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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북한산 단풍 구경 갑시다(詩山會 제272회 산행)

북한산 단풍 구경 갑시다(詩山會 제272회 산행)

 

산 : 북한산

 

코스 : 아카데미하우스-칼바위능선-대동문-소귀천계곡-우이동(수유동 굴찜으로 뒤풀이)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5. 11. 8. (일) 오전 10시 30분

 

모이는장소 : 수유역 1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간식, 과일

 

연락 : 위윤환(010-6230-3180)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시산회 카페 : cafe.daum.net/yc012175

 

 

 

1.시가 있는 새벽

 

비 가는 소리 - 유안진(1941~ )

 

비 가는 소리에 잠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不協和)의 음정(音程)

 

밤비에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보는 실루엣 같은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 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다가 깨어나 밤비 소리에 귀 기울인다. 밤비 소리는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不協和)의 음정(音程)”이고,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로 들린다. 비는 새벽녘에 겨우 그친다. 왔다가 돌아가는 게 어디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그렇다. 내게도 젊음 사랑 기회가 다 있었는데, 이것들이 왔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가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소중한 것들은 잃어버린 다음에야 그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진다.

<장석주·시인>

 

새벽비가 반가운 시절이 있었다. 그날은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비는 혼자만의 휴식 공간처럼 아늑했다. 1년에 사흘 쉬고 일해야 했던 고난이 기억의 껍데기로 남아 있다. 속살은 오롯이 내 업장의 아뢰야식으로 들어가서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은 때가 아직 안 됐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 버릴 것 많아진 요즘은 왜 그런 반가운 새벽비가 내리지 않을까. 나는 빗속에서 자는 꿈을 꾸다가 이불속이 지겨울 때 나오는 상상을 하며 싱겁게 웃는다. 창문을 열면 삼각산 세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던 젊은 날의 기억도 가고 오는데.

<도봉별곡>

 

2.속리산 산행기(2015. 10. 31)

 

참석 : 박 여사, 임삼환, 한양기, 위윤환, 나양주, 이윤상, 고갑무, 조문형, 김정남(이상 속리산의 10인들)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자명종 소리에 깨어보니 5시다. 배낭은 챙겨놓았고, 김밥이 나오므로 아침밥은 먹지 않아도 되고, 샤워는 자기 전에 했으니 간단하게 씻기만 하면 된다. 종합운동장역에 7시 반까지 도착하면 되고 1시간 걸리니 1시간 반의 여유가 있다. 습관대로 일원상(一圓相) 앞에 앉았다. 전에는 반가부좌를 틀고 앉았으나 무릎에 압박이 와서 요즘은 편하게 의자에 앉는다. 사실 붓다는 명상할 때 자세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없다. 중국의 선불교에서 시작한 습관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그대로 정착되었을 뿐이다. 가부좌 또는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하는 것은 다리가 굵고 짧은 우리의 체형에 맞지 않는다. 지금도 남방불교에서는 의자에 앉아서 명상한다. 주제는 항상 그대로 ‘오늘은 무엇을 위하여 깨어났는가?’이다.

주어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잘 살아낼 것인가를 생각한다. 친구 박강석의 딸 결혼식이 있으나 오늘 산행지 속리산은 집행부에서 정한 계룡산을 제치고 내가 주장했으므로 당연히 내가 코스 선두를 맡아야 하기 때문에 강석에게 아쉽고 미안하다.

 

마나님을 깨우지 않고 출발한다. 위 총장과 약속한 생굴을 준비하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에 채우기로 했다. 오는 도중에 임 회장님에게 전화 와서 2번 출구라고 알려줬다. 10분 전에 도착하니 다시 전화가 온다. 항상 만나던 잠실역에서 내렸단다. 허참! 마나님까지 모시고 오는데 낭패다. 우리는 15명을 예상했는데 9명으로 줄었다. 나이가 들면 ‘일상은 단순하게 생각은 깊게’ 하라 했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긴 모양이다.

 

산악회 임원들이 인원을 파악하고 물건을 나누는 것을 지켜보면서 작년에 총산악회장의 직분으로 설악산 십이선녀탕계곡을 갔던 기억이 떠올리니 마음이 한결 한가롭다. 10분 늦게 출발하여 중간에 음성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속리산 뒤쪽의 화북지구에 20분 늦게 도착하니 산객이 붐볐는지 주차장을 아래로 옮겼다. 행사이사 정종연의 일정에 관한 당부의 말을 듣고 출발한다. 멀리서 반갑게 맞아주는 속리산의 연봉들 문장대, 문수봉, 신선대, 입석대, 천왕봉이 정겹다. 기온은 낮지만 하늘은 맑아 산에 오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들머리 초입에는 제법 단풍이 짙었지만 오르면서 색깔이 옅어진다. 함께 오른 산우 중에 숨이 가뿐 소리가 들릴 때, 선두에 쉬었다 가자고 하면 항상 맞춰주는 산우들이 고맙다.

