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시와 수상록 5집>
무호흡증후군
표지 그림 서지아
지아와 유나를 위해 이 시집을 낸다
<1부 겨울 거미>
올페*와 장자의 암호적 관계 10
도봉산 전설 13
가지 않은 길 16
블랙홀의 미소, 사건의 지평선* 18
겨울 거미 20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자주 후회한다 24
영광靈光에 붙이는 망향가望鄕歌 26
천축사 범종소리 - 내려가지 못하는 사람들 30
‘하늘의 도道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언어의 유희 32
오사카 사천왕사四天王寺와 교토 은각사와 철학의 길 37
스티븐 호킹의 묵시록 41
광장의 기억, 기억의 거짓말 46
파레토의 법칙과 포기의 습관 46
<2부 겨울의 눈물>
참회록 50
요즈음 친구들은 52
빅뱅과 천지창조의 형이하학적 관계 54
종교의 이기적 유전자 58
운주사*의 꿈 60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62
겨울의 눈물 2023년 1월 8일 64
혜덕암의 가을, 바람과 별과 꽃 66
혼돈을 끝내다 68
촛불이 부르는 마지막 노래 72
하늘로 보내는 새벽기도 74
<3부 일이관지一以貫之>
비밀 노래 80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 화두는 은유다 82
금강경 4중주를 위한 묘음妙音 84
일이관지一以貫之 88
바람이 불면 죄인이 된다 91
삶의 흐름과 결 95
가난한 수재들이 회한을 푼 53년만의 수학여행기 98
파레토의 법칙이 유도한 포기의 습관 101
시인과 철학자의 가벼운 만남 104
나는 낭만시를 쓰지 않는다 109
예언자의 광시곡狂詩曲 111
갑오년* 동학의 민들레
<4부 동굴의 대화>
동굴의 대화 114
하늘정원 116
불가지론*에 대한 관찰 118
회상의 새벽 그림자 121
공정은 혐오로 자유는 불편으로 변한다 124
최후의 기우제 126
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작품* - 페마 초드론 128
도둑놈풀의 비밀 130
시인으로 살아가는 법 132
새벽에 시를 쓰는 이유 136
시간이 흐르지 않는 언덕에 서서 138
갑오년 동학의 민들레 140
<5부 에세이로 풀어간 무호흡증후군>
무호흡증후군 144
명상을 위한 도움말 149
깨달음의 과학적 접근 150
죽음에 관한 짧은 생각 153
하늘의 큰 뜻 – 천강대임天降大任 157
수학적 방식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던 괴델의 전제는 논리적 오류에 해당한다 158
종교와 과학의 한계적 관계/불가지론 161
모든 물질의 이중성 165
기억의 창고, 유전자의 창고, 아뢰야식 166
붓다의 윤회론 167
왜 철학은 죽었다고 하는가? 171
무아의 윤회 – 불교의 기본 교리인 무아론과 시대적 배경에 따라 설정한 윤회설의 타협 173
편집 후기 185
詩山會블로그 blog.daum.net/yc012175
티스토리 kjn1217.tistory.com
도봉道峰 김정남金定南
1952년 출생
영광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라고
광주光州고등학교와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재직 후
토목건축종합건설회사와 토목 관급공사 위주의 건설회사, 아파트 사업 전문 건설회사 등 3개의 종합건설회사 및 포천 일동의 온천회사를 경영하였고 2013년 은퇴.
도서관에서 혼자 역사와 철학, 비교종교학, 문학, 과학을 공부하던 중 만난 시인 이진 선생에게 시를 배우고 현재 시와 소설 창작과 거시물리학과 양자역학 및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에 관한 책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 : 시집 <바람의 그림자>, <시인의 농담>, <방랑자의 노래>, <고양이의 눈>, 시산회詩山會 문집 <산과 시> 1집, 2집 편집.
시인의 말
제4시집 <고양이의 눈> 이후 4년 반 만에 시와 에세이를 섞은 제5시집을 낸다. 유나 지아 두 손녀의 말없는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 제5시집 제목을 과학 산문시의 모음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방향을 잡았다가 과학시를 일부 빼고 ‘무호흡증후군’으로, 그것도 마음에 차지 않아 국가무형문화재 거문고 산조 이재화 명인과 국악 가곡 김영기 명인이 출연한 국립국악원 공연 ‘일이관지’로 정하는 듯 했지만 무호흡증후군으로 돌아간다. 이렇듯 시집의 방향을 두고 갈피를 잡기 어려웠던 시기를 보냈다. 시집 제목인 무호흡증후군은 일상에 없는 병이며 증상이다. 재활의 목적으로 수영을 하는데 목이 돌아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무호흡수영으로 훈련했다. 그것을 알고 무호흡과 증후군의 합성어로 오랜 벗 전수우 시인이 권했다.
과학 산문시로 방향을 잡은 것은 필연적 시행착오를 예상하고 뛰어든 것이다. 과학이 어려운데 시의 수사를 더하면 다중복합난수표가 된다. 그렇다고 설명 투로 쓰면 설명문 투의 에세이가 되어버린다. 거의 포기 상태로 편집을 하게 됐다. 겨우 생각해낸 것으로 써둔 글을 5부에 에세이 형식으로 바꿔 메꾼다. 하여 실패에 대한 보상은 각오했으므로 달게 받는다. 이 과정을 겪은 행위들이 마뜩찮아 무척 망설이다가 시풍을 여기서 끊는다는 의도로 시집을 낸다. 이제 부족을 아쉬워할 뿐 다시 시도할 마음은 터럭의 끝만큼도 없다. 강은 건넜고 배를 버렸으니 다시 돌아올 맘을 갖지 않는다. 비로소 맘이 편해진다. 살아온 시간에서 겪은 긴 실패에 비하면 4년 반의 시간은 짧다.
시집을 낼 때마다 답답한 마음속을 풀어놓을 시원한 방법이 없다. 본 시집은 더욱 아쉬운 마음에 많이 고쳤다. 부족함을 양해바란다.
1부
겨울 거미
ㅡ올페*와 장자의 암호적 관계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
나는 올페를 모른다
친구의 간곡한 요청을 들어주었더니
잠시의 노고라며 푼돈을 내민다
그 돈을 넣을 주머니가 없으니
회향回向하겠다고 했더니
기막힌 시적 표현이라고 한다
나는 시인이 아니라며 겸손해졌다
네가 시인이 아니면 누가?
시는 있는 그대로 쓰기 때문에 소설가와 다르다고 했더니
그럼 시인 맞네
시의 정의는 세상과 사람, 그것들 사이 있는 그대로 쓰는 것
‘있는 그대로’의 정의는 무엇인가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신비에 빠지지 않고 논리를 망각한 초월적 사유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시의 목적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존엄성을 부여하는 것
시인의 목표는 세상의 슬픔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붓는 것
이라고 했더니
아리스텔레스를 불러와
시작(詩作)이 역사보다 철학적이며, 서사시보다 비극이 발전적으로 뛰어났다는 것을 주장하며, 르네상스 이후 근세 유럽의 문예비평이나 극작에 끼친 영향은 큰데, 그것은 이 책에 들어 있는 시의 실례나 시작의 일반 규칙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 철저한 통찰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인을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존재라 극찬했다.
다시 물었더니
손이 깨끗한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감기 걸리기 싫어서
눈병 걸리기 싫어서
손을 자주 씻는다고 했더니
시인 맞네
그런다
참, 세상모르고 사는 친구다
농담과 시적 표현을 구별할 줄 모르고
시가 얽히고설킨 세상의 암호를 풀어줄 난수표가 아니기에
적어도
평소 백안시白眼視해온 평론가를 향한 허무적 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시는 바람이어서
장자의 이야기를 자의自意로 해석하여 현대시로 재구성하겠다고 했다
장자가 바람이었으므로
*올페 : 김종삼의 시 <올페>에서 인용한 ‘오르페우스모티브’는 죽은 아이 등의 영혼 기호와 음악 기호가 결합된 것으로서, 역사의 폭력에 의하여 희생된 인간의 영혼과 그에 관한 기억을 불러오는 예술적 실천을 의미한다고 한다.
올페 - 김종삼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
後世 사람들이 만든 얘기다
나는 죽어서도
나의 직업은 시가 못 된다
宇宙服처럼 月谷에 둥둥 떠 있다
귀환 時刻 未定
ㅡ도봉산 전설
-봄비 오는 날 칼바위 아래 사철 바람 맞아도 즐거운 오백나한이 서로 담소하는 관음암 아래 거북바위 아래 거북샘에서 비를 피하며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
-새해의 첫날 선인仙人봉에서 뜨는 해를 처음 맞이한 사람은 미운 사람이 없어진다
-섣달 그믐밤 우이암에서 지는 초승달을 보는 사람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신다 따뜻한 밥 지어드리고 병원에도 모시고 가자
-천축사 범종각에서 안개 속 보름달을 보면 3년 무문관이 열리고 구도를 마친 선사가 걸어나온다
-무더운 여름날 소낙비를 흠뻑 맞으며 오봉 입구 지나 도봉주릉으로 올라 자운봉 엷은 구름을 보며 포대능선으로 내려가면 안골 성불사 지장전에서 지옥에서나 볼 수 있는 지장보살이 웃으며 반긴다
-정월 대보름 우이암에 올라 붉은 빛을 띠며 오르는 보름달을 보면 모든 근심걱정이 눈 녹듯 사라진다
-히말라야에 오르고 싶다면 만장봉 암벽에서 밤낮으로 훈련하면 히말라야 14좌 완등 꿈이 이루어지리다
-용꿈을 꾸고 싶으면 용어천계곡을 따라 올라 주봉까지 가보라 반드시 꿈을 이룰지니
-오랜 죄의식 끝 참회하고 싶으면 긴긴 장마에 송추폭포에 가서 눈물이 나도록 폭포를 맞아보라
-긴 외로움에 지쳐 짝을 굳이 만나고 싶다면 하루도 빠지지 말고 석 달 열흘을 송추 여성봉에 올라보라 사랑하는 사람이 뒤에서 말없이 다가오리라
-섣달 그믐밤 문사동 눈썹바위 안에서 함박눈 내리는 것을 보면 잊고 있던 스승님이 찾아오신다
-부부금슬이 좋지 않아 안타까우면 적어도 1년에 12번은 칼바위 맞은 편 물개바위에 올라 좁은 길 지나고 소발굽바위도 지나 여성봉 갈라진 틈으로 내려가보라 반드시 부부사이가 회복되리라
-맑고 푸른 10월 15일 추석날 칼바위에 서서 낙조를 보면 관음암 오백나한이 일어나 반긴다
-가을이 깊어가고 도토리묵에 막걸리 생각이 나거든 시인의 마을 지나 만월암 바위틈에서 솟는 약수 한 잔 마시고 418계단 쪽으로 올라가면 너른 터에 참나무들 무성하니 도토리를 많이 줍지 말고 한 번 묵을 만들 만큼 가져가 사위 불러 막걸리 한잔하시라 긴 겨울 감기 없이 넘기리니
-도봉산에 오르거든 꼭 오봉까지 오르시라 오봉약수에서 목을 축이면 다섯 개의 봉우리 위에 돌을 올린 하늘의 다정한 손짓을 볼 수 있을지니 내려오면 하늘이 무서워 한동안 죄를 짓지 않으리라
-봄날 배추꽃이 필 무렵 삶이 답답하다면 날개 달고 자운봉 옆으로 붙어있는 배추흰나비 바위에 오르시라 가진 것 모두 내려놓고 목숨 걸고 오시라 오르시거든 상계동 마들평야 마지막 남은 벽돌공장을 향해 날아보시라 사람 좋은 최 사장이 활짝 웃으면 반갑게 맞아주실 거다 사모님 역시 함박웃음을 짓고 계실 것이다
-도봉산에 오르다 혹여 용변이 마렵더라도 아무 곳에서 보지 마시고 뜀바위 밑 에덴바위에 가면 향기 나는 화장실이 있다는 전설 믿고 가보시라
-살다보면 때때로 암담해질 때가 있다. 그때는 꼭 도봉산에 오르시라 길목마다 약수터가 있어 답답한 마음 시원하게 터 줄 것이다
ㅡ가지 않은 길
구도의 몸짓이 태평양 바닷물의 수소 원자를 세는 짓은 아닌지
구원의 몸부림이 맹신은 아닌지
내 온전하지 않은 이성을 갉아먹는 짓은 아닌지
가본 적도 없는 서양의 철학자를 향한 몸짓이 현학을 향한 짓거리는 아니었는지
바라보아야 한다
바늘로 우물을 파는 막막한 짓에 몸을 떨면서도
하늘에서 해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는 것과
뭐가 다를까
이 텅 빈 세상을 구원해주는 무엇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히말라야에서 잃어버린 추운 영혼을 찾아 헤매는 짓과 무엇이 다르리
오늘의 어둠은 어김없이 내일의 태양을 보내주고
열흘쯤 비가 오면 다음 날은 맑아지는 것과
한 달이 짧으면 다음 달은 긴 달이 되는 것과
달은 차면 기울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
물러설 줄 모르고서 끝내 흐르지 않는 시간의 강가에서 잃어버린 모래시계를 찾으며 걷는 이여
시간의 본질을 알고 싶은 부질없음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몸과 영혼이 몸부림치며 싸우는 전쟁터임을
오늘이 지나면 내일의 바람이 몸부림이 되어 분다는 사실만은 잊지 마라
그대의 몸부림은 그대의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자명종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고비마다 갈림길을 만나도 몸이 하나인 것을 알고
남이 가지 않은 길로 들어간다
오늘 살아있음은 그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안다
그리고
가지 않은 길과 간 길은
서로 닿아있음을 알았다
ㅡ블랙홀의 미소, 사건의 지평선*
요즘
과학을 공부하노라면
많은 의문이 뜬다
그중
나를 닮은 물건이 다른 우주에 있다는 다중우주론
머리 좋기로 인정한 천재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논쟁
신은 주사위놀이를 즐기지 않는다
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스티븐 호킹의 말은 두 천재를 기 막히게 만든다
신은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고 아인슈타인이 말했지만, 이것은 틀렸습니다. 블랙홀을 생각하면 신은 주사위를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던져 놓는다고 볼 수 있죠.
무신론자들의 논쟁치고는 유치하다며
천문학자나 양자역학자 뇌과학자 중
유신론자는 없으며 모두 불가지론자라며
동양의 한 성자는 웃는다
미세조정 우주론자나 홀로그램 우주론자는
세상이 있는 듯 없는 듯
스티븐 호킹 박사는 차라리 블랙홀로 들어가버리라며 소리친다
유신론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두 손 들고 비켜서있다
그러나
블랙홀로 들어가려면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야 하는데
그 위에 설까 말까 망설인다
아직 사건의 지평선 동그라미 위를 무서워 걸어본 자가 없다
서해안에서 태어난 어느 종교의 일원상을 닮았으되
그곳이 변곡점이 되어 갈등의 꼭지점이 된다
갈등 속 마침
동살을 헤치며 어둑새벽을 걷어내고 걸어오는
해가 웃는다 달도 웃고 구름도 웃는다
비까지 웃으면 모두 웃는 짓이 된다
바람은 항상 웃는다
*사건의 지평선 : 사건의 지평선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그 너머의 관찰자와 상호작용할 수 없는 시공간 경계면이다. 보통 블랙홀의 특성으로 언급되며,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강해서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천체를 의미한다.
ㅡ겨울 거미
1
홀로 사는 고요는 부정의 대상
혜덕암에는 시계가 없어
시간은 말없이 흐른다
시간을 접으면 더 빨리 흐를까
시간은 물질일까
시간과 공간 사이 차원의 관계가 있다는 과학자들의 말은 이해하기 어렵고
공간도 접을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싫어서다
시간과 공간을 접을 수 있을 때까지 접으면 빅뱅의 원인이 된다는 특이점이 될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망상이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할까
언제나 이 짓을 그만 둘까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 새벽 명상은 틀렸다
새벽잠은 유난히 달콤하다
어둑새벽은 늘 일어나고
동 트기 바로 전
동살*이 희미하게 퍼지면
명상은
거시물리학의
암흑물질 구심력과 암흑에너지 원심력이 긴장하는
동그라미 안에서 갈등으로 끝나고
무위無爲의 아침을 맞는다
물리학과 명상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어젯밤 기러기는 먼 길 재촉하는지 ‘끼룩끼룩’ 밤을 새우고 울다 지쳤는지 조용하다
늦은 밤 고라니는 ‘웍웍’ 님 그리움 토해낸다
간밤 소식이 왔나 궁금해 창문을 열어보니
잘 생긴 소나무 위에
하얀 손님이 조용히 누워있고
딱따구리는 새끼들 배고픔에 맘 급해 ‘따따딱닥’
한겨울 깨우고
소리조차 숨죽이는 깊은 산 개 없는 마을의
햇빛은 어스름 힘들여 뚫고 소리 없이 동산 넘어와
찬마루가 반기는 아침
금빛 바람은 솔가지 사이로 불고
들리지 않는 소리는 차갑다
구름도 소리 없이 흐른다
구름 따라 겨울비 내리고
비 소리 외로움 떨친다
2
고요에 소스라치다가
잠시 수사학을 편다
수사학이란 무엇인가
한국 현대시의 수사학 펼치며
글자는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시는 기호다
기호는 너와 나의 믿음이고
‘시는 은유다*’에 공감하면서도
은유를 멀리 한다
은유는 난수표다 암호다
시가 무겁다
적막 속
유일하게 들리는 국민체조 소리
밥 냄새 소리에도 누구라도
찾아오는 기별 없어
일일호시일日日好是日 날마다 좋은 날
벚은 산 추워도
밤새
보름달 떠서 좋고 보름달 져서 좋은 날들
산 속
너와 나의 이야기는
빗장 없는 일주문을 연다
혜덕암의 겨울
거미는 봄여름가을 그물을 거두고
동안거를 맞는다
하릴없어진 나는
혜덕암을 등지고
겨울 만행에 나선다
*동살 : 해돋이 바로 전 여명이 드는 때를 흔히 ‘동트는 새벽’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때 동쪽에서 푸르스름하게 비치는 빛줄기를 ‘동살’이라 한다. 동살은 직사광선이 아니고 해가 떠오르기 전에 비치는 반사 빛이라 할 수 있다.
*시는 은유다 :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저항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가 자주 썼던 말. 더불어 ‘시는 설명하면 진부해진다’고 주장했다.
ㅡ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자주 후회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질척거리며 허우적거리며
갈라지며 구부러진 곳곳마다 만나야 하는
극단의 갈림길에서
최선의 길로 들어섰으므로
오늘을 살고 있다
가지 않은 길을 되짚어 보면
밖에서 보면 가시덤불 또는 풀이 무성한, 아무도 가지 않아 닳지 않은, 신작로를 닮아 쭉 뻗은 길 등
그러나 그 이상은 보여주지 않는 길
가지 않은 길과
지나온 길은
미래 언젠가의 시간과
맞닿아 있을까
지나가면서 돌멩이와 부딪치고
군데군데 수렁에 빠졌으며
잘 헤쳐 나왔어도
텅 빈 채
그 생채기가 남아 오늘을 괴롭힌다
뉘우치고 잊으려 할수록
늪에 빠진 몸처럼
더 깊게 척척해진 삶을 이어간다
죽음 아닌 삶을 선택한 것은 안타까움 위에
쌓아온 것과 생채기가 덜어간 것을
계산하여 남은 것이
지금의 내가 서있는 시간과 공간의 이중성 때문 아니겠는가
요즈음
내 텅 빈 삶을 곱씹어보며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와 새옹지마塞翁之馬와 토사구팽兎死狗烹과 상선약수上善若水와 빛과 그림자와 동전의 양면과 군주민수君舟民水와 천강대임天降大任 등의 한자성어를 뇌 속에 넣고 산다
가지 않은 길 위에 서서
지나온 모질게 이어온 삶을 더듬어본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최선의 길을 가는 것이다
며 위로한다
ㅡ영광靈光에 붙이는 망향가望鄕歌
고향 친구 진수에게
얼마 전까지 병신춤 공옥진이 살던 읍내 향교 옆 48년 전에 젊디젊은 나이로 간경화를 이기지 못해 먼저 가면서 남긴 말, 부디 잘 지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게. 울음은 목에 걸려 다시 들어갔다. 참은 울음이 생채기가 되고 아직도 아련함으로 남았다. 일가친척은 거의 떠나고 성묘 때 가면 벌초는 종심從心의 두 형제의 몫이 되었다. 지금 진수 자네에게 쓴다. 대사大使를 지내고 편히 살던 원불교 교당 밑 용현이도 뇌출혈 후유증으로 많이 아프고 불편하다네.
