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둘레길을 걷습니다(詩山會 제493회 산행)
때 : 2024. 9. 22(일) 11시
곳 : 전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뒤풀이 : 생선구이(수어지락)
1.시로 시작하는 산행일의 아침
시인과 철학자의 가벼운 만남 / 도봉
남십자성을 볼 수 있는 바다에서 시인과 철학자가 만났다
ㅡ철학의 정의를 내려보시오
ㅡ자신의 사상을 개념의 언어로 풀어내는 일이오
진솔함과 배려가 그것이오 시詩란 무엇이오
ㅡ비유와 상징의 언어로 자신의 마음을 그리는 일이오 유한한 인간의 숙명에 가늘디가는 구원의 빛을 던지는 예술이 시라오
하늘을 스치는 별똥별이 빛나는 순간
ㅡ청년 철학자의 가슴은 시커먼 하늘에 우주의 신비를 파고드는 열정에 타오를 것이고
ㅡ젊은 시인의 가슴은 깊고 오랜 어둠으로 물들 것이오
ㅡ왜 죽어야 하오?
ㅡ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소?
ㅡ시간의 시작을 알고 있소?
ㅡ우주의 시작도 끝도 모르오
ㅡ철학은 광활한, 우연히 탄생한 우주에서 단 하나의 시원始原을 갈구하오만 시작을 모르니 끝을 알 수 없소
ㅡ인간의 시는 끝도 모를 시간의 바다를 떠도는 단 한 척 나룻배를 꿈꾸지요
ㅡ시가 구원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오직 인간을 위한 영원의 상징을 드러내는 데 있으며
ㅡ철학이 인간의 외부에 인간을 포함하는 거대한 내부가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오
ㅡ인간을 향한 구원의 언어로서 시는 인간이 속한 세계로서의 철학과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오
ㅡ이들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평행선은 인간만 누릴 수 있는 수사학인지 모릅니다
ㅡ만일 시인이 철학자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철학자가 인간을 무시한 우주를 꿈꿀 때뿐입니다
ㅡ그러나 철학이 우주에 대한 탐닉 끝에 오직 하나의 진실을 정의한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언제나 인간이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시인은 영원히 철학자를 존경할 겁니다
ㅡ시인은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벗어날 수 없어야 하오
ㅡ만일 철학자가 시인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시의 매혹에 빠지는 것이 두려운 열정적 탐구자의 자기 보호 본능이라고 보오
ㅡ시는 시인 본인에게도 철학자에게도 매혹적인 위안의 수단이기 때문이오
ㅡ그렇다면 시인을 무시하는 철학자의 심리는 무의식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의식적이고 그것은 시로 인하여 얻는 위안 때문에 진리를 향한 자신의 열정이 꺾이는 게 두려운 자의 의지적 노력이오
ㅡ언제나 시는 철학이 걸어가는 길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그들은 아직 만난 적이 없소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히말라야의 카일라스* 정상에서 다시 만났다
ㅡ차라투스트라가 고향과 고향의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 십 년의 세월 동안 지치지도 않고 정신적 고독을 즐기며 살았소
ㅡ지혜의 탐구를 위한 자기 고립이었지만, 그는 태양을 향해 "그대 위대한 별이여! 그대가 빛을 비추어 준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존재가 없다면, 그대의 행복은 무엇이겠는가"라며 이제 자신은 지혜를 베풀어주고 나누어주려 한다고 했소
ㅡ그렇다면 차라투스트라는 구도자의 차가운 열정과 구원자의 뜨거운 의지를 모두 갖춘 철학자이자 시인이며 동시에 시인이자 철학자인가요
ㅡ'신의 죽음’을 전하며 초인(Übermensch)을 가르치겠다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잠언이기보다는 장쾌한 사유思惟에 가깝소
ㅡ시적 비유와 표현력이 넘실대는 한 편의 아름다운 항해 속에서도 끊임없이 사유의 지혜를 전수하고자 하는 차가운 열정이 번뜩이오
ㅡ잘 가시오
ㅡ언제 다시 만나려나
ㅡ시간은 흐르지 않소
ㅡ과거는 기억에서 남소
ㅡ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소
ㅡ현재만 존재할 뿐
ㅡ존재를 의심하오
ㅡ지구는 동그랗소
ㅡ우리는 지구를 벗어날 수 없소 죽으면 모를까
ㅡ윤회를 믿소
ㅡ그런 거 없소
철학자가 가다 돌아서서
ㅡ강물처럼 흐르는 감성을 유지한다면 시간은 시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다오 부디 영원하시오
시인은 혼잣말로
ㅡ나의 시간과 그대의 시간은 다르오
서로 말없이 멀어져간다
*카일라스 : 티베트 어로 강 린포체. 티베트 불교는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으로 부른다. 힌두교, 뵌교, 불교 모두 성스럽게 여긴다. 다만 불교의 수미산 설을 부정하는 이론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의 대표작. 시인으로서 또는 철학자로서의 결정적 작품. 철학은 형이상학이고 시학은 인문학이다. 니체가 10대부터 말년까지 시를 적은 시인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을 별로 없는 것 같다. 니체 전집 제20권에는 소년 시절부터 말년까지 지은 시들이 모두 들어있다. 어쩌면 철학과 시의 궤도는 차라투스트라에서 가장 근접했었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둘의 만남이 성사되었다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
ㅡ 도봉의 시집 ‘무호흡증후군’에 실린 시다. 쉽지 않다. 나도 왜 썼는지 이런 시가 내게서 어떻게 나왔는지 모른다.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492회 '인왕산둘레길' 산행 사진"<2024.09.14.(토)> / 도봉 김정남
독립문역ㅡ무악재하늘다리갈림길ㅡ체육공원ㅡ호랑이상ㅡ수성동계곡ㅡ윤동주하숙집ㅡ박노수미술관ㅡ참여연대본부ㅡ생선구이집어수지락 ㅡ커피숍ㅡ경복궁역
참석자 : 8명 (정남, 재홍, 경식, 종진, 전작, 일정, 양기, 황표)
2024년 9월 14일(토) 10시, '시산회' 산우들은 독립문역에서 만나 '인왕산둘레길'을 산책하였다. 인왕산엔 다양한 길이 있다. 사직동, 무악동, 수성동, 부암동 등에서 시작하는 등산로와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걷는 성곽길, 산 중턱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걷는 자락길, 그 아래 숲 사이로 난 둘레길인 인왕산 숲길 등이 있다.
