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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동해와 선자령(詩山會 제284회 산행)

동해와 선자령(詩山會 제284회 산행)

 

산 : 선자령(1,157미터)

 

코스 : 대관령휴게소-선자령(원점회귀)

 

소요시간 : 3시간 반

 

일시 : 2016. 5. 8. (일) 오전 7시 30분

 

모이는 장소 :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간식, 과일

 

연락 : 염재홍(010-4948-6975)

 

카페 : cafe.daum.net/yc012175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1.시가 있는 비 오는 날

 

약속 - 천상병(1930~93)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토(黃土)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천상병 시인이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떠난 지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저세상으로 가서 그는 이승에서의 삶이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귀천(歸天)’) 했다.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에서의 삶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가 어떤 “약속”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약속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커서 가난과 죽음을 덮고도 남는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천상병이 누군가. 인사동 찻집 귀천도 부인의 작고로 문을 닫았으니, 우리들의 사랑방이었던 해인 옆의 귀천만 남았다. 그는 언제까지 우리들 마음을 애잔하게 할 것인가. 시는 영원히 썩지 않아 세상이 소멸하여 흩어져도 그의 시는 에너지라도 남아 다시 세상이 만드어지는 날에 우리 곁으로 돌아오리라.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283회 북한산 산행기<2016. 4. 23(토)>/ 염재홍

▣ 월일/집결장소 : 2016. 4. 23(토) / 연신내역 3번 출구(10 : 30)

▣ 참석자 : 11명 (김일화. 김정남, 김종화. 나양주, 염재홍, 위윤환, 이경식. 이승렬, 임삼환, 전작, 정한)

▣ 산행코스 : 연신내역-불광중 정문-불광사-등산로입구-계곡길-능선사거리-탕춘대성-홍은 녹번 뒷산길-장미공원 -불광동 은하식당

▣ 동반시 : 피고 지는 것들에 대한 회상(回想) / 도봉별곡

▣ 뒤풀이 : 갑오징어 무침. 간재미 찜. 장수막걸리 / 은하식당(불광동)

 

날씨는 참 좋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연초의 예정대로라면 일요일인 내일이 산행일이나 총동문회 체육대회 관계로 하루 앞당겨서 이 좋은 날이 택일 된 것이다. 또한 산행 코스도 쉽고 간단하고 힘이 비축될 수 있는 낮으막한 코스를 선택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버스로 오다 보니 무려 1시간 10분전에 연신내역 3번 출구에 도착하였다. 심심하고 무료하여 옆에서 자기네 일행을 기다리는 다른 등산객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카톡을 보니 이승렬 친구가 참석한다고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김일화, 이승렬 두 친구가 참석하니 더욱 쉬운 코스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되어 10명의 참가자가 모여 먼저 출발. 종화는 뒤에 따라 와 합류하기로 한다. 큰길을 따라 불광중학교 정문을 지나 오른쪽의 산 쪽으로 바로 치달아 오르는 길을 따라 불광사 앞 멋진 화장실에 도착하여 볼 일들을 보고 다시 일어섰다. 요즘 우리나라의 화장실은 어딜 가나 깨끗 정갈하고 멋있게 지어져 있다. 화장실 문화는 많이 선진화되어 사용하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다.

 

아쉽지만 옛 절의 정취 가득한 불광사를 지나 다리를 건너 간이 운동시설들 옆으로 난 바윗길을 올라 건너편 바위산을 바라보니 마치 바위로 층을 쌓아 산을 만든 것 같은, 사이사이에 소나무를 심어 푸르름을 더하여 파릇한 봄기운을 흠뻑 마시게 하는 전경이다.

 

사실은 이 길은 예전에 반대 방향으로 자주 다녔던 코스이다. 거의 항상 내려오기만 하던 길을 모처럼 올라가니 전혀 처음 대하는 광경에 색다른 즐거움이 더한다. 모든 산봉우리가 그렇듯이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도 되고 괴물도 되는 것 아닌가. 우리 사람들도 하나의 사물과 현상을 생각하기에 따라 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돌로 보기도 하고 돈으로 보기도 하며, 사람을 볼 때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어설프게 구별을 한다.