영광은 삼백三白, 곧 쌀과 눈, 소금의 고장으로 이름났는데 모두 풍요의 상징이네. 그중 하나인 소금 또는 염전의 환유적 표현인 소금산山 염산鹽山면과 하얀 구릉 백수白岫면이 있어 바닷가에서 산 아래까지 펼친 너른 염전에서 소금이 엄청나게 많이 생산되었으므로 백수 구수산 철쭉꽃이 피면 알을 배고 칠산七山바다를 지나가는 조기를 잡아 3년 묵혀 불순물이 섞인 간수가 빠진 소금으로 간해 법성포 10리 갯벌 바닷가에서 소금기 머금은 해풍과 새벽안개에 말린 알배기 굴비를 진상했다고 하네. 굴비의 법성포에 가면 ‘썩어도 준치’ 회를 먹을 수 있네. 뼈가 많지만 노련한 칼을 만나면 순해진다네. 그 맛이 일품一品이네. 법성포 간 김에 백수해안도로에 올라서면 ‘노을 만 평’ 신용목*의 시가 생각난다네. 그곳에서 맞는 노을은 평생 처음 보는 절정의 풍경이네. 시인이 말하는 폐염전 옆 너른 땅에서 바라보는 노을을 본 적이 있는가. 지금은 중국 소금에 밀려 염전이 줄어서 폐염전 옆 너른 땅은 꽤 많을 거네. 법성포 백제불교유래지 사면四面불상에서 두 개의 주탑 높은 영광대교를 지나 모래미 해변에서 시작한 백수해안도로*를 타고 가다가 노을을 맞이하면서 날아가는 새를 보게. 꿈같은 절경이 중국으로 이어가는 바다 끝까지 펼쳐지네. 바다는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고 길과 해변 절벽 사이에 앉은 구옥 ㅡ 그런 집 구입해서 별장 마련해도 좋겠네 ㅡ 카페가 있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여독 풀고 마침내 해가 수평선을 넘어갈 때 맞이하는 노을은 어디에 비기겠는가. 마침 늘 끼는 바다안개가 걷힌 날에는 내가 노을이 되는 착각 속에서 해가 바다로 가라앉는 광경을 볼 수 있네. 그게 일 년에 몇 번이겠는가. 백수 길용리에 가면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세우신 원불교 발생지가 있네. 그곳의 풍경을 보면 대단한 기운을 느낄 수 있네. 그림자가 없지만 빛과 한 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 신령이 빛나는 땅, 영광靈光 그러나 주로 백수와 염산에서 인공人共* 때 2만 3천 명이 죽었다지. 빛과 그림자의 비유가 맞아떨어지는 그림이네. 그때 철수하는 좌익 손에 읍내 12명 직계가족 한날한시에 잃어 한 맺힌 울어머니 유언이 절대 영광땅으로는 살려고 내려오지는 마라고 해서 안 내려갈라네. 국군이 진주하고 수백 명 좌익이 불갑산으로 철수했지만 결국 몰살한 불갑사에 가면 핏빛 붉은 꽃무릇이 땅과 하늘을 수놓는다네. 장손 울아버지 마침 피난 끝나고 돌아와보니 12명 죽은 사연 할아버지 땅 물무산 나무에 묶여 대창으로 찔려죽은 여동생, 이름도 짓지 못하고 죽은 조카 소식 듣고 울집 12개 도리기둥 하나씩 잡고 이름 부르며 울부지으셨다지. 그길로 경찰토벌대에 투신하여 복수하셨다는데 불갑산 전투 때마다 앞장서서 돌격하여 모두 말렸지만 복수심에 고분고분 들으셨겠는가. 그 큰 도리기둥 나중에 누군가 불 질렀다네. 그 사연들 기 막혀 그 땅에 돌아가지 않으리니. 다만 늙어 기억 희미해질 때 그때 만든 과부들 위해 어머님이 세우신 양로원에 몸 누울 공간이야 없겠는가만 자식들이 가만 놔두겠는가. 나도 시간을 어쩌지 못해 자네가 있는 곳으로 갈 날이 머지않았으니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계시게. 참 작년 가을에 향교 근처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은행나무는 천 년을 산다더니 은행나무는 여전히 은행이 많이 열려있어 향교 담 넘어가서 은행 줍다 향교지기에게 걸려 혼났던 거 기억나는가. 60년이 넘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네. 자네가 살아있으면 “어이, 정남이! 법성포 가서 낙월도 큰 새우 회 한 접시 하고 오세.” 했을 텐데. 너무 그립고 아쉽네.
*노을 만 평 / 신용목
누가 잡아만 준다면
내 숨 통째 담보 잡혀
노을 만 평 쯤 사두고 싶다
다른 데는 말고
꼭 폐염전 옆구리에 걸치는
노을 만 평 갖고 싶다
그러고는 친구를 부르리
노을 만 평에 꽉 차서 날을 만한 철새
한 무리 사둔 친구
노을 만 평의 발치에 흔들려줄 갈대밭
한 뙈기 사둔 친구
*백수해안도로 : 모래미 해수욕장부터 백암해안전망대까지 국도 77호선과 군도 14호선에 속한 도로로, 길이는 16.8km이다. 영광 칠산 앞바다의 구불구불한 해안을 따라가는 도로로, 해안절벽, 기암(모자바위, 거북바위 등), 암초, 섬(칠산도, 안마도, 송이도 등) 등을 감상할 수 있어 한국의 대표적인 해안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힌다.
ㅡ천축사 범종소리 - 내려가지 못하는 사람들
도롱뇽이 사는 약수터 올라가는
능선에 자리 잡은 천축사 범종각 범종 소리는
붓다의 저녁 공양 올리는 신호
저녁 어스름 다가오지만
흐르는 시간에는 관심이 없고
모든 것을 비우면 달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는 주지 스님 웃는 소리
내게 내려가라고 하는 소리다
그만 집으로 내려가란다
아직은 때에 이르지 못했으니 차분히 기다리란다
28번 종소리 가슴을 친다
소리만 들리고 종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달마의 28대 제자
환청은 정신병자의 것이고 환시는 초월적 현상이라고
알고 있던 나는 잠시 우두커니가 된다
하찮은 빛이라도 남기고 싶지 않다
는 마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인연도 빚이고 업이다
마침 지나던 곤줄박이 박새 동고비와 땅콩 서너 알 손바닥에 올려놓고 희롱하다가 얼굴 부끄러워 어스름이 짙게 깔릴 때 내려온다
사철 비 맞으며 가부좌 튼 오백나한 공양은 무엇으로 때웠을까 궁긍해지는
내 황톳빛 영혼
무더운 날 장맛비 그친 석양 노을빛 닮아 늘 변덕을 부린다
내일은 다시 올라갈 수 있으리니
ㅡ‘하늘의 도道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언어의 유희
매일 어둑새벽에 눈이 떠지는 것은 불면증이라서가 아니다
공상空想과 신문을 읽는 짓을 반복하다가 시어詩語사전을 읽다가 고어古語사전을 읽다가 순우리말사전을 읽다가 시론을 훑어보다가
화장실도 갔다가
‘가장 나쁜 일상의 시작은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는 노 철학자의 말을 기억해내어
문득
‘호모 사피엔스’라는 책을 읽다가
‘불교의 심층심리 유식론(唯識論)’를 읽다가
도올 김용옥의 ‘도마복음’을 읽다가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역사/신의 탄생과 정신의 모험’과 ‘축의 시대’, 찰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되새김질하다가
혹은
공자보다 독특하다는 제자 맹자의 성선설과
이름과는 반대로 순자의 성악설에 생각이 미치면
맹자에 실린 고자告子의 ‘천장강대임어사인야天將降大任於斯人也’으로 시작하는 경구를 떠올린다
큰일을 시키려면 먼저 온갖 고초를 겪게 해서 쓰임새를 알아보고 시키려는 일에 비례해서 그만큼 단단하게 만든다는 잠언이다
마치
조국 대표와 그 가족에게 권하는 따뜻한 말씀 같다
마침
조국 대표가 옆집에 산다
오늘은
두 손녀의 일상을 돌보다가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국 대표의 집 앞에서
최강욱 의원 닮은 사람을 봤다
아마 부인 정경심 교수가 병 든 채 석방되어 문병하러 온 것으로 짐작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놓고 논쟁한다
한쪽은 인간의 본성은 호혜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고
반대쪽은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고
창세기의 원년은 기원 전 4004년 10월 23일 오전9시이라는 주장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고
138억 년 전에 일어난 빅뱅과 계속 진행하고 있는 우주 가속 팽창 사이에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빅 프리즈 빅 립 빅 크런치와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조차 규명하지 못하는 과학의 한계에 부딪쳐 잠시 생각을 보류하다가
갑자기 블랙홀이 모두를 집어삼키는 스토리를 만든 유튜브의 환상을 본다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르냐는 판단을 떠나
양비론과 양시론은 비겁한 행위다
불가의 중도나 유가의 중용은 양 극단에 치우치지 마라는 뜻이지 이도저도 옳거나 그르다는 기회주의도 아니고 회색인으로 살면서 양쪽을 비판하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기회주의나 회색인은 결국 욕을 더 얻어먹는 행태다 인간이 의견은 분명히 하고 살아야지 법정 스님처럼 깨끗하게 무소유로 가든지
그러므로
이도저도 아닌 냉소와 허무를 합친 노자와 장자의 태도가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적어도 양비론과 양시론을 견지하지 않는다
시는 세상을 구원하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는 옳다
그러나
한자어로 시詩를 파자하면 ‘말’과 ‘절’의 합성어인데 입 다물고 열심히 수행하라는 ‘침묵’의 은유다
그러나 ‘철학 삼총사’ 안병욱과 김태길 교수 중 김형석 교수의 지당한 말 ‘반딧불이 하나가 백두산 밝힐 수 없듯이’는 옳다
내 입에 붙이고 사는 ‘수많은 성자가 다녀갔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는 말도 옳다
세상이 갑자기 사라져 무無나 공空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한다 무無가 유무有無의 무가 아니듯 공空 또한 만공滿空의 공이 아니다
아주 간혹
옛사람들은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지만
진보지식인이 항상 좌파는 아니다
얼마 전에는 삶이 비루해져
법 앞에서 긴장해야 했으니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의 이분법적二分法的구별은 언제 변할지도 모를 일이고
‘세상사 동전의 양면’과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엎을 수도 있다’는 경구는 수없이 검증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대통령이 감옥 가는 것은 얼마든지 봐왔다 국민들은 비양심적 권력자의 몰락 같은 것에 마음을 정화시키고 즐긴다
공상하다가
문득
과연 업보의 합리적 귀결은 불가지론의 영역에 속하는가
업의 복합적 양면성에 대하여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등을
고민하다가
책상 위 벽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나의 까시나, 곧 눈앞의 집중체라 여기고 일원상(一圓相)*의 의미를 새기며 긴 하루를 짧게 살아간다
*일원상(一圓相) : 일원상(◯)은 원불교에서 본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진리의 상징으로서, 이를 ‘일원상의 진리’ 또는 ‘법신불 일원상’이라 하여, 최고의 종지(宗旨)로 삼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신다. 일원상은 교조 소태산대종사의 대각(大覺)에 의해 밝혀진 ‘일원상 진리’의 상징이다. 이는 《대종경》 서품 1장에 소태산 자신이 20여 년간의 구도 끝에 도달한 대각의 심경으로서,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선포한 대각 제일성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ㅡ오사카 사천왕사四天王寺 교토 은각사銀閣寺와 철학의 길
일본 가족여행 첫날
오사카에서 짐 풀고
이른 아침 자식들이 짜고서 작은사위가 장인에게 눈짓한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다
둘 만의 길
백제의 장인이 지었다는
일본 최초의 사찰 사천왕사四天王寺를 가면서 오사카의 아침을 읽는다
길가에는 불교의 나라답게 교회의 십자가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무엇에 홀렸는지 경복궁보다 크다고 느꼈다
오중탑을 중수하는 중이라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오밀조밀한 경내를 들러보며 일본 사찰의 특징을 자세히 찾는다
머릿속으로 한 편의 서사형 기행시紀行詩가 다가온다
머리가 꽉 찼다
얼른 머리를 풀어야겠다 완성한 오중탑을 보기 위해서 다시 오겠다고 다짐한다
교토 일정 중
점심 예약하고도 두 시각쯤 기다린
초밥, 몹시 크다
만족한 점심 점 하나를 찍고
하차할 때
문 쪽으로 기울어지는 버스를 타고
차장의 목소리 걸쭉하다
우리에게 없는 풍경들이 편안하게 눈에 들어선다
막막하지 않은 신기루 같은 신기함
교토 은각사 입구 같은 키 높이 삼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 향 상큼하다
본전本殿 같지 않은 본전을 지나니
굵은 기둥 삼나무가 마주서며 배웅한다
완만한 비알길을 내려가니 이정표가 맞이한다
은각사에 대한 열망이 다하여
철학의 길에 섰다 처음에는 ‘사색의 작은 길’이었다
니시다 기타로 동양철학 교수 그의 머리에 들어있던 지식을 펼친다
니시다 기타로에게서 선사랑禪思想 무철학無哲學 絶對無의 변증법을 읽는다
좁은 개천은 말끔하다 잉어들이 천천히 걸어다닌다
벚꽃이 활짝 피어 수로에 떨어져서 물이 보이지 않는다면 일본식 풍경이다
조금 더 가서 다리를 건너서 만난 유명한 일본식 카페 요지야よ-じや 넓은 다다미방에 말차를 겉들인 다과가 나오고 창 밖에 일본식 정원이 오밀조밀하다 거기 딸린 기념품 가게 일본답다
오후 6시 겨우 지났는데 다리 건너 동네 카페는 일찍 문을 닫았다 조금 더 걷는다 또 나타난 다리 건너 동네 카페 할로겐 등빛이 눈에 익다 이 카페는 종일 노트북 작업을 해도 괜찮은 우리나라와 같을까
일본다운 삼나무 목조 가옥과 말끔한 길 일본다운 기획의 거리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반딧불」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 1986년 「일본의 다리 100선」 한국어 게시판 글씨가 뚜렷하다
담장이 없어 집안에 주차한 작은 자동차 혼다가 눈에 들어온다
길섶에서 마주 선 중년의 여자와 할머니가 마치 연출인 양 웃으며 연신 머리를 숙인다 반복한다
행주로 훔친 뒤의 도마 마냥 사뭇 말끔하고 적막한 거리를 돌아와서도 게시판 뒤로 다시 돌았다
철학의 길을 인터넷 검색의 바다에서 항해하다 눈에 띤 집중 질문 연역 귀납 언어 확장 심리 연계 통찰 겸허 자율 집념 등 12가지 철학적 사유 방식은 시적 긴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수단도 될 수 있겠다
괴이하고 막연하게 꼬인 생의 가닥을 풀기에는
철학의 길 동네 할머니나 아줌마의 일본식 난방 코타츠 놓인 방 한 칸이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거기서 유배생활 1년쯤 지내다가
설국의 땅 니가타현을 찾아가면 맞이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가 지은 소설 이즈의 무희를 찾아 시즈오카의 이즈 반도, 천 마리 학을 만날 수 있다면 어디든 가서 만나리 남은 생, 여명餘命의 소원이 되었다
난젠지(남선사南禪寺) 수로각은 멀어서 사천왕사 금각사 청수사 숙소 옆 백제사와 더불어 다음 여행으로 미룬다
ㅡ스티븐 호킹의 묵시록
호킹의 익살과 냉소
‘빅뱅의 순간 신이 숨을 시간이나 공간이 있었겠는가’라며 낄낄 웃는 스티븐 호킹의 익살스런 표정은 지극한 냉소와 닿아있다
프린키피아(The Principia/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인류사상 최고의 과학 천재 뉴턴이 아인슈타인보다 뛰어나다는 압도적 의견 77대 23의 지지로 과학자들이 결정, 그는 아인슈타인보다 한 수 위 천재였다는 과학자들의 평가를 보면서 더 놀란다 그가 저작한 책이다 그리스에서 시작한 자연철학은 뉴턴 때까지 과학과 철학으로 한 몸처럼 살아왔다
바다에만 파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남한강에서 만나는 바람은 대지의 논에도 바람의 파도가 몰아치면 잘 익은 벼가 움직이듯 노란 파도가 일렁인다 우주에도 중력의 파도가 몰아치면 썰물이라는 암흑에너지가 서로를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다시 암흑물질이라는 밀물이 우리를 블랙홀로 밀어 넣을 것이다 그리하여 암흑에너지라는 썰물이 작용하여 중력의 집합체인 블랙홀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138억 년이 지난 지금은 썰물이 작용했지만 언젠가는 밀물의 암흑물질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 것이다 그것을 신 또는 우주의 작용이라 해도 상관없겠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우리는 압력과 압력의 결합을 견디지 못하면 시공간이 하나로 될 때 다시 빅뱅이 일어나 우리를 흩어지게 만들 것이다
사랑은 파도 또는 조류를 닮아 밀려오고 쓸려가듯이 사유思惟도 같다 사조思潮라고 한다 종교적 사조의 폭거는 살육이 난무하므로 광풍보다 무섭다 하여 종교는 사랑과 다르다 비록 일반화의 오류라 해도 좋다
1950년대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입증의 책임은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에게 있다고 했다 있다는 경우의 수는 하나만 증명해도 충분하지만 없다는 경우의 수는 무한하므로
우주물리학의 바이블이라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고전이 되어가고 이제 우리는 하나의 과정으로 들어간다 하늘을 보면 많은 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한 별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지구에 갇혀 오는 별만 본다 우주는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다중우주가 있다고 우주마다 지구 같은 수많은 은하가 존재하고 은하계가 존재하고 그 안에 존재하던 신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모두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고 한다
그때는 사랑과 증오도 선과 악도 신 존재의 긍정과 부정도 지금까지는 가설이다
과학의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빅뱅도 가설로 만들어버렸다 빅뱅 이전의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학의 힘을 거스리지 못한다 그런 현상은 피할 수 없다
파도가 10에 10승의 10승의 10승의 3의 순간 정지할 때가 있듯이 정지의 순간이 지나면 우주는 다시 변화한다 이와 같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기원전 2300년 경 인도는 자신들의 축제를 위하여 신의 질서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여 신을 암시하는 신화와 전설 같은 모호한 수수께끼의 방식으로 신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수수께끼를 지은 자, 시인은 예언자로 진실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방의 셈족은 신들을 만들어냈다
각자 자신이 숭배하는 신이 창조자라고 주장했다 언젠가는 신들끼리 충돌하여 싸움이 되겠지만 모든 것이 하나가 되듯 싸움의 승자도 하나가 될 것이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신은 바람의 신 엘렐이었다 자연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전쟁의 신 야훼를 만들어냈다 당연히 전쟁의 신은 승자가 되었다
그것을 본 중세의 현자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신이 자연의 지배 아래 있을 때는 모두가 평등했고 모두 불행도 나눠가졌다. 그러한 신이 탐욕의 파도가 밀려와 사람의 손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인간은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탐욕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어리석음을 만들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몰락을 극단적으로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신은 종교의 이름으로, 구원이란 명분으로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고 노예화한다고 비판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 중심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이 죽고 나면 신에 의지할 필요 없이 인간이 자신의 주인이 되면서 새로운 존재가 등장하는데 ‘초인超人’ 이다 초인은 기존의 가치를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중심주의의 표상이다
셈족이 창조한 유일신은 신성했지만 인간은 그 신을 시끄럽기 그지없게 만들었다 그들에게 분열은 곧 학살로 이어진다 동양에서 분열은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과 사뭇 다르다
2500년 전 인도에는 붓다라는 ‘스스로 깨어난 자’가 있었다 신 앞에 모두 평등해야 했으나 신은 모두를 차별하여 불행과 행복을 안겨주었다 그는 평등하지 않은 신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호킹은 아래 말을 통해 자신이 논리실증주의에 입각한 무신론적 불가지론자임을 밝힌다
*호킹의 어록 : 과학자로서 무신론적 불가지론의 입장에서신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과학은 창조자 없이도 충분히 우주에 관해 설명할 수 있다.
