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산에 갑니다(詩山會 제415회 산행)
언제 어디서 : 2021. 8. 14. 10 : 30 분당선 이매역 1번 출구
가는 산 : 영장산
길잡이 : 기세환
1.시가 있는 산행
백일홍 / 장만호(박형채 배급)
개심사 배롱나무
뒤틀린 가지들
구절양장의 길을 허공에 내고 있다
하나의 행선지에 도달할 때까지
變心과
作心 사이에서
마음은 얼마나 무른가
무른 마음이 파고 들기에 허공은 또 얼마나 단단한가
새가 앉았다
날아간 방향
나무를 문지르고 간 바람이,
붐비는 허공이
배롱나무의 행로를 고쳐놓을 때
마음은 무르고 물러서
그때마다 꽃은 핀다 문득문득
핀 꽃이 백일을 간다
“홀로 즐기는 것도 좋지만 홀로 근심에 젖어 있는 것도 좋다. 이때 홀로 근심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모두 보통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근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대략 아득한 천고를 향한 그리움이거나 이런저런 일로 홀로 걸어가는 한스러움 같은 것들이다.”
-왕납간(王納諫 명 나라 문인) 『회심언(會心言)』
2.산행기
시산회 414회 '관악산둘레길'(제1구간) 산행 사진"<2021.07.25.(일)>
◈ 월일 / 집결 : 2021년 7월 25일(일) / 2, 4호선 사당역 4번 출구 (10:30)
◈ 참석 : 1진(4명), 2진(3명), 3진(3명) <뒤풀이 1명 추가> 11명
(남기인, 한양기, 김진오, 정한, 김정남, 박형채, 위윤환, 염재홍, 김종화, 홍황표, 이경식/뒤풀이 참석)
◈ 산행코스 : 관악산둘레길 1구간(사당역-관음사옆-서울둘레길-무당골-전망대-낙성대--뒤풀이장소-서울대입구역)
◈ 동반시 : "너무 괜찮다" / 박세현
◈ 뒤풀이 : 생오리(훈제오리)구이에 소·맥주 및 막걸리 / '푸른목장'<서울대입구역 근처, (02) 872-5400>
※ '푸른목장'에서 뒤풀이 후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롯데리아'에서 팥빙수 협찬 → 이경식 산우
무더위가 계속되지만 우리의 산행은 멈출 수 없다. 얼마 전에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시산회 사상 최대 20명이 참석하고는 참석률이 잠시 뜸하다. 2주 만에 보는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 첫손을 꼽는다. 가족이야 매양 보는 게 일이니 거기에 순위를 매길 수 없는 짓이다.
시간을 잘 지켜 정시에 세 팀으로 출발한다. 물론 쉴 때 과자를 나눈다거나 할 대는 뭉치지만 이것도 가상한 일이다. 여름이라 힘들 듯 편할 듯 정한 코스대로 오르고 내린다. 총장이 길 안내자로 임명한 나는 남쪽 산은 뒤를 따라다보니 들머리 정도나 알 뿐 잔 길은 모르니 윤환이가 앞장 서다가 종화가 앞장 서다가 양기가 앞장을 서기도 한다. 도중 정자를 만나면 쉬면, 꼭 간식을 내놓는 친구가 있어 과자 또는 커피가 반갑다.
70을 만나니 별 생각들이 고리를 문다. 특히 인생칠십고래희古來希는 옛날에는 70고개를 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조부, 조모, 외조부, 외조모 뿐만 아니라 부모님까지 6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먼 길 가셨다. 우리는 산이라도 다니면 조금은 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내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집에서 약간의 운동을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해서 시산회를 부지런히 쫓아다닌다. 일본인이 만보를 상업상 이용했다는 보면 8000보가 적당하다고 한다. 그것이 골프에 해당하며 그날 우리는 11,500보를 걸었다. 양기가 왕새우튀김을 안주로 시원한 생맥주를 맛나게 쏘았고 총장이 아이스크림을 쏘았으니 집에 오는 동안 무척 시원했다.
