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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북한산 둘레길을 걷습니다(詩山會 제417회 산행)

북한산 둘레길을 걷습니다(詩山會 제417회 산행)

때 : 2021. 9. 11. 10 : 30

곳 : 우이-신설선 북한산보국문역 2번 출구 전방 20미터 좌측 벤치 그늘

 

1.시가 있는 산행

 

선 바위 드러누운 바위 / 이성부

 

외로움은 긴 그림자만 드리울 뿐

삶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고즈넉한 품성에 뜨거운 핏줄이 돌고

참으로 키가 큰 희망 하늘을 찌른다

저 혼자 서서 가는 길 아름다워라

어둠 속으로 어두움 속으로 솟구치는

바위는 밤새도록 제 몸을 닦아

아침에 빛낼 줄을 안다

 

외로움은 드러누워 흐느낌만 들릴 뿐

삶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슬픔은 이미 기쁨의 첫 보석이다

외로움에서 우리는 살고 싶은 욕망을 일깨우고

눈물에서 우리는 개운한 사랑을 터득한다

산골짜기에 또는 비탈에

누군가의 영혼으로 누운 바위는

금세 일어나서 뚜벅뚜벅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시인은 光州高 10회 선배다. 교정에는 광고문학관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문학회원이 되면 매년 10만원의 회비로 문학지를 발행하고 관계의 돈독함을 유지한다. 다만 서울에 있는 나는 아직 참석의 기회를 찾지 못했다. 총무가 17회 선배인데 보낸 원고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문학지를 보내주는 것도 여러 번 재촉해야 보내주니 무엇을 탓할까! 그나마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2.산행기

 

시산회 제416회 '안산자락길' 산행<2021.08.22(일)>

◈ 월일 / 집결 : 2021년 8월 22일(일) / 3호선 독립문역 4번출구 (10:30)

 

◈ 참석 : 17명 <1진(4명), 2진(4명), 3진(4명), 4진(4명) 및 뒤풀이 1명>

 

◈ 산행코스 : 독립문역-서대문독립공원-이진아기념도서관-안산자락길-전망대-북카페쉼터(능안정)-너와집(무악정)-안산자락길-<원대복귀>-독립문역-<전철>-불광역-뒤풀이장소-집

 

◈ 동반시 : "사랑이 올 때" / 신현림

 

◈ 뒤풀이 : 소머리수육, 민어탕에 소·맥주, 막걸리 / '은하식당'<불광역 근처 (02) 355-3980> → 조문형 산우 협찬

 

날이 밝았다. 늦은 밤까지 작업을 하고, 새벽에 일어나니 하늘은 흐리지만 비가 온다는 예보는 20% 수준이라 안심했다. 여러 차례 빠져서 마침 잘 아는 산이라 안내를 자청했다. 안내인은 동반시를 읽을 권한을 가지지만 코스의 안내 및 뒤풀이 장소의 결정에 따른 책임이 주어진다. 코스는 간단하며 쉽고 편하다. 더구나 역사박물관인 옛 서대문형무소를 볼 수 있는 엄숙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조금 빨리 와서 지금 가고 안 계신 영정을 보며 묵념을 드렸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반열에 들었고 군사강국의 길로 들어선 것은 사관학교 출신인 나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요즘은 신문은 믿지 못해 보지 않고 TV를 보며 유투브로 들어가면 군사에 관한 영상을 볼 수 있다.

 

반가운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늦은 산우들이 있어 인증 사진을 먼저 찍는 이례적 행위는 나쁘지 않다. 늦는 산우들도 자주 가는 산이라 안심하고 출발한다. 10분 정도 가파르고 다음부터는 거의 나무 데크 길이다. 등산 도중 느낀 것은 선두가 갈림길에서 기다리지 않고 마음 가는 데로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모으는 전화를 하고, 기다리는 수고를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들머리와 날머리를 포함한 산행 코스를 설명하고는 날머리에서 만나는 시간을 정하면 체력에 맞춰 산행하고 그 자리로 가는 도중에 끼리끼리 가져온 음식으로 간식을 먹고 동반시는 뒤풀이 식당에서 한다는 구상이다. 그날따라 유난히 이합집산을 자주 하는 경험을 겪었으므로 제안한다. 체력의 차이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또 하나의 제안은 뒤풀이를 하지 않는 경우는 참가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제안을 집행부에서 잘 판단하여 받아주기 바란다.