우주의 시작과 존재의 이유에 대해 그는 ‘우주는 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되었으며, 빅뱅은 블랙홀의 반대로서 우주의 모든 물질을 포함하는 무한히 작은 점인 특이점에서 시작된 것으로 시공간 틈에 특이점이 있고 이로써 블랙홀을 통해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알렸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은 없다. 아무도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고 우리의 운명을 지시하지 않았다. 이는 천국과 사후세계도 없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웅장한 우주세계의 존재를 인식하고 살고 있으며 그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묵시록은 요한계시록처럼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예언서를 말한다 신의 시대가 끝남으로써 신과 충돌하지 않은 무신론자만 살아남을 것임을 믿는다
ㅡ광장의 기억, 기억의 거짓말
17살에 유학을 떠난 고향의 광장이 생각났다 고향은 서해안과 남해안이 만나는 꼭짓점에 서있다 꼭짓점을 가르며 영산강이 흐른다 광장은 기차 종착역이면서 광주여객과 금성여객의 정류소가 있어 넓었으므로 역 광장이라 불렀다
무도한 박정희의 비상계엄으로 휴교령이 내려졌다 오래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여 유학생 대부분이 고향으로 내려갔다 늦은 밤 서울에서 올라 새벽 열차에서 내리니 증기기관차에서는 분노를 닮은 듯 증기가 유난히 세차게 뿜어나온다 역 광장에 들어서니 어스름한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이난영의 유달산 세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없어진 멜라콩다리가 생각났고 멜라콩다리를 건너 목포의 눈물 삼학도에서 수영하다 죽은 뺑끼집 귀남이 생각이 났고 보해양조 하수구에서 흘러나오는 까만 술찌끼미를 받아먹으려고 몰려드는 어린애들과 노적봉 오포대 바위 밑 피난민촌 항상 미싱을 돌리고 있는 친구의 엄마와 누나가 생각이 났고 여름방학이면 해양전문학교 뒷산으로 유달산 고개를 넘어가면 보이는 대반동 해수풀장에서 열린 수영대회에서 멋지게 수영하는 선수들 모습을 보며 얼른 배워 그들보다 더 멋지게 수영해야겠다고 다짐하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기억이 허락하는 첫 기억의 최초의 나이가 3~4살이라고 한다 그 기억 조각의 비늘이 따로 놀다가 정리되지 못하여 구분되지 못한 채 뒤죽박죽 끝 기억이 세월이 흘러도 뿌리 깊게 남아있다 광장에서 일어났던 어릴 적 일을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짰다 광장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군인들이 철사에 꽁꽁 묶은 두 사람을 끌고 왔고 무릎을 끓였다 그들의 몰골은 흉악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쫓아냈다 우리들은 집으로 왔다 밤에 집에서 일하던 형 말을 들어보니 군인들이 그들의 뒤에서 권총으로 뒤통수에 대고 쐈다고 했다 거리에는 꼬마들이 미군 차를 쫓아다니며 껌 등을 받아먹던 시절이었고 2~3년 전에 전쟁이 끝났으니 즉결처형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무도한 이승만 정권은 수만 명에서 최대 20만 명의 무고한 국민을 재판 절차 없이 즉결처분의 방식으로 죽였다는 보도연맹 사건과 제주도민 3분의 1, 최대 8만 명이 피해자가 된 4.3사건도 모두 재판절차를 무시한 무도한 즉결처형 그때도 이승만 정권이었으므로 맥락을 같이 한다 무참한 기억도 거짓말을 한다니 그런 현상이길 바란다
그곳에 가면 세발낙지를 입에 우겨넣는 집이 있고 지금은 귀한 흑산 홍어를 먹을 수 있는 집이 있다 갓바위에서 농꼬 낚시를 하며 놀다 동네 애들과 시비가 붙어 친구들은 도망가고 홀로 싸우다 여러 명에 집단 폭행을 당한 기억이 났다 눈이 멍든 채 집에 돌아와 숨어 있다가 밤이 되어 엄마에게 들켰다 형의 권유로 권투 도장에 다니게 됐다 그러나 복수는 하지 못했다
2부
겨울의 눈물
ㅡ참회록
어수선한 교차로에서 만난 짧은 어리석음이 10배의 후회로도 감당이 안 될 때가 있다
서면 땅이고 걸어야 길이다
멀리 보면 길이지만
가까이 보니 돌부리에 차이는 너덜겅길이더라
그 길을 걷다가
기억하기 싫은 안타까움이
고통이 되어 소리 없이 뒤에서 기대오면
오랜 시간 지났어도 나를 황폐한 기억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잘못한 것은 대부분 잊히지만
그 행동은 낙인이 되어
지금도 나를 미안하게 하고
아무리 후회하고 용서를 빌어도 받아주지 않는다
후회가 소용없어져
당신 앞에 산 자가 아닌
죽은 자가 되어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용서하실까
평생 무릎을 꿇느니 혀를 물고 죽겠다던 결기로
꿇을 무릎이 없다고 호기를 부렸건만
죽어서 무릎을 꺾고
당신 앞에 용서를 구하면
용서를 해주실 건가요
죽어서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죽음이 왜 두렵겠느냐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 까닭입니다
ㅡ요즈음 친구들은
어렸을 적 친구 종연이가 혼자 산다
목에서 내려오는 내 통증은 추위를 지나칠 정도로 싫어한다 올겨울에는 나만큼 추울 줄 알고 걱정했는데 잘 먹고 잘 살았단다 멀쩡하다 작년에는 두 번이나 혼자서 제주도 다녀오고 은근히 배신감이 든다 그를 잘 돌봐준다는 사람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단다 인연이란 질겨서 60년 친구 사이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 나는 팍팍하지만 그가 무던해서 그런다
그의 동생 종수는 여러 사람 괴롭게 만들다 췌장암으로 갔다 큰누님과 동갑이던 그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내키지 않아서 그를 괴롭혀온 동생 종원과 종옥이가 보기 싫다는 마음속 핑계를 만들어 가지 않았다 내 마음 괴이하다 양로원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바쁘니 오지 말라고 한 것은 지금 이때를 예상하고 그랬을까 중국에서 사업하는 절친 영남이 부친과 모친의 장례는 종연과 함께 참석했다 종연이가 부추겨서 그랬다 종연이 어머님 돌아가셨을 때 영남이는 함께 가자고 부추기지 않았다 셋을 어렸을 적 누님이 삼총사라 붙여주었다
아주 가까운 지인의 장례식에 가고 싶지 않은 건 장자가 마누라 장례 때 노래를 불렀다는 고사가 생각나서 나도 장자인 척하고 싶어 그런 건지 모르겠다 고모 장례는 어머님을 구박한 시누이로서, 아버지의 첩실 장례는 어머님의 묵은 화덩어리*로 어머님 화를 뒤늦게나마 풀어드린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당연히 상주들은 서운했을 것이다 질긴 인연 뚝 끊고 싶은 심경이었다
절친 안과의사 창수는 친구 중 용복이를 최고의 인격자로 둘째는 동준이로 치고 나는 열외다 나야 유명한 다혈질 보유자이고 그걸 자랑으로 알고 사니 서운할 건 없다
한밤에 깨나서 시집 출간 준비를 하다 문득 술 생각이 난다 집의 술은 세종시 공무원인 큰딸이 올라올 때마다 비워 지금은 거의 없다 마오타이주가 있지만 중국산이라 권하지 않고 적극 말려 그건 살아남았다 그미는 나의 술친구다 한 때 술이 친구였듯이
술맛을 모르는 아내는 그것들이 마냥 마뜩찮다
ㅡ빅뱅과 천지창조의 형이하학적 관계
성경 말씀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빛이 있으라’
해서 빛이 생겼다면
우주와 신의 선후 경쟁은
달걀과 닭의 비유만큼
유치찬란하다
창조와 이음동의인 빅뱅 때 신이 숨을 만한 공간과 시간이 없었다는 물리학자 호킹 박사의 익살은 힘찬 위트다
교황이 빅뱅을 온전하게 이해했다고 보지 않은 호킹은 '과연 빅뱅의 그 짧은 시간과 그 작은 공간에 신이 숨을 시공간은 없었다'고 비의秘儀적이며 냉소적 익살을 떨었다.
우리가 모든 이론을 다 발견했다면, 이는 인간 이성의 궁극적인 승리가 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과학을 이해하기 전에는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현재 과학은 보다 믿을 만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하느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의 의미는 '만약 하느님이 계시다면, 하느님이 아는 모든 것을 우리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난 무신론자다.'
힘찬 위트를 근거로 삼아 계산하여도
인도의 무량수無量數* 10의 68승을 넘지 못한다
3억 3천의 신을 가진 인도인의 한계다
유일신교가 빅뱅을 인정한 것은
창조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기묘한 꼼수다
갑자기 이신론理神論을 도입하여 만물 창조 후
각자의 능력에 맡긴다고 하며
능숙하게 빠져나갔지만
언젠가는 이성적 판단을 찾기 바라는
예상을 지구만큼 비껴갔지만
직업 종교인의 입장과 셈법이 맞아떨어진 증거다
빛이 있어도 빠져나갈 틈이 없어 혼돈의 세월을 흐느적거리다
전자와 양성자 중성자가 모여
모든 것의 근본인 원자를 만드니
그 사이 틈이 생겨 세상으로 나와 광자가 된다
나는 광자의 구성요소가 아직 궁금하다
원자핵이 없는 물질은 물질이 아니라고 알고 있으므로
광자가 없었다면 아무것도 만들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을 테니 보기 싫은 물건들을 보지 않을 수 있었는데
여기에 창조론을 대표하는 지적 설계론과 무신론적 불가지론자의 진화론*이 붙어 싸운다
여기서는 힘으로 싸우는 게 아니고 논리로 싸우며
반증은 식탁 위 숟가락과 젓가락 같은 절대적 무기다
결과는 빤한데 힘만 쏟아낸다
억지와 힘은 이음동의어다
그 논쟁으로 먹고 살 일이 없는
나는
이것을 힘차게 즐기며 목숨 걸고 4⋅3의 한라산에 올랐다
빅뱅과 천지창조와 죽음이 무슨 깊은 직접적 관계가 있겠는가마는 이것도 사람의 일이다
백록담을 바라보면
느닷없이
죽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죽으니 이름이 사라진 것이 슬프다
고 한라산이 말한다
한라산에는 유난히 산죽이 많다
그때 죽은 희생자 수의 만 배는 될 것이다
한恨은 수만 배는 늘어났을 것이다
무도한 자 이승만을 국부라고 칭하는 자들은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일까
궁금해서 답답한 바람 부는 날 오후다
종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수많은 성자가 다녀갔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무량수無量數 : 불가사의의 만 배가 되는 수. 즉 1068을 이른다. 모든 수 가운데 가장 큰 수이다.
*불가지론자의 진화론 :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물의 진화론을 내세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만큼이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지배적이었던 창조설, 즉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신의 뜻에 의해 창조되고 지배된다는 신중심주의 학설을 뒤집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인류의 자연 및 정신문명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신앙을 버린 이후 이신론과 불가지론 사이의 어딘가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ㅡ종교의 이기적 유전자
종교의 흑역사를 보며
실익이 없는 논쟁임을 안다
신을 알아야 시비를 걸 수 있다는 점에서
신의 역사를 공부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신에 대한 불만의 측면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시비를 거는 것은 하찮은 것이고
존재론적 관점에서 풀어 가면 증명이 불가능하다네
그렇다면 인식론적 측면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증명이 불가능할 때
스스로 존재한다고
논쟁의 본질을 비껴가는 것으로
피해가면
자신의 지성을 버리고
스스로 속인 것은 아닐까
신은 전지전능하다는 대 명제에 대한 반발에
그래서 너를 보내지 않았는가로 답하면
그것이 온당한 답이 되겠는가
수많은 폭력의 역사를 뒤집어 봐도
창조자로서
정당한 답이 될까
야훼가 여러 신 중 하나
전쟁의 신이었다는 것을 아는 자가 있었을까, 지금은 있는가
알고도 모른 척 하지는 않았을까
셀 수 없는 폭력의 역사를
외면하고서
오직 신은 하나다
참으로 철면피하다로
바람을 향해 소리쳐도
들려오는 것
그래도 바람은 서쪽에서 불고
간혹 남쪽에서 분다
종교의 이기적 속성 앞에
하릴없다
ㅡ운주사*의 꿈
운주사
천년 와불이 일어나면
장길산이
왕을 쫓아내고
새 세상이 온단다
희대의 어리석은 왕 인조는 자신의 아들이
먼 땅 전라도의 장길산과 내통해
자신을 쫓아낸다는 꿈을 꾼다
꿈은 아지랑이와 물거품과 그림자와 이슬과 번개와 안개를 닮아 해수관음 낙산사의 바다 속에서 떠오른
월출의 달이 되어 높이 솟았다
꿈을 잡을 수 없었던 어리석음은 애긋은 아들 소현 세자를 잡았다
천에서 하나가 없어 999로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알았던 길산은 꿈속에서 꿈을 꾸고서는
나주로 내려가 꿈을 모아서
진도로 몰려가 거문고를 만들고 바다를 건너 한라에 올라
흰 사슴과 하눌님과 함께
기어이
이어도에서 바다용이 되었다
나는 매일 밤 장길산*이 되는 혁명가의 꿈을 꾼다
*운주사 : 전남 화순군에 위치. 1942년까지만 해도 석탑은 30기, 석불은 213기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석탑 12기, 석불 70여 개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누워있는 부처님, 와불(와형 석조 여래불)이 일어나면 세상이 바뀐다는 전설이 있는 절. 도선 국사가 하루 낮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으나 불사가 끝나갈 무렵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꼬끼오"하고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모두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올라가버려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서 남게 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장길산 : 연산조의 홍길동과 명종조의 임꺽정과 함께 조선 3대 도적으로 언급되었다. 실록은 장길산이 도적 무리의 우두머리였고 일부 반역에도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홍길동, 임꺽정과 달리 장길산의 체포 기사가 실록에 없는 것으로 보아 장길산은 체포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은거활동지 황해도 산간마을. 전설과 실존인물 장길산의 시대 및 지역이 일치하지 않는다.
ㅡ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새벽에 잠 깨어 마주치는 신문에
차라리 청맹과니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였던가
아침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가장 나쁜 일상의 시작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던가
어머님 가신 4월마다 벚꽃이 되는 마음
그것을 날리려고 초록비는 왜 떨어지고
바람은 왜 불어서
마음을 철렁하게 해 놓고서는
인간의 이기심에 절망하게 하는가
해마다 내리던 4월 16일의 세월호 비는
올해 내리지 않아서
내 가슴의 멍이 풀렸다고 쓸어내려야 하는가
봄꽃이 지고 하필
라일락이 피어 도서관 앞길
최류탄을 생각나게 하는가
백목련은 늦게 피어 머리까지 하얗게 만드는가
혹시
이타적 논조를 기대하다가
역시
쓰는 자의 이기적 삶을 위한 거라고 마음을 포기하여 이토록 불편하게 하는가
그들의 오류와 과장과 편견과 왜곡은 전멸하지 않는이유를 모른다 왜 불멸의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가
'마음 좋은 자가 일등한다'는 허황한 기대를 갖게 하는가
해마다 4월이 되면
망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떠도는
유전자의 이기를 어쩔 수 없다
ㅡ겨울의 눈물 2023년 1월 8일
때때로 어머님 같았던 누님
보내드리고 돌아오는 길
고향땅 남도에는 겨울이 필요 없었다
그미의 곁은 항상 따뜻했기 때문이다
천생의 인연 따라
머언 유배의 땅 남도에서 서울
세로로 난 천리 길
부잣집 맏딸
처녀 때 오르고 싶었으나 세월이 하 수상해
여대생은 양색시가 되기 십상이라 해서 배재학당 다녀 서울 소식에 정통하던 아버지가 승낙하지 않아 가지 못한
그곳 서울
한이 되었다가
40년 지나
말 타고
여섯 돼지 몰고 밟았던 땅
마냥 진창이 아니었듯
마른자리도 아니었다
봄 되면 내리는 비는 남편 닮은 봄비春雨*
봄에 내린 비는 가뭄을 적셔주고
바쁜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일산까지 왔다
천수 누리고 피곤한 듯 하늘을 보다가
문득 눈이 멈춘 자리
겨울의 중심 밤하늘 북극성에서 떨어져 나온
북두칠성 첫 자리 추성樞星, 이제 다시 별로 돌아가
영철 옥경 영주 옥진 보경 준범 그리고 손자 손녀
며느리
별빛으로 지켜주리
죽음과 아쉬움이 만나면 무엇이 될까
눈물이라도 될까
깊어서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된다
*춘우春雨 : 매형의 실재 이름은 춘우春宇. 집 宇를 비 雨로 바꿔서 비유했다. 누님 돌아가신 뒤 1년 3개월 뒤 올해 지난 달 4월 2024년 95세에 돌아가셨다.
ㅡ혜덕암의 가을, 바람과 별과 꽃
천안역에서 버스로 50분 걸어서 산길 50분
위빠사나 명상센터 마하시 선원
아래
열 평 남짓 암자
명상과 문학의 오랜 산실이다
거미줄을 매일 걷어도
다음 날 새벽부터 집을 짓는다
이름 모르는 무명바람 맞으며 부산 떤다
기다림의 시간 가운데 마당에 핀 가을꽃들 세어본다
기억마저 희미한
아버지 장례에서 보았던 상장喪章들 닮았다
상장을 달고 몸을 흔드는 애도 ; 서양민들레 개망초 민들레 토끼풀 쑥부쟁이 털여귀 닭의장풀 벼룩이자리 뚜겅덩쿨 광대수염 별꽃 고마리 바다나물꽃 참취 털여귀 가는범꼬리 비짜루국화 개불알풀 왕고들빼기 애기똥풀 고마리 오이꽃 가막사리 강활꽃 송엽국
이들의 흔들림을 추적하면
만장挽章에 적은 그의 영광을 찾을 수 있겠는가만
밤에 피는 별꽃 ; 카시오페아 오리온 전갈 쌍둥이 물병 처녀 사자 황소 양 고래물고기
이들을 보살피는 바람이 보이고
웃는다
알고 보니
모두 너도바람꽃이 되어
바람이 분다
쓸쓸하다
마음이 맵다
또 살아봐야겠다
오래 비워있는 비구니 암자 옆
너도밤나무가 멀찍이 지켜보고 있다
ㅡ혼돈을 끝내다
칸트가
너에게 묻는다
어디서 왔는가 무엇인가 어디로 가는가
자유의지는 있는가
대답이 없자
너는 있는가고 묻는다
내친 김에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게 진짜인가?
정말로 있다는 게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인과응보의 권선징악적 결과는?
선과 악의 경계는?
