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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남산 산책에 초대합니다(詩山會 제424회 산행)

남산 산책에 초대합니다(詩山會 424회 산행)

: 2021. 12. 11.() 10 : 30

: 전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

안내자 : 김종화

 

1.시가 있는 산행

 

시간의 상자에서 꺼내어 시간의 가장 귀한 보석을 감춰둘 곳은 어디인가? / 최정례

 

지금 흐르는 이 시간은 한때 어떤 시간의 꿈이었을 거야. 지금 나는 그 흐르는 꿈에 실려가면서 엎드려 뭔가를 쓰고 있어. 곤죽이 돼가고 있어. 시간의 원천, 그 시간의 처음이 샘솟으며 꾸었던 꿈이 흐르고 있어.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달덩이가 자기 꿈을 달빛으로 살살 풀어놓는 것처럼. 시간의 꿈은 온 세상이 공평해지는 거였어. 장대하고 아름답고 폭력적인 꿈.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아픈 것들을 녹여 재우며 시간은 흐르자고 꿈꾸었어. 이 권력을 저지할 수 있는 자, 나와봐. 이 세계는 공평해야 된다는 꿈. 아무도 못 말려. 그런 꿈을 꾸었던 그때의 시간도 자신의 꿈을 돌이킬 수가 없어. 시간과 시간의 꿈은 마주 볼 수도 없어.

 

 

시공간을 넘나드는 분방한 상상력과 독특한 화법으로 개성적인 시 세계를 펼쳐온 최정례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이 출간되었다. 백석문학상을 수상한 전작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문학과지성사 2011)에서 놀라운 시적 변화를 보여준 시인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은 “산문에서 시적 기미를 성취해내는” 심도 있는 통찰력으로 “산문의 시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산문이 어떻게 시가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기획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시적 의식을 확장하고 넓혀내고자 한 사투의 결과”(조재룡, 해설)이다. 치밀하게 짜인 이야기 구조 속에서 밀도 높은 감성의 언어와 서늘한 직관으로 “무사태평처럼 보이는 일상의 안달복달이 반복된다 날아”(시인의 말)가는 삶의 실감을 포착해내는 진지한 사유와 성찰이 돋보이는 시편들이 은근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간과 기억의 조각들을 자유롭게 다루는 최정례의 산문시에는 삶의 슬픔과 고통을 아우르는 일상의 이야기가 선명하게 흐른다. “기억인지 상상인지”(「흙투성이가 되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비극적 현실의 순간들을 시인은 “도로변에 버려진 아이 신발 한짝 같은 심정”(「거처」)으로 담담하면서도 냉철한 어법으로 이야기한다.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며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존재의 서글픈」) 살다가 “언젠가는 여기서 없어질 존재”(「새의 쇠단추 눈알에」)들의 서글픔과 무력함을 어루만지며 시인은 “딴 세상과 이 세상 사이에 아무것도 없고/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는 것”(「인터뷰」)을 못내 두려워하기도 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카를로 로벨리] / 우주는 인간의 시간 속에 살지 않는다 - 시간의 탄생, 엔트로피의 증가가 곧 시간이다. 시간의 원인은 바로 ‘우리’다.

 

나는 아직 시간을 모르고 어떤 개념으로 접근해야 할 지 모른다. 다만 빅뱅의 특이점에 시간이 차원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 외는 모른다. 존재가 왜 서글픈가? 인생은 아름다운 것을 아시지 않는가! 특히 ‘빅뱅의 메아리’라는 ‘우주배경복사’의 이미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도봉별곡

 

2.산행기

제423회 詩山會 ‘양재천과 우이천으로 모십니다.’ 산행기 / 도봉 김정남

때 : 2021. 11. 28.(일) 10 : 30

: 전철 4호선 선바위역 4번 출구

참석자 : 9명 (정남, 종화, 진오, 기인, 윤환, 광일, 황표 및 집결시 삼모, 뒤풀이 때 문형)