 

항상 옆에 두고 읽는 책을 소개한다. 내 삶에 많은 도움을 주므로 책의 중요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

 

로마제국의 유명한 5현제 중 가장 뛰어난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로서의 보장된 감각적 쾌락을 마다하고 게르만족의 침략에 맞서던 가운데 전쟁터를 누비면서 틈틈이 쓴 명상록(원제 : 자기 자신에게)에서 ‘어차피 죽을 건데 왜 그렇게 감각적 쾌락에 몰두하고 재물에 탐을 내는지, 그러나 그러한 어리석음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나에게도 매우 어렵고 중요한 명제다.’라고 명상록에 기재했다. 그런 명제에 관해 2000년 전에 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명상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비교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아직도 2,500년 전에 수많은 선각자들이 터득했던 통찰의 경계를 아직도 뛰어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내가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삶의 유한성을 대변해주는 ‘명구’라는 곳에 나의 생각이 멈추고 있다. 기독교도인 내가 답답해하는 것에 대한 답은 다음에 있다. 모든 것의 열쇠를 쥐고 있는 신이 나타나서 자물쇠를 열어주면 좋으련만 오매불망 인류문명사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신은 ‘나는 너희에게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마음속에 항상 머물고 있기 때문에 내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나는 신이 아니다. 그래서 나의 아들 예수를 보내지 않았느냐!’ 얼마나 멋있고 허전한 절규인가. 우리는 더 이상 신의 실제적 모습을 기대하지 말자. 그의 말처럼 우리가 신이기 때문이다. 명상록은 스토아 철학을 바탕으로 쓰였다. 여기서 멈춘다. 그의 철학을 알고자 하면 스토아 철학부터 시작해야 함을 잊지 말자. 명상록의 일독을 권한다. 역설적 아쉬움이지만, 재위 기간에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온갖 전쟁터를 전전하는 등 격무에 시달렸으며, 서기 180년 59세가 되었을 때 전염병에 걸려 쓰러졌다. 이때 그는 죽음을 직감하고 일부러 식음을 전폐하고 금식 7일째에 눈을 감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아들 코모두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으나, 최악의 폭군이자 로마의 재앙으로 역사를 장식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면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욕망과 불행의 인과적 관계를 알 수 있다.

 

뒤풀이는 불광동 은하식당에서 소머리와 민어탕으로 즐겼다. 이제는 늙어가니 술을 줄이자는 부탁을 하면서, 끝으로 영원한 동창회 총장 조문형 산우가 어머님 별세에 따른 조문의 고마움을 담아 조용히 비용을 부담했다. 이제는 쓸 나이가 되었으니 그는 두 가지 즐거움을 누린 것이다. 행복하시라.

 

동반시를 올린다. 요즘 박형채 산우나 김종화 산우가 추천한 시를 동반시로 선정한다. 그 책임을 맡고 있는 김정남 산우는 항상 선정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두 산우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김정남 산우는 제5시집을 준비하면서 초안까지 완성했으나 나의 권고로 ‘수상록이 있는 시집’으로 정했으며 그 준비가 상당히 길어진다. 그것도 준비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나로서는 기다림의 즐거움이 있다.

 

"사랑이 올 때" / 신현림

 

그리운 손길은

가랑비같이 다가오리

 

흐드러지게 장미가 필 땐

시드는 걸 생각지 않고

 

술 마실 때

취해 쓰러지는 걸 염려치 않고

 

사랑이 올 때

떠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봄바람이 온몸 부풀려갈 때

세월 가는 걸 아파하지 않으리

오늘 같이 젊은 날, 더 이상 없으리

 

아무런 기대 없이 맞이하고

아무런 기약 없이 헤어져도

 

봉숭아 꽃물처럼 기뻐

서로가 서로를 물들여가리

 

2021. 8. 24. 최근호 올림

 