의심해도 답해줄 존재가 없다
오래전 고대에는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며 스스로들을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존재로 단정 지을 때 그 당시 이해할 수 없던 현상들을 통틀어, 자신들 이상의 존재에 의한 간섭 또는 가호로 여기기 위하여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때만 해도 신은 현재의 인간형이 아닌 동물이나 괴물의 형상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 외에도 조상을 기리는 의미에서 조상신이라 칭하며 신격화시키거나 사람이 버틸 수 없는 자연재해 등을 신격화하는 등, 사람이 납득할 수 없거나 예절을 표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신을 속된 말로 양산하였다. 기본적으로 고대신앙은 다신론적인 성향이 태반이었다. 단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세력이나 국가가 겨룰 경우 정치적인 의미에서라도 패배한 국가에게 승리한 국가의 신앙이 강요당하며 이 과정에서 신의 강약 등이 분류되며 이런 신들을 통제하거나 다스리는 주신主神이라는 존재가 생겨났다
때때로 신은
파동으로 왔다가
사람들 눈 속에서는 입자가 되었다가
믿음이 사라지면
파동이 되어 부서져 사라진다
우리 신체는 72조 개의 말도 안 되게 많은 세포를 갖는다
10을 28번 곱하면 세포가 원자로 환원된 내가 된다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의 수에 붙일 이름은 없다
블랙홀의 수명은 10의 88승
이건 오류다 무한대의 수학적 표현은 10의 56승이라 하므로 그 이상은 없다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는 신이
만들 수 없고 만든 것이 아닌 이유가 충분하다
파장인 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세상에 내려오면 형체가 되는 입자가 된다
신이 세상에 내려오지 못할 이유로 충분하다
그런데
세상에 내려오면 신이 아니게 된다니
직업종교인이 만든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먼 훗날
비록 빛바랜 이론이지만 우주의 에너지가 다하면
다시 빅크런치라는 이름으로 쪼그라들어 빅뱅의 전 단계인 특이점이 되었다가
빅뱅이 일어난다
이것을 빅바운스라 한다
인플레이션을 거쳐
138-4.5=133.5억 년이 되면
다시 태어나는 내가 된다
시를 쓰면서
형이상학적 의문이 생기는 행태에 나도 지겨워져
이제 신에 대한 관심을 끊고
종교에 대한 관심도 끊고 혼돈을 끝내자
자꾸 신을 그리는 시를 그만 쓰고
답 없는 형이상학적 질문을 버리고
논리실증주의에 충실한 과학을 공부하며
사람 속으로 들어가 소설과 극본과 시나리오 등으로 관심을 돌려야 할까 그대여
ㅡ촛불이 부르는 마지막 노래
1
동쪽으로 창문을 낸 산사는 해가 짧아
어둠이 다가오면 촛불은 친구가 된다
방학이 끝나 친구들 떠나고 텅 빈 절 뒤에 남은 운명에 마음 스산하고
달 없는 하늘은 끝없이 검어
하릴없이 쳐다보는 책 옆을 지키는 초 한 자루
해마다 촛불의 그림자 뒤에 숨어 숨고 싶었다
법당의 촛불은 꼿꼿이 비로자나불을 지키고
관음보살을 지키고
문수보살을 지키고
오백나한을 지키는데
나 혼자 무엇을 지키려고
긴 밤 촛불을 켜고 무슨 꿈 피우려나
소리 없는 적막함 흐르고
라디오에서는 정미조의 ‘개여울’이 위로한다
내리는 밤비는 목 놓아도
내일은 썩어가는 고사목 그늘에서 버섯 피우리라
바람도 없는 방에 촛불 흔들리며 노래하면
모아두었던 꿈과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고
무너진 1년을 또 기다리는 것은 시간을 부여잡는 일이다
내일은 짐을 싸야지
절에서 뭐든 잡아먹는 것은 차마 할 짓이 아니다
맨땅에서 뒹굴더라도 등성이 너머 저잣거리로 나가야 한다
그런 것들이 쌓여 산을 내려가는 까닭이 된다
비구니 노스님은 가도 아주 가지는 마라신다
잊지 말고 언제든 다시 오라고 하신다
돋보기 너머 노스님 눈가에 촛농이 고인다
2
홍시 떨어지는 소리 들릴 때
촛불이 꺼지기 전에 반짝 밝아지는 것과
죽기 전에 잠시 정신이 돌아오는 것이
다를 것이 없다
촛불이 마지막 노래를 부르면
일주문을 나서며
새벽길을 떠나곤 했다
하늘로 보내는 새벽기도
어둑새벽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으면 내가 왜 일찍 일어나는지 안다 시집 마감일이 머지않아 정리해야 할 시점인데 아직도 시를 쓰고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안다 시를 쓰는 짓과 상선약수上善若水 마음속 수평을 유지하는 짓과 벽안碧眼 그미를 위해 기도하는 짓은 다른 짓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같은 짓이다 내게 기도는 남의 일이었다 길 가다가 사철 푸른 여호와의 증인 ‘깨어라’ ‘파수대’ 앞을 지나치며 우연히 눈에 들어온 성경보급판 두 책을 집에 와서도 버리지 않고 마치 정해진 수순인 양 편안하게 책을 펼쳤다가 이내 들어온 글자는 3대 불가지론不可知論이었다 그때부터 신의 초월성 신비성을 부정하고 모든 것에 신의 속성이 들어있을 뿐이라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입장에 서서 비로소 무신론적 불가지론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일생의 화두를 정한 것이다 우주의 시작과 끝과 신과 영혼의 존재와 인과응보의 결말이다 내 생에 그 결과를 어찌 알겠는가만 이번에는 꼭 알아야겠다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 하늘의 옳은 도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없다고 본다
1
착하디착한 벽안碧眼 그미는 암 중에서도 흔하지 않고 지독한 암과 싸우다 입 속 한 쪽을 들어내고 다리뼈를 이식해야 했다 투병 중인 그미와 식사를 하는데 겨우 미역국을 먹는다 마음이 미어진다 이타적 생활이 몸에 밴 그미는 하고 있는 일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다음 주말에는 수유리 굴찜전문집에 가서 생굴과 꿀찜을 먹어볼 것을 권해야겠다 10년 전 그미를 통해 붓다께서 설법한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지혜, 곧 사성제四聖諦와 연기법의 인연에 대해 알게 됐었다 윤회론의 결정판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가ㅡ재생에 대한 아비담마적 해석/구나라뜨나 지음’을 통해 윤회 이론과 과정을 배웠다 유식론(唯識論)과 더불어 나의 가장 중요한 불교적 지식이 되어왔다 국립국악원에서 이재화 거문고 명인과 가곡 김영기 명인이 공연할 때 빠짐없이 초대해줘서 훌륭한 시 재료가 됐다 그뿐이겠는가 그미의 보상을 모르는 무주상보시는 삶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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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대표는 옆집에 살아 경비실 주차장 재활용장 음식물처리박스 쓰레기처리장 등 공간을 공유한다 정경심 교수가 옥중이라 혼자 쓰레기봉투를 함에 넣고 재활용쓰레기를 정리하는 조국 대표는 내 눈에 그리도 자주 눈에 띠었다 가까운 것이 등을 돌린다고 한다 그미도 그도 세상과 너무 가까우니까 모진 일을 겪는다 그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조국 대표는 고통을 이기려 '니케의 눈물'을 냈고 정경심 교수는 슬픔은 혼자만의 슬픔인 양 '나 혼자 슬퍼하겠습니다'를 냈다 처절하다 딸 조민 양 또한 책에다 속풀이를 하는지 남긴 말 삼십 년을 살고서 ‘내 화는 내가 아니어도 남이 풀어주더라’ 며 ‘오늘도 나아가는 중입니다'를 펼쳤다 그미도 세상을 바라보고 웃는다 곱다 그들을 위해 오래 전부터 가슴에 담겨놓은 글을 꺼내놓는다
'천장강대임어사인야天將降大任於斯人也,필선고기심지必先苦其心志...... 하늘은 큰일을 맡기고자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의 마음과 의지를 고통스럽게 한다 이는 인내하는 성품으로 마음을 움직여서 그가 잘할 수 없었던 일에 보태어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맹자》 〈고자告子 장구 하(下)〉 고사의 출처다
그들의 오늘에 들어맞는 말이기 바란다 어제 수영장 친구는 조국 대표가 내가 사는 아파트 뒤 큰 길에서 택시를 잡고 있더라며 신기해하면서 내게 그 말을 전해준다 그가 내 이웃인 것을 아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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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시를 쓰는 일은 기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기도하는 것은 신 또는 하늘에게 말을 거는 짓이라 했다 그렇다고 내가 신의 존재를 믿는 짓은 죽어서도 아니다 내게 신이란 ‘세상 또는 자연의 이치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도 꼭두새벽에 일어난다 깨끗하게 비어놓은 놋쇠그릇을 친다 소리가 맑다 벽안의 얼굴이 떠오른다 정경심∙조국 대표의 불 켜진 방을 보며 마음을 엿본다 기도의 끝에 힘을 준다 무도∙무능∙무지∙무책임한 놈들과 떨거지들의 얼굴이 설치는 세상이 빨리 지나가기를 그들의 끝을 빨리 볼 수 있기를 지금은 조국 대표로 맹활약 중이다 차기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가 차차기는 조국 대표가 되기 바란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더욱 왕성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이낙연과 나는 고향이 같고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등 겹치는 부분이 많다 하여 친구들이 겹친다 내가 아는 그는 타인 특히 아랫사람에게 가혹할 만큼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더없이 관대해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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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5년 법대를 졸업한 법학사다 그후 건설사업을 하면서 IMF외환위기의 국가부도사태를 한복판에서 겪었다 기업회생절차를 진행하여 화의의 결정을 받았고 파산절차를 진행했다 민사 원고와 피고 또는 형사 고소인 또는 고발인과 피고인으로서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송사를 겪었다 그때 재판과정에서 겪은 경찰과 변호사, 검사, 판사에 대한 나름의 판단은 우리나라 사법체계가 많이 잘못되어 있다고 판단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유전무죄가 맞고 무전유죄도 맞다 가장 충격적 기억은 항소심 재판정에서 본의 아니게 살인사건의 선고 장면을 봤는데 피고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후 피고가 울부짖으며 던진 절규 “판사, 당신 잘못하고 있는 거야”라 했던 것이다 불완전한 존재들이 불완전한 사법체계를 운영하는 것은 ‘불완전×불완전’의 산술적 공식이 아니라 ‘불완전의 불완전 승’의 기하급수적 불완전 공식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이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기득권의 하방경직성이라 붙여도 좋은 것이다 그들이 사라지고 착한 법조인이 자리 잡는 것을 바라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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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을 겪은 나의 고통은 시간이 흘렀고 가해자는 세상 사람이 아니다 풀어줄 사람이 세상에 없어야 한恨이라고 하겠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지옥의 그에게 지장보살의 가피를 기도한다
3부
일이관지一以貫之
ㅡ산사의 비밀 노래
선운사 참당암에 울리는 어둑새벽 도량석은
누구를 깨우는 노래가 되는가
불경은 가사이고 음정은 글 속에 가려 있었어라
공양주가 두드리는 종소리는 구원의 노래
달빛은 반주곡 소리에 걸맞고
구름이 가리지 않아
온천지에서
눈 있는 자들은 모두 볼 수 있겠다
마지摩旨 알리는 한 번의 소리 다시 들리지 않으니
비 뿌리는 저녁 어스름
무슨 노래를 좋아했고
눈 내리는 달밤엔 무슨 노래였더라
반딧불이를 도깨비불로 착각했던 한여름 밤
여치 소리
과학을 공부하다가
부를 수 없는 비밀의 노래가
들리지 않는 노래임을 알고
느닷없이 들어오는 생각 하나
오랜 의문
아직도
마음은 입자인가 파동인가를 궁금해 하다가
쓸데없는 생각임을 누가 모르랴만
합삭의 밤하늘은 암흑 입자가 춤추는 파동의 밤인가 궁금해진다
깊어가는 가을
귀뚜리 노래는
의문 깊은 마음을 닮아 멀어졌다 가까워진다
춤 춘다
ㅡ‘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에서 찾은 ’화두는 은유다‘
판치생모板齒生毛 앞니에 털이 돋다니
스무 살에 받은 화두話頭다
도반 김진태는 전정백수자前庭栢樹子 뜰 앞의 잣나무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른다
제자가 이빨이 다 빠진 조주 선사에게 달마를 묻는다
선사는 120살까지 살았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달마가 서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조주는 답한다
판치생모板齒生毛 앞니에 털이 돋는다
파천황(破天荒)*, 은유의 극치다
조주는 바람이었고
제자는 아직 바람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고
바람의 색깔도 볼 수 없었다
다만
말이 새겨진 바람의 그림자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말의 의미를 몰랐다 불립문자不立文字
제자는 깃발이었다
바람에 깃발이 흔들리니
흔들리는 것은 깃발인가 바람인가
조주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마음이 움직이는 거라며 웃었다
*파천황(破天荒) : 천황'이란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때의 혼돈한 상태인데, 이것을 깨뜨려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비유의 표현.
ㅡ금강경 4중주를 위한 묘음妙音
금강경이 말하고 싶어하는 네 가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의 사상四相*이 있고
사구게四句偈*가 있다
세상의 모두여
우리 모두는 꿈을 꾸며 산다오
꿈은 행진곡을 닮아 경쾌하고 때로는 패잔병의 걸음을 닮아 무겁소
꿈속에서 보는 환상은 마치 장자의 나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드오
꿈속에서 현실을 조정하는 입셉션*을 쓴 작가의 상상력은 꿈을 뛰어넘소
물거품은 물을 따라 흐르다 물이 되고 마오
그렇게 되고 말 거라면 왜 거품을 만들었을까
당신은 그림자를 따라갑니까 그림자가 그대를 따라옵니까
하늘을 나는 광자(光子 : 빛)가 잠을 자는 사이
생기는 그림자를 당신은 볼 수 있습니까
바람과 풀과 나무와 하늘과 땅, 불과 물 '모두는 하나다'
반응하며
잠시 풀 위에 조용히 쉬어가는 이슬은 무엇이며 누구와 무엇을 위한, 무엇에 의한 몸짓입니까
모든 것은 번개처럼 생겨나 번개처럼 사라지며 다시는 같은 몸을 보지 못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일란성쌍둥이도 똑같지는 않듯
모든 것은 하나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며 각각의 하나도 그렇겠지요
쉼 없이 변하므로 허황해진 것들이 모여 세상을 이룹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마냥 허무한 것은 아닙니다
금강경이 위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너도나도 누구나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을 자세히 설명한 이유입니다
*사상四相 : 원불대 원영스님의 해석. 상相은 선입견, 멋대로 생각하는 것, 극단적인 주관.
아상(我相) - 나, 나의 것, 남이 나라고 불러주는 것
인상(人相) - 인간이라는 것, 인간의 우월성, 주체라는 것을 다른 동물. 다른 물질을 인간과 구별하여 하등하다는 생각
‘인간이 윤회하는 주체가 있다는 것을 내려놔라’ 의 주체
중생상(衆生相) - 인간과 붓다를 구별함을 내려놔라. 내가 중생이라는 열등감을 내려놔라.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없다는 생각.
수자상(壽者相) - 오래 살고자 하는 염원. 영원永遠이 있지 않겠는가.
무릇 이 사상(四相)에 머물거나 사상(四相)을 내지 마라. 그러면 보살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도중생을 할 수 없다.
*사구게四句偈 : 불교 조계종과 원불교의 근본경전인 《금강경》의 핵심사상을 간략한 4구의 형식으로 요약한 게송.
① 제1구게: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② 제2구게: 응당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 성ㆍ향ㆍ미ㆍ촉ㆍ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요, 응당 머문바 없이 그 마음을 낼 지니라.
③ 제3구게: 만약 색신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④ 제4구게: 일체의 함이 있는 법(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잘 살펴볼지니라.
*인셉션 :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용어. 한 사람의 꿈에 들어가 무의식에 특정 개념이나 생각을 주입하여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생각이나 개념을 자기 스스로 가졌다고 믿게 만드는 고도의 사고 조작. 인셉션도 추출과 마찬가지로 꿈속에서 '보안이 강력한 장소'를 매개체 삼아 타깃의 무의식을 구현시켜 그 안에서 표적에게 주입할 생각을 계속 말해준 다음 보안이 강력한 장소 안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거나 그 무언가가 놓인 상황을 변화시키면 인셉션은 성공한다. 인셉션의 성공 여부는 꿈의 깊이와는 상관없으나 난이도는 깊숙한 꿈으로 들어갈수록 낮아진다.
ㅡ일이관지一以貫之*
1
2023ㅡ06ㅡ20(화) 오후 7:30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반 1층 나 구역 2열 7번 (A석)
시조∙가곡
시간의 경계를 넘어선 시조시
마음에 짓고 호흡에 얹다
동짓달 북두칠성 아래 계면조界面調 천상의 소리 들리면
침묵 안으로 곱게 펴서 넣고서 가락∙박자를 올렸다
조는 듯 빠진 잠 속
잠이면 깨지 마라
날개를 접었다 펴고서 파고 들면 환장하겠네
거문고 합주 아흐 동동ᄃᆞ리 이밤사 달아 높이곰 도드사
동살 벽안 범일 강샘과 밤새 노니다가 깬 아침 아쉬운 듯
모두 오래 살으시라
지음知音의 동그란 경계에서 안으로 들어갈까 밖으로 나갈까
계면조 태평가 이려도를 부르노라
이리 보아도 태평성대
저리 보아도 태평성대
요 임금 때의 해와 달이요
순 임금 때의 하늘과 땅이로다
거문고 이재화 명인 가객 김영기 명인
함께 환장하게 잘 놀았다
2
서해안과 남해안이 만나는 곳
바닷가에서 가까운 동네 목욕탕 대동탕大同湯 유난히 뜨거워 싫었던 곳
동그란 욕조에 마음을 담고
반어법 ‘시원하다’ 이윽고 우러나오는
아버지들의 긴 박자 소리
청- 산ㅡ리ㅡ 벽- 계- 수- 야
수- 이ㅡ 감 을- 자- 랑- 마- 라
일- 도ㅡ 창ㅡ 해- 하-면
다- 시ㅡ 돌 -아- 오- 기ㅡ 어-려 ㅡ우- 니
좁은 목욕탕에 넓게 울린다
*일이관지 :
一: 한 일
以: 써 이
貫: 꿸 관
之: 갈 지
유가(儒家)는 인仁이 뿌리다.
증자(曾子)는 효심과 배움이 깊은 공자의 제자다. 어느 날 공자가 물었다. “삼(參·증자의 이름)아, 너는 내가 모든 걸 배워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증자가 답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스승님.” 공자가 말을 이었다. “아니다. 나는 하나로써 꿰었다(一以貫之).”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이 없다는 뜻인 일관(一貫)은 일이관지의 줄임이다.
앎이 빠진 창의는 담론일 뿐이고, 행함이 없는 언변은 수사일 뿐이다. 알맹이 없는 포장은 껍데기일 뿐이고, 근본이 허약한 외침은 메아리일 뿐이다. 뿌리가 바르면 가지도 바르다. 근본이 곧으면 말단도 곧다. 때로는 하나가 참 많은 것을 말해준다.
ㅡ바람이 불면 죄인이 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아파해야 하니 윤동주 님의 시는 나 개인으로 볼 때 기막힌 묵시록이다
바람이 불면 죄인이 된다 좋지 않은 업이 작동했을까
내 통증은 겸손과 반비례한다
소낙비로 만든 지붕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은 내가 비구름이 근처만 오면 목 뒤 어깨부터 오는 통증은 기압의 차이 때문이라는데 사건의 본질은 아니니 실익이 없는 논쟁이고
119차로 응급실로 실려 가기 전 이마를 지구에 부딪칠 때부터 가물거리던 의식은 언제 놓아버렸는지 모르겠고
눈을 떴을 때 아내는 고리눈을 하고
딸들의 눈물 고인 눈을 볼 때
그토록 사무치게 좋아하는 좋은 술을 끊기로 했다
의식이 깨어나서 통증을 호소하는 내게 모르핀을 투여한 후
의사가 와서 처음으로 한 말 “백만 개의 바늘이 팔을 쑤시죠?” 의사 점쟁이다
통증이 심해 모르핀을 계속 투여해야 했고
참지 못해 한 번 더 요구했어도 하루 세 번은 안 된다며 단호하게 거절하는 간호사
주치의가 찾아와서 꺼낸 낸 말 중 기억나는 두 번째 말이 “기계톱이 있다면 팔을 끊어버리고 싶죠?‘ 아니 이 사람이 의사야 점쟁이야!? 문진이 끝나고 ”수술하면 아주 조금씩 나아질 겁니다, 하루에 1mm씩.“ 목에서 팔 끝까지 1.2m이므로 3년 반은 걸리겠다고 추측했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에도 아플 수 있다니, 그 좋아하는 바람과도 이별을 해야 하네 바람의 신 엘렐과도 이별해야 하네
MRI 영상 판독으로 디스크가 빠져나온 상태로 보이는데 일단 열어보고 판단하겠다고 3 – 4 - 5 – 6 - 7번 경추를 열어보니 3 – 4 – 5번 사이의 디스크는 정상은 아니지만 4개를 갈아 낄 때 부작용을 고려하여 지켜보기로 하고 5 – 6 – 7번 사이 디스크는 떼어내고 의학용 인공 물질을 채워 넣고 삐뚤어진 경추를 하나의 티타늄 금속판로 고정시켜야 하는 수술을 했다 수술 후유증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통증은 아리고 쑤시고 저린다 표현하지만 복합 통증이라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기회가 되어 호기를 부릴 겸 시험 삼아 소주잔으로 막걸리 한 잔 마셨다가 온 손바닥이 불에 데인 듯 묘하게 쑤시고 아리고 저려 혼났다
원고지 800매 한 권과 600매 두 권의 단행본을 준비하다 공히 1/3씩 써놓고는 중단했다 손끝이 저리고 통증이 심해 자판을 두드리는데 보통의 고통을 넘어선다 더구나 오른쪽 새끼손가락 통증이 가장 심해 쉬프트 키를 누르지 못하니 ㅃ ㅉ ㄸ ㄲ ㅆ 다섯 개의 된소리를 두드릴 수 없어 오타 수정이 귀찮아 긴 글을 쓰는 것을 중단했는데 이것은 하늘의 뜻이다 아직 그만한 글을 쓸 실력이 부족하니 튀어나온 것들 부드럽게 더 연마를 하고 부족한 것들 채우고 다시 쓰라는 뜻이다 대신 시는 짧아서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국제상을 탄 작가 한강처럼 볼펜으로 자판을 두드려도 가능하니 시를 더 열심히 쓰라는 뜻이다 누구는 시인이 될 조짐이 있다는 계시라 하나 어림없는 말이다 ‘시인의 묵시록’이라도 쓰라는 건가
젓가락질을 왼손으로 할 수 없어 포크질을 하니 남사스러워 식사자리를 피해야 하니 용돈이 남아 좋다
스치는 바람결을 피하기 위해 팔 붕대를 감고 목 보호대를 해야 하니 자리 양보를 받아 좋고 따지고 보니 좋은 것도 많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몸이 괴로운 건 참고 살면 되는 거고 죽는 게 두렵지 않지만 한편 죽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하루에 1mm정도 신경이 복원될 수 있지만 점점 더 고물이 되어가며 별 쓸모가 없어졌으니 하늘도 거의 포기한 상태라 80% 복원이 되면 다행이다 목뼈가 7개인데 경추가 척추 통증보다 7배가 더 심하다는 의사의 말 - 그들은 절대 극단적 표현을 삼가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 에 나도 별 기대하지 않고 ‘아니면 말고’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아무리 아파도 경추는 건드리지 말고 아퍼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내 통증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세히 설명하는데 앞으로 통증 타령은 여기까지만
붓다는 선과 악의 결과물이라는 업이 있다는 증명은 할 수 없지만 있다고 해서 나쁠 것이 없고 유익할 뿐이라고 했다 나의 통증은 내 악업의 결과로 생각한다
통증은 끊임 없이 계속 이어가겠지만 궁금증을 풀어드렸으니 내 통증 타령은 여기서 그친다
ㅡ삶의 흐름과 결
젊은 날
정의를 외면하고 지식을 향하던
비겁한 정열이
먼 길 돌아온 듯
시가 되어 책상을 지킨다는 건 무척 고마운 일이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사건 사이에 존재하지만
동양의 성자들은 날숨과 들숨, 순간 사이에 너의 삶이 있다고 무겁게 말했다
삶이란
때때로 길고 무겁고 지루하다
2억 분의 1의 확률로 삶을 가지며
죽음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가를 의심하지만
여전히 답은 알 수 없다
삶은 시간의 일부이며
죽어서는 공간의 일부가 된다
그러므로
죽음 뒤에 숨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의 이중성*을 닮아
삶의 입자가 파장이 되는 것이 죽음이며
관측자가 봐줄 때 흐름의 결*이 맞지 않아
입자가 되어 형체를 갖추기도 하며
관측자가 없어 결의 흐름이 어긋나면
파동을 유지한다
이와 같이
결이 맞거나 어긋나면서
다른 방식을 통하여 환생 또는 재생의 흐름에 들어간다
사람마다 본래의 기질이라는 것이 있어 그와 맞는 행위를 하면 순작용을 하여 기의 순환이 원활해져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살다 간다
그러므로
너와 나는 삶과 죽음으로 이미 결의 흐름 속에 들었다고 한다
*모든 물질의 이중성 : 과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모든 물질의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이다. 그것은 파동과 입자의 동시적 공통성이다. 파동이면서 입자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관측에 따라 성질이 갈린다는 것은 사실 처음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초심자로서 빛이 물질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그것이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부터 양자역학은 시작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세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양자역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 사람은, 물리학자들이 인정하는 세 사람의 천재, 곧 아인슈타인, 볼프강 파울리, 리처드 파인만 중 양자역학자인 파인만이다.
