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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도봉산 우이암(詩山會 제159회 산행)

도봉산 우이암(詩山會 제159회 산행)

산 : 도봉산

코스 : 창동역-방학동 성당-방학능선-보문능선-우이암(하산은 의견에 따라 우이동과 도봉산 입구 중 선택)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1년 5월 8일(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1.4호선 창동역 2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사진기(하산 후 뒤풀이)

연락 : 박형채(011-250-5382))

블로그 : 사진 blog.daub.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망월동 봄/신준희

 

피지 마라 꽃들아 날지 마라 새들아

꽃샘바람 회오리 옷깃 속 파고 들면

파도로 무너지는 마음 썰물 지는 봄날에

꽃 피었다 진 자리 깊게 박힌 못이 있어

뿌리처럼 얽힌 기억은 다이달로스의 미로일까

밀납의 날개로 만든 꽃이여 피지 마라

 

중앙 시조 백일장에 장원으로 뽑힌 시조다. 광주의 봄을, 오지 말았어야 했을 봄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빌려와 이야기하며 숙연함을 잘 이끌어냈다. '피지 마라 꽃들아'로 시작한 5.18의 슬픔을 '꽃이여 피지 마라'의 도치로 마무리하였다. 시조라는 큰 그릇에 수미상관 형식의 작은 그릇을 넣은 화자는 그렇게 확보한 공간 속에 우리 역사의 아픔 한쪽을 담아 놓았다. 그리고 '다이달로스'가 만든 '밀납의 날개'처럼 처연히 지고 만 아름다운 그대의 목숨들 앞에서 '마음 썰물 지'고 있다. 전면에 내세운 환한 계절 때문에 아픔이 더 아프게 느껴지게 하여 감동을 자아냈다.<심사평. 강현덕>

 

최근에 연구소 시절 만난 대학후배가 있어 며칠 전 함게 술을 마셨다. 당시 집안이 어려워 가계를 돕느라고 술을 마실 때마다 내가 술을 샀으므로 지금은 자기가 갚을 때라고 술값을 미리 치르는데 남한테 얻어 마시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조금은 곤혹스럽지만 그의 성의를 마다할 수 없으나 한편으로는 즐겁고 유쾌한 일이다. 물론 나는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광주 민주화 항쟁 직후 1년 위 법대 선배와 셋이 어울려 술을 마실 때는 울분을 토하며 통음했으며, 모두 버리고 함께 시골로 농사를 지으려 내려가자 했고 '언젠가는 우리들의 시대가 오니 좌절하지 말고 기다리자'고 결의했다. 연구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청량리 시장 골목에서 주꾸미, 해삼, 멍게를 놓고 마셨으니 참으로 서민적이고 낭만적이었다. 6년을 친하게 지냈던 우리는 그후 연구소의 구조조정 때 각자의 길을 갔다. 선배는 연구소에 남아 지금은 행정관리의 최고 책임자인 행정관리단장으로 재직하고 있고, 그는 광주과학기술원의 행정관리 책임자인 사무처장을 두 번 역임하고 작년 말에 명예퇴직했으며, 나는 전두환의 녹을 먹지 않겠다고 연구소를 박차고 튀어나와 남대문 극장 4층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때의 객기를 지금도 일생 중 가장 잘한 결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후배가 부르는 김광석의 '부치지 않는 편지'는 절창이다. 5.18 이후에 '임을 위한 행진'과 더불어 광주에서 자주 불리는 노래라는데 가사도 음도 좋더라.<도봉별곡>

 

2.산행기

詩山會 제158회 산행기

산 : 강화도 고려산

일시 : 2011년 4월 23일(일)

참가자 : 전작, 김종화, 염재홍, 김정남, 임용복, 고갑무, 조문형, 이경식, 이재웅, 이원무, 임삼환, 햔양기, 남기인(13명)

 

오늘 산행도 10시에 약속장소에 가야 하는데 전날 이경식 회장의 문자가 심상치 않다. ‘참가 인원이 많지 않아서 12인승 승합차를 이용하니 선착순으로 좌석을 배정하겠다’고 한다. 아마 홍보차원에서 보낸 문자일 것으로 생각하니 더욱이나 빠지기 어렵다고 여겼다. 거주하는 경기도 화성에서 가려면 아마 족히 2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조금 일찍 출발한 것인데 오늘따라 급행 열차였던지 약속 장소에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하였다. 당연히 가장 먼저 도착하였다.

