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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축령산으로 모십니다(詩山會 제26회 산행)

축령산으로 모십니다(詩山會 제26회 산행)

산 : 축령산(879.5 미터)

코스 : 매표소-휴양림관리소-남이바위-정상-절고개-휴양림놀이터-매표소(1안)

-잣나무숲-임초리(2안)

일시 : 2005년 12월 4일(일) 9시 30분

모이는 장소 : 전철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 앞

소요시간 : 오름 1시간 40분 내려옴 1시간 20분

준비물 : 중식,교통비

연락 : 한양기(017-729-3457)

책을 잘못 읽어

굽어진 어깨가

덕수궁의 담을 끼고 가면,

이렇게도 어울리는지금은 수치와 겸양의 계절…

누구를 시새우고 무엇을 탓하랴,

모든 사람에 앞서 내가 먼저 외로워지는 시간…

포도를 걸으면,

언어는 낡은 자기처럼 비어있고,

추상의 신은

추상의 신들도

옛부터 이런 계절을 위하여 정숙히 존재하는가!

-김현승 '가을의 鋪道' 부분

가을을 보내는 마음은 늘 스산하고 심란하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를 온전히 내 것으로

돌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써봐도 돌아오는 것은 회한과 반성뿐이다.

죄는 인간이 짓지만 용서는 신의 몫이라고 했던가.

가을이 겸양의 계절인 이유는 혹독한 겨울이 눈부릅뜬 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옳고 그른 게 뭐고 삶은 또 뭔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 늦가을 찬바람

맞으며 낙엽 깔린 포도 위를 걸어보면 그 대답의 한 자락이나마 얻을 수 있을까.

대답의 한 자락을 얻었다 해서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은 무엇일런지...

 

가을의 끝자락이었던 11월 19일 토요일 오후의 맑은 가을하늘 아래 동창 박수호의

아들 결혼식장에서 이렇게 스산하고 심란한 가을조차 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듯

사랑의 전도사 조문형 산우의 푸념인즉

"우리의 봄 가을은 왜 이리 짧을까!"하는 긴 탄식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답입니다.

'세상의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불가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합니다.

참선의 실마리인 화두의 하나인데 화두의 총 개수는 1,700 혹은

1,800 이며 이를 1,700공안(公案)이라 합니다.

훗날 다시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런지....

봄의 시작을 2월4일경 입춘으로 생각하고 여름의 시작을 6월21일 하지로 생각하면

봄은 2월4일부터 6월20일이 됩니다. 그러면 4개월 17일간의 봄을 즐길 수 있고

가을의 시작을 8월7일경 입추로 생각하고 가을의 끝을 첫눈이 오는 날로 생각하거나

첫눈이 늦어져서 마지막 단풍잎이 떨어지는 11월 30일경으로 생각한다면

3개월 14일간의 가을을 즐길 수 있지 않겠나이까!!! 하하하...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도 첫눈이 오지 않았으니 11월은 아직도 나의 가을입니다.

11월27일 가을을 보내며 도봉산을 나홀로 산행하였는데 망월사 쪽의

산기슭에는 아직도 새빨간 단풍이 씩씩하게도 아름답더이다.

그러니 아직 가을이고 추운 겨울이 오려면 까마득합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도 단풍이 아직 싱싱하니 나의 11월은 역시 가을입니다.

 

망월사역-덕제샘-단풍나무계곡-다락능선-포대정상-신선대-뜀바위-주봉-

오봉갈림길-칼바위-우이암-원통사-무수골-도봉역의 코스를 쉬엄쉬엄 이 봉우리

저 봉우리도 올라보고 돌아보며 다녀 왔는데 산우들과 함께 왔으면 암릉의 참맛을

같이 즐겼을 텐데...아쉬웠고 사진기를 가지고 가지 않아 화면으로 보여줄 수도 없으니

다음엔 꼭 같이 갑시다. 도봉산의 암릉미는 서울 쪽보다 도봉주릉에서 보는

뒤 쪽이 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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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쓰기......김회장에게 어렵사리 승낙받은 기회 입니다

사실 그의 탁월한 문필력에 기가 죽었으나 주저와 망설임 끝에 이번에 제가 쓰게

됐습니다

아니 언젠가 술먹고 “ 자네만 쓰냐 나도 써보고...다른 회원들도 써 보는게 좋을

것 같다

못쓰면 못쓰는대로....그냥 회원들이 가끔식 돌아가며 써보자“ 라고 제안한바

있습니다

김회장이 마지못해 대세에 눌려서 동의는 하였으나 심기는 불편할 것 같은데

뭐 노래 잘한 사람만 노래방에서 노래합니까...?

