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440회 산행)
때 : 2022. 8. 13.(토) 10 : 30
곳 : 신분당선 광교역(종점)
길라잡이 : 정일정
1.시가 있는 산행
달을 보라는데 왜 손가락을 보는 거야 / 전수우
동네 카페에서 김해숙 선생님을 보았어 아니 박혜숙 말고 왜 있잖아 국민 어머니, 뭐 국민 어머니는 김혜자라고 아니,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야 그건 전원일기 김혜자고……… 우리 동네에서 핫한 카페, 가끔 연예인도 오곤 해서 TV에 자주 나오는 곳이야 그래 줄 서고 있으니까 한 번씩 쳐다보곤 하는 곳 말야 교양 있게 따아를 들고 돌아서는데 나도 모르게 인사를 해버렸지 뭐야 처음엔 학교 다닐 때 친구 엄마인 줄 알았어 예쁘지는 않지만 연기를 잘해서 눈물 한 바가지 쏟게 하는 배우지 아니 그건 박혜숙이라니까 왕룽일가 동네 허름한 술집 아줌마고………… 왜 영화 도둑들에서 중국 아저씨와 커플인 배우 있잖아 씹던 껌이라고 나왔지 아마 뭐? 그건 이혜숙이라고? 그건 하나뿐인 내 편에서 악독한 시어머니로 나온 배우고 그래 병에 걸린 주인공 뺨따귀를 날리는 여자 뭐 그건 서권순이라고? 아니 그 여자는 사랑과 전쟁에서 국민 시어머니 단골 배우지 목소리가 카랑카랑해서 한 마디만 해도 오금 저리게 만드는 목소리, 그 드라마에 최수종도 나왔잖아 왕건으로 나온 최수종, 뭐 왕건은 송일국이라고? 송일국은 김을동 아들이고 삼둥이 아빠의 모친 김을동 몰라? 장군의 손녀 김을동 아줌마 가끔 드라마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있잖아 카리스마는 김수미라고? 그건 욕쟁이 전문이고……… 김해숙 배우님이 지하보도로 들어가는데 딱 거기서 놓쳐버렸네 국민 어머니는 국민을 위해 대본 연습을 하러 가셨겠지 어쩜 우리 동네 시장에서 촬영이 있으려나 혹시 몰래카메라인가 혹시 아는 척하면 안 되는데 초를 치는 건가 두리번거렸어…… 카페는 이미 브레이크 타임이라 문을 닫았고 더 이상 김해숙 선생님은 볼 수가 없고, 어쩜 이혜숙일지도 몰라, 박혜숙일지도 왕건은 삼둥이 아빠일지도………… 모를까? 김해숙 선생님 사인도 없고
/당선소감/
말숨과 글숨으로 숨 쉬는 사람이고파 ・・・・・・
나는 디베이트 하는 사람이다. 훅을 날릴 때 쓰는 말이 있다. “저는 잘못 걸려온 전화를 30분 받는 사람입니다."
상대는 다른 곳을 보다 내게 시선을 고정한다. 말을 수단으로 살고, 말을 묵혀서 글을 쓰고, 그것으로 숨을 쉬는 사람이다.
가끔 지인들과 앉아 있을 때 조용하면 불안하다. 상대를 살핀다. 그가 올린 SNS를 떠올린다. 요즘 그가 만들고 있는 손뜨개로 화두를 던진다.
고등학교 때 학교 옥상에 올라가 시집을 읽었다. 매점을 드나들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숨어있었다. 용돈을 주지 않던 엄마를 원망했다. 친구들이 함께 먹자고 했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그들은 뒤에서 이런 말을 했단다.
“쟤는 시인이 될 아이야. 우리를 왕따시키고 있어."
선동호 부근에서 나를 시인으로 부르던 친구들, 보고 싶다. 시인을 꿈꾸는 연희야 기다릴게. 더불어 동시를 쓰는 수완도.
윤동주, 김소월을 읽다가 대학에서 박노해, 김지하를 읽으니 혼란스러웠다. 시가 삶을 대신하는 시절이 싫어서 막걸리에 순댓국을 먹었던가? 광희, 명숙, 명선, 지혜~ 기억하지? 진상의 시간.
강형철 샘, 전기철 샘 술 사달라고 졸라대던 제가 귀찮으셨죠? 그 시절 제 시에 '탁월함, 훌륭함’이란 단어를 적어주시던 엄경희 샘음, 아시죠?
약수동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 정남, 지영 그리고 이진 샘. 기다리는 시간이 설레어요.
-전수우
*서정시학이라는 시문학지에 현상응모하여 당선한 문우의 시와 당선소감이다. 3편의 시가 더 있지만 우리들끼리는 통하는 시로서 여러분에게 소개하기는 역시 부적합하다. 우리는 이런 시 세계에서 논다. 나오고 싶지도 않다.
