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신에 대한 인지가 다르게 변해감에 대한 소회가 없을 수 없다. 기독교도들이 즐겨 사용하는 모태신앙은 고향인 영광에서 탄생한 원불교는 특히 읍내인 들은 거의 모두가 원불교도였다 기독교는 발 붙일 틈이 없었다. 원불교도인 부모를 따라 나도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불교는 자연스럽게 내게 들어왔고 당연하게 받아들었다. 부모의 곁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불교학생회 근처를 서성거리다 겪은 사건은 그때는 사회 ㆍ 문화 ㆍ 정치적 혼란의 시대였지만 나만 겪는 것은 아니었고 그런 것에 대한 것은 전혀 보고 들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신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또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신은 우리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는 신비적 존재가 아니었다.
이제는 신의 존재는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발해왔다. 그게 자신들, 곧 직업종교인 또는 경제적 종교인들 입장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헉슬리는 불가지론이라고 이름 지어 증명불가능한 초원적, 신비적 현상인 신에 관하여는 더불어 우주의 시작과 끝. 영혼의 존재, 인과응보의 귀결 등은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로 보내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많이 했다. 14무기를 내세우며 수행을 게을리하지 마라던 붓다, 천당과 지옥을 질문한 제자에게 세상일도 다 모르는데 하늘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답변한 공자, 관념론보다 경험론을 중시하였으나 신앙은 선택의 문제라 생각했던 칸트를 포함한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엘리트들이 한 켠으로 밀어두었던 것을 다시 창조설을 치사하게 교묘히 위장한 '지적설계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개탄의 도를 넘어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존재의 유무를 논쟁할 때 입증책임은 엄연히 '있음'을 주장하는 측에 있다는 논리실증주의가 있다. 이것을 논리학과 과학류를 전공하는 학자들에게는 바이블 같은 무기다. 고대그리스는 철학들이 과학자였고 철학자들이 과학자였다.
때때로 신화는 하나의 신을 두고 여러 형태의 신을 만들어내므로 신화는 이성적 판단으로 믿을 수 없게 된다. 모든 민족은 신화를 창조할 때 자신들의 신이 최고의 신임을 주장하다. 신은 가공적 존재이므로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왔다. 그러므로 신화를 보는 이성적 감각을 가진 사람 또한 같은 맥락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유일신교의 신은 견젠를 많이 받는다. 특히 야훼는 여러 가지의 신화로 어느 것이 그들이 받드는 신인지 혼돈의 극치를 가져온다. 그들의 지도자 아부라함, 모세, 예수가 중세까지 '세 명의 사기꾼'으로 불리는 책 ㅡ스피노자의 정신 출판 ㅡ이 나올 정도다. 그들의 신이 유독 폭력적임에 대한 반감으로 짐작한다.
이스라엘의 신의 역사를 보면 매우 혼란스럽다. 아마 신학을 제대로 공부한 학자라면 쉽게 느낄것인데 이것이 신도들에게 정확하게 전달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몹시 궁금해지는 일요일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아침이다. ㅡㅡㅡ수정 보완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