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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예빈산과 두물머리(詩山會 제219회 산행)

예빈산과 두물머리(詩山會 제219회 산행)

 

산 : 예빈산(590미터)

 

코스 : 팔당역-율리고개-철쭉군락지-정상(직녀봉)-견우봉-천주교공동묘원-능내리(봉안마을)

 

소요시간 : 3시간 30분

 

일시 : 2013년 9월 28일(토) 10시

 

만나는 곳 : 전철 중앙선 팔당역

 

준비물 : 막걸리는 시원하게, 간단한 안주, 물 많이(하산 후 보리밥상 집에서 뒤풀이 예정)

 

연락 : 조문형(011-259-2915)

 

카페 : cafe.daum.net/K-20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1.詩를 통한 時論

 

내일은 프로/황병승

 

침묵하거나 침묵하지 않으면서

 

나는 보여주고자 하였지요, 다양한 각도에서의 실패를. 독자들은 보았을까, 내가 보여주고자 한 실패. 보지 못했지…… 나는 결국 실패를 보여주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쓸모없는 독자들이여,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불빛 속에서, 아름답게 흐르는 강물을, 다리 위에서, 보고 있었지. 어둠 속에서, 나는 밤낮으로 출렁거리며, 다리 아래서, 보여주고자 하였는데, 괴로워…… 그러게 말입니다. 실패한 자로서, 실패의 고통을 안겨주는 이 페이지에서, 당신들이 수시로 드나들 이 페이지에서, 페이지가 너덜거리도록 당신들과 만나는 고통 속에서,

 

“나는 실패를 보여주고자 하였으나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네. 이거 이거, 실패를 보여주기에는 역시 역부족이란 말인가. 괴롭습니다, 괴로워요……” 라고 말이지요

*

찬비가 얼굴을 때리는 새벽,

 

나는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고 싶었습니다

죽은 할머니에게라도 할아버지에게라도

거리의 부랑자들과 매춘부들에게라도

웃거나 울지 않으면서

침묵하거나 침묵하지 않으면서

술집에서 만난 보이와 건달 녀석에게라도

나는 전화기를 들고 아무 번호나 눌러대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모두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누구시죠? 누구십니까?

*

이렇게 ‘영원’이 되고 말겠지

 

찬비를 맞으며

삼 일 만에 귀가했을 때

집 안은 어두웠고 여자는 침울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했지요

지난달에도 지지난달에도

우리는 약속에 도달하기 위해

서로를 철사로 꽁꽁 묶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석고를 들이부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석고가 부서져 날리는 새벽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살구를 한 번도 사다 준 적이 없지…… 당신은 살구를 한 번도 사 온 적이 없어…… 어째서, 내가 그토록 원하는 살구가 당신의 마음속에 뿌리내리지 못했을까…… 당신은 살구 대신 복숭아를 사 오곤 했지, 나는 복숭아 알러지가 있는데…… 언제나 당신뿐이라고, 언제나 당신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당신의 마음속에…… 어째서, 나의 간절한 살구가 열매 맺지 못했을까……”

 

여자는 울음을 터뜨렸지요

 

“나쁜 새끼 같으니라고!”

나쁜 새끼는 나뿐인 새끼, 나밖에 모르는 새끼, 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살구 때문에, 살구 하나 때문에, 라고 말하지 말아…… 살구는 내가 지금까지 당신과 함께해온 이유이고 목적이고 전부였으니까…… 살구 때문에 나는 당신과 함께 지내는 내내 괴로웠고…… 살구 하나 때문에 당신과 한동안 떨어져 지내야 했으며…… 살구 때문에 떨어져 지내야 했던 한동안이 이렇게 ‘영원’이 되고 말겠지…… 살구 때문에, 살구 하나 때문에……”

 

여자는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

세탁기하곤 말이 안 통하니까

이봐 피츠, 부모님은 무슨 일 하셔?

세탁소

어디에서?

어딘가에서

깨끗한 옷 좋아해?

금세 더러워질 테지

나쁜 짓 많이 했어?

살인 빼놓고

부모님은 뭐라셔?

뭘 뭐라셔

하긴 세탁부들은 대개 말이 없지

세탁기하곤 말이 안 통하니까

너도 다를 건 없어

뭐라고?

