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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무념무상無念無想* / 도봉별곡

무념무상無念無想* / 도봉별곡 

 

 

통장 잔고를 보니 한 자리 수 맘이 편해지네 - 17자의 하이쿠

 

침묵 속에서도 언어는 익어가고

허공 속에서도 마음은 깊어가는 것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아는

우리는

익어가고 깊어가면서

나와 내 안의 신성한 내가 만나면 모든 신은 우상에 지나지 않는 것

뇌가 없어도 기억은 유지되고

심장만으로 생각할 수 있는 만큼

진리라는 것이 완전하다해도

우리는

사유思惟 없이 가부좌만으로 의심을 깰 수 있을가

무념무상으로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묵조선*은 말한다

늦어도 그 방식으로 충분하니 구경하면서 천천히 가자고

간화선*은 독촉한다

멀고 가파른 길 언제 올라가느냐고 소리치며 몽둥이로 때리며

 

깨달음이란 깨짐의 언어 변화이므로

무명*에서 깨어남과 같으며

선각자들은 인식의 깨짐, 곧 전환에 가깝다고 영원하지도 않다며

체험일 뿐 인격의 상승과 관계없다고 말한다

다만

겸손이라는 교훈 하나 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까

뇌의 변주 정도라 말하는 사람은

아직도 의심이 많거나 진정 겸손한 사람이다

선각자들 모두는 깨달음에 겸손하라고, 오만할 때 독한 시련이 온다고

수상한 현상을 깨달음으로 잘못 알면

잡신 내려 무당이나 점쟁이가 되어 혹세무민이나 하고

 

스승은 다시 강조하여 말한다

무아無我*, 곧 나라고 할 것이 없으니 깨달음은 없다고

불가는 수행공동체일 뿐 종교와 관계없으니 영성 체험 등의 단어는 다른 나라의 조심스런 이야기이므로 삼가라고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하는 고집쟁이 성철의 말은 믿지도 듣지도 말고 보임保任을 게을리 하지 말고 시간에 매이지 말고

자신이 생기면 저잣거리 시장으로 나와 마지막 소를 찾으러 입전수수入廛垂手*하라고

 

자신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무아無我라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견강부회牽强附會*라 하더라도 오온五蘊*의 임시적 가상의 결합이라는 것에 가장 가깝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 적이 있었다

불일불이不一不異, 동일성은 없으나 연속성은 있다

 

깨달아서 뭐 할 건대

세상을 구하고 싶으면

말은 필요 없고 행동으로 보이라고 티베트 스님은 목 놓아 사자후를 토한다

 

죽음은 깊어가고 익어가는 것 그러나 보이지는 않는 것

흐물흐물해지지 않도록 조심할 것 맛이 없으니까

새롭게 죽을 것 더럽지 않게

티베트 승려처럼 앉아서 자애명상과 함께 죽으면 신기할까

우리 모두는 죽음을 모르고 죽는다

삶과 죽음 사이에 두 개의 강*과 공과 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념무상無念無想 묵조선의 수행방식으로 가부좌 틀고 앉아 무사선無思禪을 행한다.

*묵조선黙照禪 즉심시불卽心是佛, 곧 사람이 부처라는 여래장如來藏사상에서 간화선과 나눠지는 수행방식. 한국의 임제종과 달리 일본 조동종의 수행방식으로 한국불교에서는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

*간화선看話禪 비논리적 · 비상식적인 화두라는 의심을 들고 수행하는 방식. 형식과 자세에 구애 받지 않는다. 임제종의 수행방식으로 오늘날 한국에서 보편화 됨.

*견강부회牽强附會 자신의 견해에 유리하도록 짜 맞추는 것.

*오온五蘊 색수상행식(, 느낌, 연상, 의지, 인식)의 다섯 가지 무더기. 사람이 죽으면 이것이 소멸하지 않고 흩어졌다가 업에 따라 선한 것과 악한 것끼리 모여 윤회를 반복한다.

*무명無明 탐욕으로 연기법과 사성제의 지혜를 모르는 것.

*무아無我 사람은 색수상행식色授想行識의 다섯 가지로 모아진 형체로 연기에 따라 수시로 변하므로 일정한 형체가 없다는 것. 힌두의 베다 사상인 불멸의 자아, 곧 아트만에 반대하는 평등사상의 일환으로 주장. 붓다는 인도의 카스트, 곧 사성계급 제도를 혐오했다. 불일불이不一不異, 동일성은 없으나 연속성은 있다

*입전수수入廛垂手 심우도尋牛圖, 곧 소를 찾는다는 은유적 설명의 마지막 단계로 깨달음을 얻으면 충분히 수행하여 사람들이 사는 저잣거리로 나와 중생을 제도하라는 것.

*두 개의 강 베다라니 강, 죽을 때 건너야 하는 강으로 지독한 악취가 난다. 악취는 악업을 나타냄. 레테의 강, 죽으면서 건너면 기억을 없애는 강으로 삶과 죽음의 연결을 완벽하게 막는다.

 

 

*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