 

‘산에 왜 오르는가’를 생각해본다. 시간 변동이란 책에서 스티븐 레츠샤펜은 ‘동반의 흐름’이란 용어를 쓴 적이 있다. 이 말은 '다양한 리듬이 서로 보조를 맞추게 되는 무의식적인 과정'이란 뜻이다. 가령 흔들리는 진동의 움직임이 서로 다른 진자를 나란히 놓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진자의 운동이 같아진다는 것이다. 레츠샤펜은 '이 원칙은 원자입자의 운동이나 조류의 움직임 그리고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하였다.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정말 놀라운 생각이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리듬을 포착하여 따라가기도 하고 실제로 우리 주변의 전체적인 리듬을 따라가기도 한다. 만일 주변의 리듬이 빠르다면 자동적으로 우리의 리듬도 빨라진다. 그것이 바로 동반의 흐름이다. 이 말은 또한 '같은 배에 타고 있는 것'과 같다. 시산회원의 경우, 이제 진동수가 맞아가는 것 같으니 딱 맞는 것으로 생각한다. 어느덧 12년차이니 10년 강산의 변함에 비할 바를 넘는다.

 

적당히 힘 들 무렵, 문장대 밑에 도착했다. 양지 바른 곳에 자리 잡고 오늘의 성찬을 놓고 동반시 ‘법주사 쌍사자석등. 도량석’을 임 회장님의 마나님 박 여사께서 고운 목소리를 한껏 뽐냈다. 역시 시는 여인의 목소리로 읊어야 제맛이 난다. 박 여사께서 시가 좋다면서 싸인을 해달라는데 펜이 없어 하산 후에 해주기로 미뤘다. 민망하지만 좋은 기분이고, 시산회의 수준을 보여줄 수 있으니 만족스럽다. 우리는 호연지기를 옆에 두고 호기롭게 막걸리 5병을 털었다. 동반시를 개작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으므로 다시 올린다. 양주 산우가 마지막 연을 빼면 좋겠다고 하나 나의 의견은 다르다고 설명했더니 동의의 의도인지 몰라도 고개를 끄덕인다. 내려가서 다시 퇴고할 것을 다짐한다.

 

도량석(道場). 법주사 쌍사자석등을 돌며/도봉별곡

 

도량석을 자장가 삼아 치달아온 새벽

찬비 내려 안개로 변해갈 때

밤새 밝힌 석등 속 촛불은 누구의 이별을 위하여 밤을 홀로 지새우는가

 

석등을 돌며

부르는

촉촉한 새벽안개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붓다의 텅 빈 노래

스스로 존재하는 새벽과

이별은 맞이하는 것이다

 

삼 년 갇혀 간수 빠진 소금처럼

싱거워진 이별 보내면

안개 걷히고

자작나무 튼 살과

옷 털어 가벼워진 옻나무와

찬바람에 벼린 송곳잎 매단 전나무와

기어이 떠나고야 말 새벽과

촛불 꺼지지 않아도 찾아오는 아침은

소소리바람같이 숨차게 결별하면서

 

이른 봄 솟는 죽순의 숨은 기억에서 밤새 울었던 사자와 촛불과

연꽃은

무엇을 위하여 아침에 깨어나는가

두 팔 벌려 해를 맞는가

 

문장대에 오른 적이 없는 산우들은 꼭대기까지 오른다고 하니 밑에 기다렸다. 10여분 쯤 기다리고 인증샷. 신선대를 지나 경업대를 거쳐 금강골로 내려가는 코스 대신 냉천골로 20분 쯤 빨리 내려가서 법주사의 국보와 보물들을 자세하게 보자고 건의했더니 흔쾌하게 동의한다. 화북 쪽의 단풍은 지나가는 중이었는데 냉천골 단풍은 사진에 올린대로 절정이다. 하산하여 물어보니 금강골 단풍은 거의 끝물이었다고 하니 하산 코스를 이쪽으로 수정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세심정 휴게소에서 파전을 곁들여 마신 한 잔의 막걸리는 보약에 다름 아니었다. 계곡과 어우러진 단풍은 커다란 동양화를 보는 기분이다.

