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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서대문형무소 뒤 안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416회 산행)

서대문형무소 뒤 안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416회 산행)

모이는 때와 곳 : 2021. 8. 22.(일) 10시 30분. 전철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

산행지 : 안산자락길

길잡이 : 최근호

뒤풀이 : 근호가 앞장서는 곳으로

1.시가 있는 산행

칠월 / 허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밑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 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여름밤 / 정호승

너는 죽어 별이 되고

나는 살아 밤이 되네

한 사람의 눈물을 기다리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통곡하는 밤은 깊어

강물 속에 떨어지는

별빛도 서러워라

새벽길 걸어가다 하늘을 보면

하늘은 때때로 누가 용서하는가

너는 슬픈 소나기

그리운 불빛

죽음의 마을에도 별은 흐른다

뜻을 다 표현한 다음에 말을 마치는 것은 천하의 지언(至言)이다. 그러나 말을 마쳐도 뜻은 다함이 없어 은은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더욱 지언(知言)이라 할 것이다.

-신흠 ‘숨어사는 선비의 즐거움’

‘생각보다 짧았던 여름’을 검색하다가 낚은 시들이다. 다음을 기약하기에 너무 아까워 두 시를 함께 실어봤다. 신흠의 시평은 ‘생각보다 짧았던 여름’의 시평인데 버리기 아까워 끼워 넣었다. 나의 시집 5집의 초고를 거의 완성해놓고 손녀를 키우면서 근호의 조언을 듣고 방향을 틀었다. 시가 있는 수상록의 형식으로 정하고 가칭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정해놓다 보니 공부가 부족했다. 불교 공부는 잠시 접고 우주천체론, 곧 거시물리학과 양자역학, 곧 미시물리학과 뇌과학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며, 동시에 시에 치우친 문장 습관을 고치는 중이다. 가장 고치기 어려운 것은 10년을 익힌 시 문장 습관이다. 관련 공부를 어느 정도 마친 이제는 머릿속에 엉킨 퍼즐을 맞춰야 한다. 산우들의 우정 어린 충고와 격려를 바란다. 한 마디도 허투루 넘기지 않겠다.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415회 '영장산둘레길' 산행기"<2021.08.14(토)> / 기세환

◈ 월일 / 집결 : 2021년 8월 14일(토) / 분당선 이매역 1번 출구 (10:30)

◈ 참석 : 8명 <1진(4명), 2진(4명)>

◈ 산행코스 : 이매역-성남시농업기술센터-이매동등산로-종지봉-갈림길-매지봉-영장산정상-맹산자연학습장-<원대복귀>-이매역-야탑역-뒤풀이 장소-야탑역

◈ 동반시 : "8월의 시" / 오세영

◈ 뒤풀이 : 낙지해물파전, 낙지볶음에 소·맥주, 막걸리 및 돌솥밥 / '진미낙지'<야탑역 근처 (031) 8039-5579>

‘영장산둘레길’ 산행날이다. 며칠 전에 말복(末伏)이 지났는데, 아직도 32~33도가 지속되는 무더운 날씨이다. 집결지인 이매역 1번 출구에 대부분 산우들은 약속한 시간에 모여, 지정된 둘레길로 출발하였다.

‘영장산둘레길’의 산행코스 거리는 왕복 약 8 km로, 이매역 1번 출구에서 출발, 이매동 등산로로 바로 진입한 뒤 솔밭쉼터, 돌탑을 지나 30여 분 정도 가파른 오르막 코스를 채고 영장산 정상에 올랐다.

영장산은 우리 시산회에서 그동안에 매년 1회씩 산행을 하였던 적이 있었고, 남 총장님은 분당에 살고 있는 나에게 영장산 산행길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고, 오늘의 산행 안내자를 해 달라고 부탁하여, 산행코스를 고민하다가 지난 일주일 전인 8월 7일(토)에는 산우들 몇 친구와 사전에 탐방을 하였다.

영장산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자리 잡고 있으며, 높이는 해발 413.5m이다. 눈 쌓인 겨울철 산행도 좋았지만, 역시 산행길은 숲이 울창하여 등산로 대부분이 그늘로 덮여 있다. 울창한 숲길은 무더운 여름철엔 더위를 식혀주어 좋았다.

여러 갈래의 성남 둘레길 중 하나이지만, 매지봉의 산불감시탑 까지도 몇 차례 오르막길이 있고, 마지막 고비인 영장산 정상까지 약 700m의 구간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깔닥고개의 등산길 이었다.

오르는 동안 여느 때처럼 각자 방송채널을 온 시키고 애청자가 있건 말건 스피커들이 소란하다. 역사, 종교, 정치, 철학, 가사, 건강 등의 테마가 수시로 바뀌며 적당한 애드리브로 산우들의 리액션을 유도하며 산행 내내 즐겁다. 이런 날들이 마르고 닳도록 이어지길 소망한다.

내려오는 길은 다시 매지봉 방향으로 하산, 맹산자연학습장 쉼터에서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하며, 배낭에 넣어온 간식(깁밥, 떡, 과일, 참치통조림 등과 막걸리)을 끄집어 낸 뒤, 오늘의 동반시("8월의 시" / 오세영 시인)는 내가 낭송을 하였고, 산우들은 간식으로 배를 채웠다.