*결 : 결맞음과 결어긋남은 양자역학의 모든 물질의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에서 나오는 언어이다. 곧 모든 물질은 파동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중 슬릿 시험에서와 같이 파동의 성질을 가진 광자를 슬릿으로 통과시켰을 때 관측을 하지 않으면 슬릿 구멍까지는 파동으로 와서 구멍을 통과해서 중첩현상으로서 스크린에 간섭현상의 무늬가 파동의 성질을 잃지 않고 투사되는 것을 결맞음이라 하고 슬릿 구멍까지는 파동으로 왔는데 구멍 뒤의 관측에 의해 입자로 변하는 것을 결어긋남이라 한다.
ㅡ가난한 수재들이 회한을 푼 53년만의 수학여행기
시산회詩山會 제443회 산행 2022. 9. 22~24. 2박 3일. 경주, 포항, 울산. 69인의 광주고光州高 졸업생. KTX와 두 대의 리무진 관광버스. 1969년 2학년에 수학여행을 갔는데 가난하여 반도 가지 못했다고 함. 전남북 시골의 수재들이 어렵게 광주로 유학 와서 자취하면 반찬 없이 장과 참기름으로 비벼서 끼니를 이어간 친구들이 꽤 있었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신화를 닮았다.
첫날
대구까지 KTX로 가고 거기서 리무진 관광버스로 갈아탔다. 처음 가는 곳 포항 영일만 호미곶은 상생의 손으로 유명하다. 국선도의 2인자 임경택 목포대 교수와 동석했다. 명상에 관한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간다.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가 스피커를 통해 심심치 않게 이어진다. 좋은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가슴과 뇌를 즐겁게 한다. 먼 바다를 보니 왼쪽으로 영일만이 보인다. 해안이 가려 안쪽은 보이지 않지만 멀리 떠있는 높고 기다란 화물선은 한가하다. 마도로스 전작은 세계에서 가장 큰 50만 톤의 유조선 선장을 했다니 그 배는 얼마나 클까, 흔히 크다는 30만 톤 유조선의 길이가 300m였으니 최소 400m는 넘었다고 한다. 항공모함이 300m이니 그보다 크다는 것이네. 상생의 다섯 손가락 끝에 서있는 갈매기가 조각인 줄 알았는데 지금 들락거리는 것을 보니 실제의 갈매기였다. 나가면서 1년 후에 도착한다는 우편엽서를 보내는 우체통 이벤트 아이디어는 그 옛날 첫사랑 소녀에게 말 한 번 건네지 못하고 그 사랑이 풋사랑이 되어버린 연애 실패 경험자의 작품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갓 태어난 손녀에게 썼다. 1년 후를 기약해본다.
간식을 넉넉히 공급했으므로 배가 고프지 않았으나 식사는 제때에 맞춰 먹어줘야 하는 법,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뻥‘조차도 미쁘게 봐줄 수 있는 죽도어시장, 횟집에서 회는 먹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마셔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기본 반찬과 회는 네 사람이 먹기에 충분할 만큼 푸짐하게 나왔다. 앞에는 갑무, 두 옆에는 처음 이름을 알게 됐으나 이내 잊혀진 이름들이 앉았다. 갑무와 나는 맥주를 한잔하는데 그 사이에 두 잊혀진* 이름들은 술을 못 마시는 것에 대한 화풀이를 하는 양 오직 회만 폭풍흡입을 시작했다. 초장도 찍지 않는다. 적어도 그날의 내 눈에는 젓가락이 움직이는 속도를 내 시선이 쫓아가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했다. 그래서 갑무와 나도 자신의 몫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술 마시기를 중도 기권하고 폭풍 속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바로 회 속에 빠져 숨은 가빠오고, 마침내 회 접시는 바닥을 보이면서 그들은 우리를 익사 직전에 구조했다. 우리의 몫을 빼앗긴 갑무가 ’회 추가‘를 외쳤다. 적어도 내 나쁜 귀에는 그 소리가 처절한 아우성으로 들렸음은 무리가 아니었다는 믿음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흐 동동다리!!! 달도 높이 솟았다. 소중한 경험과 뼈저린 기억은 오래 남는다고 오래 전에 뇌과학자들이 증명했다. 다행스럽게도 두 번째 접시에는 소중한 기억을 외면하고 싶었는지, 아무리 권해도 거의 손을 대지 않았으니 아쉬운 추억을 남겨주는 것으로 다시 오금을 박는다. 역시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현인들이 오래 전에 말했다. 식당 역사상 가장 많은 손님이었다니 좋은 일은 나눠가져야 하는 법. 잊힌 이름 둘이 회는 먹는 게 아니라 마셔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 한마당의 탈춤이었다.
*잊혀진 : 맞춤법으로는 ‘잊힌’이 맞다. 어감상 거의 상용어가 되어 사용하고 있으니 여기서도 사용한다.
ㅡ파레토의 법칙이 유도한 포기의 습관
당신은 가난한 자가 자기 계층을 경멸하는 보수를 지지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당신은 보수의 덕목을 아십니까
품위와, 용기, 애국, 희생정신, 예의범절 등입니다
이 시대 최고의 논객 유시민이니까 해도 되는 주장입니다
당신은 어느 누구에게도 손해를 주지 않으면서 모두의 이득을 증대시키는 20%의 역할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세상의 20%가 80%의 일까지 하고
80%가 20%의 일만 하며 산다
냉엄한 파레토 법칙이다
세상의 철학은 냉정하다
철학에 포근한 위로는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라 하고
어둠에 직면하게 하며
벼랑 끝에 서게 한다
절대자에 기대지도 말고
오롯이 스스로 알아서 행복해지라고 한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하여 태어나지 않았다
그저 태어났다
그 자체가 위대할 뿐이다
다시 강조한다
성공하는 법은 알기는 쉬워도
성공하기는 광야에서 바람을 조금도 맞지 않는 것처럼 매우 어렵다
실패하기는 쉬워도
실패하는 법을 알기는 사막에서 태양을 피하는 것만큼 어렵다
점심 한 끼를 먹더라도
갑의 줄에 서서 배우라고 한다
갑의 줄에는 의외로 괜찮은 사람이 많다
을의 줄에도 의외로 못된 자가 많다
함부로 능력에 관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비정상적인 자나 하는
매우 유치한 짓이다
기억하라
어쩌다
한 번 갑 또는 을로 확정되면
다시는 을 또는 갑으로 환원되기는 10배나 어렵나니
포기의 습관이 작용하여 신분 고착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파레토의 법칙 : 80 대 20 법칙.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 어느 누구에게도 손해를 주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이득을 증대시키는 파레토 개선과 파레토 개선이 더 이상 불가능한 파레토 최적이 있다.
ㅡ시인과 철학자의 가벼운 만남
남십자성을 볼 수 있는 바다에서 시인과 철학자가 만났다
ㅡ철학의 정의를 내려보시오
ㅡ자신의 사상을 개념의 언어로 풀어내는 일이오
진솔함과 배려가 그것이오 시詩란 무엇이오
ㅡ비유와 상징의 언어로 자신의 마음을 그리는 일이오 유한한 인간의 숙명에 가늘디가는 구원의 빛을 던지는 예술이 시라오
하늘을 스치는 별똥별이 빛나는 순간
ㅡ청년 철학자의 가슴은 시커먼 하늘에 우주의 신비를 파고드는 열정에 타오를 것이고
ㅡ젊은 시인의 가슴은 깊고 오랜 어둠으로 물들 것이오
ㅡ왜 죽어야 하오?
ㅡ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소?
ㅡ시간의 시작을 알고 있소?
ㅡ우주의 시작도 끝도 모르오
ㅡ철학은 광활한, 우연히 탄생한 우주에서 단 하나의 시원始原을 갈구하오만 시작을 모르니 끝을 알 수 없소
ㅡ인간의 시는 끝도 모를 시간의 바다를 떠도는 단 한 척 나룻배를 꿈꾸지요
ㅡ시가 구원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오직 인간을 위한 영원의 상징을 드러내는 데 있으며
ㅡ철학이 인간의 외부에 인간을 포함하는 거대한 내부가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오
ㅡ인간을 향한 구원의 언어로서 시는 인간이 속한 세계로서의 철학과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오
ㅡ이들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평행선은 인간만 누릴 수 있는 수사학인지 모릅니다
ㅡ만일 시인이 철학자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철학자가 인간을 무시한 우주를 꿈꿀 때뿐입니다
ㅡ그러나 철학이 우주에 대한 탐닉 끝에 오직 하나의 진실을 정의한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언제나 인간이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시인은 영원히 철학자를 존경할 겁니다
ㅡ시인은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벗어날 수 없어야 하오
ㅡ만일 철학자가 시인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시의 매혹에 빠지는 것이 두려운 열정적 탐구자의 자기 보호 본능이라고 보오
ㅡ시는 시인 본인에게도 철학자에게도 매혹적인 위안의 수단이기 때문이오
ㅡ그렇다면 시인을 무시하는 철학자의 심리는 무의식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의식적이고 그것은 시로 인하여 얻는 위안 때문에 진리를 향한 자신의 열정이 꺾이는 게 두려운 자의 의지적 노력이오
ㅡ언제나 시는 철학이 걸어가는 길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그들은 아직 만난 적이 없소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히말라야의 카일라스* 정상에서 다시 만났다
ㅡ차라투스트라가 고향과 고향의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 십 년의 세월 동안 지치지도 않고 정신적 고독을 즐기며 살았소
ㅡ지혜의 탐구를 위한 자기 고립이었지만, 그는 태양을 향해 "그대 위대한 별이여! 그대가 빛을 비추어 준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존재가 없다면, 그대의 행복은 무엇이겠는가"라며 이제 자신은 지혜를 베풀어주고 나누어주려 한다고 했소
ㅡ그렇다면 차라투스트라는 구도자의 차가운 열정과 구원자의 뜨거운 의지를 모두 갖춘 철학자이자 시인이며 동시에 시인이자 철학자인가요
ㅡ'신의 죽음’을 전하며 초인(Übermensch)을 가르치겠다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잠언이기보다는 장쾌한 사유思惟에 가깝소
ㅡ시적 비유와 표현력이 넘실대는 한 편의 아름다운 항해 속에서도 끊임없이 사유의 지혜를 전수하고자 하는 차가운 열정이 번뜩이오
ㅡ잘 가시오
ㅡ언제 다시 만나려나
ㅡ시간은 흐르지 않소
ㅡ과거는 기억에서 남소
ㅡ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소
ㅡ현재만 존재할 뿐
ㅡ존재를 의심하오
ㅡ지구는 동그랗소
ㅡ우리는 지구를 벗어날 수 없소 죽으면 모를까
ㅡ윤회를 믿소
ㅡ그런 거 없소
철학자가 가다 돌아서서
ㅡ강물처럼 흐르는 감성을 유지한다면 시간은 시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다오 부디 영원하시오
시인은 혼잣말로
ㅡ나의 시간과 그대의 시간은 다르오
서로 말없이 멀어져간다
*카일라스 : 티베트 어로 강 린포체. 티베트 불교는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으로 부른다. 힌두교, 뵌교, 불교 모두 성스럽게 여긴다. 다만 불교의 수미산 설을 부정하는 이론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의 대표작. 시인으로서 또는 철학자로서의 결정적 작품. 철학은 형이상학이고 시학은 인문학이다. 니체가 10대부터 말년까지 시를 적은 시인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을 별로 없는 것 같다. 니체 전집 제20권에는 소년 시절부터 말년까지 지은 시들이 모두 들어있다. 어쩌면 철학과 시의 궤도는 차라투스트라에서 가장 근접했었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둘의 만남이 성사되었다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
ㅡ나는 낭만시를 쓰지 않는다
유태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우슈비츠 학살 이후 낭만주의는 죽었다’고 했다
낭만주의자가 아니었다 해도
아우슈비츠 학살 사진을 보고 나서
마음이 변한다
억울한 학살의 현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문구
아무런 이유 없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서 아무런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 억울한 것이다
낭만주의에서 하나의 사조思潮를 보면서
낭만에서 시골의 평화로운 전원을 꿈꾸고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대한 동경을 담는다
다행히
수많은 시인 중 대부분이
낭만시를 쓰고 좋아한다
낭만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전통적이거나 이성적인 것 보다는 즉흥적 • 감정적 • 공상적인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비행기를 타고서 바다 건너
제주도에 내려 방향을 달리해
백록담을 오르지 않더라도
한라산 영실에 기어코 가야 한다
그곳에서
추전秋田과 만나는 상상만으로도
제주도를 가는 것이 즐거운 낭만이 된다
*아우슈비츠 학살 후에는 낭만주의는 죽었다는 한스의 말에 감동하고 공감했다. 역시 시는 설명하면 진부해진다.
* '낭만'이란 단어는 일본에서 나쓰메 소세키가 로맨티시즘을 음차하면서 쓰게 된 표기로, 한자 자체는 물결 ‘낭(浪)’에 흩어질 ‘만(漫)’으로 특별한 뜻이 없다. 한국어로는 낭만이지만 일본어 발음은 로만으로 한국에서 낭만주의와 로망, 로맨티시즘이 주는 어감이 다르지만 일본에서는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인다.
ㅡ예언자의 광시곡狂詩曲
예언자는 신에 의지하여 묵시록을 펼친다
자신의 거짓 능력을 알기 때문이다
미친 독재자처럼 부조리한 억지 주장은 이제 먹혀들지 않는다
미치고 나니 더 자유로워졌다는
칼릴 지브란의 수상한 주장을 믿어야 하나
그의 주장은 몹시 미묘하다
미치지 않아도 자유로워지는 치유의 방법은 많은데
신은 오지 않는다
희망은 올 수 있으나
그러므로 신과 희망은 동의어가 아님을 안다
우리를 고향으로 싣고 갈 배는 언제 오려나
그 고향이 20만 년 전에 떠나온 아프리카라면
우리는 그 배를 탈 수 있으랴만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면
영혼이 드리는 기도는 누구에게 드리랴
희망은 침묵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배는 언제 올지 모른다
배를 탄다 한들
우리는 허위와 위선의 틀 속에 갇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도시에 갇히는 것처럼
예언자여, 미친 자여
우리는 희망을 버려야 할까, 그리고 하늘이여
신의 자식들은 아직도 싸우고
그 싸움은 언제 그칠지 모른다
바다의 풍랑은 예언자의 묵시록처럼 폭풍우가 되어 지옥을 가리킨다
빙하기 때처럼 인류는 또 멸망해봐야 알까
까뮈의 이방인의 실존적 부조리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의 갈등
모두 살인과 관계있어도
젊었을 때 옆에 끼고 봤던 책들
세월 흘러 다시 읽으니 싱거운 이유는
지난 것은 싱거운 짓이기 때문이다
4부
동굴의 대화
ㅡ동굴의 대화
동굴에서 수행하는 구루*와 그를 찾아온 수행자가 마주 앉았다 서로 예를 갖추었다 한 나절이 지났다 마침내 구루가 말을 열었다
-어디서 왔는가
-간 적이 없으니 온 곳이 없소
-어디로 가려는가
-온 적이 없으니 갈 곳이 없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가
-가라고 할 때까지
-누가
-구루께서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오라고 해도 가지 않고 가라고 해도 오지 않소
갑자기 구루가 왼손가락 하나를 곧추 세운다
-거기는 끝이 있소?
-끝이란 없다 네 수명이 끝의 일부다
-수명엔 작은 끝도 없소?
-너희는 윤회와 환생을 믿지 않는가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소 파동일 뿐 윤회는 없소
그것은 현상에 지나지 않소 크기를 알 수 없는 입자와 형체가 없는 파동들의 동그라미에 지나지 않소
-죽음을 아는가
-모르오 대답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오
-죽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철학적 언어요
-철학은 무엇인가
-자살이오
구루가 돌아앉았다
수행자도 구루를 등지고 앉았다
마침내 오랜 기간이 지나 앉은 채 먼지가 된다
*구루 : 힌두교, 불교, 시크교 및 기타 종교에서 일컫는 스승으로 자아를 터득한 신성한 교육자를 지칭한다.
ㅡ하늘정원
정원을 꾸리기에 혼란이 있었지만
이내 불어온 솔바람과
들려오는 산새소리는
내게 주어진 숙명
꽃이 피려면 햇볕, 비, 바람, 안개, 구름
태풍과 천둥번개도 필요했다
아침에 해 뜨고 저녁에 달 뜨면
찾아오는 안락
신의 선물은
노란 난초꽃이었다가
농염한 수수꽃다리로
싸늘한 높하늬바람으로 변하기도 했으나
돼지저금통이 되기도 했다
간절한 해는 끊어질 듯 겨우 이어가면
겹겹한 능선으로 넘어 가지만
신의 선물은
여기 변함없이 그대로 있다
홀로 남은 생이 있어
내가 생각나거든 웃는 얼굴만 기억해주오
바람과 도봉산을 좋아했던 남자로 기억해주오
해가 지고 달이 뜨거든
삶은 아름다운가, 행복은 무슨 색일까
애절한 질문 끝의 답은 보이지 않는다
ㅡ불가지론*에 대한 관찰
신의 눈은 초월적 • 신비적 상태를 볼 수 있고
과학은 합리적 • 논리적 눈을 가지고 있으니
비교 불가한 것들의 논쟁을 위하여
중립의 기치를 세운 불가지론이 있다
우주의 시작과 끝
신과 영혼의 존재
인과응보의 선악적 결말
세 가지 대명제는 불가사의한 것들이니
불가지론에 맡기자고 해도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면
논쟁은 불가능하는 점에서
그들의 만남은
멀어서 각자 불타는 딴 나라의 등불이나 될까
신들의 전지전능을 믿는 자들은
기어이 창조론을 내세우며 신의 설계를 주장한다
과학은
스스로 존재한다
그래서 너희를 보내지 않았느냐
나를 보이는 순간 신이 아니다
를 핑계 삼으며 결코 보여주지 않는
신의 얼굴을 암흑으로 그리는 능력을 발산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가까운 철학을 통하여
자신에게 접근하지 마라고 종교에게 경고한다
유일신의 종교에서 분열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학살을 의미한다
*불가지론 : 불가지론의 3대 명제로 우주의 시작과 끝, 신과 영혼의 존재, 인과응보의 선악적 귀결을 꼽는다. 우주의 시작과 끝은 논리적 합리성에 바탕을 두고 증명한다는 것은 시공간의 제약 때문에 절대 불가능하다. 이 방식으로 판단하면 신의 존재 여부는 논리적 합리성에 바탕을 두고 판단하면 무신론으로 흐르게 된다. 인과응보의 선악적 귀결에 대하여도 선과 악의 모호성⋅복합성 때문에 결코 알 수 없지만 부정적으로 판단한다.
