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우화寓話가 된 기억들 / 도봉별곡
비밀의 방에는 많은 무기가 들어있다
밀물에 내려갔다 썰물에 올라오는
무인도 옆 암초처럼
껍데기만 남은 기억들
쓸모없어진 통장을 닮아
간 데 없어진 열쇠 때문에 비밀의 문을 개방한다
10년에 한 번 여는 여권
잔금 없는 통장
사라진 법인의 인감도장
낡은 독일제 만년필
20년 전 사진
30년 된 전화수첩
먼 나라의 동전 한 잎
청첩장과 감사편지
우화가 된 기억들
어설프고 복잡했던 생과 함께 걸었던 것들
마치
이끼처럼 홀로 살지 못하는 삶의 껍질들 허물 벗는다
바다와 파도의 은유 같은
이사철 폐기 영순위 책상의 수명을 보며
해가 뜨고 질 때의
문지기는 필요 없어지고
아쉬움 줄어들고
버릴 것 많아 좋아진 오늘 지금 여기
헌 사랑의 기억이
다시 사랑으로 바뀌지 않듯이
노루가 사슴 되는 법은 없으리
문득
빛과 그림자, 바람과 이슬, 물거품과 꿈
함께 찾아왔던
때늦은 각성覺醒 끝의
무장해제
*제1시집 <바람의 그림자>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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