노래못한 사람의 노래를 들어야 가수가 빛나듯이..제 글을 보아야 김회장의

글이 한층 빛날 것입니다..이러한 마음으로 제가 씁니다.

불암산...

산의 형상이 마치 송낙(소나무 겨우 살이로 만든 여승이 쓰는 모자)을 쓴

부처의 모습과 같다 하여 불암산이라 불리게 되었다나... 남쪽은 치마를

두른듯하다 하여 치마바위라고도 하는데 그밖에 하늘에서 내린 보배라 하여

천보산 이라고도 불리었다고 합니다

산 자체는 단조로우나 거대한 암벽과 수목이 어울려 아름다운 풍치를 자랑하고

또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도봉산, 비봉, 보현봉 등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시원한 경치를 맛볼 수 있는 곳 입니다

역사적 으로는 신라 지증국사(智證國師)가 세운 불암사와 그 부속 암자인

석천암(石泉庵)이 있고, 조선시대에 무공(無空)이 세운 학도암(鶴到庵)도 있고

산정에는 옛 성터와 봉화대 터가 남아 있으며,최근에는 6.25전쟁 때 육사출신

20여명이 이곳에서 은신하면서 게릴라전을 펼친 곳 이기도 합니다

사실 산에 대한 이런 사전적 해설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때로는 길가에 우뚝 쏟은 돌뿌리 하나, 길옆에 피어난 들꽃 한송이에 매료되어

산전체를 느끼듯이 오직 체험에서 우러난 개별적이고 특별한 느낌 이게 중요합니다

이런 뜻에서 불암산은 특별한 인연을 갖는 산이기도 합니다

상계역에서 내려 어린 딸의 손을 잡거나 무둥을 태우고 산책삼아서 한바퀴

휘 돌아서 내려오곤 했습니다

지금은 그 애가 고2가 되었으니 벌써 10여년전 일입니다

그 후로는 늘 보면서도 무심코 지나친 잊혀진 산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늘 단조롭게 전철역에서 내려 정상부근만 둘러보았는데... 내가 알고

느끼는 불암산은 너무 적은 일부 였습니다

태능역-불암사-정상-학도암-중계동 코스는 이 산의 맛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금번같이 태능 천보사 쪽에서 올라 중개동 방향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트레킹하기에는 제격이었습니다. 너무 편한게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높이는 500미터에 불과하지만 산에 오르는 감흥은 1000미터급에 해당 되었습니다

11월20일, 이날은 등산하기에는 거의 완벽하게 최적의 날 이었습니다

맑고 청명한 하늘아래서 약간 싸늘하고 쾌적한 공기를 마시면서 낙엽속을 거니는

한국의 가을산행보다 더 즐거운 기쁨이 어디 있으리오...?

너무 짧은 가을 하루 햇살이 원망스러울 뿐.....

사실 산은 오르기가 편해야 합니다

편하게 오르고 내리면서 주변을 두리번 거려야 맘도 편합니다

지난번 설악에 갔을 때, 대청봉에서 한계령으로 내려 오는길...정말 주변 경관은

빼어 났지만 바닥에 너무 뾰쪽한 돌들이 하늘을 향해 돌출해 있어서 불안 불안

하면서 내려온적이 있습니다

경치는 좋았으나 내리막길 내내 긴장을 풀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는 힘들고 위험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바위산도.. 편안한 흙산도 저마다 틀린 맛으로 우릴 부릅니다

산을 좋아하는 우리가 암산이니 육산이니를 따지게 생겼습니까?

