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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북한산 둘레길(詩山會 제229회 산행)

북한산 둘레길(詩山會 제229회 산행)

 

산 : 북한산

 

코스 : 길음역-둘레길 입구-둘레길, 정릉, 진달래능선, 소귀천계곡, 백운대, 도선사 중 선택

 

소요시간 : 3~4시간

 

일시 : 2014년 2월 22일(토) 10시

 

만나는 곳 : 전철 4호선 길음역 3번 출구

 

준비물 : 간식, 막걸리(길음역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야 하므로 가게가 없음을 감안하여 필히 지참)

 

연락 : 임삼환(010-2168-370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詩가 있는 時論

 

산길을 걷다가/박상천

 

아무도 없는

눈 덮인 산길을 바삐 걷다가

잠시 숨을 돌리려

바위에 앉았습니다

 

발자국 소리가 멈추자

주변이 갑자기 고요해지더니

산이 품고 있던 소리들이

조심스럽게 살아납니다

내 발자국 소리에 숨죽이고 있던

산새소리

나뭇잎들 바스락거리는 소리

눈 위에 햇살 내리는 소리

 

아, 거기 그 소리들이 있었습니다

내 발자국 소리에 묻혀

듣지 못하던 소리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발걸음을 멈춰야 들을 수 있는 산의 소리들

숨죽이고 바위에 앉아

산의 소리를 들으며

내 발자국의 소란

내 발자국의 몰염치

내 발자국의 횡포를 깨닫습니다

 

 

-詩評

산은 모든 것을 품는다고 한다. 산은 바람이 머무는 곳이다. 바람은 무엇에도 구애 받지 않으므로 그 점에 있어서 신과 다를 바가 없다. 산은 신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산 전체가 신이다. 와서 보라. 산을 본받고 물을 규범 삼는다(模山範水)라는 고언이 있다. 세속에서 추구하는 바를 잠시 내려놓고 설산으로 들어가면 어느새 정신이 진일보하는 것을 쉬이 느낄 수 있다.

 

일천의 바위는 빼어남을 다투고 일만이나 되는 골짜기는 흐름을 다툰다(千巖競秀 萬壑爭流). 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대한 표현이다. 설산에서는 이 아름다움에 기개가 더해서 세상사를 초탈하도록 이끌어준다.

 

20대를 거치지 않는 30대가 없듯이 낮은 지역을 품고 있지 않는 산은 없다. 물 없는 산은 없다. 그러므로 물과 산은 떼어서 구분할 수 없음이다. 오직 우뚝 솟은 산을 구경하고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음으로써 마음을 기쁘게 하자는 것만 아니라, 智者樂山 仁者樂山은 뜻을 산수에 붙여 仁과 智의 즐거움을 좇아서 본성을 회복하여 도에 이르자는 것이다. 첫 산행 때 우리 모임의 명칭이 요산회가 될 뻔 했으나 시산회로 붙여진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때 양기 산우가 주장을 포기한 것은 <금강경>의 정수인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以生其心)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었나 봅니다. 노자 <도덕경>上善若水는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있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있는 듯 없는 것 같고, 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없는 듯 있는 것 같다. 우리 모두가 길을 가며 길에서 구하고 길에서 죽는다. 수많은 갈림길에서 혹은 길조차 사라진 행로에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것이 삶과 무엇이 다르랴. 시인은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신의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닐까.

 

산을 함부로 말하지 마라, 우리의 입은 작다.

<도봉별곡>

 

 

 

-時論

요즘의 일본의 못 돼먹은 행태를 지켜보면서 오래 전에 보았던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는 기자의 글을 그대로 옮긴다. 正見해보라.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말씀 중에 항상 마음에 담고 사는 말이다. 내가 불교와 도교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으나 도교와 불교는 결코 종교가 아니라는 신념에 변함이 없으니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산우들의 오해가 없기 바란다.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대마도로 맞짱떠라!

지난 주말 몇 분의 역사학자와 함께 대마도(對馬島)를 다녀왔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50㎞! 후쿠오카에서 오려면 138㎞다. 대마도는 가깝기도 하거니와 우리와의 인연도 깊고 오래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의 왕인 박사가 375년 『천자문』 한 권과 『논어』 열 권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 처음 닿은 곳이 대마도의 와니우라(鰐浦)다. 이곳에 ‘백제국왕인박사현창비(百濟國王仁博士顯彰碑)’가 서 있다. 이외에도 대마도엔 우리와 관련된 유적이 허다하다.

