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창작 교실의 철학 강의 노트

칸트가 위대한 이유. 신을 배제하고 인간의 네 가지 영역을 말하다

제 29강 장래의 형이상학의 성립 가능성 2

신을 배제하고 인간의 네 가지 영역을 말하다

[출처] 칸트가 위대한 이유|작성자 

1. 과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경험을 통한 데이터로 판단하는 것. 도덕률(가치)은 그것이 불가능하니 신을 요청한다.

출처 입력

과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경험을 통한 데이터가 없으며 어떠한 것도 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칸트가 프란시스 베이컨을 가장 위대한 자연철학자로 말한 이유다. 그가 관찰과 실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즉 경험을 통한 데이터로 참과 거짓을 판명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알면 까무러칠 일이긴 하다. 우리의 감각기관으로부터 만들어진 데이터를 신뢰하는 것이다. 즉 ‘오성’이 하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과학적 인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는 잠정적으로만 참이다. 언제든 그것을 부정하는 데이터가 생기면 반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엔 한계가 있다. 특히 ‘도덕’의 측면에서. ‘착한 행동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경험 세계의 데이터와 무관하다. 착한 일을 해야 사회 질서가 안정되고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논리는 궁극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 이는 절대적인 명령에 경험적인 이유를 붙인 것일 뿐이다. 경험이 달라지만 명령이 성립하지 않게 된다. 결국 이 근거를 따져 물으면 칸트는 그것이 ‘신, 영혼불멸, 자유의지’등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있다고 가정하는 것뿐이다. 이념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를 다루는 게 <실천이성비판>이다.

2. 이성

사실 영역과 가치 영역은 전혀 다르다. 사실은 오성이, 가치는 이성이.

출처 입력

칸트는 이념을 요청하는 힘을 ‘이성(vernunft)’이라고 한다. 오성이 사실 영역에서 주어지는 데이터를 구별하여 인식을 낳아 놓는 힘이라면 이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즉 경험 데이터를 가지지 않는 것을 요청하여 그것을 도덕적 가치 영역에서 실현하는 힘이다. 이렇게 사실 영역과 가치 영역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칸트가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주장이다. 이를 구별하지 않는 것은 낡은 전통적 형이상학이다. 이는 신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있다고 독단적인 단언만 할 뿐이다. 칸트는 인간은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3. 공통감각

사실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서로 합의하여 사회에 적절한 것을 실현하고자 할 때 동의할 만한 감각

출처 입력

그 논리로 가치 영역과 사실 영역의 분리를 말하는 것이다. 대신에 칸트는 인간이 가진 제 3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것이 있다. 이는 도덕 판단처럼 경험 데이터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같은 대상을 두고 누구는 아름답다고 말하고, 누구는 아니다. 이러한 판단을 내리는 힘을 칸트는 ‘반성적 판단력’이라고 한다. <판단력비판> 제 1부 ‘미감적 판단력’에서 이를 다룬다. 이는 공통감각을 형성하는 데에도 관여한다. 이 공통 감각은 사실 판단의 영역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합의하여 사회에 적절한 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데 바탕이 되는 것이다.

<판단력비판>에서 밝혀 보이는 미감적 이성은 예술철학과 정치철학의 근거가 될 것이다. <실천이성비판>에서 요청하는 도덕적 이성은 윤리학의 근거가 된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성립한 오성은 과학의 근거다. <판단력비판>의 목적론적 이성은 우주론의 근거가 될 것이다. 이렇게 칸트는 인간이 관여하는 네 영역에 관한 근본적인 근거를 마련한다.

4. 신의 배제

칸트는 신을 배제하고 인간의 선험적 오성을 말한다.

출처 입력

자연과학적 사유의 방법을 당연시하는 오늘날에는 칸트의 이러한 논의가 상식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당대에는 획기적인 진전이었다. 칸트는 근대성을 지닌 데카르트보다 한 발 앞서가는데, 그는 신을 폐기한다. 데카르트는 자기의식의 활동 근거로 신을 말했지만, 칸트는 신을 배제하고 인간이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는 ‘오성의 범주’를 정했다.

이 오성의 범주는 데카르트가 말한 자립적 자기의식과 유사한 것이지만, 칸트는 데카르트와 달리 이 범주의 확실성을 신에게 의존하지 않았다. 이 확실성은 ‘높은 개연성’에 빚지고 있다.

물론 칸트 역시 이념을 요청한다. 데카르트적으로 말하자면 신을 요청한다. 이는 전통적 형이상학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칸트에 따르면 최상선과 행복이 결합되어야 궁극목적인 최고선이 되는데, 이 최고선에 이르려면 도덕 영역에서 제시된 최상선과 그것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사물 영역이 결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칸트는 이 방법 역시 제시하지 않았다.

사실 영역을 자연이라고 하고 도덕 영역을 철학적으로는 자유 영역이라고 한다. 이 두 영역을 결합시켜야 체계가 통일된다. 그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해 다루는 것, 자연 영역과 자유 영역의 매개를 다루는 것이 <판단력비판>이다.

[출처] 칸트가 위대한 이유|작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