 

산에 오르는 즐거움도 좋지만 오랜만에 보는 정다운 친구들의 모습을 보기위해 산에 오는 친구들도 많으리라 본다. 그런데 정말 오늘따라 예상 밖에 친구들이 많이 참석하여 운전자를 포함하여 14명이 12인승에 몸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장 늦게 도착한 전작 친구가 그만 고가의 선그래스를 화장실에 두고 오는 바람에 다시 약속 장소에 돌아가서 확인해 보았지만 그사이 누군가 가져간 모양이다. 흔히 액땜했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안타까웠던지 많은 친구들이 위로의 말을 전한다.

 

강화 고려산은 진달래꽃이 만개하는 봄철에 진달래꽃 축제를 개최한다고 한다. 상습 정체 구간인 김포 신도시를 지나서 장기지구와 통진을 지나 강화에 도착하는데 2시간30분이나 소요되었다. 평소 같으면 이미 정상에 거의 다다를 시간인데 아직 산행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산회의 명예가 있지 않은가? 비록 점심때가 되었지만 정상을 정복하기로 하고 곧바로 산행은 시작 되었다. 자주 참가하지 않은 때문인지, 오늘따라 감기 기운 때문인지 산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다.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는 친구들의 정다운 이야기가 때로는 피로회복제가 되어 점점 고려산 정상의 붉은 진달래꽃에 다가 갈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한 죄(?)로 오늘의 산행기를 작성하게 되었다. 기사감을 기억하느라 조금은 신경이 쓰이지만 그저 자연을 즐기고 그 느낌이나 적어보자 하고 부담감은 잊어버리기로 하였다.

 

요즘 지방자치단체에서 그 지방의 수익을 위하여 다양한 문화제 행사를 많이 하고 있는데 강화 진달래꽃 축제도 그 중 하나가 되는가 보다. 멀지 않은 강 너머가 북한땅이란다. 그러고 보니 산모양이 약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반백년 이상을 왕래하지 못하고 막혀 있음은 누구의 뜻일까를 생각해본다. 분명 백성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상이라는 허울로 포장된 정치적 욕심의 산물이 아닐까? 얼마 전 태국에서 말레이지아를 넘어가면서 국경에 양국의 출입국 사무소를 한 건물에 모두 설치한 모습을 보았는데 우리의 처지가 부끄럽기도 하였다. 하기야 1970년대 군복무로 DMZ에서 생활할 때도 그 긴장감이 생사와 직결되어 국경 이상의 장벽을 실감하기도 하였다. 분명 우리의 분단은 세계적 힘의 균형을 위한 대리적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되었다.

 

정상에 거의 오를 무렵 3명의 40대 여인들(자기들이 40대라고 주장함)과 합류하게 되어 점심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아마 그 여자분이 술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배낭 속에서 진달래술 그리고 소주가 2병씩이나 나온다. 강화에 살고 있고 등산 총무도 맡고 있다는데 아마 그 모임에는 술 좋아하는 회원들이 많은가 보다. 오늘도 어김없이 거의 고정 메뉴로 음식을 준비하여 진수성찬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점심이 약간 늦어서 보다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늘의 길잡이는 염재홍 산우가 맡았다. 아마 고려산에 몇 차례 다녀간 모양으로 길을 잘 안다. 점심 후에는 거의 하산하는 게 일반적 관례인데 오늘은 오르막 내리막이 몇 차례 반복되다가 본격적 하산이 이루어졌다. 그저 뒷산에 오르는 기분으로 시작한 산행에서 우리의 삶에서 그냥 주어지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문득 깨닫게 해준 것 같다.

 

하산하는 길에 임용복 산우가 보이지 않는다. 몇몇 산우가 아마 임무를 수행 중 일거라고 한다. 어차피 그 세분의 여인들은 우리와 함께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아마 그 분들과 정중한 이별을 고하고 뒤따라오리라 짐작하였다. 우리의 예측이 맞았다. 임 수석은 예의바르게 그분들에게 정중하게 고맙다는 인사와 우리가 가야할 곳이 다름을 설명하고 오느라 조금 늦었노라 말한다. 항상 여유를 보이는 임수석이 더욱 멋진 사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하는 길에 누군가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는데 검열을 통과할 자신이 없어서 그 중 한 대목만 옮겨 적는다. 아마 고려산 진달래를 구경한 시산회원은 그 뜻을 짐작하리라 믿는다. ‘언젠가 불 켜고 눈을 떠보니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 있더라.’ 이 말속에 숨겨진 뜻이 궁금한 산우는 차후에 제158회 고려산 증인들에게 정중하게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하산하는 길에 길옆에 흐드러진 진달래 숲이 정상에서 감상하였던 그 모습과 사뭇 달랐다. 이것을 못 보았더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그러나 일부 중간에서 차를 타고 하산한 8명의 산우들은 보지 못하였으리라. 좀 더 걸어온 다섯 산우에게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남자들만의 세상을 실컷 논하다보니 어느덧 김포어촌계가 운영하는 대명항에 도착하였다. 서울에서 강화까지 오는 동안 좁은 의자에 한쪽 엉덩이만 걸치고 서로 살과 살이 부딪치는 고통을 상기하면서 상경하는 길에는 대형과 소형을 적절하게 안배하려는 자율적 조정이 이루어졌다.

