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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과천 서울대공원에 모입니다(詩山會 제419회 산행)

과천 서울대공원에 모입니다(詩山會 제419회 산행)

때 : 2021. 10. 9.(토) 10 : 30

곳 : 전철 4호선 대공원역 2번 출구

안내 : 조문형

뒤풀이 : 대공원역 4번 출구 할매집(오리고기)

 

1.시로 시작하는 산행

 

꽃이 지는 시간 / 이서린 

 

피기 이전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활짝 핀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니, 지우지 못한다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

궁극에는 돌려보내야 함을 모르진 않다

 

사는 동안

온전한 내 것인 양 지내온 주변

하나씩 제자리로 돌아가는 중이다

 

검게 파인 자리

차마 발화되지 못한 말

그, 시간의 기억이

웅숭깊다

 

요즘 과학에 빠져서 산다. 이 시는 빅뱅의 순간을 연상하게 만든다. 법률학을 전공한 법학사로 학업을 마치고 토목건축을 주업, 온천업은 부업으로 살아온 시간이 35년을 채웠다. 이제는 그냥 편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알지 못하는 숙명적 아쉬움을 삼키지 못해 아직 못 다한 공부라고 생각해서, 10년 전에 역사부터 시작하여 우주물리학, 비교종교학, 철학, 문학, 뇌과학, 마음공부, 미시물리학인 양자역학을 공부하고 있으니 마나님은 한심한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더구나 틈만 나면 명상센터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으니 늙어 말년에 생과부 신세다. 내 입장에서는 좋게 말하면 지적 호기심이고, 지적 허영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서관에서 종일 책을 봐도 허리가 아프지 않고 눈은 더 좋아지는 것 같고 싫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형채가 보내준 위의 시를 보면서 해본 생각이다.

 

2.산행기

 

시산회 제418회 월미산 및 월미도공원 산행기 / 고갑무

1.집결일시 및 장소 : 2021년 9월26일 10:30분 1호선 인천역 1번 출구

2.산행장소 : 월미산 및 월미도공원(인천광역시 중구 월미도에 위치)

3. 참석자 : 남기인 총장 외 16명(명단은 생략)

4. 산행코스 : 인천역8부두- 월미공원(정문)- 월미도- 박물관역- 월정산(정상)-월휴정- 전통정원- 월미공원역- 차이나타운(뒤풀이장소)- 자유공원- 인천역

5. 동반시

‘쑥부쟁이 사랑’/정일근(박형채 산우 추천)

 

사랑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

가을 들어 쑥부쟁이 꽃과

처음 인사했을 때

 

드문드문 보이던 보랏빛 꽃들이

가을 내내 반가운 눈길 맞추다 보니

은현리 들길 산길에도

쑥부쟁이가 지천이다

 

이름 몰랐을 때 보이지도 않던

쑥부쟁이 꽃들이

발길 옮길 때마다

눈 속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다

 

이름 알면 보이고

이름 부르다 보면 사랑하느니

사랑하는 눈길 감추지 않고 바라보면

 

모든 꽃송이

꽃잎 낱낱이 셀 수 있을 것처럼

뜨겁게 선명해진다

 

어디에 꼭꼭 숨어 피어 있어도

너를 찾아가지 못하랴

사랑하면 보인다

숨어있어도 보인다

 

이번 산행이 418회이자 금년 들어 20번째 산행인 것 같은데 나는 그동안 산행기와 관련해서 기자역할과 산행기 작성 애기가 나오면 집행부에서 시키는 대로 순한 양처럼 일체의 거부나 도리질 없이 따라 왔는데 금년에는 어쩐 일인지 연간 산행계획의 기자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길래 살다보면 이런 행운도 있나보구나 했지.

 

그런데 웬걸 지지난번 산행 뒤풀이 때 줄을 잘못서는 바람에 남 총장이 바로 옆에 정좌해 있는 줄도 모르고 막걸리 몇 잔에 희희낙락하고 있다가 불시에 나보고 “갑무, 자넨 아직 기자 한 번도 안 했제?” 하면서 차차기 산행기 길잡이 좀 해달라고 해 말도 못하고 꼼짝없이 길잡이 겸 기자 역할을 하게 됐으니, 그래! 내 복에 무신 행운은 행운......쩝쩝.

 

근데 문제는 이런 행사 뒤에 후속조치로 써야할 산행기, 이런 것이 웬일인지 무지하게 쓰기 싫어졌다는 거야. 이전에는 뭘 좀 쓰라고 하면 PC앞에서 몇 자 그럭저럭 쓰곤 했는데 이제는 정말 쓰기가 싫어졌다는 거야. 그래서 잘 아는 친구에게 초안 좀 잡아달라고 했더니 말도 못 부치게 하네. 내 원 참,,,...!

