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각 日刊紙(일간지)마다 海印寺(해인사) 高麗大藏經(고려대장경) 일부 도난과 아울러 소홀한 管理狀況(관리상황)이 크게 記事化(기사화)되었다.
그 요지는 慶北大(경북대) 師大(사대) 國文科(국문과) 徐首生(서수생)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華嚴經板(화엄경판)을 비롯한 12장의 經板(경판)이 없어졌으며, 또 90여장에 걸친 經板(경판)에는 총 60여字(자)의 마멸과 落字(낙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나날이 經板(경판)에 벌레가 먹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 十門和(십문화)쟁論(론)과 大覺國師文集(대각국사문집) 등 寺刊本(사간본)도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대저 海印寺(해인사) 高麗大藏經(고려대장경)은 高麗(고려) 高宗(고종)때 江華島(강화도)에서 주造(조)되어 그 후 海印寺(해인사)에 移安(이안)됨으로써 오늘날까지 약 6백년을 내려오고 있거니와 그간 1915년에 寺內(사내) 朝鮮總督(조선총독)의 發願(발원)으로 3부를 印經(인경)했을 때 大般若經板(대반야경판) 十二(십이)장을 비롯하여 阿(아)비達(달)마大(대)비바沙論(사론), 集古今佛道論衡(집고금불도논형) 등 도합 18장이 缺板(결판)되어 있었으므로 새로 補刻(보각)한 일이 있었으며 또 그때 大藏經板(대장경판) 전부를 통해서 1천여字(자)의 마멸과 缺劃(결획) 등이 있었음도 이미 學界(학계)에 널리 주시되어 오는 터이다. 한편, 海印寺板(해인사판) 十門和(십문화)쟁論(론)과 大覺國師文集(대각국사문집) 등도 최근의 印本(인본)이 이 분야의 關係學者(관계학자)들에 의해서 이용되고 있어 그 刻板(각판)의 所在(소재)는 이미 알려져 있는 실정이다.
徐(서)교수의 이번 現況調査(현황조사)에 대한 諸般事項(제반사항)은 앞으로 있으리라고 믿어지는 구체적이고 體系的(체계적)인 調査硏究(조사연구)보고를 기다려야 하겠으나 경북大(대) 論文集(논문집) 제12집에 실려 있는 徐(서)교수의 “伽倻山(가야산) 海印寺(해인사) 八萬大藏經(팔만대장경)”을 읽을 기회가 있었으므로 우선 몇 가지 所見(소견)을 피력코자 하는 바이다.
첫째, 1968년 9월 현재 총89板(판)에 걸쳐 4천6백77字(자)가 不明(불명)했다. 1915년의 1천17字(자)에 비하면 그간 50여년간에 3천6백80字(자)가 증가한 셈이다. 그러나 徐(서)교수가 ‘이 莫重(막중)한 國寶(국보)가 나날이 썩어가는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政府(정부)는 두 손 再拜(재배) 外面(외면)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얼른 이 國寶(국보)를 재조사하여 썩어가는 國寶(국보)를 修補(수보) 刻板(각판)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그 論文(논문)가운데서 悲憤(비분)강개하기에 앞서 우선 그 調査方法(조사방법)에 철저를 기했어야 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例(예)컨대 成函(성함)에 入藏(입장)되어있는 大般若經(대반야경) 卷(권)2백63 第(제)25張(장)이 