닥치는 대로 오르다 보면 즐거움이 절로 쏟는게지요

묵은 김치는 묵은 김치대로 겉저리는 겉저리대로 다 제맛이 있는 법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말에 동감하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거나 인생을 무미건조하게 살았거나,

아무튼 별 볼일 없는 삶을 살아온 분이니 첫눈이 오기전에 경험해 보라.....

김정남회장 말처럼 사랑하며 살날이 항상 우리앞에 놓여 있는것도 아니고 가만히

두손놓고 있으면 기회가 스스로 찾아 오는것도 아니려니..이런 사람은 각성하고

분발해야 합니다

같이 오르는 이여사(박기종 부인)가 미모도 깔끔했지만 성격도 수더분해서 주변을

편하게 하는 큰 장점이 있었습니다.

사실 친구 부인은 어렵고도 가까운 사이입니다

예의도 지켜야 하고.. 말조심도 해야하고....

암벽을 오를 때 뒤에서 밀어주거나 받쳐주면 앞에 가는 이여사가 훨씬

편하게 오를수 있었지만 끝내 도와주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손으로 격려만 했을 뿐입니다

이미 나이 50을 넘어선 지금, 男과女로서 내외하기 보다는 인간으로서 친구처럼

어울리는 지혜를 아직 터득하지 못했거나 男女有別의 유교적 잔재를 털어 버리지

못한 저의 소심함 때문입니다(ㅉ ㅉ....이러고도 여성개발원에 다니고 있으니...)

이번을 기회로 여성회원을 확보해야 하니 錢여사(김정남 부인) 순단여사(박형채 부인)

이제 그만 봉평의 한을 푸시고 나오소서...

누가 뭐래도 2005년도 우리시산회의 여걸 Five(봉사기준)는 錢여사,

순단여사,윤환,세환,원무 부인인데......

너무 감춰만 두지 말고 다음번 등산에 한번 같이 나오게나 ...

1년 내내 잘 먹었는데 감사의 말이라도 한번 전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지난번 오대산은 차지하고라도 금번의 불암산 등반에 참석율이 너무 저조

했습니다

5명 참석..... 이게뭡니까?

아니 불참자가 5명이라도 시원찮은 판에....이게 뭡니까?

우리 시산회의 25회 산행사상 이런 참담함은 처음입니다

자꾸 불참하는게 습관이되어 그습관이 핑게를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습니다

 

김회장과 한총무가 자신들의 부덕한을 크게 탓하고..,ㅎㅎㅎ

임원직을 반납한다고 해서 말리느라 혼났습니다

사실 자청해서 무딘 펜을 제가 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시산회의 20-30년 후 먼 장래를 보고

사소한 약속은 슬기롭게 조정하여 웬만하면 산행에 참석토록 합시다...

우리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새롭게 다잡아야 할 때인 것 같아서 감히 제가

한소리 했습니다....불쾌하면 용서 하소서..

저도 시산회의 명성에 맞게 시 한편 추천합니다.

김회장만 詩心이 충만한게 아닙니다

젊은 시인의 사랑타령......좀 신선합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자, 모두 유죄 -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 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중 략)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중략)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후략)

제26회 산행은 12월4일 청평에 있는 축령산(879m)입니다

12월 4일. 9시30분,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 앞

자세한 안내문은 김회장이 고지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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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쓰기.....부터 여기까지가 이경식 산우의 산행기와 산우들에 대한

부탁과 혹은 질타, 동반시 추천이었습니다.

물론 정정과 가필이 없는 원문 그대로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와 내 안의 나의 대화로 한정하여 생각한다면 남의 이목을

무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산행기를 쓰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많으나 밖으로 표출되지

못한 부분이 더욱 많고 의외로 우리의 감정이 풍요롭구나 하는 생각에 본인도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산우들 중에 산행기를 읽고서 '문필력이 있다'

'문단에 등단해도 되겠다' '아는 것이 많다'는 등등, 분에 넘치는 칭찬의 뜻으로

덧글을 달아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볼 줄아는 식견을 가졌다면 이런

산행기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회사의 직원 중에 해보지도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산행기를 읽어보면 내용도 구성방식도 문체도 바뀌기도 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우리 같이 돌아가면서 써봅시다.