간식의 시간에 소박한 상차림 앞에서 건배사를 외치고, 길 안내인이 시 낭송을 하는 선례가 있지만 항상 동반시와 프롤로그 시를 보내주는 형채가 참석했으니 당연히 시 낭송은 그의 몫이다. 그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히말라야 말로 ‘옴 마니 반메 훔, 나마스떼’ 풀이하면 ‘연꽃 속의 보석 같은 사람이여,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양손을 합장하며 머리를 깊이 숙인다. 히말라야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나도 젊은 시절 히말라야의 산악인이 되고 싶었으나 고소공포증이 여러 가지 모양새를 망쳤다. 그 길은 나의 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현재 내가 가는 길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명상의 화두로 삼았지만 현재 얻어진 해답으로 만족하고 그냥 몇 가지 지침을 지니며, 가던 길을 간다.
항상 수고해주는 회장님, 총장님, 종화, 특히 맛난 왕새우튀김과 생맥주를 선사해준 한양기 산우에게 다시 감사를 올린다. 옴 마니 반메 훔, 나마스떼.
※ 동반시
"너무 괜찮다" / 박세현 (박형채 산우 낭송)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다
어젯밤 불던 바람소리도
바람을 긋고 간 빗소리도 괜찮다
보통 이상인 감정도
보통에 미달한 가분도 괜찮다
자고 일어나면 정말 괜찮다
웃어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다
웃지 않아도 괜찮고 울지 않아도 괜찮다
유리창에 몸을 밀어 넣은 빗방울이
벗은 소리만으로 내게 오던 그 시간
반쯤 비운 컵라면을 밀어놓고
빗소리와 울컥 눈인사를 나누어도
괜찮다
너무 괜찮다
3.오르는 산
이번에 오르는 산은 기세환, 그가 살던 근처의 산인 영장산에 오른다. 이사를 갔다니 멀어졌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나도 도봉산 근처에 살면서 500~1000번은 올랐을 도봉산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갑자기 줄어든 참석자가 한 명이라도 아쉽다.
살다보니 인연이 얽혀 많은 것을 겪지만 대개는 상대방의 잘못으로 결론을 짓는다. 그게 항상 옳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상대에게 해가 되지 않고 나에게도 좋은 복수의 방법을 행동에 옮겨봤다.
복수의 방법 중, 붓다와 희미하나마 인연을 맺은 나로서는 차마 못할 짓은 저주를 퍼붓거나, 해를 가하는 것이다. 그 사람보다 건강하게 살아가며, 회향(廻向)을 하면서 오래 사는 것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나를 괴롭히던 그가 마침내 탕진하여 남긴 자산이 없어 의탁할 곳이 없다면 의탁할 곳을 마련해주고, 장례를 치를 형편이 못 되면 장례를 치러주는 것으로 마지막 가는 길에 명복을 빌어줄 일이다. 그가 무상·고·무아를 알았다면 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니 원한관계가 생길 일은 없다. 그런 회환이 갑자기 떠오르며, 아쉬운 마음을 책이 난무하고 숱한 인연으로 채운 서재를 들락거리는 여름비 시원한 새벽을 맞는다.
4.동반시
8월의 시 / 오세영(김종화 배급)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8월
8월은 분별을
일깨워 주는 달이다
사랑에 빠져
철없이 입맟춤 하던 꽃들이
화상을 입고 돌아 온 한낯
우리는 안다
태양이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저 눈부신 하늘이
절망이 될 수도 있음을
누구나 홀로 태양을 안은 자는
상처 입는다
쓰린 아픔 속에서만
눈 뜨는 성숙
노오랗게 타버린 가슴을 안고
나무는 나무끼리
풀잎은 풀잎끼리
비로소 시력을 되찿는다
8월은
태양이 왜
황도에만 머무는 것인가를
가장 확실하게
가르쳐 주는 달.
2021. 8. 14.(토)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