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기록

남산둘레길을 돕니다(詩山會 제449회 산행)

남산둘레길을 돕니다(詩山會 제449회 산행)

때 : 2022. 12. 10.(일) 10 : 30

곳 :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코스 : 리움삼성미술관-그랜드힐튼호텔-남산둘레길 동편으로 돌아 유스호스텔-남산입구

뒤풀이 : 남대문시장 대도식당(02-779-9350) 갈치조림, 제육볶음

길라잡이 : 박형채

 

1.시로 여는 산행

 

떠도는 환유 5 / 김승희

 

무어라고 불러야 좋을까

 

사랑도, 눈물도, 진짜가 아닌 것 같애,

사랑 비슷한

눈물 비슷한

흔적 비슷한

분노 비슷한

그런 비슷한 것들이 나 비슷한 것들을

감싸고

한 줄기 햇빛의 선 속에 우우우우

갇혀 떠도는 먼지처럼

() 비슷한 것들을 이루고 있어

 

나 비슷한 것들아

시대 비슷한

나라 비슷한

지식인 비슷한

고뇌 비슷한

외침 비슷한

절망도 낙천도 아닌

어스름 비슷한

이 향방의 묘혈 속에서

 

죽음 비슷한 생이 있어

살지도 죽지도 못하고

엄마 비슷한

아내 비슷한

자식 비슷한

교수 비슷한

시인 비슷한 것들을

배우 비슷하게

은막 비슷한 곳에서

 

, , 정말, 무엇에 널 걸 거니? ? 말해 봐,

, 무엇에든 널 걸어야 할 거 아냐?

이런 닦달 속에서도, 아무데도 날 걸지 않는,

 

아무데도 걸 수가 없는 걸 것 없는, 파쇄된

나를, 아니 나 비슷한 것들을 데리고,

사전꾼처럼 사기꾼, 아니 무한히 높은 곳에서

밀어버려 무한낙하로 산산이 엎어지고 있는

사닥다리의 해방처럼······

 

'절망과 유희의 간통' 고발장

-사회악과 그 모순의 풍자

김승희의 시는 인간 고발, 사회 고발의 정신을 근본으로 한다. 그런데 그녀의 시에 접근하려면 우선 페미니즘 비평의 다리를 거쳐 가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은 모럴 비평이며 윤리학과 미학이 일치된 현상을 보여주며 미적으로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감각은 정의(正義)의 감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언을 전제로 하고 먼저 이 시인의 말을 들어보자. 시집 달걀 속의 말미에 나오는 '詩作 노트'에서 그녀는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그렇게 부조리(absurd)한 그로테스크의 불가피성을 가진 것이 아니겠는가." "절망과 유희의 간통 같은 어떤 정신의 지평선 위에 나는 서 있었고 "헤픈 울부짖음보다는 아이러니의 가면 속에서 좀 빈정대면서 나와 세상을 욕해 주고 싶었고 무질서와 절망의 강박관념의 통제탑으로서 더 많은 지성의 아름다움을 감성적으로 소유하고 싶었다.” “우리는 안 보이는 투명한 어느 망상조직(網狀組織)의 그물 아래 덮어 씌워져 유령 같은 비존재로, 제로에 가까운 무로 끝없이 소실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유시욱

 

2.산행기

 시산회' 448회 ‘관악산둘레길’(1구간) 산행기<2022.11.27.(일)> / 정동준

◈ 산행일/집결장소 : 2022년 11월 27일(일) / 2호선 사당역 4번 출구 (10시 30분)

◈ 참석자 : 13명 (갑무, 정남, 종화, 진석, 기인, 재홍, 윤환, 경식, 용복, 전작, 동준, 양기, 황표)

◈ 산행코스 : 사당역-관음사옆-서울둘레길(5코스)-무당골-인현동-남현동-사당역-뒤풀이장소-사당역-집

◈ 동반시 : "깊은 가을" / 나해철 (박형채 산우 추천)

◈ 뒤풀이 : '모듬회', ‘튀김’에 막걸리, 소·맥주 / "속초어시장(방배점)" <사당역 근처, (02) 523-0511>

 

오늘의 산행장소는 관악산둘레길(1구간)이다. 서울둘레길(5코스) 일부의 길이다. 오늘 산행하는 산우들은 등산을 좋아하는 13명의 친구들이다. 모두가 다 집결시간 이내에 사당역(4번 출구)에 도착하여 산행 들머리로 출발하였다.

 

들머리는 남현동의 유아자연배움터이다. 다소 경사진 길이다. 산객들은 잘 오르는데, 기인 산우가 바윗길을 올라가다 넘어진다. 바윗길에서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사고가 하산할 때에 발생을 한다. 기인 친구는 다행히도 다치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산우들 모두가 다 산행할 때에 조심해야 할 길이다.

 

당초엔 국기봉으로 해서 마당바위나 헬기장까지를 목적지로 하고 산행할까? 했는데, 대부분의 산우들이 오늘 산행길은 반대를 하였다. 정남, 종화 산우 등이 앞장을 서며, 서울둘레길 5코스(관악산둘레길 1구간)의 좋은 산책길로 가자고 한다.

 

이곳 관악산의 길은 산세가 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관악산둘레길 1구간의 둘레길은 이미지와 달리 상당히 완만하고 부드러운 흙길이며, 아주 좋은 길이라 느낌이 좋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산기슭엔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나뭇잎 몇 개씩만 매달려 있어 초겨울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정해진 둘레길을 따라 한참을 가니 조망대와 무당골이 있는 곳에 쉼터가 있다. 쉼터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니 기분이 상쾌하다. 잠시 쉬었다가 쉼터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산우들은 각자 가져온 먹을거리들을 배낭에서 끄집어낸다.