이봐 피츠! 그러니까 내 말은 소가 쓰러질 때까지 투우는 계속되지 않겠냐는 거야

무슨 소리야, 갑자기

알아, 우린 언젠가 창에 찔린 소처럼 쓰러지고 말겠지

웃기시네

웃기시네라니, 누가 누구한테?!

차라리 머리통을 세탁기에 처넣고 말지

그럼 내가 스팀다리미로 문질러줄게

내 머릴?

네 머릴

빳빳하게?

빳빳하게

현찰처럼?

기념우표처럼

서랍 속에라도 넣어두게?

그래, 금고 깊숙이

 

와아…… 피츠는 갑자기 혼자가 되어버리겠군!

*

갑자기, 나는 혼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캐리어를 끌고 골목 끝으로 사라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피츠 피츠…… 나는 왜 불현듯 지난가을에 적어두었던 메모가 떠올랐을까요

*

차와 간식이 없는 세상에서

 

여자는 도시 사람답지 않게 순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는데요

내가 좁은 방에 틀어박혀 소설을 끄적이고 있을 때면

여자는 차와 간식이 담긴 쟁반을 건네며 덜떨어진 미소를 짓고는 했었지요

나는 그때마다 다짐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두더지처럼 생긴 여자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살아 있는 동안 아름답고 근사한 것을 만들자

죽는 순간까지 책상 앞에 쪼그려 앉아

연연하고 고려하자

 

그러나 이제는 두 번 다시 그녀의 두더지 같은 얼굴을 볼 수 없겠지요

그녀가 건네주던 따뜻한 차와 간식도 더 이상 받아먹을 수 없을 것이고

그녀의 순박한 말투와 웃음소리도 더는 들을 수 없겠지요

아 아름답고 근사한 것은 무엇이며

벽면 가득 붙어 있는 저 메모 쪼가리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이봐 피츠, 이 길 끝에는 뭐가 있어?

이 길 끝에는……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전당포도?

전당포도

스낵바도?

스낵바도

잠자리도?

잠자리도

맙소사, 우린 완전히 길을 잃었어

우린 완전히 새로운 길 위에 있지

우린 너무 멀리 와버렸어

하지만 우린 더 멀리 가야 해

우린 곧 쓰러지고 말겠지

창에 찔린 소처럼 말이야?

나는 지금이 너무 무서워

나는 지금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꿈이었으면 좋겠어

그럼 또다시 피를 흘려야겠지

우린 너무 많은 걸 잃었어

우린 많은 걸 배우게 될 거야

아무도 우릴 뒤쫓지 않아

우리가 전부 해치웠으니까

아무도 우릴 막아서지 않아

우리가 악몽의 주인이니까!

나는 지금이 너무 두려워

나는 지금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우린 곧 죽고 말겠지

우린 지금 태어나고 있어

나는 태어나고 싶지 않아

아무도 원해서 태어나지 않아

제발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부디 이 모든 게 꿈이 아니기를……

*

피츠 피츠……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 거리를

나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비에 젖은 후줄근한 옷차림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자가 집을 나갔다는 사실도 잠시 잊은 채

소설, 소설만을 생각하며 나는 달리기 시작했지요

또다시 실패를 보여주는 데 실패하고 말지라도

누구시죠 누구십니까, 아무도 나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마지막으로 한 잔 더, 마시며 소설을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나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술집을 향해

*

쿵쾅 쿵쾅 쿵쾅 쿵쾅

나는 술집의 나무 계단을 미친 듯이 뛰어 내려갔지요

쿵쾅 쿵쾅 쿵쾅 쿵쾅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계단은 끝없이 이어졌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남자는 잘생긴 코지

좋은 군인은 모두 좋은 코를 가지고 있어

너는 네 엄마를 닮았으니

최악의 코를 가진 불쌍한 녀석이 되겠지

좋은 군인은 나 하나로 족하다!