-도봉별곡
2.산행기
매봉산 및 남산둘레길(시산회 제439회 산행) 산행기 / 고갑무
1.집결일시 및 장소 : 2022년 7월24일 (일) 10:30분 금호역 3번 출구
2.산행장소 : 매봉산 및 남산둘레길
3.참석자 : 13명(세환, 삼모, 종화, 진오, 창수, 재홍, 윤환, 경식, 재웅, 작, 문형, 양기, 갑무)
4.산행코스 : 금호역-매봉산치유숲길-팔각정-서울숲남산길-북측순환로-명동역-전철-옥수역-뒤풀이식당
5.뒤풀이 : '해물찜'에 소·맥주 / '해물찜과 칼국수' <옥수역 4번 출구 근처 (02) 2292-3335>→ 재웅, 문형 산우 협찬
6. 동반시 : “7월(七月”/안재동 (김종화 산우 추천)
7월 / 안재동
넓은 들판에
태양열보다 더 세차고 뜨거운
농부들의 숨결이 끓는다
농부들의 땀을 먹는 곡식
알알이 야물게 자라
가을걷이 때면
황금빛으로 찰랑거리며
세상의 배를 채울 것이다
그런 기쁨 잉태되는 칠월
우리네 가슴속 응어리진
미움, 슬픔, 갈등 같은 것일랑
느티나무 가지에
빨래처럼 몽땅 내걸고
얄밉도록 화사하고 싱싱한
배롱나무 꽃향기 연정을
그대에게 바치고 싶다
때론 호젓한 산길을 혼자 걷거나 고즈넉한 산사에서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고요한 명상에 빠져들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생각은 온 데 간 데 없고 오히려 시장통 상인의 악다구니소리에서 사람 사는 모습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조금은 시끌벅적한 주변을 탐문하듯이 기웃거리는 내 모습을 보곤 “아 내가 나이를 쪼끔 먹었나보다” 하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은 시끄러운 모임중의 하나인 시산회 길라잡이가 돼서 사람 사는 모임에 직접 참여하고자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날도 엄청 더운데 아침부터 시끌벅적한 게 역시 사람이 모이니 말이 무지 많아지는 것을 보게 된다.
당초 사단은 내가 제공하긴 했다. 만나는 장소를 금호역 4번 출구로 통보했는데 약속장소에 거의 시간을 맞춰 도착하니까 4번 출구가 폐쇄가 됐는데 어떻게 길라잡이가 사전에 이런 것도 파악도안하고 길잡일 거저먹으려 하느냐 등등 몇몇 산우가 가슴을 후벼 파는 말 펀치로 맹공하니 산행기를 쓰는 지금까지도 가슴이 아리아리하다.
내 지들은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볼껴!!
사실 오늘 산행코스는 수락산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동서남북외곽으로 많이 떨어져있는 산행지는 친구들의 참석률이 뚝 떨어지는 경향 때문에 집행부의 고충이 있었기에 가능한 많은 친구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매봉산-남산둘레길로 서둘러 변경을 하였던 것이다.
이 코스는 수산회 모임에서도 한번 다녀왔던 곳으로 거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둘레길 수준이라, 그래도 삼복더위에도 불구하고 13명이나 되는 산우들이 참석하여 예의 그 시끌벅적한 분위기로 사람 사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앞으로 산행지는 멀리 갈 생각을 하지 마시고 가까운 둘레길을 많은 친구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자알 선정하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산행길이 그럴 듯해도 먹는 즐거움이 빠진다면 이 또한 김빠진 맥주맛이니 서둘러 이 총장이 한번 시식한 적이 있다는 해물탕 전문 음식점엘 예약전화를 하니 자기들은 2시 반부터 4시까지 break time이라네....
이런걸 보면 분명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증표인데 왜 세상은 갈수록 이리 살기가 팍팍하고 힘들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누구 아는 사람 담에 만나거든 좀 알려 주소.
그래서 플랜 B로 생각한 옥수역근방의 해물탕 집으로 예약을 하고 시간을 잘 맞춰 도착해보니 벌써 여러 명의 손님이 대기를 하고 있어 이것마저 시간 약속을 잘못해서 친구들 기다리게 했다가는 내가 친구들 등쌀에 살아남기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옥수해물탕이 친구들과 몇 번 먹어보기도 했지만 일단은 양이 푸짐하고 얼큰한 맛도 좋고 해서 친구들과 어울러 술 한잔하기는 딱이라! 다 먹고 난 뒤에 디저트 겸 입가심으로 새알동지팥죽을 반 그릇씩 먹고 나면 산행 후 뒤풀이로 더할 나위 없제. 오늘은 산행에 참가한 재웅이 친구와 문형이 친구가 개인택시 사장님들이 되신 기념으로 찬조금을 쏜 덕분에 기금이 풍부해진 경식이 총장이 친구들에게 팥빙수도 접대하고 암튼 시작할 때 허벌나게 말이 많더니만 끝날 때는 등 따습고 배부르게 잘들 먹었으니 친구들 다음 산행 때도 많이들 참가해서 이런 세상사는 재미들을 같이 느껴 보세들!
글고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감사의 뜻을 재웅, 문형(무순이네) 친구에게 전하고 두 친구 모두 건강하고 무탈하게 운행도 잘 하시고 용돈도 두둑하게 벌어 산행 때 때때로 친구들 입도 즐겁해 해 주시길 예수님, 부처님, 마호메드 이하 산신령님까지 세상의 모든 신들께 축원드리며 산행기를 마칩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또 봐유^^!
