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당시의 화폐 / 펀치마크 주화 유통됐을 듯
출가 전의 싯다르타 태자의 손바닥에서 금화와 은화가 반짝이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태자였다면 자신의 시종들에게 은전(銀錢)이나 동전(銅錢)을 주면서 장터에 있는 어떤 물건을 부탁했을지 모른다. 만일 이 모습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담아낸다면 손바닥 위의 동전을 어떻게 표현해볼 수 있을까. 현재와 같이 동그란 모양의 동전 양쪽에 그림이 새겨져 있었을까.
불교에서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할 때 그 색(色)을 산스끄리뜨어로 루빠(rpa)라고 하는데 보통 ‘물질’ 또는 ‘형상’ 정도의 뜻으로 푼다. 이 말은 약간 다른 의미가 있는데, 기원전 4세기경 빠니니는 동전을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은과 같은 귀금속 쪼가리를 마찬가지로 루빠(rpa)라고 불렀다. 이 금속 쪼가리에 특정한 ‘모양’을 찍어내 만들었기 때문에 이를 루빠라고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 루삐야(rpya)라는 말이 만들어졌는데, 즉 ‘(은과 같은) 금속 쪼가리로 만들어진’, 또는 ‘모양을 낸 것’ 등의 의미가 되겠다. 여기서 오늘날 ‘돈’이라는 뜻의 인도말 루삐(rupee)가 탄생한다.
석가모니 당시에 존재했었던 화폐는 대부분 얇은 은판에 특정한 문양을 때려서 만든 주화가 일반적이었다. 인도 내 여러 지역에 따라 주화의 형태와 문양은 다양했지만, 표면의 문양을 때려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거의 제작 기법이 동일했다. 문양이 새겨진 펀치를 금속 표면에 대고 때려서 모양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를 펀치마크(punch-marked)주화 또는 타각(打刻)주화라고 부른다. 주로 은화를 많이 만들었는데, 당시 고대 인도에서는 이렇게 만든 동전을 “까르샤빠나(Krpaa)”라고 불렀다. 모양은 일정하지 않았는데 금속의 무게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문양을 새긴 후 귀퉁이 등을 잘라내 무게를 잡았다. 따라서 외형은 대부분 불규칙했다. 문양으로는 만(卍)자의 길상문이나 황소나 태양, 또는 기하학적인 패턴 등이 사용되었으며, 지역에 따라 어떤 하나의 문양을 사용하기도 하고, 여러 문양을 섞어서 한 면에 찍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펀치마크 주화가 고대 인도 사회에서 통용되던 대표적인 주화의 형태인데, 대략 기원전 6세기경에서 기원전 2세기경까지 통용되었다. 따라서 석가모니 당시에는 이러한 형태의 주화가 유통되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렇지만, 지역마다 펀치마크 주화의 형태나 표면의 문양은 꽤나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의 샤캬(Shakya)족들이 사용했던 은화는 약간 두꺼운 은판을 일정한 무게가 되도록 불규칙하게 잘라낸 다음, 그 은판 쪼가리 중심에 펀치를 쳐서 문양을 냈다. 네팔과 인도 국경 지역에서 발견되는 펀치마크 주화들은, 은판 가운데에 펀치를 두고 망치로 상당히 세게 내려쳤기 때문에 가운데가 뒤쪽으로 깊게 움푹 파진 형태가 굉장히 두드러진다. 마치 물을 담을 수 있는 형태와 같이 가운데가 꽤 깊숙이 들어가 있다. 이 지역의 펀치마크 주화들은 평평한 주화들이 거의 없다. 크기는 대략 가로세로 2센티 내외인데, 가운데에 움푹 들어간 부분의 중심 문양은 오각형의 별모양이 상당히 많다. 오각형 외에 다른 기하학적 문양도 함께 사용되었다. 카필라바스투 인근에서 발견되는 주화들은 대략 이렇게 생긴 은화들이 발견되는데, 석가모니 당시에도 이러한 주화가 통용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지역 주화 제작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역시 은(銀)의 무게다. 고대 인도에서는 베다시대부터 일정한 무게 단위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 기준이 되는 것은 홍두(Abrus precatorius)의 씨앗인데, 밝은 주홍색 바탕에 검은 반점이 있는 콩이다. 이 씨는 일관성 있는 무게를 보여주기 때문에 여러 문명권에서 무게의 단위로 사용해왔다. 산스끄리뜨어로는 락띠까(raktika, 현대어로는 라띠 ratti)라고 불렀던 이 씨의 무게는 대략 0.12g 정도 나가는데 이 씨앗 백 개의 무게가 중요한 중량 단위로 사용되어왔다. 주화 등과 같이 작은 물건의 중량 단위가 되는 ‘1샤따마나’가 바로 이 씨앗 백 개의 무게를 말하는 것으로, 거의 11그램에 가깝다.
석가모니 당시 샤카족들도 이 주화의 무게 단위를 사용했는데, 은화들은 대략 64라띠의 무게를 가진 것들이었다. 즉, 대략 7그램 내외의 것이었다.
[출처] 석가모니 당시의 화폐|작성자 양벌리독서실불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