 

아버지의 목소리……

 

나는 계단 아래 보기 좋게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피……

코피가 흘렀지요

나는 손등으로 코피를 닦으며 술집 문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머릿속의 구상은 온데간데없이 날아갔고

소설은 여전히 미완성이고, 여자가 떠난 텅 빈 집은

또 얼마나 춥고 불쾌할까

 

……그래요, 아버지

좋은 군인은 기품이 있죠

군대의 기품은 계급이니까

칼라collar가 더럽게 빳빳하죠

*

앞으로의 인생은 둘째 치고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나를 가끔 나무 위에 매달아 ‘주셨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인데……

나는 나무 위에 몇 시간씩 매달린 채로 나의 지나온 행적과 앞으로의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려 했지만, 까마귀들이 날아와 미친 듯이 울어댔고, 어떤 날은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으며, 또 어떤 날은 날벌레들이 콧구멍 속을 바쁘게 들락거리는가 하면, 또 어떤 조용한 날엔 거미들이 얼굴에 흰 줄을 치기도 했지요

 

반성이나 앞으로의 인생은 둘째 치고 내가, 여기, 왜 매달려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떤 비참한 인생이 시작되고 있었던 거지요

*

벙어리는 침묵과 절름발이는 목발과

 

나는 술집 계단 아래 거꾸로 처박힌 채

다짐을 했습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에이전시에 연락해서 타이피스트를 부탁해야지

머릿속의 구상과 잠꼬대와 헛소리를 정확하고 빠르게,

열정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타이피스트!

기계와도 같은 타이피스트를…… 에이전시, 타이피스트

에이전시라니, 타이피스트라니……

 

나는 계속해서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절뚝거리는 다리로 술집의 나무 계단을 올라섰습니다

 

내일은 프로

내일은 프로

 

중얼거리며, 말이지요

 

—《문학과사회》2013년 봄호,

시집『육체쇼와 전집』(2013)에서

 

-시평

위의 길고 긴 시는 중앙일보에서 주관하는 제13회 미당 · 황순원 문학상 시 부문 수상작이다. 상금은 3,000만원이니 문학상 중 가장 많은 금액일 것이다. 황병승(43)은 한국 시단의 최전위에 서 있다. 그의 시는 일반인에게 난수표와 같다. 당연히 그의 작품을 읽어낼 독법을 찾는 방법은 만만치 않다. 그의 시는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난해시' '해석 불가'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황병승과 함께 '미래파'의 앞자리에 서있던 시인 김행숙도 "황병승의 텍스트는 생과 사의 언덕과 낭떠러지를 오르내리는 호흡처럼 극단적인 자리들로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황병승의 시를 읽는 일은 숨이 찬다"고 고백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대 중반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보람을 느끼지 못했어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속에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문학과 가까워졌죠."라 했으니 그는 어렵게 살아 생할고에 치이다 보니 시에만 집중할 수 없었고 생활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전에 주로 사용했던 소재와 작법으로부터 벗어나 생활과 자신에 집중하려고 노력한 결과 이러한 작품이 나오게 된 것 같다.

 

그의 시들을 접하면서 우리 시단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고 있으며 심사위원들도 '실패'는 완벽한 도달의 이면이라며 우리 시의 미래다고 했다. 어렵다, 어려워. 그런다고 내가 그런 쪽으로 방향을 틀기에는 나의 각오나 취향이 맞지 않으며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대 서사시도 아니고 고은 시인의 대 연작시만인보도 아니니 나도 이 시를 읽는데 인내심이 필요했다. 제행무상, 세상이 변하니 이런 전위적인 시인이 많이 나오기 바라는 심정이다. 산우들이 끝까지 읽어주면 고맙겠다.

 

-時論

하늘의 도道는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꺾네.

무왕은 폭력으로 바꾸었건만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 우나라, 하나라 시대는 홀연히 사라졌으니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아! 나는 떠나련다, 운명이 쇠했으니.

 

이것은 <사기열전>의 첫머리를 장식한 <백이 열전>의 한 대목이다. 백이와 숙제는 상나라 제후국의 왕자들로,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을 응징하려 하자 불충이라는 명분으로 반대했다. 주 무왕이 그러한 반대를 무릅쓰고 상나라를 치자 백이와 숙제는 명분이 통하지 않는 혼탁한 세상과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며 살았다. 위의 노래는 그들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지은 것으로, 결기 어린 도저한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사마천은 이 두 인물에 의탁하여 <사기> 전체의 의도를 말하려 했다. 그는 어진 덕망을 쌓고도 끝내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의 운명을 슬퍼하며, 정의로운 자가 망하고 불의한 자가 흥하는 현실 세계의 냉혹성과 그 속에서 겪는 인간 운명의 비극성을 성찰했다. 이는 다시 하늘의 도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으니,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 즉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라는 말은 그것을 잘 나타내는 핵심대목이다.