독립문역에 조금 빠르게 도착하여 '인왕산둘레길'은 무악재 하늘다리를 건너 인왕산쪽으로 갔다. 해골바위로 올라가서 인왕산 정상으로 산행할 수도 있었지만, 안전한 산행 방안으로 인왕산둘레길과 건강 산책길을 산책하였다
체육공원이 산행지의 맨 웃자락이어서 전작이 시를 낭송했습니다. 회장님이 가져온 복숭아에 넋이 빠져 가져온 한과를 잊어버려 집에 오니 뭉개져서 산우들에게 미안한 마음 그지없고 수성동계곡의 이름 없는 정자에서 잠시 쉬다가 현판이 없어서 無名亭이라고 붙이자고 했더니 황표가 그보다 詩山亭이라고 이름 붙여서 모두 동의, 황표의 혜안에 박수. 아마 안평대군이 붙여놓은 이름을 세조 일당이 안평을 죽이면서 현판까지 뗐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안평대군이 누굽니까! 세종의 아들로 글씨는 神筆이라고 했답니다. 절경에 마음이 아프고 절로 시흥이 올라 형채가 보내준 복효근의 '어깨가 좁아서'를 낭송하고 말았습니다. 그날의 동반시는 두 개입니다. 계곡 쪽으로 내려오니 겸재의 산수화 ‘水聲洞’이 보여 사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산수화에 나온 돌다리가 지금까지 남아 수성동계곡에서 겸재의 그당시 그림과 오늘의 풍경을 서로 맞춰본 경식 산우가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라고 노래 불렀습니다. 언제 인터넷을 찿아봤는지 겸재鄭敾은 광주정씨라네 고려말부터 광주목에 거주한 선비집안 이었다네.....라고 보냈습니다. 감사.
윤동주하숙집을 지나 박노수미술관에 들렀는데 사진 촬영금지, 감색이 많이 들어간 수묵채색화가 인상 깊었습니다. 도봉은 이때쯤 되면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하여 손쓰는 일을 하기 싫어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관람을 포기하고 밖의 정원을 구경하였습니다. 큰길은 버스가 다녀 작은 길로 오다 큰길과 마주치는 곳에서 참여연대본부가 보여 한참 쳐다봤습니다. 오늘의 민주화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윽고 만난 오늘의 생선구이는 5가지 갈치, 고등어, 참치, 이면수 등은 맛이 깊어선지 바로 동이 나서 술은 아쉽게 더 마시지 못했습니다. 회장님은 술을 더 시켜준다고 래서 오징어숙회를 주문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역시 맛집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은 경식이가 진한 커피를 베풀었습니다. 거기서 종진의 율곡과 퇴계에 대한 담론은 역시 보물급, 그냥 듣기만 해도 좋았고, 더불어 전봉준 이야기는 감동의 깊이를 더해서 교양까지 얻었으니 근래 최고의 산행이었습니다.
2024. 9. 14. 도봉 올림
3. 오르는 산
올해는 북악산을 여러 차례 오르지만 나쁘지 않다. 어차피 오를 수 있는 산의 종류는 한정된다. 14명의 산우가 참석한다니 고마운 일. 493회를 이어온 것은 이러한 열정의 힘이 이룬 것이다.
4.동반시
가을이 춤을 춘다 / 서주석
어두운 풀섶
파란 옷 훌훌 벗어던지는 가을...귀뚜라미가 노래하기 시작한다
가을이 춤을 춘다 룸바춤을 춘다
찌르르 찌르르 찌르르...
수면위에 떠오른 가을의 넥타이
귀뚜라미 빛이다
귀뚜라미가 웃는다
가을이 웃는다
나도 웃는다
2024. 9. 22.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