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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신을 통한 삶과 죽음의 은유적 관계

신을 통한 삶과 죽음의  은유적 관계/신을 통하여 해석한 삶과 죽음의  은유적 관계

 

인간은 죽음을 아는 유일한 존재다. 그 외의 모든 생명체들도 늙기는 마찬가지지만, 자신이 영원하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모든 종교와 과학 그리고 철학은 죽음을 극복하는 몸부림에서 탄생한 것이다. 모든 죽음은 인간의 행동을 자극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 중 하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라는 존재가 영원하다는 환상이 깨지는 순간, 삶의 의미는 사라질 수 있다. 온갖 철학적 성찰을 통하여 과학과 신의 존재에 관한 논리의 갈등을 통찰해보라. 신을 다루는 예술 활동에서 과학적 발견과 종교적 통찰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의 활동에 삶의 유한한 속성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삶의 은유이며, 환유이고 상징이다. 신의 존재의 유무, 어느 쪽이 맞는 걸까? 삶과 죽음의 양면성에서 탄생한 인류 문명이 수학과 물리학을 이용하여 세상의 모든 힘인 – 전자기력, 강력, 약력, 중력 – 의 상호작용의 관계를 통합하여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통일장이론(Unified field theory)을 탐구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형이상학 분야인 종교와 철학에서는 삶과 죽음의 대명제 사이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신에게 다가가고서 삶의 통찰에 도달하려는 노력은 차라리 눈물겹다. 오죽하면 죽을 때까지 통일장이론의 증명을 위해 온힘을 쏟았던 아인슈타인과 같은 대학에서 점심을 거의 함께 먹었던 수학자 괴델이 ‘신의 존재에 대한 수학적 증명’을 숫자와 기호를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을까. 그렇다면 신이 숫자인가, 기호인가! 똑똑한 괴짜가 웃기는 세상의 재미로움을 알고 죽는 즐거움을 오늘 살아있음으로써 맛본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꼽는 아인슈타인은 유태인의 입장에서 평소 신에 관한 농담을 즐겼으며, 아마 통일장이론의 과학적 증명을 통해 신의 존재의 유무에 관한 단초를 제공하고 싶었을 것이다. 현대 과학의 쌍벽을 이루는 거시물리학, 우주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미시물리학인 양자역학의 쌍두마차격인 두 사람의 신에 관한 농담(?)을 들어보자. 대화의 품격을 이해하는 사람은 최소 일주일은 즐거울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은 주사위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 아인슈타인

-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시오. / 닐스 보어

 

과학적 우정으로 맺은 대화치고는 대단히 해학적 내용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졌음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정설이다. 원자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구성되었으며, 원자핵은 중성자와 양성자로 이루어졌다. 전자는 소립자의 일종이며, 원자핵의 구성요소인 중성자와 양성자는 이것보다 더 작은 물질과 힘인 소립자가 있어 그것들을 만든다. 소립자인 전자는 음전하를 띠므로 양전하를 띤 원자핵과 붙지 않는다. 만약 붙는 사건이 벌어진다면 원자 자체가 형성되지 않으므로 세상은 즉시 아주 짧은 순간에 붕괴하면서 소멸해버린다. 원자는 너무 작아서 원자의 구성에 대하여는 광학적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그림으로 표현하며,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도는 것으로 표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전자가 원자 주변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치는 알 수 없다. 이것이 그 유명한 양자역학의 3대 원칙의 하나인 ‘불확정성의 원리’이다. 이 원리에 대립하면서 나누는 위의 우정 어린 은유적 대화는 언제 봐도 즐겁다. 과학적 갈등을 앞에 두고 ‘신’을 등장시켜 나누는 과학적 대화는 얼마나 아름다운 은유인가! 유일신을 숭배하는 유신론자에게는 모욕적 내용일 수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