 

그래서인지 대마도가 본래 우리 땅이고 반환받아야 마땅하다는 주장도 거세다. 현역 육군대령 김상훈씨도 그중 하나다. 근거는 이렇다. “백두산은 머리고, 대관령은 척추며, 영남은 대마, 호남은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以白山爲頭 大嶺爲脊 嶺南之對馬 湖南之耽羅 爲兩趾).” 1750년대 제작된 ‘해동지도’의 글귀다. 19세기에 작성된 경상도 지도에서도 대마도는 조선땅이다. 심지어 1945년 발행된 ‘해방기념판 최신 조선전도’에도 대마도는 엄연히 우리 땅이다. 우리 지도만이 아니다. 정한론(征韓論)의 시조 격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1785년 만든 『삼국통람도설』 내의 지도에서도 대마도는 조선의 것이다. 비단 지도만이 아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사흘 뒤 가진 첫 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다. 이듬해 연두회견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대마도 반환은 우리의 실지(失地)를 회복하는 것이다. 일인들이 뭐라 해도 역사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6·25가 발발하면서 ‘대마도 반환’은 전쟁의 포성에 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대마도 실지회복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 시마네현은 2006년부터 매년 2월 22일을 독도의 일본식 이름인 ‘다케시마의 날’로 정해 기념행사를 해 왔다. 어제도 어김없이 행사를 했다. 집권 자민당 내각은 시마지리 아이코(島尻安伊子) 해양정책·영토문제 담당 내각부 정무관(차관급)을 정부 대표로 행사에 파견했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자민당 간사장 대행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자민당 청년국장 등 현역 의원 18명도 참석했다. 실로 역대 최대 규모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신·구 정권의 권력교체로 부산한 시기에 자행된 일이다.

 

2005년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하자 당시 마산시 의회는 이에 대응해 3월 18일 ‘대마도의 날’ 조례를 제정했다. 이날 제정된 조례는 “대마도가 한국 영토임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며 영유권 확보를 목적으로 하고, 조선 초기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마산포를 출발한 6월 19일을 대마도의 날로 정한다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시 우리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불필요한 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자제를 부탁했다. 그래서인지 마산시가 창원시로 통폐합되자 창원시 의회는 지난해 12월 11일 기존의 ‘대마도의 날 조례’를 ‘창원시 대마도의 날 조례’로 수정했다. ‘다케시마의 날’이 형식상 시네마현의 행사인 것처럼 대마도의 날도 형식상 창원시의 행사인 것으로 수위조절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형식상으론 현 단위에서 열면서도 내용적으론 정부 관여 행사로 지속한다면 우리 역시 ‘대마도의 날’ 행사를 정부 차원에서 관여해 맞불을 놓아야 마땅하다.

 

재집권한 일본 자민당은 영토 문제에 관한 한 강경 기조다. 하지만 정작 러시아와는 모리 전 총리가 방러하는 등 모종의 타협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초강경이다. 일본이 1855년 러·일 통상조약 이후 점유했다가 2차 대전 종전 후 도로 빼앗긴 북방 4개 섬을 달라 말라 할 입장이라면 대마도는 진작에 우리에게 토해 놓았어야 옳다. 북핵 못지않은 문제인 독도와 대마도! 새롭게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나갈지 두고 볼 일이다.

 

2013. 3. 2

정 진 홍 논설위원

 

2.산행기

시산회 제228회 안양 수리산 산행기/한양기

일시 : 2014년 2월 9일(일) 오전 10시 30분

만남장소 : 1호선 명학역(안양)

참석인원 : 14인(기세환, 김용우, 김정남, 김종화, 김진오, 나양주, 염재홍, 위윤환, 이경식, 임삼환, 전작, 정한, 조문형, 한양기)

동반시 : ‘마음의 수수밭‘/천양희

뒤풀이 : 새마을식당 안양역 1번가점/숯불구이, 쐬주

 

11:03, 기세환 산우와 우리 팀이 해후할 시각이다. 첫마디가 “똥줄이 탔다”란다. 고교시절부터 시간준수를 철칙으로 하고 생활화한 친구임을 알기에 그 표현의 적절함이 가슴깊이 와 닿는다. 안양역에서 한 정거장인 명학역에 내리려고 무심코 타고 보니 수원역이 다음 정거장인 급행열차였단다. 당황하여 수원에서 택시로 오겠다는 전화다.