 

간식을 먹기 전에 갑자기 매니저인 나에게 동반시를 낭송하라고 한다. 낭송할 동반시는 "깊은 가을"(나해철 시인) 이다. 준비한 동반시는 단풍이 지는 계절(늦가을)에 잘 맞는 시(詩)이다.

 

"깊은 가을" / 나해철

 

가을은 내 가슴의 추수를 끝내버렸네

빈 기슭이 되었네

 

달던 과실도

알곡식도 푸르른 나뭇잎도 떠나버렸네

 

무엇으로 채울까

못 견디게 서늘한 바람만 부는데

목메이게 불러볼

그리운 이도 없는데

 

불타듯

부르짖어 기다리는 고운 세상도

멀기만 한데

꽃도 져버렸네 새도 가버렸네

 

가을은 내 가여운 넋마저

데리고 깊어져버렸네

 

나해철(1956년~) 시인은 나주 영산포 출생으로 전남대 의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고,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영산포'가 당선돼 등단하였다. 1984년 첫시집 ‘무등에 올라’를 간행 이후 ‘동해일기’, ‘그대를 부르는 순간만 꽃이 되는’, ‘아름다운 손’, ‘긴 사랑’ 등의 시집이 있다.

 

서리가 내린다는 霜降이 지나면서 들판에 추수를 서두르고 있다. 서리가 내리고 바람이 차가워지기 때문이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황금물결이 사라졌다. 풍성했던 과수원의 사과도 사라지고, 사과나무는 빈 나무로 서고, 집 앞에 있던 감나무는 까치밥만 남겼다. 그 푸르른 나뭇잎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못 견디게 서늘한 바람만 부는데’ 결국 찬바람은 꽃도 새도 우리 곁에서 사라지게 했다. 꽃도 새도 사라지고 들판마저 텅 빈 깊은 가을엔 어쩐지 마음마저 텅 빈 들판을 닮아있다. 잎이 진 나무를 닮았다. ‘목 메이게 불러볼 그리운 이도 없는데’, 마음 한 구석이 자꾸 시리다. 하얀 서리 밭을 맨발로 걷는 것처럼...

 

시낭송을 끝내고 내어놓은 안주(골뱅이, 파김치, 햄·쏘제지, 감자, 한과, 깨강정, 과일 등)에 막걸리를 마셨다. 늦가을이고 산 중턱이라 날씨가 제법 춥다. 막걸리를 몇 잔 했더니 한기가 든다. 쉼터를 정리한 후, 인현동과 남현동을 거쳐 뒤풀이 장소인 사당역으로 하산을 서둘렀다.

 

뒤풀이는 미리 예약해 놓은 사당역(14번 출구) 근처의 ‘속초어시장’(방배점)으로 갔다. 산우들은 모처럼 '모듬회', ‘튀김’ 등에 소·맥주, 막걸리를 맛있게 마시고, 오늘 산행을 마무리 지었다. 시산회 449회 ‘남산’ 산행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2022년 11월 27일  정동준 씀.

 

3.오르는 산

형채가 길라잡이가 되는 날이다. 자신이 추천한 시를 읽게 됐다. 이번 산행 코스는 산책길이다. 가을이 가기 전에 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이태원 국립박물관에 들러 깊은 가을을 맞으려고 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겨울이 오고 첫눈이 내렸으니 나의 가을은 갔다. 4번째 시집을 내고 3년 만에 5집을 내려고 애를 썼지만 시산회 연말 송년 산행일에 맞추기 어렵겠다. 시집은 생각보다 무겁고 배송에 신경을 써야 하며, 배송비가 적지 않아 무척 번거로우므로 편하게 많이 모인 날에 배포를 하려고 했으나 작품의 수준이 당초의 기획 의도를 크게 빗나가 내년으로 미뤄야겠다. 시집을 내는 것은 갈수록 나이에 비례하여 그만큼 시간을 많이 소비한다. 감성적 서정시는 3편을 냈고 종교시는 1편을 냈다. 변화를 주고 싶어 과학시집을 의도했다. 써서 준비한 시의 수는 부족하지 않고 넘치지만 수준이 마뜩치 않은 작품을 낸다는 것은 문학적 양심에 어긋난다.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을 과신한 결과, 실패했으므로 깊이 반성해야 마땅하다. 소위 건방병이 도진 것이다. 5년 전에 잘난 체 하다가 목을 다쳐 지금까지 고생하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 나의 어리석음은 평생의 도반인 듯하다. 시를 쓰는 것은 바라보는 경계는 다르지만 화두를 놓고 수행할 때 겪는 고행에 다름 아니다. 다만 과학 공부에 3년의 시간을 쏟은 결과 수확물은 상당한 분량이다. 그것으로 스스로 위로한다.

 

4.동반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일 거라는 생각은 착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연락하며 지낼 거라는 생각은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지금과 같은 관계로 함께일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 맞다. 사람은 변하니까, 그렇게 관계 또한 달라지니까."- 강세형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등 뒤를 돌아보자 / 박노해(박형채 배급)

 

12월에는 등 뒤를 돌아보자

앞만 보고 달려온 동안

등 뒤의 슬픔에 등 뒤의 사랑에

무심했던 시간들을 돌아보자

 

눈 내리는 12월의 겨울나무는

벌거벗은 힘으로 깊은 숨을 쉬며

숨 가쁘게 달려온 해와 달의 시간을

고개 숙여 묵묵히 돌아보고 있다

 

우리가 여기까지 달려온 것은

두고 온 것들을 돌아보기 위한 것

내 그립고 눈물 나고 사랑하는 것들은

다 등 뒤에 서성이고 있으니

 

그것들이 내 등을 밀어주며

등불 같은 첫 마음으로

다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니

12월에는 등 뒤를 돌아보자

 

2022. 12. 10.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이 모인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