 

위의 글은 최근 임용복 산우와 한 대화 중에 나온 것을 두고 잠시 생각하면서 인용한 것이다. 사육신 중 성삼문은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는 절명시를 지었으니 이제는 백이와 숙제를 가리키는데 고사리도 따먹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기개는 대단했다. 인간의 운명을 정한다는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데 유신론과 무신론의 중간에서 약간은 무신론에 치우친 불가지론이 있다. 그들은 세 가지 대명제 1. 우주와 생명의 기원 2.신과 영혼의 존재 3.선과 악의 귀결 혹은 인과응보에 대해 우주가 소멸돼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신학적이라기 보다는 철학적 측면이 짙다는 주장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 즉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라는 말은 3.선과 악의 귀결과 관련이 있다. 비교적 치열하게 살았던 한 갑자를 지나면서 최근 7년의 풍진 세월을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며 지냈다.

 

최근에 불교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최초의 불교 경전이라는 숫타니파타를 읽으면서 '빨리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지듯이 그대는 온 사람의 길을 모르고 간 사람의 길도 모른다. 그대는 생과 사의 양쪽 끝을 보지 못하고 부질없이 슬피 운다. 우파시바여! 무소유에 의지하면서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생각으로 번뇌의 흐름을 건너라. 모든 욕망을 버리고 의혹에서 벗어나 집착의 소멸을 밤낮으로 살펴라,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 그러나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그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부처는 마음에서 증오를 제거했을 뿐 아니라 마음에 '자비가 가득하고,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잘 되기를 바랐다'. 그러 했으므로 그의 마음은 차분하고 고요해졌으며 몸을 쇠약하게 만드는 의심으로부터 벗어났고 해로운 정신상태 때문에 괴로워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나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한다.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218회 남한산성 산행기 / 임삼환

일 시 : 2013년 9월 21일 10시

집결지 : 마천역 1번 출구

산행코스 : 마천역 → 특전사령부→ 만남의 장→ 쌍바윗길 → 산행시작 → 캐슬랙스 골프장 옆→ 옹성→ 서문→ 어저약수터 인근→ 서문 → 학암로 → 산성식당

참석자 : 김용우. 나양주, 위윤환, 조영운, 김진오, 김종화, 박형채, 전작, 최광일, 조문영, 김정남, 임삼환 (12명의 시산인 )

동반시 : 달릴줄 알지만 달리지 않는다 / 김용우 산우 자작시

 

추석을 지낸지 이틀, 아직 연휴 중이어서 그런지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아침 일찍 마천역을 향해 출발했다. 상당히 먼 거리인데도 스마트폰으로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듣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법륜스님은 여러 질문에 막힘이 없이 시원한 해답을 주시니 정말 도가 높으신 분이다.

 

마천역 1번 출구에 나오니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아무도 없다. 배낭에서 갤럭시탭을 꺼내 ‘나들이’ 프로그램을 작동시켜본다. 깊은 산속을 헤맬 때 꼭 필요한 프로그램인데 오늘 그 해답을 찾아 문제점을 해결했다. 정말 기분이 좋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걱정이 없을 것 같다. 한참을 들여다보며 즐거워하고 있는데 정남 산우가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오랜만이라 매우 반갑게 인사하고 내 자랑을 했다. 지난 주말에 내가 산삼을 캤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축하해줬다. 핸드폰에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의기양양하고 있는데 우리 산우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당초에는 오늘 참석자가 21명이라 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12명으로 줄었다. 명절 끝이라 모두들 바쁜 탓이리라.

 

