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선불교의 정립-보조국사 지눌 ④
돈오점수(上), 북종선=수정견성, 남종선=돈오견성
2009년 12월 08일
주지하다시피 보리달마(菩提達磨, ?∼528)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선종은
오조홍인(五祖弘忍, 601∼678)의 제자인 신수(神秀, 606∼706)와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의 때에 이르면
신수는 점오(漸悟)를 주장하고
혜능은 돈오(頓悟)를 제창함에 의해서 그 색깔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우리는 보통 혜능을 중국 선종의 실질적인 개창자라고 한다,
그것은 혜능이
‘선에 대한 본질적 이해의 전환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수의 북종선과 혜능의 남종선이 가지고 있는
바의 선에 대한 대전제가 다른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모두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바의 본래적 불성은 번뇌에 의해 가리어져 있고,
이것은 반드시 수행을 통하여만 번뇌를 제거하고 불성을 발현하여
성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종선=규범화형식화, 남종선=돈오에 귀결
그러나 어떻게 번뇌를 제거하고 수행할 것인가를 가리는 문제에 들어가면
대답이 달라진다.
신수로 대표되는 북종선은 사람들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지만
밖이 먼지에 의해 가리어져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불식시키고
부단히 수습(修習)을 해야 성불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다시 말해 북종선의 선법은 망념을 없애고
마음을 닦는 점진적인 방법을 선호하기 때문에
비교적 규범화·형식화를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혜능으로 대표되는 남종선은 심성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에
반드시 번잡한 형식의 수습을 통하여
부처의 경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남종선은 전체 수행과정을 모두 ‘돈오(頓悟)’에 귀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종선도 일반적인 돈오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북종선은 돈오를 ‘전체 수행 중의 하나의 고리’이며
이러한 고리는 반드시 ‘장기간의 축적’을 조건으로 삼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남종선은 돈오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극력 주장하였고
그것을 ‘수행의 유일한 고리’로 파악하였다.
그래서 남종선은 불교 수행을 활발하고 생동적이며
정신에 구애되지 않는 길로 인도하여 일상생활과 결부시켰다.
북종선=수정견성, 남종선=돈오견성
한마디로 북종선이 ‘수정견성(修定見性)’을 특징으로 한다면,
남종선은 ‘돈오견성(頓悟見性)’을 특징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종선이라는 새로운 선사상의 출현을 북종선과의 단절이라는 시각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
남종선은 그때까지의 전통적인 선법을 북종선이라는
언명(言明)에 함의(含意)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 선의 흐름이라는 시각에서 그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본체를 작용보다 중시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며,
더 나아가서는 ‘본체’가 잠식한 ‘작용’의 영토를 회복하려는
새로운 문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혜능의 중국 불교에 대한 기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점은
중국 전통 불교의 ‘추상적인 본체’로서의 성격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의 마음’으로 재해석한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중국 전통 불교가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외재적·타력적인 종교로서의 특징을 내재적·자력적인 종교로 변성시킴과 아울러
부처에 대한 숭배를 인간 각자의 ‘자심(自心)’에 대한 숭배로
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체로서의 우주실상을 탐구하는데 집착하지 않고,
실천적 의미를 지닌 인간 해석을 통하여 인간을 본체로부터 해방시킨 것이다.
혜능의 경우에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간의 생명만이 유일하게
무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혜능, 즉심시불 자성이 곧 부처
결국 혜능에 의하면 미망번뇌와 해탈은 동일한 주체의 다른 활동이며
결코 이 번뇌의 주인공인 인간을 떠나 따로 ‘보리(菩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즉 혜능이 말하는 바의 깨달음은 ‘인간의 마음’을 유일한 근거로 하여,
불성(佛性)인 자성(自性)을 몰록 발견(頓悟)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혜능의 중심 되는 사상은
‘즉심시불(卽心是佛)’로서 ‘자성(自性)’이 바로 ‘부처’이다.
미혹됨과 깨달음은 한 생각의 차이이며
중생 스스로가 본심을 몰록 깨닫기만(頓悟) 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덕진/창원전문대 교수 01081101@hanmail.net
[출처] 돈오점수(上), 북종선=수정견성, 남종선=돈오견성|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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