안내자 : 남기인

산행코스 : 선바위역-양재천-양재시민의 숲-여의천-청계산 원터골-뒤풀이 장소-집

뒤풀이 : 석운가든(청계산역)생 우렁쌈밥 정식'에 소·맥주, 막걸리 <청계산 원터골 입구, (02) 579-3314>

 

 

요즘은 전철역에서 만나므로 늦는 산우가 거의 없다. 날을 맑고 푸르다. 11월의 마지막 가을날씨로 보인다. 양재천과 우이천에는 잉어떼가 사람들과 친해졌음을 수면에서 입을 벌리는 것으로 반갑게 표현한다.

 

양재천을 따라가니 관악산과 청계산이 보인다. 오랜만이니 산우들 못지않게 반갑다. 산은 항상 말없이 무겁다. 인간도 뒷담화 없이 살면 좋은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나는 늘 책을 쓸 준비를 하느라 남에게 신경을 쓸 이유도 없고 시간도 없다. 그 시간이면 글 한 줄 더 쓰거나 잠시라도 사유를 한다. 무시선 무처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명상을 한다는 원불교의 수행지침이다. 기독교도들은 모태신앙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도 그런 관점에서 보면 원불교 모태신앙인이지만 언어로는 쓰지 않는다.

 

조용한 길이 이어지며 상념은 깊어간다. 당구로 여명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데 목을 다친 후유증으로 손의 정중신경과 척골신경을 다쳐 당구를 칠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100대 명산의 등정은 이루고 싶다. 꿈은 크게 가져야지. 이제 앞날은 기약하지 못한다. 종국의 식도암 사망은 우리를 망연케 하기에 충분하다. 시간이 흐르거나 말거나 물리학자들의 시간에 관한 엔트로피 이론은 어디까지 이해를 해야 할까! 어려울수록 흥미를 끄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납회 때 맞춰 내려고 준비 중인 ‘시와 수상록(가칭 슈뢰딩거의 고양이)’을 준비하느라 산행기를 쓰는 것을 잊고 살았다. 매일 손녀를 돌보면서 어린이집에 가는 몇 시간을 도서관에서 지내므로 두어 시간을 내면 쓰는 것을 종화의 독촉을 받고서야 비로소 뒤늦게 쓴다. 왜 납회에 맞추느냐 하면 개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모두 모이는 납회에 나눠주면 한 번에 끝나니 홀가분하다.

 

이 코스는 많이 아파 체력이 최하일 때 종화가 인도하여 다닌 길이라 조금은 익숙하다. 그때만 해도 종화와 막걸리 2~3병은 너끈히 마셨으나 이제는 1병도 어렵다. 소주나 맥주로 바꿨더니 조금은 낫다. 투약의 횟수가 늘어나니 알코올과의 상승작용인지 부작용인지 견디기 어렵다.

 

석양을 바라보며 / 박호영 (박형채 산우 추천)

 

흘러간 과거가

저처럼 빛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석양이 드러누운 강물

그 강물 위에선

웃음도 빛이 나고

눈물도 빛이 난다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긴 강물과

저물어도 아름다운 석양

 

그곳에선 슬픔도 기쁨도

다만 빛이 될 뿐이다

 

오늘의 자임 기자로서 동반시를 낭송하고 시작한 뒤풀이는 식사는 맛났지만 약간의 불찰로 연회비를 아예 없애자는 의견도 나왔고, 뒤풀이는 필요하면 각자 더치페이로 알아서 마시자는 의견으로 번졌지만, 이해하고 잘 끝났다. 그때 나왔던 의견들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좋았던 晩秋, 영화에 대한 기억은 아직 생생하고 단풍이 아직 빨간 기운을 잃지 않았으니 가을날이다. 올해도 납회는 없고 대신 남은 회비로 5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주고, 희망자는 3만 원짜리 회정식을 먹자는 의견도 나왔다.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므로 많은 인원이 모이는 곳은 피하는 산우가 있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여명과 한 장의 달력을 소중히 여겨보며 한해를 잘 마무리 하자.