 

이제 우리 나이가 칠십이라 人生七十古來稀라 했느데 퇴행성관절염이 아니라 퇴행성 무력증 이런 거 비슷한 증상이 생긴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쪼금이라도 복잡해질 기미가 보이면 그냥 싫어지는 거 있지. 하고 싶지도 않고, 무력증도 아니고, 갈 날은 멀었는데 해는 져 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친구 중에 무슨 여행계획 관련해서 여행일정 잡고(정일정 아님 오해 없으시길) 숙박업소 예약하고 운송수단 검토하고 하는 친구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던데 아무튼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만남이 즐겁고 어떨 때는 행복하기까지 하더라고. 난 그냥 옆에서 찌질한 것 시키면 그런 거나 하면 좋더라고.

 

이번에도 어찌어찌 코로나 영향도 있고 장거리 여행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도 있고 해서 이번 산행은 가까운 월미도로 가서 바닷바람이나 쐬고 김동주 회장이 거금을 찬조해준 만큼 거기 인천의 명소인 차이나타운에 가서 그거 고량주에 청요리로 포식한번 하자고 해서 친구들에게 점심 먹거리도 가져오질 말고 간단한 음료수 정도만 가져오라고 미리 예고를 했는데 사람마음은 다 같은가봐.

 

서울에서 인천까지 거리가 제법 되는데 그래도 17명이나 모였더라고, 윤환이만 지 나와바리라서 그런지 대충 걸어올 수 있는 거리정도가 되겠지?

 

암튼 노인네 17명이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월미도공원 둘레길을 걸어가는데 웃기는 게 주변의 나이 좀 먹어 보이는 일행들을 보면 아따! ‘저 친구들 나이 좀 들어 보이네.’하고 생각하는데 우리 일행들은 전혀 옆의 일행처럼 나이 먹어 보이지가 않아요. 그냥 약간 늙은 오빠들 같아. 아직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누울 수 있는 힘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야.

 

팔십까지만 현재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면서 이렇게 산행도 즐기고 각자 가져온 간식거리로 입맛도 돋우고 비싸진 않아도 그래도 푸짐한 뒤풀이로 소확행을 느끼는 이런 모임이 정말 축복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하네.

 

아무리 의술이 발달하고 건강관리를 잘해도 한국남자로 태어나 팔십까지 건강하게 살았다면 그 뒤로는 언제 소천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그런 거 아닌가 생각하네.

 

물론 내 생각이긴 하지만 통계청자료를 보면 이런 생각이 꼭 허무맹랑한 건 아닌 건 같네. 그렇게들 생각진 않는가?

 

오늘 산행 결론 : 일단 팔십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배전의 건강관리를 하시기 바라며 팔십 이후는 알아서 하시기 바랍니다.

 

쓰기 싫은 거 억지로 중언부언 쓰다 보니 쪼금 이상한 산행기가 되어버렸는데, 산우여러분의 하해(河海)와 같은 이해로 해량하시기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余投筆而!!!河海

2021. 10. 2. 고갑무 올림

 

3.오르는 산

가을비가 가을스럽게 내리는 금요일 밤, 초안을 잡아놓고 정리를 하기 전, 오랜만에 거실에서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남 총장에게서 동반시를 보내달라는 전화가 왔다. 내일 아침에 보내려고 생각했는데 괜히 마음이 바빠졌다. 임 수석이 오고 나 원장도 오는데 가족행사를 미루려고 연락을 했는데 딸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다. 70이 從心이라 했는데 요즘은 수명이 늘어 80을 從心이라고 옮겨야겠다. 명상센터 멤버 중 글을 쓰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그도 연말이 되니 마무리를 하느라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에 묻혀 산다. 한 멤버의 조카가 혈액암으로 투병하고 있는데 기운이 좋은 곳이라고 자주 거기서 지낸다. 그녀가 온다면 모두 양보한다. 나도 하반기는 그곳에서 지내면서 집필을 마무리하려 작정했으나 계획이 틀어졌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작업하는데 새어나간 마음이 여간해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렇게 살아지는 대로 살아야지. 붓다는 술을 절대 금했는데 마음공부가 술 때문에 한순간에 허사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4.동반시

10월의 마지막 밤이 멀지 않다. 가을이 짧은 이유는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옛사랑일 수 있고 아직 이루지 못한 염원 탓일 수도 있다. 수명이 길어졌다 해도 길어야 15년이다. 여명을 어떻게 살아갈 지는 온전히 자신에 달렸다. 건강한 몸과 마음이 최우선인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래도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은 가을비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 가을비에 관한 노래를 듣고 또 듣는다. 내일에는 내일의 비가 내리니, 아는가, 나도 참석할 런지. 명상센터에 주워놓은 알밤이 가득하다고 먹으러 오라고 한다. 낙엽송으로 가득 찬 앞산을 배경으로 내리는 비에 가슴이 흠뻑 젖었던 10월의 밤이여, 다시 오려는가.

 

나태주 / 멀리서 빈다(박형채 공급)

 

어딘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2021. 10. 8. 가을비 우는 밤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