덧붙여서
①초경험적인 것의 존재와 본질은 인식 불가능하다고 하는 철학상의 입장. ②일반적으로 사물의 궁극적인 실재(절대자, 무한자, 신)는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입장. ③세계의 인식가능성을 부인하고, 인간은 의식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 실재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반(反)유물론적 주장이다.
그러므로 이런 대명제는 인간의 영역에서 판단하기보다 종교의 영역으로 두자는 중립적 입장에 선다. 유신론적 불가지론과 무신론적 불가지론을 주장하는 양론이 있다.
ㅡ회상의 새벽 그림자
동트는 새벽
동살* 퍼진 새파란 지평선 보러
불암산 올라가는 길
밝은 그림자 뒤로 뻗어 끝이 보이지 않고
지독한 올겨울 추위
내 몸을 덮는다
돌아보니
가뭇없이* 시간 속으로 사라진
젊은 축제가 끝나고
가팔랐던 삶과 그 끝 낭떠러지
앞은 안개 속 한 모퉁이를 닮고
겪어도 되지 않을 일을 피하지 못해
부아가 치밀고*
삶이 지저분했다
진탕으로 질척거렸다
그때 왼쪽으로 갔더라면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
갈림길에서는
숨차지 않게 쉬었다면
잘난 척 하지 않고 남의 도움말이라도 들었다면
간혹 물러서기라도 했다면
세 번 곱하기 세 번 참았더라면
내 삶이 이렇게 지저분하게 흐르지는 않았을 거다
지금처럼
버릴 것 많아져 좋은 날들 이어지고
새로운 인연 만들지 않고 건성건성 지내다
밤새 헛꿈 멀리하고 푹 자고서 맑아진 아침
질척이던 진창길 마르지 않았어도
그 속에서 꽃 피고 바람 불어
모르면 묻고 알아 즐거운
궁금한 호기심으로 꽉 차고
새벽과 저녁에는 두 손녀 키우고
낮은 수영으로 보내고
밤에는 장모님이 물려주신 무욕無慾의 안락의자에 앉아서
읽고 쓰고 지내니 주경야독晝耕夜讀의 축제
삶의 그늘 속 또 한세상을 겪는다
*동살 : 해돋이 전 동이 트면서 푸르스름하게 비치는 빛줄기. 해돋이 바로 전 여명이 드는 때를 흔히 ‘동트는 새벽’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때 동쪽에서 한순간 푸르스름하게 비치는 빛줄기. 동살은 직사광선이 아니고 반사 빛이며, 동살이 비치기 시작하는 것을 동살 잡히다‘라고 한다.
*가뭇없이 : 눈에 띄지 않게 감쪽같이.
*부아가 치밀다 : 부아는 폐장(허파)의 순 우리말로 화가 나면 폐의 기운이 위로 올라오는 것으로 ‘몹시 화가 나다’의 뜻.
ㅡ공정은 혐오로 자유는 불편으로 변한다
전남대 철학 교수 박구용이
대한민국 검사들이 직업상 흔히 겪는 인지부조화가 습관이 된 대통령과 같은 시기를 산다는 것은 한편으로 모두가 철학의 시대를 사는 것과 같다며 웃는다
지리산 천왕봉 구름을 싸고 도는 바람은
진도 울돌목으로 향하고
바다안개를 거두어 수평선 밑으로 침몰하는 해
산과 해는 우리를 감싸주는 것들
수평선과 지평선은 경계 너머 축제의 장
오만과 편견 속
공정은 혐오로
상식은 이기로
자유는 불편으로 변한다
정방폭포의 거친 물방망이를 맞아도
선악의 구별은 가능하지 않고
울돌목 소용돌이에 빠져 돌고 돌아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볼 수 없는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헤매다 돌아오니 그 자리다
직선의 길을 걸었으나
제 자리로 돌아온 것은
시간과 공간이 동그란 까닭이란 것을
알기에는 일생에 버금가는
세월이 필요했다
제 자리로 돌아왔으니
다시 떠나야 한다
길 없는 길 위서 죽기로 작정한 까닭은
도道와 길이 이음동의인 이유를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랜 성자는 삶을 고통의 바다
존재는 그 안의 섬이라 했다
이번 생의 마지막은 거친 바다에 떠있는 외로운 섬으로 가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ㅡ최후의 기우제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해 없이 피는 꽃은 없나니
구원의 양식으로 다가올
바람을 닮은 슬픔
어쩌지 못하고
세상은 비정하며 욕망은 어리석어
눈 먼 마음으로 가득 찰 적에는
결코
해는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바람 또한 움직임을 멈추고
시간도 흐르지 않아
오직 하나 최후의 기우제祈雨祭만 남는다면
그대여
우리는 어디로 흘러야 할까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랑을 하고
사랑은 희망의 다리가 된다
이윽고
해와 달과 별은 움직이고
바람과 구름은 서로를 모우고 흩어지며
어루만지다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면 시간도 흘러
해는 순식간에 시간이 된다
시간이 시계 속에 갇히듯
모두는 시간에 갇힌다
ㅡ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작품/ 페마 초드론*
어둑새벽마다 다가오는 옛 기억은 결코 달콤하지 않아 쫓으려하면 할수록 더 붙는 진드기마냥 새벽을 잡아두어 동살*을 끼고 도는 아침을 미룬다
하늘이 잔뜩 찌푸린 날의 아침 문을 열면 다가오는 혜덕암 삼층탑 옆에 간혹 저녁에 하나씩 쌓은 작은 돌탑이 간밤에 무너지지 않았는지 가슴 졸인다 지난여름 태풍도 견뎠는데 뜬금없이 걱정한다 결코 무너질 리 없는데
명상센터에 올 때마다 머리로 다가가지 말고 가슴에서 가슴으로 시간을 되새김질하자고 다짐했건만 회한의 상념은 머리 풀고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煙氣를 닮아 이내 메두사의 아홉 머리가 되어 갔다
시간을 되새김질하듯 천려일실千慮一失 만실일득萬失一得이 번갈아 일어나며
허우적거렸던 15년 전 삶은 질척거렸으며 많은 형용사들이 밤을 괴롭히며 태웠다
시가 내게로 왔다 바닥을 치고 삶이 피폐해버려 아깝지 않고 죽어도 아쉽지 않았으며 두려움 없이 맞섰다 하루 12알에서 16알의 진통제를, 시를 죽음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그것으로 오늘까지 살아있다 통증으로는 죽지 않듯이
죽음은 삶의 끝에서 일어나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 아니다 아무리 저항하려 해도 끝남은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 한 번의 호흡에도, 오늘 하루에도,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인간관계도 모두 끝이 있다 언젠가는 우리의 삶도 끝이 난다 하지만 끝남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다 그 시작의 문을 여는 열쇠를 찾는다
*달라이 라마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 100인에 이름 올린 페마 초드론은 『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작품(How We Live Is How We Die)』에서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의 바르도(bardo, 중음: 죽음과 환생 사이)를 주제로 끝남과 시작이 계속되는 삶의 흐름을 대하며, 무엇보다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함께 배워보고, 삶의 태도로 죽음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동살 : 해돋이 바로 전 여명이 드는 때를 흔히 ‘동트는 새벽’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때 동쪽에서 푸르스름하게 비치는 빛줄기를 ‘동살’이라 한다. 동살은 직사광선이 아니고 해가 떠오르기 전에 비치는 반사 빛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동살이 비치기 시작하는 것을 ‘동살 잡히다’라고 한다.
ㅡ도둑놈풀의 비밀
목욕탕 집 남자는 매일 노트북 속에 붙인 위악의 그림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섬뜩했다가
어느 새 반가워졌다
자신이 숨겨놓은 것은 선하다고 시작했지만
위선의 비밀
위악의 어리석음
외장하드 속의 은밀함
은행금고 속에 감추어둔 비밀통장
들과 다를 바 없다
온전한 비밀은
아름답다 못해 외로운 들꽃 보려고
들풀 숲 헤매다가
도둑놈풀의 도깨비바늘과 도꼬마리 묻혀와
부치지 못한 편지로 남아
겨울바람이 되어 가슴을 휘젓는다
비밀과 실수는 삶의 불가결한 요소가 되어
몸의 상처는 언젠가는 아물지만 마음의 얼룩은 쉽게 낫지 않고
기억 저편 깊은 곳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며
죽도록 허공을 떠돈다
목욕탕 집 남자는
마치 밤도둑과 소년의 자위를 닮은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고
대중탕에 가지 않는다
ㅡ시인으로 살아가는 법
1
입춘 지나 목련 흐드러지고
벚꽃도 흐드러지면 바람 불어 꽃비로 가로를 덮는 오후
뜬금없이 가을 느티나무 단풍을 떠올립니다
시인은 달무리가 뜨는 날 별빛을 섞어
미리내*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선
가본 적 없는 가시밭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는
조금 부족한 듯 그러나 부족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바람소리라 말하지 않고
사랑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이란 그리 행복하지도 슬프지도 않고
바람 부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남이 보지 않는 고어古語사전을 보다가 기막힌 단어를 발견해내고는
마치 철 지난 양복에서 만 원 지폐를 발견한 양 슬그머니 미소 짓는 사람입니다
간혹 비겁과 오만 양극을 넘나들다가 이내 범속해지며 새벽달이 질 때 기울기를 재면서 내 삶의 기울기는 얼마인가 궁리하는 사람입니다
별난 일들을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시인이라고 작정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왜 이 삶을 견디며 사는가
내가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삶이 나를 사는 것이거나
그냥 살아보는 것이거나
내가 삶과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꾸지 않는 삶은 진부하며
일일시호일一日是好日 매일 좋은 날을 꿈꾸며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여야 한다
마땅히 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2
시가 늘 어렵다고 말하거늘
어려움은 아픔과 다르지 않으며
시에도 아픔이 있다고 말해주시라
시는 돈이 안 된다
시를 쓰는데 돈이 들지 않는다
돈으로도 시를 쓸 수 없다
는 시의 속설에 이견은 없으므로
시가 아픈 이유가 된다
이 세 가지 아픔을 견디며 시를 지어본 사람은 안다
그것을 겪지 않고 시가 어렵고 쉬움을 따지지 마라
어려운 시에도 흥이 있어
춤사위는 유난히 멋드러진다고
에두르기
비틀기도 있고
억지부르기도 하고
비사치기/상징도 있고
바꿔잡기/환유도 있고
눅자치기/탈선법
너스레/류어법
변죽치기/풍유법
아퀴짓기/괄진법
에두르기/완서법
어거지/역설법
거꾸르기/반어법
토막치기/단서법
말장난/인유법 등도 있다
이렇게 많은 말의 춤사위를 배워본 사람은 안다
다시는 그 춤사위 아니고는, 없고서는
시 짓기도 세상 살기도 싱겁다고
시처럼 쉬운 것은 없노라며
노래 부르며 춤춘다
*미리내 : 은하수
ㅡ새벽에 시를 쓰는 이유
초저녁잠이 많아진 날의 다음 새벽에
시를 쓰는 이유는
구성이 치밀해야 할 단편소설을 쓸
지능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장편소설을 쓸 때 필요한 기억력이 떨어져서도 아니다
금방 감동을 줘야 할
희곡을 쓸 만큼의 감수성이 조금은 부족하고
대중성을 갖춘 영화시나리오를 써야 할 만큼
절박감이 없고
자신만 아는 논리를 쓰는
평론만큼 뻔뻔하지 못한데다
이 장르들이
더욱 성정과 체질에 맞지 않기 때문이며
시는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적당한 게으름을 갖췄기 때문이다
시 선생은 목적시, 사랑시, 종교시, 경구시 등을 쓰지 않기 바라지만 얼마나 남았는지 감안하거나 계산하기 어려운 시간, 그 시공간에 접어든 내가 그 말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기 때문에 내 맘대로 시를 쓰는 것이며 그것이 드물게 자유로운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몰래 새벽에 시를 쓰는 이유가 된다
ㅡ시간이 흐르지 않는 언덕에 서서
시간이 공간을 만나면
시공이 아니라 사건이라고 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데
사건의 이어짐을 두고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그렇게 지나가더라
라고 한다
현재는 사건이 이어지고
미래는 아직 모르고
과거는 탐심과 의심과 변심이 형태를 바꾼다
시간은 찰나로 이어진다
찰나는 구별할 수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공간을 재단하기 위해 자를 만들고
자는 시간을 재기 위해 시계를 만들고
시계는 시간을 가둔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신을 증명하기 위해 신전을 만들었듯이
시공간이 좁혀진 무욕의 언덕에 서서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안으로 들어갈까 밖으로 나갈까를 망설이는
봄 비 오는 날 종심의* 오후
스산하다
*종심從心 :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로부터 비롯된 세월 관련 용어가 끝나는 때다. 독일의 철학자 크리스티안 볼프는 공자의 이 말을 플라톤의 이데아를 몸소 구현한 경지라고 호평했다. 80세, 90세, 100세를 가리키는 말이 없는 이유는 공자가 72세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ㅡ갑오년* 동학의 민들레
갑오년 동학 혁명의 분노 솟구친 전라도 고부
바로 아래 성자聖者*의 빛이 퍼지는 땅 영광靈光
소소리바람과 함께 하나의 들불로 퍼졌던 동학의 눈물
걷잡을 수 없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였던 찰방 어른도 휩쓸렸다가
내친 김에
동쪽 땅 경상도 안동까지 몰려갔다지
내 앞 종가* 들렀다 학봉鶴峯* 할배 뵙고 민들레 홀씨 되어
하늬바람 타고 돌아왔더니
향교 안 은행나무 멀쩡한데
온 집안 춘향의 쑥대머리 닮아
우물가에 피던 민들레는 간데없고
힘 빠진 그 자리에 내려앉았네
가까운 훗날 6.25 민족상잔의 때
피의 혁명 사령부 불갑사에
꽃무릇 빨갛게 피고 지고
일원상一圓相 원불교圓佛敎는 백수白岫 염산鹽山소금 언덕 위에 앉았다
증산은 살아남아 증산도* 일으키고
동학은 3 · 1운동도 일으키고
배산背山의 운현궁 앞에 보란 듯이 수운회관* 높게 세우고
나철은 동학을 외면했다던가
내게는 아직
갑오년의 피 남아 돌아
끓어오르는 춘삼월
민들레는 들불 지나가면 더 무성하다며
점점 높아지는 노년의 전설 닮은 불길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하늘이다
광화문 촛불 닮은 듯
자주 그곳으로 간다
*갑오년 : 갑오동학혁명이 일어난 해, 1894년.
*성자聖者 : 소태사 박중빈. 영광 백수에서 발생한 원불교 창시자.
*내 앞 종가 : 의성 김씨 내앞파(천전파川前派) 종가.
*학봉鶴峯 : 김성일金誠一. 의성 김씨. 1591년 임란 전 일본에 조선통신사로 갔다와서 전쟁 준비에 관하여 정사 황윤길과 반대의 보고를 올려 오랜 논란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순국.
*증산도 : 동학혁명에 참여했던 증산 강일순이 일으킨 증산도. 대순진리회도 하나의 갈래.
*수운회관 : 동학 교주 수은水雲 최제우의 호를 따서 지은 천도교 중앙회관.
5부
에세이로 풀어가는 궁금한 세상
무호흡증후군
ㅡ무호흡증후군
요즈음 자주 떠오르는 말들
새옹지마塞翁之馬, 전화위복轉禍爲福, 일희일비一喜一悲, 호사다마好事多魔, 군주민수君舟民水 빛과 그림자, 동전의 양면 등 이런 경구와 구절은 언제나 뜻이 깊다.
앞뒤 상황을 면밀하게 따져봐도 모두 내 잘못으로 목을 다쳐 무의식 상태로 응급실에서 8시간 후에 깨어나서 만난 신경외과 과장의 첫 마디가 오른쪽 팔을 100만 개의 바늘이 찌르죠? 귀신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심지어 아내에게 장례 준비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니 믿기 어렵다. 의사의 방식으로 수술 직전까지 의사와 간호사에게 들은 이야기는 차마 부끄러워 담기 민망하다. 4층 전체가 신경외과 병동이었으니 38개의 병실을 운동 삼아 지나며 눈으로 본 상황은 참담했다. 특히 전신마비 환자가 눈에 띄게 많다는 것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할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었다. MRI검사 결과 3, 4, 5, 6, 7번 뼈와 그 사이 디스크(추간판)에 심각한 손상이 보이며, 수술하면서 판단을 하겠다고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으니 결국 별 도리 없이 경추유합고정술을 받았다. 목뼈는 7개 중 5번과 6번, 6번 7번 사이 디스크 두 개를 떼어내고 인공물로 갈아 끼었다. 치환置換이다. 더해서 부정렬한 5, 6, 7번 목뼈를 티타늄판으로 교정하여 붙였는데 X-ray 정면 사진을 보니 자전거 체인과 비슷고 옆면을 보니 앞으로 약간 굽은 상태로 긴 나사못을 뼈에 박아 고정시킨 모양이다. 의사는 약간 앞으로 굽은 모양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라 했다. 다행히 3번과 4번 사이 4번과 5번 사이는 손상이 덜 하고 그것까지 갈아 끼우면 생활하는데 너무 불편하므로 더 지켜보자고 했다. 다만 목뼈 7개 중 3개를 고정했으니 목을 세우거나 옆으로 돌리는 데 매우 불편하므로 심하게 고개를 젖히거나 돌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의 손상이 심해 재수술 불가하니 더욱 조심하라고 눈에 힘주면서 경고했다. 3년간 목 보호대와 오른팔 지지대를 장착하고 다녔으니 본인은 물론 보는 사람도 답답했을 것이다. 6개월의 경과를 보더니 장애인 신청을 해주었다. 아래는 소견서의 내용이다.
경추부 CT 검사상 3ㅡ4, 4ㅡ5번 추간판(디스크)이 중앙부로 넓게 돌출되어 약간의 cord 압박 인공추간판 교체 유합(삽입)술 경추 5, 6, 7번 전방고정술 경추부 회전 및 굴절 운동 기능 30% 영구 감소 경추부 통증이 심해 상지 방사통 저림 등의 증상이 동반 예상되므로 신경외과 또는 정형외과 진료 요함 하루 6시간마다 진통제 및 항경련제 3알 1일 4회 12알과 통증 심할 때 중간에 신경통증완화제 1일 4알 합 16알 장기 처방
19일 만에 퇴원하기 전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 재활이었다. 몸의 오른쪽이 반쯤 마비된 상태이므로 의사는 초기 재활은 퇴원 후 재활의 10배의 효과가 있으니 시간 나는 대로 재활실에 가라고 주문했다. 그게 주효했다. 퇴원 후 한때 포기한 적이 있으나 산우들의 독려로 헬스를 시작했다. 헬스트레이너는 수영을 함께 할 것을 권했다. 결과를 보니 수영이 탁월한 선택이 됐다.
수영하면서 가장 중요한 동작은 숨쉬기다. 그러면서 가장 어렵다. 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목이 앞으로 들리지 않으니 숨 쉬는 것이 어려웠다. 수영 코치는 무호흡 수영을 권했다. 바닷가에 자라서 수영의 기본은 알았다. 더구나 해수 풀장이 있어 여름방학 때는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다닌 기억이 있다. 잠영을 좋아했고 거기에 폐활량이 컸던지 친구들이 잠수왕이라고 불렀다.