 

제가 산행기를 쓰게된 직접적인 원인은 추계 동문회 산행을 겸한

제 2회 오서산행 때 옆 좌석에 앉았던 10회 선배께서 지인 중에 산악회의

회장인 분이 있는데 모시는 글을 일일이 회원들에게 보내는데 그러한 정성때문에

산악회의 활동이 왕성하다는 말을 듣고 이왕 시작한 도움쇠의 직을 철저히 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막막하고 쓸 말도 없어서 차일 피일 미루다가 막판에 쓰기도 하고 괜히

시작했다는 자책도 했지만 도움쇠의 성격 중에 거의 유일한 장점인 중도포기를

하지 않는 점 때문에 지금까지 산우들도 도움쇠의 졸문을 접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딸의 책으로 띄어쓰기와 맞춤법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고 시에 대한

공부는 색다른 즐거움을 갖게 해주었으며 소재를 얻기 위한 독서는 마음을

더 풍요롭게 해주기도 합니다.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에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 들러

신간서적을 보는 것은 산행기를 쓰면서 생긴 즐거운 부산물입니다.

 

해서 이경식 산우의 농(?)처럼 심기가 불편하지도 않았고 산행기는 도움쇠의

독점물도 아니고 전유물도 아니기에 산우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라나이다.

거기에 무거움과 가벼움, 깊이와 얇음, 좋고 나쁨, 두꺼움과 엷음을 그 누가 따지고

시비를 걸겠습니까! 제2, 제3의 이경식 산우와 같은 산우들이 등장하기 바라며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늙으막에 시인,수필가,극작가,자유기고가,

소설가가 탄생할 수도 있겠지요. 기대해 봅시다.

 

 

느린 사랑을 위한 기도 바다르체프스카

1.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소서. 좋아한다고도 말하지 마소서. 그냥 오래오래

감정이 농익는 날까지 바라보고 바라보소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고 그 침묵의 공기들이 저절로 그에게 그 말들을 전할 수 있게 참으소서.

2. 보고싶다고 말하지 마소서. 보고싶지 않으냐고 묻지 마소서. 그리움이 그를

추격하지 않도록 멈춰서소서. 그가 쉴 수 있도록 그쯤에서 호흡을 고르소서.

차라리 그가 딴 사람을 바라볼 수 있도록 빈 틈을 주소서. 가끔 잊도록, 잊어가며

가끔 기억을 두터이 하도록 놔두소서.

3. 너무 좋은 사람이 되려하지 마소서. 내가 지금 너무 좋은 사람이면 늘 너무 좋은

사람이 되기는 어려우니 지금 조금 모자라고 허술한 사람인 것으로 기뻐하소서.

차라리 그 모자라는 사람인 채로 오래 머무는 사람이 되려 하소서.

4. 기다리지 마소서. 밤 늦게 혼자 기다리고 기다렸다 원망을 쌓지 마소서.

그가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고, 그가 내게 무엇인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소서. 그가 지금 그일 뿐인 것이 아쉽고 부족하다 여기지 마소서.

5. 고마워 하소서. 지금 사랑이 제대로 되어가지 않는 일이 그와 나, 그 누구

때문이 아니라 그의 앞에 놓인 삶과 내 앞에 놓인 삶을 통째로 서로 맞춰가는

어마어마한 작업의 수고임을 깨닫게 하소서.

6. 다시 고마워 하소서. 지금 고마운 마음이 처음의 고마움을 기억하기에

더욱 고맙도록 하소서. 감히 나같은 것이 그를 만난 일이 고맙고 나와 같은

세상을 살아준 것이 고맙고 나를 보아주고 알아준 일이 고맙고 내내 그와 같은

세상을 숨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도록 하소서. 그 처음이 하늘

만큼 이미 고맙기에 다른 고마움들이 거기서 불어나게 하소서.

7. 불안한 마음이 들 때는 미안한 마음이게 하소서. 불안도 미안도 모두 편치

않은 마음이나, 불안은 나나 내 주변이 못되면 어쩔까 하는 마음이고 미안은

그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불안은 앞으로를 걱정하는 마음이고 미안은

지난 것들을 되돌이키는 마음입니다. 미리 걱정하여 지금을 괴롭히지 않고 나를

걱정하여 그를 괴롭히지 말게 하소서.