 

고교동창 모임은 시절도 착각하게 하는가보다. 60년대쯤이면 택시가 총알같이 빠르다 했지만 지금은 지하철이 제일이니 편한 마음으로 갈아타고 오라고 위로한다. 안양-수원 백리 길을 왕복했는데도 30분밖에 늦지 않았다. 대중교통 정거장에서 만나는 시각을 10시로 정한지 10여년! 이번에 처음으로 30분 늦추어 10시 30분으로 개선되었다. 느긋해져 보자는 뜻이 아닐까 생각된다. 30분쯤 늦어질 것에 당황하여 똥줄을 태우면 안 될 것 같다. 그냥 느긋해져 보자.

시산회 역사상의 수리산행은 4회 이상으로 기억되는데 본 기자가 참석했던 2회의 들머리는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만남의 장소에서 걸어서 10분 이내에 산속에 들어가야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전에는 시가지를 너무 많이 걷거나 버스를 갈아 탄 후에야 들머리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대기자의 책무가 주어지기도 하여 인터넷상의 산행기와 안내지도 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빠른 들머리 찾기 안내 조언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기에! 들머리 안내에 자신 있는 산우가 나서지 않기에 이번에는 내가 역할을 자임했다.

 

명학역 건너 큰길과 접한 소공원에서 좌측으로 걷다가 사거리 지나면 ‘성문교회’가 보이는 골목길이 나타난다. 교회를 지나면 위로 오르는 돌계단으로 된 쪽길이 보인다. 돌계단을 오르면 관모봉이 보이는 능선길이 시작되는 야산이다. 50M 정도 오르면 방향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명학역에서 이곳 들머리까지는 5분 이내 거리인데다가 능선길로 이어지기 때문에 가는 방향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어서 산행 시작부터 차분하게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평지 같은 흙길을 걷다가 조금씩 경사진 능선을 계속 오르면 관모봉에 닿는다. 오늘 산행은 설경 산수 감상이 보너스다. 우리들의 산행일에 맞추어 눈꽃을 뿌려놓았다. 새벽안개가 끼었는지 습기를 머금은 차가운 하늬바람 때문에 높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상고대가 아름답다. 평소보다 3배 무거운 습설이란다. 어제 저녁에 내렸고 입춘이 지난 날씨인데도 녹지 않아 설경 산수화를 멋지게 그려내고 있다. 사박사박한 눈맛을 보려고 아이젠 착용을 보류한다.

앞서가는 기세환, 김용우 산우의 발길이 가뿐하다. 등산화가 좋으면 덜 미끄럽단다. 하질 등산화를 신고도 그냥 따라간다. 인생도 그냥 따라 다닌다. 따라 가는 인생이 편하다던가! 관모봉까지는 아이젠 착용 없이도 오를 수 있다. 관모봉 꼭대기에 바위가 하나 있다. 태극기도 있다. 관모봉 위에 오래 머무르면 무례한 산인이 될 것 같아 그냥 지나쳐 가기로 한다.

 

관모봉을 지나니 된비알길이 나오니 모두가 아이젠을 착용했다. 내려가는 등성이가 있어 정상인 태을봉에 오르려면 내리막길의 경사가 심할 줄 알았는데 급경사는 없다. 관모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손에 잡힐 듯이 태을봉이 보인다. 수리산에서 제일 높은 489.2M의 정상이다.

 

태을봉 정상은 넓어서 헬기장이 있다. 커다란 오석으로 태을봉 표지석을 세웠다. 태을의 의미도 음각해 놓았다. 큰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 내리는 형상을 태을이라 한다는 친절한 안내문이 있다. 일출 때의 태을봉 그림자는 커다란 태을 형상으로 보인다고 씌어 있다. 이 봉우리 형상 때문에 순수 우리말 수리를 차용하여 수리산이란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정상의 인증 사진은 빼놓을 수 없는 일. 모두의 얼굴에는 정상을 밟은 만족감으로 빛난다. ‘아자!’의 구령과 함께 웃음꽃도 피고.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誌)에 수리산 기록이 있다고 한다. 태을봉 옆 공터에 돌 탁자와 의자를 꾸며 놓았는데 군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대 역할을 한다. 비어 있는 두 개의 탁자를 앞에 하고 간식 시간을 갖는다. 오늘의 간식은 거창하다. 먹기 전에 갖는 식전 행사인 동반시 낭송은 나의 몫이다. 누군가 산에서 읊는 시 낭송의 목소리는 세환이와 용복이 나 삼인방이 가장 좋다고 하니 비용도 안 드는 덕담인데 자랑거리가 별로 없는 나로서는 쑥스럽지만, 그 칭찬(?)을 즐거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받아들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마침 어느 분이 동반시를 받아들고 유심히 본다. 관객이 많으면 배우도 신이 나는 법. 그날은 박수소리가 유난히 커서 산행기를 쓰는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조 회장과 임 총장, 정남이가 김치전 조리기구를 두 세트 마련해왔다. 뜨끈하고 고소한 김치 부침개는 막걸리와 찰떡궁합이다. 돼지껍데기가 씹히지 않은 것으로 봐서 돼지 알레르기가 있는 회원의 사정까지 감안했음이리라.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그 친구는 얼마나 불편할까! 설경 산수 속에서 돋는 취기로 큰 소리로 떠드는 호기를 부려본다. 지난 번 한탄강 트래킹 때 목격했던 정경이 조 회장은 몹시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때는 비가 왔었지. 오늘도 빗방울은 떨어진다. 눈 녹는 빗방울과 산중의 부침개! 얼마나 좋은가! 뱃속에서 술 익는 소리가 들리고 목소리는 높아진다. 마음이야 하늘을 날고 싶더라도 주변의 이목이 있으니 점잖은 체면에 자중함을 잊지는 말아야지!