 

집행부에서는 어시장으로 회를 사러간다. 4kg짜리 농어와 광어를 거구의 삼환과 원무가 둘이 쌀자루에 담아 오는 것을 보니 오늘은 회로 포식하겠다는 생각에 절로 군침이 돈다. 무게가 4kg이라면 노량진이나 가락동 수산물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크기다. 성실한 염재홍 산우는 끝까지 회를 뜨는 곳에서 기다리고. 아무튼 농어와 도다리회로 실컷 배를 불리고 남는 회로 회덮밥을 만들어 매운탕을 곁들여 먹으니 한동안은 회 생각이 나지 않을 듯하다.

 

등산도 여행인지라 반가운 사람과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이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많은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열심히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 정상까지 소주병을 배낭에 넣고 올라온 입심 좋은 여인네, 아내인지 애인인지 모르지만 마주앉은 여인과 싸움질하는 술이 취해 인사불성인 어느 사나이까지 그들 모두가 지구촌 가족이며 가깝게는 한반도에 함께 숨쉬는 한국인이다.

 

그렇게 하루의 즐거운 산행도 당산역 그 자리로 돌아와 이제 다시 각자의 품으로 돌아간다. 대명항에서 바다안개가 끼여 수평선으로 지는 해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 해는 또 어김없이 내일도 떠오른다. 정다운 친구들아! 내일의 해가 다시 솟듯이 다음 산행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만남이 보다 길게 반복되기를 기원해 본다.

굳바이!

2011년 4월 29일 남기인 올림

 

3.산행지

이번 산행은 도봉산 우이암으로 정한다. 우이월출이 도봉8경 중 들어간다는데 본 적은 없다. 수락산과 불암산 사이로 뜨는 보름달이 절경이라는 말은 산객들 사이에 오르는 말이다. 마음먹고 한 번 시도해야겠다. 우이암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익숙한 코스다. 양쪽이 확 트인 보문능선으로 오르는 중간쯤에 위치한 작은 마당바위가 있는데 땅콩을 손에 들고 있으면 박새, 동고비, 곤줄박이 등 작은 새들이 와서 물고 간다. 우이암은 해발 500미터 정도이니 어렵지 않고 방학동에서 들머리를 잡은 것은 이경식 회장님이 쉽게 오르자고 선택한 코스다. 어버이 날이라 출가한 자식이 있어 손자들 손을 잡고 놀러가는 산우들을 빼고 많이 참석하자. 도움쇠는 출가한 자식도 손자도 없으니 당연히 참석한다.

 

4.동반시

이원규 시인은 지리산 자락에 산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라는 시는 지리산 종주 산행 때 동반하여 읊은 시다. 가수 안치환이 작곡하여 노래로 불리기도 했다.

행복이란 단어를 입안에 넣고 자꾸 굴리다 보면 입안에 샘물처럼 고이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지리산 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원규 시인이다.

그의 인생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찾은 행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행복과는 너무 다른 모습의 행복이다.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은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 5가지를 이렇게 말했다.

1.먹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2.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3.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4.남과 겨루어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5.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을 완벽함에서가 아니라 부족함에서 찾고 있다. 사실 100% 만족이라는 것은 없으며, 설령 100% 만족한다고 해도 그것을 계속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약간의 부족함,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편하게 하고 결국은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손을 든다.

 

이원규 시인의 가족사에는 우리 민족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의 등단작 '빨치산 아내의 편지'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그의 아버지는 6.25당시

인근에 있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앞서가는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시인의 아버지는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었던 집안의 전 재산을 마을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엄청난 일을 벌였다고 한다.

할아버지 대에 이룩한 엄청난 재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버지는 당시의 사회기류에 휘말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시인은 외가가 있는 문경에서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소풍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시인은 온다간다 말도 없이 곧장 백암사(?)로 떠난다.

너무 이른 출가였다.

 

백암사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시인은 다시금 전두환 정권에 의해 포승줄에 묶여 절에서 나오게 된다.

그때부터 검정고시를 거쳐 다시 대학에 입학한다.

(학창시절 아이큐가 거의 천재수준을 웃돌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고 한다 ^^)

대학졸업 후 서울에 있는 잡지사 기자로 열심히 뛰어다니던 중 또다시 아귀다툼과 사리사욕으로 똘똘 뭉쳐있는 이 사회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세속에서 얻은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린 채 오토바이하나만 가지고 지리산으로 입산한다

 

여기서부터 그의 행복론이 전개된다.