코치의 권유로 무호흡 수영을 익혔다.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으나 차츰 적응하면서 25미터 풀을 쉽게 무호흡으로 수영했다. 25미터 잠영은 별로 힘이 들지 않고 쉽게 갔다. 힘이 드는 숨쉬기에서 벗어나니 헤엄치는 게 쉬워졌고 폼 및 자세가 좋아졌다. 롤링을 능숙하게 하게 되면서 목을 돌리는 것에도 점차 익숙해졌다. 고개를 들 수 없으니 호흡할 때 고개를 들지 않게 되었다. 가장 좋은 호흡은 수영의 기본인 자유형의 하프 페이스(Half Face) 형태다. 얼굴의 반만 물 밖에 나오는 형태의 호흡법이다. 한 쪽 눈은 물 안에 두고 한 쪽 눈으로 물 밖을 본다. 이 수영법은 속도가 빨라 이마가 물을 갈라 입은 물 밖에 위치하게 된다. 속도가 빠른 모토 보트가 물을 헤치고 나가면 앞이 뜨면서 뒤는 조금만 잠기게 되는 원리와 같다. 평영도 비슷하다. 배영은 더욱 쉽다. 가장 어려운 접영은 아직 반은 무호흡 영법이지만 호흡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새옹지마가 딱 들어맞는 상황이 됐다. 수영이 즐거워지고 따라서 운동량이 많아지면서 재활의 효과에 가속도가 붙은 상황이다. 체중은 7kg 줄고 그후 변함이 없다. 운동부족으로 오른쪽 다리가 약간 가늘어진 상태에서 코치의 권유로 재활치료용 숏핀 오리발 수영을 통해 양쪽이 거의 같아지는 효과를 봤다. 맨발로 수영하면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데 숏핀을 장착하고 수영하면 무척 피로한 것을 보면 운동효과가 있다고 확신한다. 더불어 통증 절감의 효과가 있으니 지금은 수영전도사가 됐다. 사고 이후의 상황을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 글 분량의 열 배는 될 것이다. 자세히 말한들 남의 일이니 금방 잊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 낭비다.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다보면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사자성어가 절묘하게 들어맞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교훈이 됐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린다. 내 통증의 원인을 알고 싶어하는 지인들이 있었지만 긴 원인과 결과를 다 말하기 번거로워서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치며 참았는데 이제 처음과 마지막으로 비교적 자세히 말한다. 다시는 내 입으로 통증을 말하기 싫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고 이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좋다. 글쓰기를 중단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ㅡ명상을 위한 도움말
명상하는 목적은 바른 생각을 정립하는데 있다. 생각의 고착은 다른 표현으로 자기중심주의의 감옥에 빠지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한다. 깨달음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오히려 깨달음의 늪에 빠질 수 있음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명상 중 나는 무엇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답할 수 있는 초월적 신비 현상을 겪을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깨달음인가 깊게 따져봐야 한다. 역시 명상은 지혜나 인격의 상승 같은 성찰보다 삶과 죽음의 우주적 관계의 통찰 같은 것에 더 비중을 둔다. 두 가지 성찰과 통찰을 이루기 위해 전방위적 방향으로 널리 사유思惟를 펼치고서 객관적 방식의 논증이 가능한 확고부동한 울림이 왔을 때 때 비로소 성자의 반열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자주 겪게 되는 생각 중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은 파도치는 바다에 떠있는 외로운 섬, 곧 인간이 닿을 수 있는 해방구에 가서 살아봐도 무방하겠다는 것과 같다.
ㅡ깨달음의 과학적 접근
수행을 하는 중 단식하면서 집중 명상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마음이 비어있고 집중이 잘 된 상태를 지속하다보면 이상한 혹은 흔히 말하는 신비한 • 초월적 현상이 일어나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두고 ‘불교와 뇌과학’ 강의를 하며 그에 관한 저서를 많이 쓴 뇌과학자 박문호 박사의 분석을 들어보자.
이런 현상을 깨달음의 전전두엽 인지적 현상이라고 한다. 주로 뇌의 외적 시상하부에서 일어나는데 공간이 사라지고 이미지 및 자아가 사라진다. 부교감신경이 작용하여 알기닌이 분비하고 바레프레소라는 기억물질이 분비하면서 소소영영해진다. 통증 같은 것도 사라지니 공황상태가 되면서 법열과 지복 현상이 일어난다. 베타엔돌핀과 흥분상태를 줄여주는 코리도졸과 바소프레신, 세로토닌과 그것이 변형된 멜라토닌, DMT라는 마약물질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으로써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때 신경세포를 죽이는 구르타메이트도 나오지만 이것이 많이 분비되면 정신분열현상이 되는데 희한하게도 그 직전에 멈춘다. 이런 물질들이 대뇌, 자율신경, 신경세포에 작용하여 나타나며 리얼리티가 극명해지고 이때의 기억은 평생 선명하게 기억하게 된다. 이런 상태를 박문호 박사는 ‘깨달음’이라고 붙인다.
정신분열은 자주 일어나지만 진정한 초월적 신비 현상은 20년 수행자도 평생 한 번 일어날까말까 하므로 이런 마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보임保任이 필요하다. 보임 기간은 사람에 따라 또는 얼마나 성실하게 집중하는가에 따라 다르다.
나의 경우 2016. 1. 20. 오후 스승 후덕산 이인 선생과 단식 명상 중 불가의 공안집 벽암록 제53칙에 나오는 화두 마조야압馬祖野鴨을 공부하면서 이상한 현상을 접하게 되었다.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할 때 원불교의 일원상을 보는 습관이 있다. 그때 갑자기 일원상이 뚜렷해지면서 마음대로 크기를 조절할 수 있고 가까이와 멀리 오고 갈 수 있게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때 명상의 끝을 알리는 죽비를 이인 선생이 치는데 그 소리에 뇌 속에서 두 번의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희열이 일어나고 복 받치는 감정이 생겼다. 이인 선생은 그것을 눈치 채고 ‘깨달음이 일어난 사람’하고 말했다. 손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고 옥상으로 달려가서 하늘을 보니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된 듯 온통 환희심이 일어났다. 가슴은 내가 봐도 이상할 만큼 심하게 부풀어 올랐다가 줄어들었다는 반복했다. 흔히 말하는 신비한 현상을 접한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내려와 이인 선생과 단독 면담을 하면서 ‘초견성初見性의 전형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후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현상을 겪었다. 불경의 독해가 쉬워지거나 욕심과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거나 감정의 기복도 사라졌다. 자신감의 결과일 수 있다.
이 현상은 올바른 스승의 지도로 집중과 선택의 방식으로 열심히 수행하면 누구나 가능한 경계라 생각한다. 깨달음의 결과를 바라는 명상은 절대 실패한다.
명상 중 나는 무엇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답할 수 있는 초월적 신비 현상을 겪을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깨달음’인가 깊게 따져봐야 한다. 깨달음의 인증을 혼자 자의恣意, 즉 제멋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무당이나 점쟁이로 전락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명상은 지혜나 인격의 상승 같은 성찰이 중요하지만 삶과 죽음의 우주적 관계의 통찰 같은 것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 성찰과 통찰을 이루기 위해 전방위적 방향으로 널리 사유思惟를 펼치며, 객관적 방식의 논증이 가능한 확고부동한 울림이 왔을 때 때 비로소 각자覺者 나아가 성자聖者의 반열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에 관한 짧은 생각
붓다는 애초에 영혼 같은 게 없다고 생각했기에, 죽음 이후에 영혼이 계속남아 있다는 주장도 당연히 거부했다. 붓다에 따르면 우리의 삶은 그저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발생하는 사건의 연속으로, 삶을 통일적인 하나로 묶어주는 영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죽고 난 이후에는 그 죽음이라는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또 다른 사건이 이어질 뿐이다.
따라서 붓다가 말하는 윤회는 소크라테스나 예수가 말하는 사후세계와는 조금 다르다. 붓다가 말하는 다음 삶은 내 영혼이 그대로 이어져서 생겨나는 게 아니다. 나라는 원인에 의해서 또다시 어떤 존재가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많은 불교도는 내 영혼 비슷한 무언가가 환생해 동물도 되고 신도 되고 하는 게 윤회라고 믿었지만, 그런 불교 신앙은 붓다의 철학적인 견해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떻게 보면 공자는 4대 성인 중 죽음에 대해 가장 독특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공자는 특이하게도 죽음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이게 그의 독특한 견해이다. 공자는 죽음 이후에 사람의 혼이 어떻게 되는지 묻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삶도 잘 모르는데, 죽음을 어떻게 알겠느냐?" 이는 단순히 죽음에 대해 잘 몰라서 대답을 회피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죽음보다 삶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가치판단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내가 죽었을 때 술동이를 두드리며 노래한 장자를 어떻게 봐야 할까.
오늘날 영혼은 없다는 전제로 풀어가는 현대 과학의 이야기를 올린다.
과연 영혼은 존재하는가? 인간의 정신은 ‘뇌’라는 물리적인 토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가? 물론 많은 신경과학자들은 지난 100년 동안 온갖 실험을 통해 ‘영혼의 가설’을 부정해왔다. 이들은 지금까지 ‘영혼’이라는 비물질적인 가설로 설명해온 정신작용들이 뇌의 생물학적 기저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로토닌 같은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바꾸고, 전전두엽처럼 특정 뇌영역에 전기 자극을 줌으로써 정신의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 학자들도 상당히 많다. 영혼을 추적해온 학자들의 노력 또한 그 역사가 깊다.
육체가 죽은 뒤에도 정신이 무언가를 경험한다면, 그것은 영혼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육체의 부활과 함께 정신의 경험을 보고하고 있다. 아직은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얘기다.
특히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에게 정신은 가장 놀라운 물리적 현상이다. 100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들은 그저 전기신호를 주고받을 뿐인데, 하나의 신경세포의 속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현상인 ‘정신’이 그들의 상호작용으로 탄생한 것이다. 무엇이 생명 이전과 이후를 가르고 있으며, 무엇이 의식 이전과 이후를 만들어낸 것일까? 이 창발성이야말로 물질세계의 가장 놀라운 속성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영혼이 존재하길 바라는 것일까? 인간의 고귀한 정신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정체성이 1.4㎏의 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육체가 소멸되면 정신도 함께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살 필요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그 상실감을 감당할 능력도 없다. 죽어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마저 없다면 어찌 이 험한 세상을 버텨내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이 냉정한 지구의 법칙, 우주의 속성이라면 영혼이라는 눈속임 없이 세상을 직시해야 한다. 육체가 우주의 먼지로 돌아갈 때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존재마저도 소멸할 수 있음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을 때 후회 없이 사랑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우리는 정신이라는 위대한 속성을 탄생시킬 만큼 물질이 그 자체로 경이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물질은 정신이 위대한 만큼 더불어 위대하며, 이 우주는 물질을 통해 ‘정신이라는 물질’을 이해하는 토대를 비로소 만들어낸 것이다. 덧붙여, 우리 사회가 영혼이라는 개념이 떠받치지 않고도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죽음 이후에 대한 불안감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고통스런 숙명 아닌가? 종교라는 아편이 없다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증명되기 전까지는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 회의주의적인 태도, 그러나 존재할 수도 있다고 믿으면서 열심히 탐구하는 열린 태도, 이 두 가지 태도를 함께 가지고 있으면서 세상의 모든 존재하지 않은 것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것이 삶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본다. 존재하지 않은 것들에게 휘둘리기에 우리의 짧은 삶은 너무나도 소중하니까.
ㅡ하늘의 큰 뜻 - 천강대임天降大任
《맹자》 〈고자告子 장구 하(下)〉편 수록된 문구이다. '천장강대임어사인야天將降大任於斯人也,필선고기심지必先苦其心志......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가 마음의 뜻을 세우기까지 괴로움을 주고 그 육신을 피곤케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몸을 궁핍하게 한다. 행하는 바를 어지럽게 하여 그 마음을 움직이고 인내력을 길러주어 그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한다.
시련과 역경이 성공의 전제조건이며, 인간의 능력과 인내력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고사는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 경험과 부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구를 보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조국 대표 일가와 이재명 대표 일가를 떠올린다. 왜 국민의 힘 쪽에는 없고 민주당과 관련 있는 정치가뿐일까! 답답하다.
ㅡ수학적 방식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던 괴델의 전제는 논리의 오류에 해당한다.
-안셀무스의 신은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인지될 수 없는 어떤 것’
–아퀴나스는 ‘신 존재에 대한 논증 거부’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신’은 가장 완벽한 존재이다. 가장 완벽한 존재가 가진 참되고 불변하는 본성의 부분으로서 존재의 관념이 포함된다.
-라이프니츠는 긍정성과 절대성을 부여. 즉 결승선에 앞에 세워주고 경기하는 것과 같다.
명제 : 가장 완전한 존재는 존재한다.
전제 : 존재는 완전성의 일부이다.
실재로서의 신은 존재한다.
그리고
신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불완전하다.
-괴델은 여기에 긍정성을 부여하여 존재 증명 시도한다. 괴델은 존재론적 증명(1970)에서 다섯 공리를 제시했다. 명제를 공리로 설정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왜냐하면 명제는 논리학적으로 뜻이 분명해야 하는 문장이어야 하며, ‘참’ 또는 ‘거짓’임을 검증할 수 있는 객관적 사태가 포함된 문장이라고 한다. 여기서 ‘가장 완전한 존재는 존재한다’는 문장은 증명의 부재와 더불어 분명 순환논리에 빠진 논리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그러므로 괴델의 3개의 정의定義와 5개의 공리公理와 2개의 정리定理를 수용할 수 없다.
-칸트는 세 가지 선험론先驗論적 개념을 설정했고 신은 선험적 개념에 포함된다고 설정.
첫째, 칸트는 신 개념이 ‘무한’과 관련한 이율배반二律背反으로 유도된다고 주장. 이러한 입장에 따라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3장 4절에서 신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비판.
둘째, 결국 ‘존재’는 논리적 술어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주장의 핵심.
신의 조건 및 성질은 무모순성無矛盾性 • 무오류성無誤謬性 • 완전성完全性 • 무한성無限性 • 긍정성肯定性 • 최상성最上性을 만족해야 한다. 오늘날 신학적 세계관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괴델은 자신의 신학을 ‘합리적 신학‘이라고 표명하였다. 합리적 방식에는 수학의 논리가 포함된다. 그 신학은 철학적 형이상학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나의 이론은 중심 모나드[즉 신]을 가진 모나드 이론이다. 나의 철학은 합리적 • 관념론 • 낙관론 • 신학적 철학이다.”
괴델은 유일신자로서 루터교도이다. 과학자적 양심에 따라 논리실증주의를 충족하는 신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으나, 순환 및 억지논리에 흐르는 것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생전에 발표하지 못하고 사망하였으므로 사후에 주변 사람들이 발표하여 오늘에 이르렀지만 크게 각광받지 못하고 있다.
ㅡ종교와 과학의 한계적 관계/불가지론
비교종교학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역사서를 보면서 신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의 타당성 여부를 알기 위함이었다. 거기에는 신의 존재 여부를 다투는 역사의 흐름을 포함했다. 그토록 오래 알고 싶었던 것에 기울인 관심에 비해 쉽게 결론을 냈다. 하나의 물질이나 현상의 존재와 부존재의 다툼에는 존재를 주장하는 쪽에 증명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존재를 주장하는 경우의 수는 무한하므로 논리상 무한의 개념은 증명이 불가능하고, 존재를 주장하는 경우는 물질의 경우는 관측 가능해야 하고 반론 가능해야 하며, 비물질의 경우 논리적 방법으로 증명하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의 부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경우, 세상 어디에도 볼 수 없고,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맛볼 수 없고, 촉감을 느낄 수 없, 마음속에도 없다는 등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충족시켜야 증명 가능하므로 결국 입증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유신론의 입장에서 범신론을 들어 ‘모든 것에는 신이 함께 한다‘고 주장한다면 원점회귀原點回歸적 순환에 빠지게 되므로 순환의 오류이므로 이 방법은 채택해서는 안 된다. 인류가 생존의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군집생활을 하게 되면서 언어를 발생시켰고, 인간의 힘으로 제어 불가능한 비, 바람, 해, 달, 바다, 불, 번개 등 초월적 자연 현상이 생기고 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뜻을 모을 필요가 생기면서 집단을 조종할 초월적 존재가 필요해졌다. 그때 신을 만들어 지금까지 관념적 상태로 존재해왔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필요에 따라 신을 만들었다는 것이 무신론이 펼치는 주장이다.
오래전 고대에는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며 자신들을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존재로 단정 지을 때 그 당시 이해할 수 없던 현상들을 통틀어, 자신들 이상의 존재에 의한 간섭 또는 가호로 여기기 위하여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인간의 오감으로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유신론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존재를 주장하고 있으나 과학이 주장하는 가치가 가지는 논리적 • 합리적 방법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없으므로 관념을 등장시켜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인식 논리를 펼쳐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논리적 타당성을 떠나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과 같아 보편타당한 통일 가치로 설정한 증명 논리로 판정할 수 없게 된다. 이때 등장한 것이 불가지론이다. 불가지론은 서로 물러서지 않으므로 완충지대를 설치하여 양자를 인간의 육감六感을 통한 판단 영역에서 분리하자는 논리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인간은 죽음을 아는 유일한 존재라는 걸, 그 외의 모든 생명체들도 늙기는 마찬가지지만, 인간의 일부는 현재의 삶에서는 자신이 죽음 앞에서도 윤회를 통하거나 영혼이 있어서 영원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답니다. 한편 그런 이유로 모든 종교와 과학 그리고 철학은 죽음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모든 죽음은 인간의 행동을 자극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 중 하나이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라는 존재가 영원하다는 환상이 깨지는 순간, 삶의 의미는 사라질 수 있으므로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형이상학 분야인 종교와 철학에서는 삶과 죽음,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명제 사이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궁극의 이론의 해법에 다가가서 삶의 통찰에 도달하려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꼽는 아인슈타인의 노력은 차라리 눈물 겹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물리학을 연구하면서 논리증실주의에 반하는 유신론자가 되기가 쉽지 않으므로 아인슈타인이 불가지론자였듯이 자신이 창조론을 부정하고 진화론을 창시했다면 당연히 무신론자였어야 할 다윈도 불가지론자였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오죽하면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까지 방정식을 풀면서 궁극의 통일장이론의 증명을 위해 온힘을 쏟았던 아인슈타인과 같은 유태인으로서 프린스턴고등과학원에서 점심을 매일 함께 먹었던 수학자 괴델이 ‘신의 존재에 대한 수학적 증명’이라는 명제를 두고 숫자와 기호를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노력했고 3개의 정의와 5개의 공리, 4개의 정리로 수학적 정리를 만들었지만 끝내 세상에 내놓지 않은 이유는 괴델만 알 수 있는 미완성으로 봐야겠지요. 물론 전제조건인 긍정의 정의부터 내려야 합니다. 정의는 반드시 참이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가 제시한 방식은 논리를 만족시킬 요건은 전제의 증명을 갖추지 못했으니 아직 미완성이라고 놔둡시다.
ㅡ모든 물질의 이중성
모든 물질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진다. 더 나아가 육체와 영혼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 인간에 대해 확장 적용해 보자면, 이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순간, 존재가 부정 당하는 신처럼, 신은 인간의 눈에 나타나는 것을 거부하듯이 인간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 증명을 영혼은 검증 받기를 거부하는 거죠. 영혼이 파동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영혼은 물질의 이중성을 인정받은 이중 슬릿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을 입자와 파동이라는 현상을 나타내려면 우선 인체를 파동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순간 죽음이 시작하고, 그러면 살덩어리로 변하고 인간임을 거부당하는 것이죠. 마지막 의문은 신은 파동일까요, 입자일까요, 영혼일까요? 참 신의 영혼은 신령이라는 이름을 붙여야겠죠. 신은 관념이므로 물질이 아닙니다.
ㅡ기억의 창고, 유전자의 창고, 아뢰야식
초기불교와 선불교를 비교 분석하다가 죄와 벌의 비유를 닮은 내 삶은, 결국 지구에 머리를 처박았다가, 목과 손이 굳어버린 나는, 손끝의 통증으로 오타가 자주 나오는 까닭에, 머릿속 창고에서 글을 쓴다. 밤이 되어서야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면 겨우 손가락이 풀려 미끄러운 펜으로 미끄러운 종이에 옮겨 적는다. 30분이 지나면 다시 손이 굳어 쓰기를 멈추고 기억의 창고에서 작업한다. 그러면 기억의 창고에 쌓여 있던 업 혹은 유전자와 섞여 뒤죽박죽된 기억들을 굳은 손으로 추려내지만 특히 하필 살지도 않은 100년 전에 들어와 굳게 자리 잡은 니체의 기억만은 떼어내기가 쉽지 않아 애를 먹는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갈등 때문에 망쳐버린 니체를 위로하기가 어려운 만큼
내 시는 어렵다고 한다. 신성로마제국 시대의 현 독일 국민의 5분의 2가 죽어버린 같잖은 다툼을 떼어내기 어렵고 야훼가 본시 창조자가 아닌 신 중 전쟁의 신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루터도 나를 괴롭힌다. 도대체 뭐가 중요하다고 이러는지 수많은 성자가 다녀갔어도 어지러운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성자가 나와야 세상의 만분의 일이라도 바꿀지 필요하다면 내 어디의 아홉의 아홉 배라도 내놓아야 할까 그대여.
