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오온의 흐름일 뿐이다. 전생에 죽은 오온은 귀신의 오온이 되어 49일간 떠돌다가 어머니가 될 생명체의 자궁 속에 부착하여 현생의 오온(五蘊/五陰)이 된다.
死陰-中陰(바르도)-生陰
들판에 불이 붙어 동에서 서로 번져 갈 때 같은 불이 동에서 서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다(不去, 不常, 不一). 불꽃은 매 순간 새로운 들풀을 태우며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동의 불꽃이 서로 번져 간 불꽃과 전혀 다른 것이거나(不異, 不斷) 어디 다른 데서 오는 것도 아니다(不來). 동의 불꽃이 없으면 서의 불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고 다시 태어나며 무한한 '윤회'를 되풀이 하는 것은 이러한 들불과 같이 '매 순간 새롭게 타오르는 오온의 흐름'일 뿐이다. 매 찰나 사라지고 나타나는 물질과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마음의 흐름일 뿐이다. 매 순간 들불이 새롭게 타오르는 것을 간과하고 불길이 동에서 서로 간다고 착각하듯이, 매 순간 오온이 새롭게 나타나는 것(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을 간과하고 우리는 내가 살아가고 내가 윤회한다고 착각한다. 따라서 죽음이 우리 삶의 끝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죽은 후 지금의 내가 그대로 내생으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한계)이라고 본다. 이것이 이 세상에 한계가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斷見)이다. 그러나 모든 번뇌를 끊어 열반에 들지 않은 이상 누구나 다시 태어난다. 등불의 경우 앞 찰나의 불꽃에 의지하여 다음 찰나의 불꽃이 나타나듯이 죽을 때의 오온에 의지하여 새로운 오온이 나타난다. 이것이 탄생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 한계가 있다는 사고방식은 옳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 한계가 없다고 보는 것도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현생의 오온이 그대로 내생의 오온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등불의 불꽃과 같이 매 찰나 생멸하는 오온이기에 현생의 오온과 내생의 오온은 같은 것이 아니다.
전생과 현생, 현생과 내생은 연기 관계에 있기에 이어져 있지도 않고 끊어져 있지도 않다(不常, 不斷). 이것이 모든 존재의 참모습이다. 이것이 이 세상과 자아의 참모습이다. 이런 참모습을 자각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인생과 세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태어나 살다가 죽는다는 생각은 발생이 있고, 소멸이 있으며, 평생 동일한 내가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생각'이다. 우리는 이런 허구의 토대 위에서 삶에 대해 번민하고 죽음에 대해 두려워해 왔다. 그러나 이 세상의 참 모습인 '연기와 공'을 자각할 때 우리는 태어난 적도 없고, 살아 있지도 않으며, 죽을 일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참으로 오묘한 궁극의 진리, 죽어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삶과 죽음에 대한 모든 고민을 해소시켜 주는 연기와 공의 진리를 가르치신 부처님께 용수(龍樹, 나가르주나)는 다시 한 번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