 

수리산의 백미는 태을봉-슬기봉 구간이며, 태을봉에서 슬기봉으로 가는 길은 상당한 험로다. 된비알길을 한참 내려가다 보니 평평한 등성이가 나타난다. 이정표가 있으나 길은 사거리인데 안내 표지판은 3개만 달려있다. 양쪽 봉우리와 군포 방향만 가르쳐 주고 있다. 오른쪽 방향이 안양임은 분명한데 모두가 초행이라서 확신을 갖지 못한다. 때마침 그 길로 올라오는 중년의 여인이 한 사람 있어 길을 물었더니 절에 차를 두고 올라오는 초행길이라 안양 쪽 길은 모른다고 한다. 의견을 모아 그 길로 가기로 했다. 슬기봉 등산을 생략하기로 한다. 수리산의 백미구간을 맛보려면 이제부터인데 앞길이 너무 가파르다. 백미가 아니면 현미(?)로 만족하기로 한다. 오늘 우리 산행의 백미는 그 길에서 맛보게 된다. 현미로 만족하려 했는데 진짜 백미 맛이다. 선경에 들어섰다고 아우성이다. 사방이 설경이다. 하얀 산길은 고즈넉이 열려 있고 만산 수목에는 설화가 눈빛처럼 형형하다. 형형하다는 표현은 눈빛에만 쓰는 표현이 아니다.

 

이어지는 중간 산길을 우리 팀이 독차지하고 걷는다. 수목과 눈높이를 같이 하며 걷는 이곳이 선경이 아니면 어디를 선경이라 할꼬?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고 새들도 낮잠을 자는지 깊은 산속의 적막함을 만끽한다. 이런 성스러운 광경을 불가에서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 했던가! 나뭇잎이 연초록으로 물드는 4월에 다시 만나고 싶다.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쉽게 아스팔트길이다. 밑자락은 공원으로 단장돼 있다. 오늘 들머리에서부터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온 거리는 5KM 정도다. 임삼환 총장이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거리이니 틀림이 없을 것이다. 걷기만 했다면 2시간쯤 걸렸을 거리다.

 

현재시각 4시! 우리들은 5시간으로 늘려서 즐겼구나. 선사들의 모임이니 시간은 더욱 늘어만 나겠지요.

 

병목안 공원으로 내려와 시내버스로 몇 정거장 이동하니 정남이가 20년 전에 지었던 아파트도 보이고, 이윽고 안양역 근처에 도착한다. 안양역 1번가! 지상도 지하도 번화한 가게가 즐비하다. 겉모습을 60년대식으로 디자인한 새마을 식당! 번화한 뒷골목에는 하나씩 자리 잡은 체인점인데 양은 냄비에 끓인 김치찌개를 한두 번 맛본 적 있었다. 고기맛은 좋은 집이다. 체인점 물주가 재벌급 자산가이기 때문에 식재료는 좋은 것만 쓰도록 한다는 정한 선생의 설명이다.

 

오늘은 특별한 날! 선경에서 급강하한 선사들이 모였으니 “무취불귀!"하여 숯불구이에 쐬주 궁합을 맞추기로 했다. 기자는 산우들과 술에 취하고 행복에 취했다. 오늘 저녁 기사 원고 작성을 잊어버리면 많이 늦어질 텐데!

 

열람인들의 양해를 바라면서 다음 산행의 동반시 동백꽃(문정희)을 추천합니다.

 

2014. 2. 15.

