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공원길 갑니다(詩山會 제406회 산행)
일시 : 2021. 3. 28.(일) 10 : 30
장소 : 4, 9호선 동작역 1번 출구
안내 : 이윤상
1.시가 있는 둘레길
참 좋은 말 / 천양희
내 몸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혀
한 잎의 혀로
참, 좋은 말을 쓴다
미소를 한 육 백 개나 가지고 싶다는 말
네가 웃는 것으로 세상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
오늘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
내 마음에서 가장 강한 것은 슬픔
한줄기의 슬픔으로
참, 좋은 말의 힘이 된다
바닥이 없다면 하늘도 없다는 말
물방울 작지만 큰 그릇 채운다는 말
짧은 노래는 후렴이 없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말
한 송이의 말로
참, 좋은 말을 꽃 피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란 말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말
옛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온다는 말
-딸의 책장에 ‘언어의 온도/이기주’라는 책이 꽂혀있어 읽어봤다. 시를 배울 때 선생은 항상 시에게나 사람에게나 세상에게나 따듯한 언어를 사용하라고 주문했다. 습관을 들이면 좋은 현상이 나타난다. 한 번 해보시라.
<도봉 생각>
2.산행기
시산회 제405회 우면산둘레길 산행기 / 홍황표
산행월일 / 집결 : 2021년 3월 13일 (10:30), 시민의숲역 1번 출구
참석자 : 12명<일정, 기인, 갑무, 황표, 윤상, 정남, 종화, 세환, 윤환, 재홍, 경식, 문형>
산행코스 : 시민의숲역-주차장-양재천-영재초등학교앞-경부고속도로옆-우면산진입-
예술바위-소망탑-성산약수터-전원마을입구-사당역
동반시 : 봄날, 사랑의 기도/ 안도현, 3월의 시 / 나태주
뒤풀이 : 담양죽순추어탕
이제는 나이가 든 까닭에 가깝고 낮은 산이 좋다. 부담 없이 힘들이지 않고 친구들과 자연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면산은 강남의 한 복판에 있는 산으로 지하철과의 연결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간판에 의하면 동서로 소가 누워 잠자는 형상이라 하여 우면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어느 쪽이 들머리인지 몰라서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양재 쪽이 들머리 같고 남태령 쪽이 날머리 같다. 오늘 이처럼 소같이 순한 산을 오르기로 한 것이다.
약속한 모든 산우들이 출발시간에 맞춰서 집합하여 이번엔 전년과 반대로 양재시민의숲역에서 출발하였다. 주차장을 지나서 양재초등학교 앞의 우면산 등산로 입구부터 산행의 스타트다. 이쪽 길은 왼쪽 아랫마을 주민들만 이용하는지 산에 오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코로나 집합 금지를 잊어버리고 중간 휴식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합쳐지기도 하고 떨어져 가기도 하여 기분 좋은 산행을 한다.
약 한 시간을 올라가니 소망탑(270.7m)이 나온다. 여기서 북쪽으로는 남산, 서초동 법조단지 남쪽으로는 청계산, 과천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리처럼 큰 단체는 없었다.
우리는 눈치를 보며 소수 단위로 사진을 남기고 간식 장소를 찾아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288계단 한 길뿐이다. 정상 부근은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단 끝에서 직진하면 발아래 예술의 전당에 이르지만 90도 좌회전으로 사당 쪽으로 간다.
12시를 넘겼으므로 간식을 즐길 곳을 물색하던 중 군부대 밑, 옛날 산사태 시발지점의 골짝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기인이는 언제나처럼 족발을, 도봉 선생은 빨갛고 싱싱한 국산 홍어를 사와 가지고 우리를 즐겁게 한다. 막걸리가 부족한 듯 했지만 그래도 거의 배를 채우고 남을 정도의 간식이었다. 배불리 먹었으니 오늘의 시를 읊는다.