2022. 7. 31. 길라잡이 고갑무 올림
3.산행지
광교산행을 한다. 용감하게 투병을 하는 정한은 빠지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내 기억은 광교산을 정한의 산이라고 손을 들고 밑줄을 친다. 9월의 수학여행에 참가하는 것을 보니 조금 마음이 녹는다. 선착순이라고 썼다는데 아무리 찾아도 아직 내게는 오리무중이다. 입추가 지났으니 조금씩 가을의 추가 무거워질 것이다. 적합한 기후인 가을이 오면 우선 반갑지만, 한편 쓸쓸해지거나 여름에 놀았던 사람은 가을에는 허황해진다. 물리학의 분야인 시간의 수수께끼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한다. 엔트로피가 흐트러져서 시간은 반대로 흐르지 않는다고 한다. 본래 굉장히 큰 명제이므로 작은 지면으로는 조금이라도 설명하기 어렵다.
4.동반시
갈대는 절대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오면 일제히 바람이 지나가도록 잠시 몸을 젖혀지나갈 길을 열어줄 뿐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갈대가 흔들리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승원 『시방 여그가 그 꽃자리여』
한승원은 좋은 작가다. 그보다 딸인 작가 ‘한강’이 2016년 맨부커상 수상자로서 한동안 사람들의 관심이 되었다. 순하고 따뜻한 기품을 느끼게 하는 점에서 좋다.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선불교의 중흥조 육조 혜능 스님의 ‘풍번심동風幡心動’이라는 화두가 생각난다. 똑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약간은 비슷한 비유일 수 있다. 육조(六祖) 혜능(慧能) 선사는 시기와 박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15년간이나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이제 슬슬 기회가 익었으리라 여기고 행자(行者)의 모습 그대로 고향인 광주(廣州)로 가보니, 법성사(法性寺)에서는 열반경(涅槃經)의 강의가 행하여지고 있고, 문전에는 높다랗게 깃발(幡: 불교에서 부처와 보살의 위덕을 나타내고 도량을 장엄・공양하기 위해 기둥이나 벽에 내거는 깃발)이 걸려 있어, 그 깃발(幡)이 바람에 펄럭이며 팔락팔락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두 스님이 “저것은 깃발이 움직이고 있다.”, “아니다, 틀렸다. 바람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라고 논쟁을 시작하여, 그 논쟁이 언제 끝이 날지 알 수도 없었다. 혜능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참견을 하였다.
“그것은 바람(風)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幡)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인자(仁者: 당신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생각지도 않은 말에 두 스님은 놀라서, 일의 경과를 인종(印宗) 법사에게 고했다. 인종(印宗)은, 이 사람은 예사 사람이 아니라고 보고, 자기 방으로 맞이하여 보니 혜능(惠能)이었다. 서로 그 해후를 기뻐하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 혜능은 육조(六祖)로 세상을 나올 수가 있었다.
그런데 두 스님이 ‘풍동(風動)’, ‘번동(幡動)’이라고 싸운 것은, 어디까지나 바람(風)이나 깃발(幡)을 자기와 떨어져 대립하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고, 이에 대해 육조(六祖)가 ‘심동(心動)’이라고 말한 것은, 그러한 대립을 초월한 불이일체(不二一體)의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즉 두 스님이 바람이냐 깃발이냐에 잡혔기 때문에, 그 집착을 씻어내 주기 위해 양자(兩者)의 상대적 개념을 끊어 잘라버렸던 것이다.
흔히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시켜주는 것에 명상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한다. 명상은 불교 전유어가 아님이 분명하므로 누구나 실행에 옮길 수 있다. 한 번 해보시라. 수년 전에 1년의 3분의 1쯤은 명상센터에서 지냈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심심하면 공부하고 더 심심하면 산에 돌아다니다가 새벽에 일어나 적막하고 적적하면 하릴없이 동그라미를 보며 그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때 뇌파는 시를 쓰기에 적합한 베타 상태로 가지 않고 알파와 세타, SMR파 상태를 배회한다. 굳이 베타 상태로 가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여간해서 미운 감정이 생기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는다. 조금은 신기한 경험을 했다.
깨끗한 영혼 / 이성선(박형채 배급)
영혼이 깨끗한 사람은
눈동자가 따뜻하다.
늦은 별이 혼자 풀밭에 자듯
그의 발은 외롭지만
가슴은 보석으로
세상을 찬란히 껴안는다.
저녁엔 아득히 말씀에 젖고
새벽엔 동터오는 언덕에
다시 서성이는 나무.
때로 무너지는 허공 앞에서
번뇌는 절망보다 깊지만
목소리는 숲속에
천둥처럼 맑다.
찾으면 담 밑에 작은 꽃으로
곁에서 겸허하게 웃어 주는
눈동자가 따뜻한 사람은
가장 단순한 사랑으로 깨어 있다.
2022. 8. 12.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이 모인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