"8월의 시" / 오세영 (김종화 회원 추천)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8월

8월은 분별을

일깨워 주는 달이다

사랑에 빠져

철없이 입맟춤 하던 꽃들이

화상을 입고 돌아 온 한낯

우리는 안다

태양이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저 눈부신 하늘이

절망이 될 수도 있음을

누구나 홀로 태양을 안은 자는

상처 입는다

쓰린 아픔 속에서만

눈 뜨는 성숙

노오랗게 타버린 가슴을 안고

나무는 나무끼리

풀잎은 풀잎끼리

비로소 시력을 되찿는다

8월은

태양이 왜

황도에만 머무는 것인가를

가장 확실하게

가르쳐 주는 달

오세영(1942~)은 전남 영광에서 출생, 서울대 문리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65년 “현대문학”에 ‘새벽’이, 1966년 ‘꽃 외’가 추천되고, 1968년 ‘잠깨는 추상’이 추천 완료되면서 등단하였다.

오세영 시인 시집으로는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무명 연시”,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상, 녹원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서울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뒤풀이 시간에 맞춰 맹산자연학습장 쉼터에서 산우들과 9월 하순의 산행계획 등을 협의한 뒤 하산을 서둘렀으며, 종지봉 옆 삼거리에서 다시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은 왔었던 길인 이매동등산로로 하산하여 이매역-야탑역으로 가고, 다른 한 팀은 전경대-경남아파트-야탑역으로 이동하였다.

뒤풀이는 야탑역 1번 출구 근처의 ‘진미낙지’ 식당에서 맛있게 한 잔 하고, 배부르게 배를 채웠으며, 산행을 마쳤다. 다음 산행인 시산회 416회 ‘안산자락길’ 산행을 기대하면서...

2021년 8월 21일 기세환 씀.

3.오르는 산

집행부의 사정에 따라 일정을 앞당겼다. 그런대도 15명에 이른다. 집행부의 열정이 산우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에 호응을 한 것으로 봐서 틀림은 없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우리의 힘이 약해서 갈라진 땅, 북의 고향을 거치지 않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다른 영웅 김좌진 장군은 사회주의자의 손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힘을 합쳐도 힘들 때 자금을 마련하느라 정미소를 차린 것이 자신들의 이념과 다르다며 독립 영웅을 제거하는 것에 대하여 지금도 잃어버린 다른 영웅을 맞이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도 한 때 사회주의 이념에 치우쳤지만 박정희의 친일 독재에 대한 반감에 고른 분배를 꿈꿨다. 젊은 날의 치기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사업을 하면서 자본주의의 향연을 마음껏 누렸지만 ‘몸은 오른쪽에 있지만 정신은 왼쪽에 있다’고 늘 호기롭게 말한 적이 있다. 오늘날의 서구, 특히 북구 사회주의 이념과 다르지 않았다. 그 중에는 지극히 왼쪽으로 빠져든 친구들이 있었지만 졸업하고 헤어진 후의 소식은 모른다. 나의 사상의 갈등은 그때까지였고, 고시공부를 하다가 합격에 자신이 없어지자 바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둥지를 틀었다. 그때 사상을 중시하였는데 가족의 사상이 철저히 오른쪽으로서 피해를 많이 입은 군경가족이라 나의 작은 흠은 그냥 넘어갔으리라 생각한다.

내일은 그러한 분들의 독립운동 성지 서대문형무소 뒤 안산을 오른다. 근호는 머리가 아플 때 올라 마음을 식히는 곳이기도 하다. 서대문형무소는 지금도 그때와 같은 아픔과 결기가 흐른다. 동시에 다시는 나라를 잃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전두환이 혈액암으로 통증에 시달리며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사의 사진을 보면 볼품이라곤 찾을 수 없는, 그의 당당했던 얼굴은 어디 가고 없었다. 재판장도 놀라 여러 번 맞느냐고 물었다는 것을 들으며, 그렇게 무상한 인생인데 마음공부를 못하고 산 인간의 말로다. 사필귀정, 하찮은 인간이라 용서는 했으나 잊지 않았다. 박정희와 같은 말로다. 업보 때문에 불교는 윤회를 버리지 못하는가 보다. 윤회에 관한 깊은 의미는 지면상 덮어둔다.

노자의 무의 기능, 장자의 인생무상, 진오의 일체유심조, 화엄경의 삼계유심, 불교유가행파의 만법유식과 유식무상 등은 같은 뜻의 다른 이름들이다.

4.동반시

산을 오르는 사람은 반드시 높고 큰 산을 오르고자 하고, 물을 구경하는 사람은 반드시 깊고 높은 물을 구경하고자 한다. 그것은 대개 우주 안의 장관을 다해서 나의 정신을 저 물(物)의 밖에까지 쏟아보자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강희맹(조선의 문신)

사랑이 올 때 / 신현림(박형채 배급)

그리운 손길은

가랑비같이 다가오리

흐드러지게 장미가 필 땐

시드는 걸 생각지 않고

술 마실 때

취해 쓰러지는 걸 염려치 않고

사랑이 올 때

떠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봄바람이 온몸 부풀려갈 때

세월 가는 걸 아파하지 않으리

오늘같이 젊은 날, 더 이상 없으리

아무런 기대 없이 맞이하고

아무런 기약 없이 헤어져도

봉숭아 꽃물처럼 기뻐

서로가 서로를 물들여가리

2021. 8. 22.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이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