약속시간쯤 되니 9명의 산우가 모였으나 종화 산우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형채, 양주 산우는 가는 길에 있는 만남의 광장에 도착했단다. 약간 시간이 지나서 종화 산우가 숨 가쁘게 달려오고 반가운 인사 후 보무도 당당히 출발 했다. 모두들 추석 명절을 지냈는데도 피곤한 기색이 없이 씩씩하다. 거여삼거리와 비호아파트를 지나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니 어느 대형아파트 건설사에서 분양 이벤트 행사를 하고 있다. 앙케이트지에 서명하면 물티슈 2통을 준다고 하니 모두들 서명하느라 바쁘다. 정남 산우가 서명하고 물티슈 한통을 내손에 쥐어준다. 인근 마트에서 막걸리와 군것질거리를 준비하고 만남의 광장을 떠나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오늘 날씨는 아주 덥지는 않으나 햇볕은 뜨겁고 바람도 없어 매우 후덥지근하다. 학암로를 따라가다가 본격적인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경사가 약간 심해 초반부터 이마에 땀이 흐른다. 흙길이어서 걷기는 매우 좋으나 경사가 심해 모두들 거센 숨소리를 낸다. 한참을 걷다보니 왼쪽으로 옛 이름이 동서울CC인 캐슬랙스 골프장이 보인다. 요즘은 이름을 거의 영문으로 바꾸니 그것도 현재의 추세다. 글로벌 시대라서 그런가. 골프를 즐겼던 정남 산우는 일명 게릴라 코스라 별로였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한다.

 

골프장을 지나니 경사는 더욱 급해져 숨이 터질 지경이다. 힘드니 쉬어가자며 배낭을 벗었다. 여기저기서 물병을 꺼내 목을 축이고 먹을거리가 튀어나온다. 형채 산우가 광주 충장로표 단팥빵을 꺼냈는데 학창 시절 정말 먹고 싶었던 빵이다. 양주 산우는 모나카 양과자를, 종화 산우는 초코랫을, 광일 산우는 배를 깎아 담은 통을 내민다. 역시 먹는 시간은 즐겁다. 적당히 쉬고 막바지 고갯길을 넘는데 장난이 아니다. 고도계를 보니 남한산의 정상이 522미터인데 약 500미터 고지에 와있다. 시작점은 고도 100미터인데 400미터를 넘게 올라왔으니 힘들만도 하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자리를 물색하는데 등상하기에 좋은 초가을이라 등산객이 그리 많아 앉을 만한 곳이 없다. 등산객 무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으니 벌써 12시가 지났다. 조금 밑에는 어저약수터가 있다고 지도에 나와 있는데 약수터는 보지 못했다. 진오산우는 큼직한 술빵을 내놓고 정남 산우는 두부김치와 단골 메뉴 한과를 내고 영훈 산우는 순도 100% 도토리묵을 가져왔다. 그리고 김밥, 갓김치 등 대풍년이다. 나는 집사람이 아침에 부쳐준 버섯부침개와 지난 초여름에 담가놓은 일명, 정력에 좋아 산양들이 즐겨 먹는다는 음양곽으로 우려낸 삼지구엽초술을 내놓았다. 한양기의 완도 김치가 없어 아쉽다는 친구들의 아쉬운 탄성이 들린다. 양기! 다음에 올 때 그 맛있는 김치를 부탁하네. 나이 들어 환갑이 지나니 힘쓰는 게 시원치 않은 것 같아서 패트병으로 하나 담아갔는데 전작 회장님의 우렁찬 건배사와 함께 모두 한 잔씩 마셔줘서 고마웠다. 시간에 맞춰 오늘 산행 동반시를 기자인 내가 낭송했다. 산행시는 용우 산우가 자작한 ‘ 달릴줄 알지만 달리지 않는다’ 였다. 그는 겸연쩍어 했지만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우정 어린 덕담은 계속된다. 오늘 이 산행기를 빌어 두 명의 시인이 탄생했음을 선포한다. 제 삼 제 사의 시인이 나올 것을 믿는다. '산과 시'. 우리 시산회에게 적용되는 최상의 용어이며 찬사다.

 

달릴줄 알지만 달리지 않는다. ( 김 용우 )

 

바람은 거꾸로 송곳의 날이 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얀 하늘은 불덩이 되니

모두가 살기 위해 머나먼 길로 서둘러야 했지만

너는 이곳을 지켜야 한다며 그곳에 남기로 했다.

 

뜨거운 태양과 물 한 모금 없는 메마른 나라에서

사나운 바람과 긴 밤의 거친 추위를 맞아야 하여

두 겹의 속눈섭, 귓속의 털, 콧구멍을 닫을 수 있다.

오랜 걸음도 마다 않을 발가락은 두 가닥이 되었다.

풀 한포기 없는 머나먼 모래언덕을 올라야 하고

고프고 허기진 갈증을 이겨내야 너를 지킬 수 있어

마른 풀뿌리, 억센 가시나무도 그저 고마운 밥상이고

단봉이든 쌍봉이든 저장된 기름은 생명의 탯줄이다.