 

법주사에 가서 금동미륵불상에 가볍게 합장하고 동반시의 소재인 쌍사자석등을 세 번 돌았다. 탐.진.치 삼독, 곧 탐욕과, 분노심, 어리석음을 지운 삶을 살게 해달라는 염원은 많은 것이 결핍된 오늘의 우리에게 최상의 기도다. 국보 팔상전과 석련지를 자세히 보고 금동미륵불상 밑 법당에 간다. 아쉽게도 2001년 점안식 때 하늘에서 내려온 두 줄기 빛을 찍은 사진을 치워버렸다. 見月忘指. 달을 봐야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느냐는 말이다. 如實知見. 본질을 제대로 보라는 뜻이다. 불가사의한 현상은 본질이 아니다. 다만 신기할 뿐. 시간이 흘러 더 이상 볼 수 없다. 아쉬워야 다음을 기약하는 법. 뒤풀이 하는 곳으로 간다.

 

閉門靜坐. 문을 닫아걸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일컫는다. 다시는 탐욕이 눈을 가리는 곳으로 가지 않으리. 다짐한다. 자신을 모두 던지고 가는 자, 순례자라고 한다. 치매에 들지 않는다면 문을 열고 나와 히말라야로 만행을 떠난다. 붓다의 도량 법주사 마당에 서서 사무량심을 외우며 마음의 문조차 열고 풍성한 오후를 꿈꾼다.

 

역시 진동수가 비슷해진 산우들과 술자리는 술조차 하나로 통일하게 만든다. 긴 산행이었으나 힘들지 않았으니 오늘 하루가 즐거움으로 벅차다. 오지 못한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여운이 길게 가서 잠실에서 내려 우리만의 뒤풀이에도 술이 취한 줄 모르고 하루를 알차게 채웠으니, 10월의 마지막 밤에 속리산의 산우들 모두 행복했다. 박 여사께 기어이 싸인해드렸다. 버스에서 불렀던 동문 산우의 노래 ‘잊혀진 계절의 시월의 마지막 밤’은 헤어질 때까지 귓가를 맴돌았다.

 

2015. 11. 4. 도봉별곡 합장.

 

3.다음 산행지

 

북한산 중 어느 코스로 가느냐와 뒤풀이는 어디에서 할 것인가를 고심했다. 구파발로 올라가면 코스가 만만치 않고 하산하여 은하식당으로 가야 하는데 장소가 좁고 맛이 너무 강하다는 소극적인 의견과 소귀천계곡 코스는 쉽고 단풍이 절정일 시기이고 모두가 즐기는 굴찜을 먹을 수 있다는데 점수를 얻어 그곳으로 정한다. 수년 전 이때 쯤, 할렐루야영빈관 뒤의 단풍이 새빨갛게 아름다웠으니 이번에도 기대해본다.

 

4.동반시

 

2010년 미당문학상 수상작이다. 요즘 명상에 빠져 나오지 못한다. 명상과 시 쓰기는 뇌파의 주파수는 같으나 명상은 있는 그대로 실상을 보아라 하고 시는 감정의 과장이 조금은 필요하기 때문에 골의 깊이가 다르다. 보는 방향도 다를 것이다. 본업이 시 쓰기고 명상은 부업인데 큰 일 났다. 공부 모임의 선배들은 둘의 자리를 바꾸기가 쉽지 않으니 이참에 전직하라 한다. 자기들이 시인인 양, 말이다. 아쉬울 게 없어 욕심 비워진 요즘, 나쁘지 않다는 쪽으로 자주 손이 간다. 마침 속리산 단풍을 실컷 즐기다 온 업(業)으로 못 간 산우들에게 가을 맛을 보라고 이 시를 동반시로 정한다.

 

가을 저녁의 말/장석남

 

나뭇잎은 물든다 나뭇잎은 왜 떨어질까?

군불 때며 돌아보니 제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꾸물대는 닭들

 

윽박질린 달이여

 

달이 떠서 어느 집을 쳐부수는 것을 보았다

주소를 적어 접시에 담아 선반에 올려 놓고

 

불을 때고 등을 지지고

배를 지지고 걸게 혼잣말하며

어둠을 지졌다

 

장마 때 쌓은 국방색 모래자루들

우두커니 삭고

모래는 두리번대며 흘어나온다

모래여

모래여

게으른 평화여

 

말벌들 잉잉대던 유리창에 낮은 자고

대신 뭇 별자리들 잉잉대는데

 

횃대에서 푸드덕이다 떨어지는 닭,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

나뭇잎은 물든다

 

2015. 11. 4.

산을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봉별곡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