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장술 / 도봉별곡
하늘도 마르지 않은 이른 아침
일거리 공치는 날마다
큰길 뒤 이면도로 GS25 편의점 앞으로 모이는 노가다 친구들
출근하는 사람들 발길 따라 시선 옮기다
해장술 새참 삼아 막걸리 한 병 놓고
왜 아침에 일어났는가를 묻는다
헛발질 한 번에 흐트러진 하루
하루의 고된 노동 겪지 않아도 된다며
내쉬는 안도의 빛깔은 누구의 빈 주머니에서 나왔을까
새벽마다 마주보는 한숨소리는 해장술의 안주거리
지갑은 부피만 차지하니
주머니에 매달린 만원 지폐 한 장은
인부 찾는 현수막일까
어제는 일했던 친구가 사는 술 마시면
신설동 풍물시장 가는 길 실내경마장 마권 몇 장에 털리거나
남산 한옥마을 정자 밑 한 잔에 털리거나
서울역 냄새 고약한 노숙자들 틈에 끼워서 때우는 점심 한 끼
신당동 지하 봉제공장에서 떨이 노동으로 벌어오는
몸 약한 마누라 일당으로 내일은 굶지 않아도 되나
나머지 여섯 날은 대충 이러고 살아도
갈 길을 모른다며
하늘을 봐도 좋은지 부끄러운 오후
서울의 5월은 오후의 바람이 심해져 싫고
보신각 사거리에 내걸린 전광판
모델들은 다 예쁜데
진보여야 할 노인들 보수가 자랑인 양 설쳐대는 곳
주름살이 길고 깊어서 싫고
나이를 벼슬로 알아서 싫고
자기중심의 감옥에 떨어져 허우적거리는 것 싫고
내 미래가 될 것이 틀림없으므로 더 싫어진다
2년 전의 세월호와 메르스와 정치인들 사이에 끼어
탑골공원의 팔각정은 더 빨리 늙어간다
세상과 삶은 멀고 가팔라도
내 입은 낮고 얕아 열어서는 안 된다며
난시의 눈처럼 이지러진 보름달과
오뉴월 가뭄을 닮은 별빛은 끝 모르고 쫓아온다
휴대폰 통화로 받은 일자리는
병 주고 약 주지만
내일 새벽의 희망 품고
집이 가까울수록 솟는 웃음 하나, 둘, 셋
고랑 많은 밭과 비슷해진 마누라 얼굴이
두 딸의 웃음과 겹치며
내일은 어떤 바람이 불까
궁금해지는 늦은 밤 귀가
*제1시집 <바람의 그림자>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