8. 가끔 느릿느릿 숨쉬게 하소서. 그를 바라보는 일은 내 삶의 숨쉬기처럼

느린 달콤함이게 하소서. 숨쉬는 일처럼 사랑이 내 살이의 기본이고 숨쉬는

일처럼 사랑이 내 살이의 절박한 것이게 하소서. 그리하여 한번 숨쉬고 죽어버릴

사랑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매순간 조금조금씩 아껴하는 사랑이게 하소서.

9. 가끔은 고통받고 울게 하소서. 고통받고 우는 일을 원망하지 않게 하소서.

고통받고 우는 일이 사랑의 좋은 일부임을 믿게 하소서. 욕망도 뉘우침도

아름다운 것이게 하소서. 슬픔도 외로움도 좋이 여기게 하소서. 그를 만난 슬픔,

그를 만난 외로움이 내 생애 깊이 배어들게 하소서. 그 슬픔과 외로움에도 그가

있음을 깨닫고 힘을 내게 하소서.

10. 늘 그를 믿게 하소서. 그를 의심하게 되는 짧은 순간에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는

여전히 그를 믿고 있도록 하소서. 사랑이란 오직 저 가느다란 믿음 하나가

이어가는 긴 실오라기라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그가 미워질 때도 그를 믿게 하소서.

그 믿음이 여기 지금 당장의 확인과 자랑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조금씩 보태온 마음결들의 합계이게 하소서.

11. 당신을 위한 이 기도가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진정 당신을 위한 내

오롯한 기도가 되게 하소서. 당신을 위한 이 기도가 지금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앞으로 닥칠 어느 힘겨운 날에 지금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이게 하소서.

이 기도가 그때 좋은 힘이 되게 하소서.

 

별 다른 주석은 오히려 군더더기에 불과할 수 있으니 생략합니다.

느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보십시요.

불 같이 정열적인 사랑은 그대로 이처럼 느린 사랑은 이대로 맛이 다르겠지요.

이번 산행은 축령산(祝靈山)으로 정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고려말에

사냥을 나왔다가 짐승을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산신제를 지내야 한다는 몰이꾼의 말을 듣고 제(祭)를 지낸 후 멧돼지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고사를 올린 신령스러운 산이라 하여 축령산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도권에서는 강화 마니산과 함께 시산제를 많이 지내기도 합니다.

부드러운 육산으로 정상은 조망이 좋아 주변의 많은 산들을 볼 수 있습니다.

들머리인 휴양림 매표소까지는 1시간 정도의 짧은 거리이므로 승합차를 운행하며

이경식 산우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으니 많은 참가바랍니다.

특히 윤환 산우와 경식 산우는 동부인 합니다. 들머리인 매표소의 해발고도가

300 미터로 정상과는 580 미터의 차이로 어렵지 않은 산이니 다른 산우들도

동부인 바랍니다.

납회는 12월 18일에 지난 해 납회와 같은 비봉 코스로 정할 까합니다.

시산제는 2006년 1월 15일 눈꽃축제가 열리는 태백산으로 정할 까합니다.

여러분의 이견이 없으면 시행합니다. 참석하는 산우들의 의견이 중요하오니

많은 의견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불암산행에 참가한 박기종 관리관의 부인 이혜란 여사가 동반시를 읽었는데

맑고 파란 하늘과 스산한 가을과 차분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더 좋은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산, 숲, 바람, 구름 그리고 시가 있어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이번의 동반시는 이경식 산우가 추천한 시입니다. 이병금의 <낙엽을 위한 파반느>를

생각했으나 철도 지나고 고심 중에 반갑게도 좋은 시를 추천해주니

당연히 동반합니다.

산우들도 좋은 시가 있으면 혼자 즐기지 말고 추천하여 같이 즐깁시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죄인이랍니다.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사랑합시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 희 경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 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 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 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스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2005년 11월 29일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시산회 등산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