 

너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너 나도 떠난 자리, 그곳을 지킨 이유는 뭘까

죽음이 새로운 삶이라는 걸 너만 알았단 말인가

변화에 맞서는 도전의 용기가 고뇌의 길이었던가

 

땡볕에 얼굴을 피하지 않고 마주한다.

그늘 우산은 세운 얼굴의 희생이 주는 댓가이다.

 

고요한 인내의 자세가 너를 지키는 선택임을 안다.

오랜만의 물만으로 부족한 체중을 단숨에 회복한다.

 

늘 젖은 너의 눈은 아픔을 숨기는 흔적인가.

너의 눈물은 지킴의 힘이고 창조의 확인이다

채찍이 아니라면 너는 본디 느긋한 걸음이다.

달릴줄 알지만 달리지 않는다

 

너의 아버지는 낙타!

 

 

맛있는 음식에 시원하게 갈증을 풀어주는 막걸리가 들어가니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다. 내려오다 보니 서문이 나온다. 모두 둘러 앉아 단체 사진을 찍었다. 멋진 아가씨가 우리 노인들의 부탁대로 사진을 잘 찍어주었다. 하산길은 주로 내리막길이어서 별로 힘들지 않았다.

 

하산하면서 방학동 같은 동네에 살면서 간혹 만나서 술잔을 주고 받는 정남이와 많은 얘기를 나누며 내려왔다. 산은 모든 것을 품는다. 가슴에 화를 가지고 가면 말없이 받아주고 슬픔도, 고통도 받아주니 내려올 때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온다. 산은 비와 바람, 차가운 눈, 뜨거운 햇볕, 천둥, 번개, 안개를 말없이 받아주고 온갖 산객들이 가슴에 혹은 머리에 담아온 좋고 나쁜 사연을 받아준다. 심지어 산나무의 열매를 받아 씨로 만들어 자손을 탄생시키고, 동물의 똥도 받아들임으로서 땅을 기름지게 하여 봄에는 새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잎을 무성하게 키워 숲을 풍성하게 하며, 가을에는 단풍으로 산객들의 마음을 붉게 물들인다. 겨울에는 눈을 물로 저장하여 다가오는 봄 가뭄에 대비한다.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는 복받은 국민이다. 전쟁이 나도 산이 많거나 밀림이 우거진 나라는 쉽게 정복당하지 않았음을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산이 시를 만나면 무엇이 될까! 우리는 왜 산처럼 살지 못할까! 우리가 산에 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정남이도 나도 불교 쪽에 관심이 많다보니 이야기의 끝은 항상 그쪽으로 기운다. 부처는 자신의 신격화를 극렬하게 거부하고 다만 자신을 '늘 깨어 있는 자 혹은 스스로 깨어난 자'로 기억해달라고 했으니 불교는 결코 종교가 아니고 철학이라는 점에 의견이 같으므로 종교 이야기가 아닌 철학 이야기라 생각하고 종교가 다른 산우들의 오해가 없기 바란다. 정남의 화두는 '판치생모(빠진 앞니에 털났다)'이고 나는 다음 기회에 얘기하련다. 동창 한의사인 이인 원장이 강의하는 선유림회(禪惟林會)에 나가는데 조계종이 선호하는 참선이 아닌 부처님이 참구했던 방식인 위빠사나 명상과 불경 공부를 한단다. 이 원장은 참선을 염두에 두었는데 회원들이 시간이 어렵고 오래 걸리는 참선보다 부처님 방식의 위빠사나 명상을 원해서 시작한 마음의 공부란다. 느리고 비우며 사는 방식과 비슷하니 자신도 그렇게 간다고 한다. 처음에는 용우, 조 총장, 나 원장 등 여러 산우가 참석했으나 현재는 자신 뿐이니 함께 공부하자는 제안에 흔쾌히 승락했다. 참선을 배웠고 마음의 공부로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정남이가 지독한 다혈질의 선두에 있는 사람인데 요즘은 잘 웃고 여유가 있어 보이는 것이 그 공부 덕분인 것 같다.

