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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바람의 그림자 / 도봉별곡

바람의 그림자 / 도봉별곡

 

 

 

누가 바람을 안다고 했는가

바람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꽃바람에 송홧가루 날리는 봄날

바람에 색깔이 있다면 솔잎보다 더 푸르거나

송화보다 더 샛노래야 한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춘삼월 바람몰이에

뫼와 들에 물오르고

물오른 가지마다 잎새 돋는데

꽃이 진다고 높새바람에게 죄를 묻는가

 

지는 꽃잎 찻잔에 띄워

한두 잎 머금으면 그만인 것을

오늘은 어떤 바람이 불어

내 가슴에 그림자로 드리우는가

 

사랑은 바람으로 답하고

바람은 그림자로 답하되

그림자는 사랑의 잔영이면 좋겠다

 

바람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선자령 눈꽃을 밟고 왔다면

순백의 그리움으로 좋다

바래봉 철쭉과 노닐다 왔다면

진분홍의 설렘으로 좋다

 

천축사에 가면

사철 바람을 품으며 자라는 오백나한이 있다

오늘도 그곳에 바람이 분다

 

손 내밀어 잡고 흔들리며

천축사의 노송처럼

사랑처럼

바람처럼

 

*제1시집 <바람의 그림자>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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