全面的(전면적)으로 3백22字(자)가 不明(불명)이라 하였으나 본시 이 第(제)25張(장)은 卷(권)2백63의 끝張(장)인바 1915년의 印本(인본)에 의한다면 卷末(권말)의 ‘戊戌歲高麗國大藏都監奉(무술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주造(조)’까지 合(합)하여 1백60餘字(여자)가 있을 뿐임은 이 印本(인본)을 보게 되면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비록 전면적으로 不明(불명)이라 할지라도 7백60餘字(여자)를 넘지 못할 것은 뻔한데 좀더 誠意(성의)있는 철저한 調査方法(조사방법)이 아쉽다. 뿐만 아니라 거의 4분의 1이 不明(불명)으로 되어있는 阿(아)비達磨(달마)비婆沙論(파사론) 卷(권)21 第(제)25張(장)의 經板(경판)이 圖版(도판)으로 나와 있으면서 89板(판)의 리스트 안에 들어있지 않으며 阿(아)비達磨(달마)비婆沙論(파사론)으로서는 2백31字(자)가 不明(불명)으로 되어 있는 같은 卷(권)21의 第(제)21張(장)이 리스트 第(제)36項(항)에 들어있다. 따라서 兩者(양자)가운데 그 어느 하나가 印刷誤植(인쇄오식)이거나 혹은 第(제)25張(장)이 리스트作成(작성)에 있어서 누락되었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어떻든 落字(낙자) 不明(불명) 등으로 現況調査(현황조사)된 4천6백77字(자)는 그 調査方法(조사방법)과 그 과정 내지 집계에 있어서 재고되어야 할 것 같다. 高麗(고려) 高宗年間(고종연간)에 大藏經(대장경)을 刻板(각판)했을 당시에 이미 의식적으로 高麗王(고려왕)의 諱(휘)를 피하기 위하여 缺劃(결획)한 字(자)도 적지 않을뿐더러 高麗俗字(고려속자)도 더러 있음으로 現況(현황)의 落字(낙자)를 一律的(일률적)으로 刻板以後(각판이후)에 있은 落字(낙자)내지 마멸로 보려는 것은 삼가야 하는 등, 經板(경판)의 刻字(각자)마멸調査(조사)에는 여간 세심한 배려가 있지 않으면 아니 되는 즉 이런 점도 고려해서 4천6백77字(자)이었는지 그의 論文(논문)만으로는 알 수 없다.
둘째 目錄(목록)에는 大敎王經(대교왕경) 十卷(십권)이 빠져있으나 現品(현품)이 實地(실지)로 大藏經殿(대장경전) 溪函(계함)과 雞函(계함) 兩處(양처)에 重複(중복) 奉安(봉안)되어 있으니 이는 目錄(목록)의 미스라 볼 수 있으므로 大藏目錄(대장목록)에 大敎王經(대교왕경) 十卷(십권)을 加算(가산)하여야 한다고 徐敎授(서교수)는 또 말하였다. 보통 大敎王經(대교왕경)이라 하면 尹函(윤함)(No. 630)에 入藏(입장)되어 있는 不空譯(불공역)인 金剛頂一切如來眞實攝大乘現證大敎王經(금강정일절여래진실섭대승현증대교왕경) 三卷(삼권)과 휘函(함)(No. 510)의 法賢譯(법현역)인 佛說最上根本(불설최상근본) 大樂金剛不空三昧大敎經七王卷(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경칠왕권) 및 宣函(선함)(No. 601)ㆍ威函(위함)(No. 602)ㆍ沙函(사함)(No. 603) 등 세 函(함)에 入藏(입장) 되어있는 施護譯(시호역)의 佛說一切如來眞實攝大乘現證三昧大敎王經三十卷(불설일절여래진실섭대승현증삼매대교왕경삼십권)과의 三種(삼종)을 말하는 것이다. 高麗大藏經(고려대장경)에는 이 三種外(삼종외)에도 家函(가함)(No. 501) 등 다섯 函(함)에 最上大乘金剛大敎寶玉經二卷(최상대승금강대교보옥경이권) 등 8種(종)이 있다.