 

뒤풀이는 학암로에 있는 산성길 맛집에서 했다. 정남이가 결혼식에 참석해 준 답례를 하겠다니 조 총장이 참석 인원이 많은 울릉도에 가서 하라고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친구지만 지금은 마나님에게 다 주고 비우고 버려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텐데 괜히 내가 걱정이 된다. 정남이 걱정마시게, 그래도 우리들의 관례는 15만원이니 오징어회라도 실컷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내려오다 보니 벌써 3시가 넘어 출출할 때라 모두들 둘러앉아 막걸리와 해물파전, 닭발 안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오늘 우리는 약 4시간 반 동안에 약 7.4키로를 걸었다. 고령의 나이에도 거뜬히 남한산성을 다녀왔으니 모두들 대단한 체력이다.

 

산삼을 캐느라 바빴고 명절이 끼워져 약속을 추석 이후에 밀쳤더니 모임이 밀려 산행기가 늦어졌다.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오래오래 사세.

 

2013. 9. 26. 임 삼환 씀

 

 

3.산행지

위윤환 산우의 영원한 로망인 예봉산을 산우들이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본인은 좋다고 하지만 시산회에서 예봉산에 올랐던 산우들은 가파르고 숲도 빈약하고 물도 없었다는 기억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가파른 코스를 가기 싫은 것은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으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에 비해 예빈산은 높지 않으니 가파르지 않고 정상 부근을 돌아서면 펼쳐지는 탁 트인 두물머리의 광경에 탄성이 나온다. 들국화의 일종인 구절초를 보며 내려와서 보리밥상 집에서 먹었던 웰빙 식품인 비빔보리밥과 한 교장이 베풀었던 녹차 아이스크림, 마석까지 나와 어머니와 아들이 만들어 주어서 맛나게 먹었던 콩물국수의 기억이 깊게 박혀있으니 예빈산에 대한 환상은 아직 산우들의 머리에 남아있다. 그러므로 안타깝지만 위윤환 산우의 예봉산 예찬은 힘을 잃었다. 지난 번 제192회 산행 때는 비가 많이 와서 견산만 하고 파전에 막걸리로 산행을 가름한 적이 있다. 하산길에는 구절초를 비롯한 들꽃이 가득 피었을 것이다. 들꽃을 전문가 못지 않게 잘 아는 신원우 산우가 오면 더 반가울 일이다. 가을은 짧다. 이 좋은 가을에 한 번이라도 더 좋은 산우들과 더불어 산과 시를 만나보자.

 

4.동반시

동반시 선정권자인 임삼환 산우가 내게 위임해 김용우 산우가 동창회 카페에 올린 시 중 골랐다. 평상과 다른 감정이 일어날 때 처음으로 알아차리는 게 심장이므로 다른 기관은 지나치기도 하는데 심장만은 비껴가지 못하니 우리의 심장은 고달프기도 할 게다. 우리들의 삶 중에 가장 심장이 아파하는 게 배우자와 영원한 이별이고 이혼이 다음이고 자식의 죽음이 세 번째라니 두 개를 겪은 문인 박완서 씨가 나이 들어 한 말이 떠오른다.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난 살아오면서 볼 꼴, 못 볼 꼴 충분히 봤다. 한 번 본 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며 시인 김지하의 장모였던 박경리 씨는 운명하기 몇 달 전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격동기를 살아내고 돌아가신 노 소설가들의 말에 내 가슴도 찡해온다. 편안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미리 버리고 비우고 살면 편안한 것을 우리라서 모르겠는가. 동반시의 김남조 시인도 그들과 비슷한 연배이니 가실 때 뭐라 말하고 가실까. 스산한 가을에 괜스레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나는......

 

심장이 아프다/김남조

“내가 아프다”고 심장이 말했으나
고요가 성숙되지 못해 그 음성 아슴했다
한참 후일에
“내가 아프다 아주 많이”라고
심장이 말할 때
고요가 성숙되었기에
이를 알아들었다

심장이 말한다
교향곡의 음표들처럼
한 곡의 장중한 음악 안에
심장은
화살에 꿰뚫린 아픔으로 녹아들어
저마다의 음계와 음색이 된다고
그러나 심연의 연주여서
고요해야만 들린다고

심장이 이런 말도 한다
그리움과 회한과 궁핍과 고통 등이
사람의 일상이며
이것이 바수어져 물 되고
증류수 되기까지
아프고 아프면서 삶의 예물로
바쳐진다고
그리고 삶은 진실로
이만한 가치라고

 

2013. 9. 25. 신당도서관 雨休齋에서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