"주인장도 없는 집에 우리 세 식고 잘 쉬다 가오.

방값은 복숭아와 사과 그리고 치약이 전부요.

연봉 7백만 원 집안에 가세를 보태주고 가야하는데~ㅠㅠ.

서울 오면 다 갚으리다.

참, 없는 살림에 책 두 권 서리해 가오. 아무래도 안 읽을 듯 하야~ ㅋ.

잘 자고 갑니다요. 산이 엄마 아빠."

 

며칠 집을 비운 사이 후배 부부가 하룻밤 자고 갔나보다.

지리산에서 12년 동안 여섯 번 이사를 하면서도 내내 자물쇠 없는 집에서 살았다.

연세 50만원 수준의 빈집에 살며 더 이상 잃어버릴 것도 없고, 누군가 훔쳐갈 것도 없으니

그동안 자물쇠가 필요 없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어차피 내 집도 아닌데다 이름하여 ‘너와 나의 경계가 없는 우리들의 산방’이라는 뜻의

피아산방(彼我山房)을 떡하니 당호로 내걸었으니 어찌 자물통을 잠글 수 있겠는가."

자물쇠가 없는 집에 사는 시인은 특별히 재산을 모으지 않는다.

말 그대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월세 2만원에서 3만 원정도면 충분하다.

한 집에 머물러 사는 것보다는 일 년이나 이 년마다 옮겨 다니면서 산다.

흘러가는 구름처럼 가볍게 살아가는 행복론을 몸소 실천한다.

그렇다고 이사 때마다 세간살이들을 다 싸 짊어가지고 다니지도 않는다

살던 집에 그대로 두고 간다.

누군가 이 집에 와서 살 때 필요할지 모를 물건들이라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특별한 벌이는 없지만 이원규 시인의 삶은 늘 풍족하다.

지리산에서 함께 교류하며 사는 박남준 시인이 있고 또 지리산에 입산하여 10년 만에 만난 신희지 여사가 있고 그 외 문학과 예술을 하는 친구들이 속속 지리산으로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가수 안치환이 곡을 붙여 노래로 부르면서 더 유명해진 시다. 김춘수 시인의 '꽃'과 이형기 시인의 '낙화'와 더불어 나의 애송시다.

안치환의 노래를 듣다보면 이 시 한편에 시인의 다 삶이 다 녹아있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진다.

산길을 달리고 또 달리는 그의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여행이다.

이원규 시인이 자주 달리는 섬진강변의 매화가 봄소식을 알려온다.

하마터면 사람들의 발길에 밟힐 수도 있었을 이 작은 꽃에도 시인의 눈길이 머문다.

지리산 둘레길을 달리며 나름의 행복을 가꿔가는 시인의 삶에 생긴 또 하나의 기쁨이 '지리산 학교'다.

‘지리산 학교'는 지리산에 들어와 살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지역민들을 위해 만든 학교로 특별히 수업료가 없다.

그렇다고 일반학교처럼 딱딱한 교칙도 없다.

하지만 선생님들만큼은 이 나라 최고의 예술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지리산학교를 찾는 인근주민들은 요즘 새로운 행복을 찾았다고 한다.

한편, 지리산 학교는 이원규 시인의 문학 동료인 공지영 소설가가 책으로 묶여내면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최근에는 MBC 스페셜로 방영되기도 했었다.

이맘때쯤이면 섬진강가에 매화꽃과 산수유가 흐드러졌다가 졌을 텐데.........

무소유의 삶에서 행복을 찾은 시인이 만들어준 매화차 한잔이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우리도 이같이 살고 싶어하나 행동에 쉽게 옮기지 못한다. 나는 그런 그가 마냥 부럽다. 가자 우리도 지리산으로.

부처님 탄신에 즈음하여 이 시를 동반시로 올린다.

 

물고기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 이원규

 

쌍계사 법고 소리

공중 헤엄치는

목어의 울음소리 들으며

아직 젊은 시인은

낡은 투망을 손질했다

산살구꽃들

일제히 몸을 날리는

사월이라 초파일 전야

쌍계사 다리 밑에서

옴, 오옴, 오오옴

범종 소리에 맞춰

서른세 번의 투망질을 했다

꺽지 은어 빠가사리 버들치

목어처럼 내장을 빼내어도

물고기들은 내내

묵언수행 중이었다

흰 눈썹 무성한 스님과

회를 뜨고 매운탕을 끓이며

맑은 만큼 독한 소주로

소독을 한 물고기,

물고기 눈빛을 빛내며 실없이 웃었다

눈물도 없이

내장도 없이

우는 법을 터득한 것일까

물고기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2011년 5월 4일 새벽에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일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