3.오르는 산

전환시대의 논리

젊은 날 정신적 헌법 같았던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다시 읽어본다. 주마등처럼 돌아가는 기억을 살려보면, 서울 유학생활에서 시작하여 박정희의 끔찍한 10월 유신독재, 도피처럼 시작한 산사의 고시공부, 어머님을 모시기 위한 하산과 별세, 세상에 접근한 신의 직장 생활, 518광주민주항쟁에 반발하여, 직장을 뛰쳐나가는 무모한 자립, 남대문시장 나까마 생활, 예비군훈련 중 참호 속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알게 된 동료에게 배운 건축업으로 시작하여 토건업이라는 종합건설을 설립하여 활짝 피었으나, 혹독한 IMF외환위기를 겪고 겨우 재기하자 가족에게 배신당한 사건 등을 통하여 이어온, 유난히 치열한 삶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았던 사상과 논리는 이 책의 독파를 특이점으로 본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균형은 날개처럼 좌우의 날개가 같은 힘으로 기능을 다 할 때의 상태이다. 균형은 자유의 논리와 공정에 맞는 진리의 법칙이고, 인간 사회의 가장 건전한 상태이다. 건전한 상태 중의 하나로 균형과 중도를 꼽을 수 있는데 중도란 붓다의 중도, 공자의 중용, 예수의 왼뺨과 오른뺨,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장자의 나비의 꿈(胡蝶夢), 사마천의 사기의 첫 장 하늘의 도는 옳은가 틀린가(天道是也非也 ) 등은 균형의 은유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시간과 공간을 의미하는 시방삼세十方三世, 모든 것이 만나는 시간과 공간, 곧 시공의 한 특이점에서 반드시 만나는 갈등이 있을 수 있으며, 인내가 갈등을 극복할 수도 있지만 버림으로써 명상센터에서 만나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환유적 중도의 상징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기도 한다. 리영희, 나의 젊은 날을 지배했던 그와 전환시대의 논리를 잊고 살았다. 종심從心의 70에서 다시 만나는 그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60에 만난 토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밋밋해져서 만나지는 않기 바란다.

몸도 그와 다르지 않아서 극복 아닌 회복은 꾸준한 산행을 최선의 치유책으로 간주한다. 근호의 의견처럼 당분간 조별로 다니든가 외인부대처럼 다니고 시간에 맞춰 날머리에서 만나고 일부의 시공이 어긋나면 뒤풀이 장소에서 합류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모여 간식을 드는 것은 시책에 어긋나기도 하고 일부의 목소리에 귀가 거슬리기도 하므로 꼭 시행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면 감사하겠다. 불편한 사람은 안 보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시행이 안 되면 다음에 내가 총장이 되어서라도 시행하겠다.

 

4.동반시

이번 산행에 이외수의 시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를 추천했는데 내게 시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그런 문체와 시어로 시를 쓰지 마라고 신신당부한 사람들 중 하필 거기에 끼었으니 안타깝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이외수는 이왕 거론됐으니 어쩔 수 없고 그 외의 경우는 거론하지 않겠다. 시를 배우고 익힌 지 10년이 지났다. 별소리를 다하게 된다. 이건 내가 싫어하는 수동형의 문체다.

 

선암사 은목서 향기를 노래함 / 곽재구(박형채 배급)

 

내 마음이 가는 그곳은

당신에게도 절대 비밀이에요

아름다움을 찾아 먼 여행 떠나겠다는

첫 고백만을 생각하고

당신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때 나는 조용히 웃을 거예요

알지 못해요 당신은 아직

내가 첫 여름의 개울에 발을 담그고

첨벙첨벙 물방울과 함께 웃고 있을 때에도

감물 먹인 가을옷 한 벌뿐으로

눈 쌓인 산언덕 넘어갈 때도

당신은 내 마음의 갈 곳을 알지 못해요

그래요 당신에게

내 마음은 끝내 비밀이에요

흘러가버린 물살만큼이나

금세 눈 속에 묻힌

발자국만큼이나

흔적 없이 지나가는 내 마음은

그냥 당신은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

 

2021. 9. 10.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