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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북한산 둘레길을 돕니다(詩山會 제438회 산행)

북한산 둘레길을 돕니다(詩山會 제438회 산행)
코스 : 백련산, 북한산자락길과 서울둘레길(8코스) 일부분 걷기
월일 : 2022년 7월 9일(토)
집결 : 지하철 3, 6호선 홍제역 4번 출구 10시 30분
산행코스 : 백련산둘레길, 북한산자락길과 서울둘레길 8코스의 일부분
뒤풀이는 불광역 근처의 은하식당(좋은 곳 추천 바랍니다)

 

1.시가 있는 산행

 

호명되지 않은 기쁨 / 정다연

 

부드러운 어둠 속에서 나는 호명되지 않은 채 길을 걸어 아무도 지금 내가 어떤 모자를 쓰고 있는지, 내 머릿속에 어떤 구름이 자리 잡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이름인지 알 수 없지 아무도 그것을 궁금해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서로를 멈춰 세우지 않고도 그대로 스쳐 지나갈 수 있어 발자국 무늬를 가만히 바라봐줄 수 있어 섣불리 부를 수 없다는 거, 뒷모습을 함부로 명명할 수 없다는 거, 버벅거리고, 실패한다는 거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조용히 어둠 속으로 돌아가는 밤이야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를 봐 무한히 확장된 설원, 가능성, 이런 말은 식상해 쓰이면서 가능성은 실현되고, 문은 끊임없이 열리고, 확장되지 나는 다만 백지를 바라봐 그게 원래 백지였던 것처럼 백지가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지 않은 것처럼 내가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나는 세계의 호출을 전부 멈추고 이름 없이 분류 되지 않은 채 여기, 흘러가는 구름으로 머물고 있어 서류 더미에 새장에 누군가의 서랍 속에 가두어놓을 수 없는 바람으로 있어 지금 너의 두 뺨을 가볍게 스치며

 

-묘하게 눈에 닿는 시다. 요즘의 복사시를 앓는 내 눈을 닮은 듯, 이그러졌다가 겹쳐보이다가 정상으로 돌아와서는 구름처럼 자주 눈물을 보인다. 복사‘시’의 끝 글자가 동음이의어다. 기시감도 느껴진다. 가만히 반성해보니 내가 자주 썼던 산문시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젊은 시인 같은데 요즘도 이런 시를 가르치나보다. 현대의 시 작법에서 수사법은 80가지를 넘는다. 시 쓰기를 처음 배울 때, 강남을 가려면 한강을 당연히 건너야 하는 것처럼 당연히 배워서 건너야 할 강이다.

이 수사법을 내 손처럼 익히지 않고서, 시를 쓴다는 것은 조금은 황당하다. 거기에 시인의 감성은 오죽 현란함을 넘어 묘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시가 어려울 수밖에. 

 

 

다섯 번째 시집을 내는 것을 또 미룬다. 핑계야 많지. 전에는 자료 수집과 그것을 체화하는 것이 어렵다는 핑계를 댔지만, 이번에는 집중이 되지 않아 구슬을 꿰지 못하고 있어 집중할 곳을 찾느라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혜덕암은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쓰므로 시간의 제약을 극복하지 못한다. 이제는 온전하게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 그러나 손녀를 키워줘야 하는 약속을 지켜야 하므로 보람과 더불어 결핍을 느끼며 산다. 시와 손녀의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이토록 힘들 줄 알았다면 애초 약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고약하게도 미필적 고의로 저지른 둘째 손녀가 태어날 날이 열흘 남았다. ‘두 손녀와 시인’이라는 시집을 내야 마음이 풀릴까, 담담한 답답함이 엄습하는 무덥고 불쾌한 여름밤의 중간에 서있다.