 

3.오르는 산

납회가 가까워오면 낮은 산으로 다녔던 10여 년 전에도 남산은 단골이었다. 이번은 다행히 좋아하는 코스여서 다행이다. 동대역에서 내리면 바로 장충공원이 다가온다. 가을에 가보면 단풍에 매료되는 곳이다. 완만하게 오르면 석호정 활터가 나온다. 남산 정상으로 바로 올라도 별 무리가 없는 산행이 된다. 전에는 충무로에서 한옥 마을을 거쳐 오르면 옛날 박정희 일당이 벌였던 作亂의 아지트였던 남산 대공분실을 지나치게 된다. 회고가 없을 수 없었다. 이번에 책을 내서 동창들에게 돌린 박강석은 나 원장, 김명환과 더불어 모두 골프 멤버쉽이 있던 터라 네 명이 자주 어울렸다. 그때 싱글을 기록했던 기억이 가물거린다. 그가 낸 책의 4부에서 한양대 학생회장 시절의 피해 다니며 겪었던 못 다한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나는 깊숙이 관여를 하지 않았지만 소위 반체제 운동에 대한 당위성의 토론은 자주 했다. 청량리경찰서에 끌려가서 받은 고초는 선두에 서서 반독재를 외치다 하숙집에서 기관원에게 끌려가던 선배와 후배들에 비하면 이야기 꺼리가 되지 않으니 훗날을 기약하고 다음으로 미룬다. 알 것은 알고 할 말도 많지만 이 지면에서 할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오죽하면 진득한 성격에 맞지 않게 하숙집을 다섯 번을 옮겨야 했을까. 그때의 환경은 박정희에 대한 반체제 운동이었고, 80년대에 들어와 소위 주사파가 생겨났다지만 주사파와 더불어 PD계열과 NL계열에 대한 명칭조차 공작에 능한 정보부와 보안사의 농간에 의한 작명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빨갱이라 부르는 사람들에 대하여는 답답한 마음이 실소로 이어짐을 막을 수 없다. 사정을 정확히 파악할 노력이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래서 큰딸이 60대 이상이 되면 투표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농담을 이해한다. 광주인으로서 5.18을 당하고도 그 일당의 후보에게 표를 주겠다는 것은 무뇌아로 지칭하면 적당한 표현이 되겠다. 반대쪽 후보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기 싫으면 친한 무뇌아가 무작정 한 말을 믿지 말고 차라리 기권을 하라.

 

4.동반시

“‘멀리 구하지 말고 나를 닦으라.’ 한 것도 나요, ‘내 마음을 그 땅에 보내라한 것도 나요, ‘내 마음의 밝고 밝음을 돌아보라한 것도 나요, ‘내 몸의 화생한 것을 헤아리라.’ 한 것도 나요, ‘말하고자 하나 넓어서 말하기 어렵다.’고 한 것도 나요, ‘이치가 주고받는데 아득하다.’ 한 것도 나요, ‘내가 나를 위하는 것이요, 다른 것이 아니다.’ 한 것도 나요, ‘나의 믿음이 한결 같은가 헤아리라.’ 한 것도 나이니, 밖에 어찌 다른 한울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한울 사람이라하신 것이니라.” -최시형 수도법

 

12월의 시 / 김경미(박형채 공급)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은 버리자

 

멋대로 하지 말았어야 했던 일과

뜻대로 고집했어야 했던 일 사이를

오가는 후회도 잊자

그 반대도 잊지...

빠르게 걸었어도

느리게 터벅였어도

다 괜찮은 보폭이었다고

흐르는 시간은 언제나 옳은 만큼만 가고 왔다고 믿자

 

어떤 간이역도 다 옳았다고 믿자

 

2021. 12. 11.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