이었던

가지의 꽃들아 잎들아​

잠시 안녕

더 크고 무성한 훗날의

축복을 위해

지금은 작별을 해야 할 때

살다보면 삶이란

값진 하나를 위해 열을 바쳐야 할 때가 온다.

분분한 낙엽,

철을 앞세워 오는 서리 앞에서

뼈 울고 살은 떨려 오지만

겨울을 겨울답게 껴안기 위해

잎들아, 사랑의 이름으로

지난 안일과 나태의 너를 떨군다.

 

2021. 1. 23.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