어제는 4월의 바람이 불었고 오늘은 5월의 구름이 흐르고 내일은 유월의 축제라도 벌어지려나. 모레는 여름 소나기가 쏟아지려나. 우리 역사의 7월에는 무슨 큰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5월 18일 오후다.
ㅡ붓다의 윤회론
붓다의 가르침은 고대 인도 베다 문화 기반 위에서 발생한 윤회론을 배경으로 삼지만, 윤회론을 전제로 성립한 것은 아니다. 만약 윤회론이 필수였다면 붓다의 가르침은 인도 문화권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붓다는 연기론을 바탕으로 시작하여 사성제, 삼법인, 중도, 오온, 공, 유식론 등을 통하여 가르침을 펼친 것이다. 그러므로 윤회에 대한 붓다의 생각은 열반과 해탈, 영생과 인간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 등은 동전의 양면을 닮아 윤회론을 방편으로 간주하여 일체개고一切皆苦의 해소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열반은 해탈과 같은 영속(永續)의 논리가 아닌 해체의 논리로 설명한다. 잡아함경(권34ㅡ962)에서 열반이 마치 ‘불을 끈 것과 같아서 어디로 가거나 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하는 붓다의 언설을 통해서 분명해진다. 그러나 두 개념은 실체 개념에 비해 관점이 뚜렷하지 않아 양자는 혼재하여 사용하곤 한다.
붓다는 사촌 동생이자 석가족의 왕 마하남이 자신은 죽어 어디로 가겠느냐고 묻자, "나무를 벰에 있어 나무는 기운 쪽으로 쓰러진다(잡아함경 권93ㅡ930)"라고 대답했다. 윤회를 통한 내생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일을 만드는 오늘이라고 붓다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붓다는 신분제는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신분 고착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잦은 영토분쟁으로 발생한 전쟁은 왕족과 군인이 주축인 크샤트리야 계급이 브라만 사제보다 낮은 것에 대한 불만은 자연스러운 견해였다. 동시에 상업자본의 번영은 신분제를 강하게 흔들었다. 본인은 왕족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붓다는 공화제 부족장의 장자로서 브라만은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고귀한 행위를 통해서 완성하는 것(숫타니파타 ㅡ136 바셋따의 경)"이라고 한 것은 같은 연장선상에서 나온 말이다.
행정과 재판 등을 통해 바라문 사제들의 전횡을 보아 왔으며 그것을 개선하기 위하여 많은 토론을 해야 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완강했고 결국 출가의 길을 선택한다. 붓다는 그들 바라문 사제들을 직업종교인 또는 경제적 종교인으로 생각했다. 인간에게는 이기적 유전자가 선험적으로 존재하여 그 가문에서 출생한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인간과 신의 매개자로서의 특권을 대대로 누렸다.
붓다의 윤회론은 전생과 현생을 끊어야 할 필연성이 있었다. 그래야 현생에서 노력의 가치가 더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노력은 내생과 연결되어야 한다. 노력의 산물은 수행자 계위인 수다원에 이른다고 했다. 일종 시험 합격인 셈이다.
ㅡ왜 철학은 죽었다고 하는가?
그리스 철학은 과학과 함께 발달해왔다는 것은 역사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의심은 불에서 시작하여 물로, 4원소로, 숫자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모두 철학자였다. 철학이 신앙의 종교에 매몰되면서 과학도 같은 처지가 된 것은 당연하여, 철학과 과학의 암흑기를 맞았다. 이런 과정에서도 과학은 꾸준히 발달해왔다. 그러므로 과학이 말하기를 철학은 발달을 멈춰서 과학을 넘지 못했으므로, 더 이상 과학을 넘을 수 없으므로 철학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철학의 명제는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오늘날까지 과학은 발달하고 과학자는 수를 세기 어려울 만큼 많이 탄생한다. 그러므로 철학이 과학을 따라잡을 수는 없고 겨우 신앙의 종교에서 벗어나 합리의 과학에 합승하는 것이 바람직한 입장에 서 있다. 그러므로 철학은 죽었다는 주장에도 철학은 답하지 못한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는 과학과 철학의 명제가 둘이 아닌 하나의 명제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과학에서 해답할 수 있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철학의 대명제는 수없이 많겠으나, 중복하거나 곁가지는 쳐내고 중요한 10가지로 함축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0가지 철학의 명제*에 대한 물음에 과학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논리적인 증명을 통하여 답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 해답이 신빙성을 가진다면 철학은 과학을 모르면 청맹과니가 된다는 논리에 도달한다. 반대로 철학이 자신의 방식으로 이 물음에 대답한다면 과학은 웃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을 전제로 과학이 풀어내는 해답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과학이 말하는 ‘철학은 죽었다’는 주장에 동조할 수 있을까? 몹시 궁금해지는 봄날의 오후다.
*철학의 10대 명제 : 삶, 인간(자아), 언어, 지식, 예술, 시간, 자유 의지, 사랑, 신, 죽음
ㅡ무아의 윤회 – 불교의 기본 교리인 무아론과 시대적 배경에 따라 설정한 윤회설의 조화
무아론은 불교의 중요한 사상으로, 자아의 실체를 부정하는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아(무자성)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무아인데 무엇이 윤회하는지 궁금하시겠죠? 무아론과 윤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ㅡ엄정한 의미의 무아론
불교의 무아설은 ‘나〔我)〕’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실천적 의미를 담고 있다. ‘나’라고 하는 실체가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는 불교 수행자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무아는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이름 아래 설명되었고, 무아의 생명은 무아의 실천이나 무아행無我行이라고 하는 실천적인 면에서 살아 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고정성이 없는 무아이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무아성을 자각하여 수양하고 노력함에 따라 역경을 극복하여 더욱 향상할 수 있음을 뜻하고 있다. 그러므로 불교의 이상인 열반은 무아성의 자각 아래 철저하게 무아행이 이루어질 때 나타나는 경계이다. 이 무아는 일반적으로 크게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신라의 원효(元曉)는 그의 여러 저술에서 명쾌한 해석을 가하였다.
불교 무아론의 관점에서 자아란 찰나 생멸하는 무상한 존재다. 무야윤회에서 무아인데 무엇이 윤회하느냐? 윤회를 삶과 죽음의 관계로 보고 분리해서 생각하므로 삼법인 중 무아와 기본 이념 중 하나인 윤회가 부딪친다. 곧 연기의 적용을 받는 모든 존재는 자성이 없으며 그것을 공성이라고 한다. 공성은 실체가 없다.
무아설은 아트만(자아)을 불변의 실체로 인정하는 기존의 인도 사상과는 구별되는 불교 고유의 주장이다. 그러나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아(我)는 부정하면서도 아트만의 상주설(常住說)과 함께 인도 사상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윤회설을 수용하고 있다. 불교의 시각에서 무아와 관련하여 윤회하는 주체란 실체로서 존재하는 나〔我)〕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범부의 그릇된 인식으로서 존재하는 나〔我)〕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무아윤회(無我輪廻)’라고 부른다.
ㅡ윤회의 주체는 없다
붓다의 무아설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붓다는 윤회의 주체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윤회의 주체가 없다면, ‘누가 과보를 받으며 누가 열반을 성취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부파불교 시대의 논사들은 윤회의 주체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어떤 것을 고안해 내었다. 그것이 바로 설일체유부의 명근(命根), 대중부의 근본식(根本識), 독자부와 정량부의 보특가라(補特伽羅), 상좌부의 유분식(有分識, bhavaṅga), 경량부의 종자(種子, bīja), 화지부의 궁생사온(窮生死蘊) 등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업과 과보가 없다거나 윤회가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의 윤회설이다. 무아와 윤회는 결코 모순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 윤회의 주체를 배제하더라도 전생(轉生)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예컨대 한자경은 위의 경구에 대해 “인간의 업(業)에 대해 그 업과 독립적으로 업을 짓는 작자(作者)로서 상정된 자아란 그야말로 우리 자신의 설정이고 개념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자아라는 개념이 있을 뿐 실제로는 무아이며, 업과 과보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인과응보의 법칙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ㅡ불교 유식론의 아뢰야식에 의한 윤회
불교의 무아윤회는 윤회의 주체로서 중유(中有: 사람이 죽은 후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의 시간) 개념을 상정하였으며, 대승불교의 유식학(唯識學)에 이르러 아뢰야식(阿賴耶識: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으로 대체되었다.
구사론(俱舍論)에서는 ‘중유의 상속’ 또는 무상(無常)한 ‘오온(五蘊: 色․受․想․行․識)의 상속’으로써 윤회가 성립된다고 주장한다. 즉 중유라는 개념이 윤회의 주체를 연속시키며, 이것이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업력(業力: 선악의 행위가 남기는 잠재력) 또는 잠세력(潛勢力: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는 세력)의 상태로 있는 오온이다. 결국 중유의 상속에 의한 윤회는 ‘온갖 번뇌와 업에 의해 오염된 온(蘊)에 의한 윤회’를 의미한다.
아뢰야식을 장식(藏識) 또는 이숙식(異熟識), 종자식(種子識), 집장(執藏), 명근(命根)이라 하여 인간의 심층의식으로 상정하였던 유식학에서는 아뢰야식을 윤회의 주체로 보았다. 이는 기존의 상속이론보다 진전된 무아설의 일환이다. 아뢰야식은 업의 잠세력을 의미하는 습기(習氣)일 뿐이며 바로 이 점에서 그것은 무아적 존재이다. 한편 업과 아뢰야식은 엄밀하게는 다르지만 윤회의 주체로서는 같은 의미로 보는 입장도 있다.
ㅡ무아와 윤회의 공존
형이상학적 무아 해석의 여러 동향 중 하나는 무아와 윤회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이상적인 열반의 경지를 실현하기 위한 무아의 교설과 괴로움의 현실을 드러내는 윤회의 교설은 동일한 지평위에 아무런 충돌 없이 나란히 서게 된다. 이러한 논리의 귀결은 무아인 그대로 윤회를 한다는 것이며 또한 윤회하는 자체가 이미 무아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아와 윤회의 상충된 성격은 이미 해소되어 있으며, 오히려 두 교설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는 것으로 간주된다. 무아와 윤회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입장을 표명했던 많은 현대의 학자들이 이 부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윤회와 공존하는 무아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업과 과보는 있지만 짓는 이는 없다(有業報而無作者).”라는「第一義空經」의 경구가 지목되곤 한다. 행위와 그 결과로서의 과보는 존재하지만 그러한 행위를 짓거나 과보를 받는 별도의 주체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무아라는 것이다. 이 구절은 한마디로 불교윤회의 특성을 잘 말해주는 것이며, 새로운 생존의 발생에 대해서는 이전의 행위와 그 과보에 대한 언급만으로도 충분한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불교의 윤회란 이주(移住)나 재현(再現)보다는 재생(再生)이나 전달(傳達)에 가깝다는 견해에 찬성한다. 동일한 관점에서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영속적인 영혼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생존이 인과적 사슬로 묶여 있는 부단한 흐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속하는 실체 개념을 연상시키는 화현(化現)이라는 말을 피하고 대신 재생(再生)라는 말을 쓸 것을 권한다. 윤회의 주체를 배제하더라도 전생(轉生)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이 입장에 따르면 인과응보와 윤회는 연기(緣起)의 원리에 의해 뒷받침되며, 연기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신의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에 의존하여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연기설은 존재하는 어떤 것도 그 자체 안에 그것을 그것이게끔 하는 핵심본질 • 자성 • 실체를 결여한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무자성(無自性) • 공(空)을 내세우는 대승불교의 가르침으로까지 확장될 여지를 보인다. 무아와 윤회는 서로 공존할 뿐만 아니라 연기 • 무자성 • 공 등의 개념과도 소통 가능하다는 것이다. 곧 연기의 적용을 받는 모든 존재는 자성이 없으며 그것을 공성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아론의 결정적 근거가 된다.
ㅡ업에 의한 윤회
“윤회의 주체가 없이 어떻게 윤회가 가능한가.”라는 의문에 대해 ‘업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일부의 입장이다. 주체로서의 자아를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생존이 유지되는 사례로서 붓다와 팍구나(Phagguna) 존자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지목한다. ‘누가(ko)’ 의식(識)이라는 음식을 먹고 접촉하고 감수하고 열망하고 집착하느냐고 묻는 팍구나 존자에게 붓다는 그것은 좋은 질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자신은 ‘누가’ 무엇을 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대신 붓다는 ‘무엇에 의해’ 혹은 ‘무엇을 조건으로’ 무엇을 하게 되느냐의 방식으로 묻는 것이 좋은 질문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여섯의 감각영역(六處)을 조건으로 접촉(觸)이, 접촉을 조건을 느낌(受)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取)이, 집착을 조건으로 있음(有)이, 있음을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老死)가 있다고 덧붙인다. 이 답변은 주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의 생존이 가능한 이유를 해명한다고 할 수 있다.
업이란 인간을 구성하는 오온의 활동이 남기는 잠세력(潛勢力)이다. 잠세력은 오온이 파괴될 때 새로운 존재를 위한 연기적 조건을 만들고 그 결과 가아(假我)인 오온이 새롭게 형성되도록 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것을 ‘오온의 상속(相續, saṃtāna)’이라고 부른다. 윤회란 업 혹은 오온의 상속에 의해 이루어지는 까닭에 주체로서의 자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윤회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무아론과 업론은 내면적 연관성을 지니게 되며, 바로 그것은 불교의 업설 또는 윤회의 특수성을 의미하게 된다. 이와 같이 불변불멸의 주체 혹은 자아가 없이 윤회가 진행되는 것을 일컬어 다름 아닌 ‘무아 윤회’라고 부른다. 이러한 설명은 무아와 윤회가 공존한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규명하는 듯하며, 나름의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 사실이다.
정리
이와 같이 불교는 무아론을 기본 이념으로 상정하면서도 인도 전역에 퍼져있는 베다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윤회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랜 세월을 겪으면서 여러 논사들의 입장을 살펴본바 종합해서 정리한다.
오온의 상속을 묘사하면서도 그것이 최종적으로 종식되는 순간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 즉 번뇌가 근절되면 업이란 단지 작용으로만 남게 되어 윤회가 사라진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오온의 상속에 의한 윤회는 무한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며 설령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궁극의 목적에 해당하는 열반이란 바로 그러한 상속이 멈춘 경지에 다름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오온이란 찰라마다 소멸한다. 그러한 사실을 체득하게 되면 주체로서의 ‘인간’이란 해체되고 더 이상 윤회란 가능하지 않게 된다. 이 점에서 윤회와 공존하는 무아란 와해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번뇌를 지닌 존재들은 새로운 모태에 들어간다. 즉 무아임에도 무아를 수용하지 못하는 까닭에 윤회에 떨어지게 된다. 무아를 체득하지 못한 그들에게 윤회란 엄연한 현실의 세계가 된다. 구사론의 관련 구절은 깨달은 이의 입장에서 그러한 사실을 환기시키는 가르침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중유라는 개념을 고안하여 윤회의 매개로 설명한다는 점에 특색이 있다.
청정도론의 해당 구절은 번뇌의 소멸을 통해 윤회가 종식된 경지로 나아가는 과정을 선명하게 밝힌다. 오온의 상속에 의한 윤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연료가 다한 불처럼 집착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붓다는 스스로의 가르침에 대해 괴로움의 제거를 목적으로 한다고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목적에서 벗어난 사변적 견해는 열반의 성취에 보탬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언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괴로움의 현실을 조장할 뿐이다. 이 점에서 붓다의 무아는 사변적인 방식으로 제시되는 ‘자아에 대한 주장(自我論, attavāda)’을 거부하는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집착의 제거라는 실천적 관심에 소용이 되는 한에서 무아의 교리를 펼쳤던 것이다.
모든 것은 연기의 적용을 받으며 연기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은 홀로 존재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자성自性이 없으므로 공空하다고 간주한다. 자성이 없는데 인식작용이 찰나 생멸하며 이어지는 것은 촛불이 옮겨 붙는 것과 같은 비유가 가능하다. 촛불이 옮겨 붙는다면 이 촛불과 전의 촛불은 같은가? 다르다. 그러나 속성은 비슷하다. 그래서 동일성은 없으나 계속성은 유지한다. 이와 같이 윤회를 육신에 한정하여 삶과 죽음의 변화 관계로만 보지 말고 유식唯識 곧 인식작용의 변화로 보면 무아인데 무엇이 윤회하느냐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혹자는 유식이 윤회하고 또는 육신이 해체되었다가 좋은 업끼리 모여 생성되면서 육신을 새롭게 생성하는 것으로 윤회를 이어간다고 한다. 과연 자기동일적 연속성을 유지하는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가, 붓다는 그것을 부정한다. 더해서 나로 인해서 계속되는 자아는 연기의 자아와 업의 자아인 오온인 것이다.
오온이란 무엇인가? 색수상행식 오온이다. 색(色)은 모인 물방울 같고 수(受)는 물 위의 거품 같으며, 상(想)은 봄날의 아지랑이 같고 행(行)은 파초나무와 같으며, 식(識)은 꼭두각시와 같다. 색수상행식 각각의 온이 모두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의 인연 화합으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오온에 있어서는 전체로서도 그 각각의 요소로서도 궁극적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무아론은 자아의 실체를 부정하며, 윤회는 생사를 거듭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아론적 윤회론은 현상적 자아의 연속성과 행위의 책임성을 강조하며, 실체적 자아의 자기 동일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이는 무아와 윤회의 양립을 시도하는 입장이다.
불교의 이러한 철학적 측면은 현대적인 사고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형이상학적 무아 해석의 여러 동향 중 하나는 무아와 윤회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이상적인 열반의 경지를 실현하기 위한 무아의 교설과 괴로움의 현실을 드러내는 윤회의 교설은 동일한 지평위에 아무런 충돌 없이 나란히 서게 된다.
붓다는 오온의 집착에서 벗어나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면서 해탈의 경계로 들어서는 것이 열반이며, 비로소 윤회의 끈을 끊게 된다고 주장한다.
편집 후기
지아와 유나, 두 이름이 내 삶에 들어왔다는 것은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고마운 일이다. 두 이름은 꺼질 듯 겨우 비틀거리던 말년의 나를 끌어주는 힘이 되어주었다. 두 이름이 내 안에 들어와 지친 삶을 지탱해주며, 지쳐서 희미해가는 삶에 힘을 불어주는 횃불을 닮았다. 초를 지탱해주는 쌍촛대다. 두 손녀를 키우며 지낸 주경야독(晝耕夜讀)의 5년은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로 본다. 주경야독(晝耕夜讀) 1기의 끝 열매로서 제5시집은 산고가 컸다. 두 손녀를 낳으면서 겪은 산고만 하겠는가. 덤으로 육아시간 중 짬을 내며 배운 수영은 그미들이 준 별다른 선물이 된다.
시를 쓰고 정리하는 공간이 혜덕암이 아니어도 될 줄 알았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집에서는 집중을 하기 어려워 수많은 시 메모 쪽지를 정리하는 일조차 힘들었다. 5집을 내기 위해 과학 서적과 씨름하듯이 살고, 두툼한 고어사전과 순우리말사전, 수사법(말부림새)사전, 시어사전 등을 옆에 두고 지냈다. 시를 짓고 마무리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서 다시 또 시론을 읽고 머릿속에 정리하는 짓마저도 쉽지 않아서 설마 공간 탓은 아니려니 생각하지만 늦어지는 데에 다른 핑계는 궁색하다. 해서 1년에 한 권씩 내던 작업이 4년이 넘어가도록 마냥 앞으로 나가지 않았으니 나만의 작업 공간이 이토록 아쉽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나마 굽힐지언정 꺾이지 않았으니 잘 된 일이다. 하지만 내 가난한 넋은 무엇이 그리 고픈지 매양 잠을 설치고 산다.
시우詩友들은 시우(時雨 : ‘늠름한 계절비’로 해석)처럼 고민 같지 않은 고민을 해소해주었다. 문학생활을 유지하고 시집을 내는 것이 용기가 필요했다. 창작물을 낸다는 것은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과 비슷하다. 시우들은 그런 것들로 생긴 스트레스를 쉽게 풀어주어 지금도 그들의 힘을 받고 있다.
문학의 1기를 마감하고 2기로 나아간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시우들이 있어 힘이 되어주므로 앞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
2024. 5. 23. 도봉 김정남
詩山會블로그 blog.daum.net/yc012175
티스토리 kjn1217.tistory.com
무호흡증후군
2024년 5월 20일 초판 1쇄 인쇄
2024년 5월 23일 초판 1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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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디자인 : 서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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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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