봄날, 사랑의 기도 / 안도현
봄이 오기 전에는
그렇게도 봄을 기다렸으나
정작 봄이 와도 저는 봄을 제대로 맞지 못했습니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소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갓 태어난 아기가 ‘응아’하는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듯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사랑해요’ 하는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듯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사랑해요’ 라는 말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을 부끄럽게 하소서.
좋은 봄날에 시 한편으로는 서운하다 하여 종화가 또 한편을 읊었다.
3월의 시 / 나태주
어차피 어차피
3월은 오는구나
오고야 마는 구나
2월을 이기고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넓은 마음이 돌아오는 구나
돌아와 우리 앞에
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
새들은 나더러
무슨 소리든 내보라고
조르는구나
시냇물 소리도 우리더러
지껄이라 그러는구나
아,
젊은 아이들은
다시 한 번 새옷을 갈아입고
새 가방을 들고
새 배지를 달고
우리 앞을 물결쳐
스쳐가겠지...
그러나
3월에도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
모두 봄날을 새롭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맞이하자는 의미의 아름다운 시이다.
키 큰 나무들을 지나 사람들이 한가해진 삼거리 같은 곳에 이르러 남 총장님의 제안한 안건토의 제안으로, 첫째 카톡방을 시산회 공식톡방, 사랑방, 문예방으로 구분하는 건과, 둘째로 기존 시산회 회칙을 수정하는 건과, 셋째로 회장, 총장 외에 감사 이경식 산우, 등반대장 김종화 산우를 만장일치로 선출하였다. 이 감사님, 김 대장님 건투를 빕니다. 역시 유능한 총장님이 다르다. 해를 거듭할수록 재미난 산행이 될 것 같다.
사당역으로 내려와 담양죽순추어탕 집에 들어가니 아담하고 조용한 별실로 우리를 안내한다. 코로나 방역수칙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우리만의 공간이다. 마음껏 마시고 대화를 나누고 귀가했다. 모두들 즐거운 제405회 산행이었다.
홍황표 올림
3.가는 곳
이제 나이가 들다보니 가는 곳이 점점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라는 구절을 닮아 몸도 마음도 겸손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형채 산우가 좋은 시를 추천했지만 조 총장 부인의 낭송시를 듣다보니 비슷하게 좋은 시가 나와 정했는데 보니 순전히 내 취향의 시다. 하여 조 총장 부인의 시를 올리려다 밤은 깊어가고 낮에 도서관에서 메모했던 것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 다음으로 미룬다. 세상과 척을 지고 싶어서 뉴스를 보지 않으므로 유투브에서 一紅 김행숙 시인의 시를 간혹 읽는데 사유의 깊이가 만만치 않다. 하필 테스 형님과 티페 누님의 관계가 생각이 날까. 시인의 농담이다.
4.동반시
역시 一紅 시인의 유투브 시를 감상하다가 바로 다음 자리에 등장한 시다. 오늘 비가 내리니 몸이 아파 마음이 심란하다. 이런 날은 이런 시가 당긴다. 다만 맨 위에 올린 천양희의 시도 동반시로 괜찮을 듯하니 시를 읊을 때 순서를 바꾸거나 뒤풀이 때, 마저 읽어주면 좋겠다. 형채도 좋은 시를 꾸준하게 계속 올려주면 고맙겠다.
한 송이 꽃이 떠난 자리에 / 전형철
왜 하필 바람의 거처가
꽃 아래였는지는 모른다
밤낮으로 온 마음을 기울여
가늘고 여린 꽃의 우는 소리를
어루만져 주었다든지
비 지나가는 날
잎 하나 다치지 않게
낮게 낮게 엎드려 있었다든지
그러한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정작 바람은 그 자리 그대로인데
짧은 햇살 한 줄기도 없는ᅟᅩᆼ
캄캄한 그늘 속으로 잠겨버린 것은
바람이 거처로 삼은 꽃이란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도 한 송이 꽃이 떠난 자리에
영혼의 거처를 두고
긴 사랑으로, 더할 수 없이 긴 슬픔으로
빈자리 가득 채우고 있는
서늘한 낯빛의 바람만 보일 뿐이다.
2021. 3. 28.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