한양기 올림

 

 

3.산행지

이번 산행지는 북한산 둘레길이므로 쉬운 길입니다. 들머리는 2012. 3. 25. 제181회 산행 때 염재홍 산우가 입구까지 안내해 준 곳입니다. 코스는 근처에 사는 염재홍 산우가 집안 행사가 있어 안내를 해줄 수 없으므로 길음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둘레길 입구에서 내려 서경대 뒤를 지나 빨래골을 거쳐 화계사에서 하산해도 좋고, 힘이 남으면 아카데미하우스길로 가서 뒤풀이를 하면 좋습니다. 기세환 산우가 불참하면 내친 김에 백운대까지 오를 수도 있으니 꼭 참석해주기 바랍니다. 그때 나주곰탕집에서 곰탕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다만 두 아줌마가 반갑게 맞아줬지만 어떤 산우가 본고장 나주 곰탕맛은 아니라고 했는데 맛은 집에서 찾고 그 집이 아직 남아 있다면 다시 갑시다. 맛도 개선될 수 있으니. 재경 총산악회 시산제 얘기도 해야 하니 좋은 의견을 내주고 협조를 부탁할 것도 있습니다. 팔자에 없을 것 같은 큰 감투인 재경광주고 총산악회장을 시켜주었으니 많은 협조를 부탁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고 했듯이 시작했으니 잘해보렵니다. 한양기 산우가 정성스럽게 쓴 산행기에 10년 동안 10시에 만났는데 처음으로 10시 반으로 변경한 것을 ‘느긋한 개선’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사실은 임 총장과 도움쇠의 싸인이 어긋난 결과다. 30분 정도 늦춰도 좋다는 의견이 많으면 변경해도 좋겠지만 장단점이 있으므로 모두의 뜻을 모아 결정할 일이다.

 

4.동반시

미리 정해놓은 동반시를 올려놓았는데 한양기 산우가 동반시를 추천해주니 감사합니다. 한양기 산우의 추천시를 식전 행사로 읊고 내가 추천한 시는 뒤풀이 때 읊어도 좋을 것입니다. 두 시가 시절에 맞으니 내년까지 기다리지 말고 두 시를 다 읊어봅시다. 시성 미당 서정주는 우리 시인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시인이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고 문정희 시인도 동반시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좋은 친구들과 봄이 오는 길목에서 좋은 날에 동남풍을 기원하며 목청이 시인보다 더 시인 같은 세환이나 용복이가 와서 읊으면 우리의 귀는 詩仙의 귀가 될 수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섬진강 가의 광양 매화마을에 봄맞이를 갔는데 만발한 매화밭의 한 켠에 스러져가는 동백꽃을 보며 복잡하고 미묘한 심경이 일어나 찍어놓은 사진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산에 오를 즈음엔 여수 오동도의 동백꽃이 한창이겠습니다. 진달래꽃도 머지 않아 필 것이니 세상은 복잡하고 암담하지만 그래도 어김 없이 우리의 봄은 옵니다.

 

꽝꽝 언 북녘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雨水)다. 얼었다 풀렸다 반복하던 한강 물가 양지바른 곳에선 풀들이 파르라니 봄을 부르고 있다. 6·25 때 한강다리가 폭파되자 서정주는 조지훈 시인과 함께 마포나루 강 언덕에서 뛰어내려 배 지붕을 타고 피란 갔었는데. 생때같은 목숨 무수히 앗아가 떼과부 무리들만 남긴 전쟁 끝나고 다시 그 한강 언덕에 선 시인의 심사, 위 같으리니. 아린 맛 쓰린 맛 다 보면서도 새봄을 맞는 우리네 심사 또한 그러하리니. 풀린 대동강, 한강 물 흘러내려 서해에서 만나듯 꽝꽝 언 남북도, 우리네 일상도 다 그렇게 순하게 풀렸으면.-시평 이경철

 

풀리는 한강 가에서/서정주(1915~2000)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장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민들레나 쑥 잎 같은 것들

또 한번 고개 숙여 보라 함인가.

 

황토 언덕,

꽃상여,

떼과부의 무리들,

여기 서서 또 한번 더 바라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동백꽃/문정희(1947- )

 

나는 저 가혹한 확신주의자가 두렵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

함께 꽃피우지는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나는 차마 발을 내딛지 못하겠다.

 

전 존재로 내지르는

피 묻은 외마디의 시 앞에서

나는 점자를 더듬듯이

절망처럼 난해한 생의 음표를 더듬고 있다.

 

2014. 2. 20.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도움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