<도봉별곡>

 

2.산행기

詩山會 437회 도봉산(문사동) 산행기<2022.06.26.(일)> / 김정남

 

◈ 산행일/집결장소 : 2022년 6월 26일(일) / 1, 7호선 도봉산역 1번출구 (10시 30분)

 

◈ 참석자 : 7명 (세환, 정남, 종화, 재홍, 경식, 삼환, 용복)

◈ 산행코스 : 도봉산역-북한산국립공원입구-능원사-도봉사-도봉옛길입구-금강암-구봉사-대덕교-삼거리교-문사동-<원대복귀>-북한산국립공원 도봉분소-광륜사-북한산생태탐방원-뒤풀이장소-도봉산역-집

◈ 동반시 :  "비로소 꽃" / 박무웅 (박형채 산우 추천)

 

◈ 뒤풀이 : 참돔, 농어회에 소·맥주 및 막걸리 / "도봉산사랑회" <도봉구 도봉동 281-5. (02) 3493-7779>

 

산행일 어둑새벽이다. 어둠과 밝음이 만나는 순간, 같은 무게로 악수를 하는 춘분을 지나고 추분을 향해 나아갈 때 만나는 하지에는 밝음이 어둠을 가장 큰 격차의 무게를 가진다. 그 하지가 4일이 지난날의 아침이다. 오늘의 길잡이 역할은 내가 맡았기 때문에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느꼈지만 점심 때 즐길 먹을거리가 더 중요했다. 항상 들르던 마트에서 골뱅이를 사고 홍어를 파는 곳에 갔더니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뒤풀이 때 맛나게 먹을 것을 홀로 기약하고 도봉산행 전철을 탔다. 일요일 아침은 역시 한가하다. 정장을 입은 사람은 교회 아니면 결혼식 등 애경사에 참석하는 사람으로 보면 거의 맞을 것이다. 물론 산행기를 쓰게 됐으니 관심을 가졌을 뿐, 본래 가족들 사이에서는 ‘남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무심한 사람‘으로 불린다. 개인적 입장에서 남의 일에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참으로 한가해서 행복한 사람‘으로 본다.

 

예정대로 도봉산역에서 만나 목적지를 정하는데 오늘의 매니저인 나에게 일임했으므로 참석자들의 동의를 얻어 도봉산의 주 계곡인 도봉계곡이 거의 끝나는 점에서 세종 때 정인지 들이 훈민정음으로 지은 최초의 노래(악장) '용비어천가'와 이름이 닮은 용어천계곡과 마주치고 오른쪽으로 약 10분 올라가면 목적지인 눈썹바위가 나온다. 그곳은 100명은 거뜬하게 앉을 만한 공간이 나오고 가운데로 계곡이 흐른다. 그곳에는 산객들이 바위로 입식 식탁을 만들었는데 8인용이다. 수 년 전에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때 계곡 초입에서 약 10분을 오르면, 전날 내린 비로 물이 불어 약사여래를 주불로 모신 구봉사 앞 폭포가 볼 만했다.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리는 폭포는 묘한 카타르시스(정화: 淨化)를 느끼게 한다. 그 산행 때는 정한 산우가 참석해서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무슨 수식어가 더 필요하랴.

 

중간에 두 번 쉬고 눈썹바위를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문사동(聞?, 問師洞)계곡을 지나면서 모두 쉬자는데 동의했으나, 쉬자는 곳이 목적지가 되고 말았다. 날은 흐렸지만 습도가 많아 후덥지근한 느낌을 갖게 하는 온도에 근접했다. 가을철에 비해 중간 기착지가 되는 곳이 여름이라 그런지 산객이 갑자기 줄었다. 이곳은 물줄기 건너 바위가 사람의 키 1.5배쯤 되는 지점까지 움푹 파인 노천 동굴 비슷한 쉼터가 있는데 이곳이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하기 매우 유용한 곳이다.

 

바위에 새긴 문사동의 유래에 관하여 각자의 판단이 달랐는데, 극 초서로 써서 알아보기 힘들어서 물을 문(問) 혹은 들을 문(聞) 또는 두 개의 중의적 의미를 가진 글자다라는 심심풀이적 해명은 결론이 나지 않아 집에 와서 인터넷 웹을 통해 찾아보니 논란이 많았던 그 글자는 왕희지의 초서 사전을 찾아보니 왕희지의 물을 ‘문門’이 맞았다. 여러 초서가 있었으니 초서도 쓰는 사람에 따라 모두 달랐다. 그런 점에서 초서는 창의력이 들어간 글씨임을 알 수 있었다.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가지고 온 음식과 술을 다 먹고 마신 시간이 지나자 뒤풀이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췄으나 역시 내려가서 결정하자는 쪽이 우세했다. 쉼 없이 내려가 낙지를 먹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우세하여 별 이견 없이 회를 먹기로 했다. 횟집에 들어가 조용하고 시원한 별실에서 회 중 가장 맛난 도미와 농어 두 가지를 주문했는데 회의 명성에 비해 가격은 착했다. 깜박 잊어서 낭송하지 못한 동반시를 낭송하자 본품이 들어와서, 자세히 보니 역시 색깔도 훌륭해 탁월한 선택에 따른 즐거움이 배가됐다.

