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정신적 헌법 같았던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다시 읽어본다. 주마등처럼 돌아가는 기억을 살려보면, 서울 유학생활에서 시작하여 박정희의 끔찍한 10월 유신독재, 도피처럼 시작한 산사의 고시공부, 어머님과 신의 직장 생활, 518광주민주항쟁에 반발하여, 직장을 뛰쳐나가는 무모한 자립, 남대문시장 나까마 생활, 예비군훈련 중 참호 속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알게 된 동료에게 배운 건축업으로 시작하여 토건업이라는 종합건설을 설립하여 활짝 피었으나, 혹독한 IMF외환위기를 겪고 겨우 재기하자 가족에게 배신당한 사건 등을 통하여 이어온, 유난히 치열한 삶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았던 사상과 논리는 이 책의 독파를 전환점으로 본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균형은 날개처럼 좌우의 날개가 같은 힘으로 기능을 다 할 때의 상태이다. 균형은 자유의 논리와 공정에 맞는 진리의 법칙이고, 인간 사회의 가장 건전한 상태이다. 건전한 상태 중의 하나로 균형과 중도를 꼽을 수 있는데 중도란 붓다의 중도, 공자의 중용, 예수의 왼뺨과 오른뺨,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장자의 나비의 꿈(胡蝶夢) 등은 균형의 은유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시간과 공간을 의미하는 시방삼세十方三世, 모든 것이 만나는 시간과 공간, 곧 시공의 한 특이점에서 반드시 만나는 갈등이 있을 수 있으며, 인내가 갈등을 극복할 수도 있지만 버림으로써 명상센터에서 만나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환유적 중도의 상징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기도 한다. 리영희, 나의 젊은 날을 지배했던 그와 전환시대의 논리를 잊고 살았다. 종심從心의 70에서 다시 만나는 그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60에 만난 토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밋밋해져서 만나지는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