여기 溪函(계함)(No. 530)과 雞函(계함)(No. 629) 兩處(양처)에 重複(중복) 奉安(봉안)되어있다는 大敎王經十卷(대교왕경십권)은 그 卷數(권수)를 보아 위의 數種(수종) 大敎王經(대교왕경)과는 別種(별종)인 것 같기도 하지만 兩函(양함)에 중복 奉安(봉안)되어 있다는 말이 애매하다. 즉 10卷(권)의 大敎王經(대교왕경)이 각각 溪函(계함)과 雞函(계함)에 있다는 뜻인지 또는 각각 分卷(분권)되어 都合(도합) 十卷(십권)인지 알 수 없다. 그 어느 경우를 치더라도 일찍이 池內宏博士(지내굉박사)가 밝혀 놓은 바와 같이 大藏目錄(대장목록)과 補板追加目錄(보판추가목록)의 體裁(체재)내지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이 大敎王經(대교왕경)을 溪函(계함)과 雞函(계함)에 들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다. 續一切經音義(속일절경음의)가 入藏(입장)되어있는 雞函(계함)에 密敎(밀교)경전인 이 大敎王經(대교왕경)을 入藏(입장)시키는 그러한 非體裁的(비체재적)인 目錄編成(목록편성)을 실무자는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 溪函(계함)의 경우는 만殊室利千(수실리천)비千鉢經(천발경)이 入藏(입장)되어 있으므로 같은 密敎系(밀교계)의 大敎王經(대교왕경)의 入藏(입장)의 가능성이 생각도 되나 각 函(함)의 평균 卷數(권수) 내지 張數(장수)로 보아 역시 그 가능성을 호리각게 해준다. 문제는 그 大敎王經(대교왕경)의 卷末(권말)마다 ‘高麗國大藏都監奉(고려국대장도감봉)칙주造(조)’라는 刻記(각기)가 張(장)마다 ‘溪(계)’ 또는 ‘雞(계)’의 函號(함호)가 刻記(각기)되어 있느냐에 있겠지만 모르기는 하되 분명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經板(경판)이 高麗(고려) 高宗板(고종판)과 그 體貌(체모)가 같은 것이라면 金剛三昧經論法界圖(금강삼매경논법계도), 華嚴探玄記(화엄탐현기) 등 分司大藏都監(분사대장도감)에서 주造(조)된 이른바 補板類(보판류)에 넣어질 것이 아닌가 한다. 혹 ‘雞(계)’와 ‘溪(계)’ 등 函號(함호)가 刻記(각기)되어 있다 하더라도 祿函(녹함)(No. 514)으로부터 茂函(무함)(No. 523)에 걸친 宗鏡錄(종경록)의 刻板(각판)에 函號(함호)가 刻記(각기)되어 있는 것처럼 補板類(보판류)에 넣어질 것이 아닌가 싶다. 만일 이런 경우라면 현재 茂函(무함)(No. 523)으로부터 庭函(정함)(No. 640)까지 空白(공백)으로 되어 있는 補板目錄(보판목록)에 새로운 추가를 가져오는 것이 된다. 어떻든, 후에 와서 어떤 經緯(경위)로 끼어졌을 것으로 보여지는 現況(현황)을 가지고서 아무런 검토와 과정 없이 즉흥적으로 안이하게 근본적인 高麗(고려) 高宗當時(고종당시)의 大藏目錄(대장목록)의 미스를 指摘(지적) 한다는 것은 本末(본말)이 顚倒(전도)된 것이 아닐까.
셋째로 日刊紙(일간지)에 보면 華嚴經板(화엄경판) 등 十二張(십이장)이 없어지고 있다고 傳(전)하고 있다. 華嚴板(화엄판)은 1915년 내지 1937년 당시의 缺板(결판)리스트에 없으므로 1937년 이후에 없어진 것 같으나 나머지는 어떤 經板(경판)인지 그 經名(경명)과 卷(권), 張(장)이 궁금하다.
昨今(작금) 東洋學(동양학)의 급격한 전진에 따라 大藏經(대장경)에 대한 관심도 나날이 높아가고 있는 此際(차제)에 어려운 高麗大藏經硏究(고려대장경연구)와 現況調査(현황조사)에 정부의 補助費(보조비)를 받아 몸소 心身(심신)을 기울이며 진행시키고 있는, 또 그렇게 함으로써 高麗大藏經(고려대장경) 보존에 輿論(여론)을 일으켜가고 있는, 徐敎授(서교수)에게 敬意(경의)를 表(표)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바라고 싶은 것은 하루 속히 體系的(체계적)인, 具體的(구체적)인 現況調査硏究報告(현황조사연구보고)가 나오기를 苦待(고대)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