 

※ 동반시

 

"비로소 꽃" / 박무웅

 

그 꽃이 보이지 않는다

봉황천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흰 불꽃

나는 그 주인 없는 땅을 차지한

흰 꽃무리의 지주(地主)가 좋았다

 

눈길 한번 주지 않아도

마음껏 꽃 세상을 만들어내던 개망초꽃

있어도 보이지 않고 보여도 다가오지 않던

그 꽃, 개망초꽃

땅을 가리지 않는 그

백의(白衣)의 흔들림이 좋았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멈춤’을 생각하니

내가 가진 마음속 땅을 모두 내려놓으니

거기 시간도 없고 경계도 없는 곳에 비로소

보이는 그 꽃

내 안을 밝히는 그 꽃

보여야 꽃이라지만

보아야 꽃이다

 

和談이 오가고 취흥이 도도했지만 시간을 붙잡아 둘 수는 없는 일, 횟집을 뒤로 하고 내려오다가 이 총장의 호기가 발동해 팥빙수까지 동원하여 산행과 만남의 즐거움은 절정에 달했다. 모두에게 감사를 전하는 순간은 헤어지는 시간과 맞닿아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한 물리학자는 수없이 많으나 과거와 현재, 미래에서 시간의 실체는 찾은 학자는 아직 없다. 이론으로는 가상의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설명하고 있으나 엔트로피 또한 가상의 개념이므로 그것의 실체를 찾아야 하는데 실험이나 관측이 불가능하므로 아마 영원히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리이론에서 정설로 결정하는 데에는 관측과 실험, 반증 가능이라는 세 가지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이른바 ‘시간의 수수께끼’는 답이 어딘 가에 꼭꼭 숨어서 그 뿌리인 빅뱅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찾을까? 그러나 빅뱅의 순간까지 가는 것도 불가능하므로 영원히 숙제로 남을 것이다. 시간은 참으로 아득하다, 찾을 수 없는 내 마음처럼.

 

2022. 6. 30. 道峯 金定南 올림

 

3.오르는 산

북한산이다. 도봉산과 북한산을 밥 먹듯이 자주 들락거리던 나의 50대는 가고 없다. 물리학자들은 황당하게도 엔트로피가 흐트러져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엔트로피가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상정하고, 미래 여행은 가능하다는 건지 모른다. 그래선지 타임머쉰은 항상 미래를 지향하는 성향이 있다. 백련산을 거론해서 혹시 백련사를 잘못 썼는지 궁금해서 지도를 놓고 검색했더니 내가 아는 수유동의 백련사가 아니고 스위스그랜드호텔 뒷산이 백련산이고 기슭에 자리 잡은 백련사도 찾을 수 있다. 부디 잘 다녀오시라.

 

4.동반시

시를 쓰는 입장에서 서러움이란 시어는 일부러 피하며 다른 시어를 선택하곤 한다. 시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이 추천하여 맨 먼저 산 책이  시어사전이며, 아직도 국어사전, 古語사전과 더불어 자주 펼쳐보는 책이다. 70이 넘어 세상사를 반추해보니 그 선택에 잘못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사는 결정론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고 인과론에 무게를 두는 입장이다. 물론 인과적 결정론을 들고 나오면 그에 대해 반론을 펼치고 싶은 마음조차 생기지 않음은 조금씩 세상사에 초월하며 살고자 하는 편에 서있음이다. 참한 동반시를 잊지 않고 챙겨주는 종화와 형채에게 감사올린다.

 

바다 / 이성복(박형채 배급)

 

서러움이 내게 말을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갔어요....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2022. 7. 6.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이 모인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