 

잣나무 숲을 왼쪽으로 잡고 계곡을 거슬러 올라 널찍하고 기울어진 마당바위를 지나 족두리봉과 향로봉을 가르는 사거리(오거리로 볼 수도 있다)에 도착하여 나무 그늘아래 잘 만들어진 자리를 펼 장소를 찾아 들어가니 다른 일행이 선점하고 있다. 할 수 없이 사거리 약간 위에서 위 회장의 눈썰미에 딱 걸려든 안성맞춤의 그늘에 자리를 잡고 빙 둘러 앉아 갖은 음식에 정상주를 곁들였다. 이제 오늘의 산행 동반시를 낭송해야할 시간. 오늘의 동반시는 우리 회원 중 곧 시집을 편찬할 예정인 김정남 시인의 ‘피고 지는 것들에 대한 회상(回想)’이다.


관례대로라면 기자가 낭송을 해야 하나 오늘은 작가가 바로 현장에 있으므로 양보를 하였더니 또다시 특별손님에게 양보하여 낭랑한 목소리의 낭송을 즐길 수 있었다. 오랜만에 해석하기 쉬운 시여서 좋다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의 시는 조금 난해하나 그의 취향이니 어쩌랴.

 

피고 지는 것들에 대한 회상(回想) / 도봉별곡

 

북으로 난 창문으로

가을에는 은행잎이 얼굴을 내밀고

봄의 목련꽃은 내 안을 기웃거린다

 

흘러간 것은 중요하지 않아진

봄날의 아침에

무리지어 흐드러진 목련꽃에서

젊은 날에는 비통했던,

그러나 무모했던 사랑을 기억해내고는

그 사랑이 5월의 라일락꽃 같았다면

하찮은 봄바람에도 맥없이 지지 않았을 거다

 

나이만큼 가벼웠을 사랑과

미안했던 이별들

이기와 교만과 죽음에 대한

회상의 하얀 그림자 털어내면서

 

왜, 봄날의 꽃들은 사랑과는 달리

무리지어 피고 지는 가를 유추해보고는

아, 이끼는 긴 겨울이 추워서 혼자서 살지 못하는구나

 

피고 지는 모든 것들

꽃에서 피고 지는 것에 대한 필연을 읽어내고

오지 않을 우연을 기다려본다

 

이제

늙어서

유난히 추하게 지는 것에서

덧없음과 소멸과 흩어짐에 대하여 사유하고는

멀고 푸른 하늘을 보며 내년에 필 재생을 기대한다

 

영원한 것은 없어

내년에는 너와 내가 살아있을까를 점쳐본다

 

하산은 뒤풀이 장소에 두시 반에 약속이 되어 있어 약간 돌아가는 길을 택하였다. 향로봉 중턱을 옆으로 돌아 쉽지만 조심해야 되는 언덕을 내려가 바위를 깎아 만든 전망 좋은 둔덕에서 족두리봉 쪽을 내려다보니 그야말로 가슴이 탁 트이는 푸르른 벌판이다. 원래 봄에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해 커다란 정원이었는데 올해는 며칠 전 내린 거센 비바람으로 꽃이 다 떨어져 벌써 초여름의 풍경이다. 꽃이 떨어진다고 바람을 탓하랴. 꽃은 언젠가는 지지만 이번에는 너무 빨리 떨어져 아쉬움과 함께 양봉하는 분들의 걱정이 눈에 보인다. 이제 아카시아꽃 피는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나에게는 그나마 다행이다. 매년 봄과 초가을에 꽃가루와 늦은 에어컨 바람 때문에 코가 고생을 하는데 올해는 덜 할 것 같다. 면역 계통의 과잉반응 때문이라고 하는데 병원을 끼고 살아도 고쳐지지 않는다. 나이가 더 들면 더 고치기 힘들 텐데 좋은 방법이 없나 모르겠다.

 

기다란 탕춘대 성곽을 오른쪽에 두고 한참 걸어 내려가 암문을 지나 홍은동과 녹번동의 뒷길을 산보하듯이 걸어 향로봉 비봉 보현봉등 북한산 주능선이 다 보이는 전망 좋은 촬영명소에서 전원 촬영을 하고 장미동산 앞으로 내려갔다.

미리 예약이 되어 있는 불광동의 은하식당에 도착하니 거의 세시가 다 되었다. 오늘은 간재미찜과 갑오징어무침을 안주 삼아 전원 막걸리를 선택한다. 안주가 매우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아 상당히 입맛에 맞는다. 나만 그러는 걸까? 지난번에는 맵고 짜고 양념이 너무 진하여 불평들이 많았는데 미리 전화해서 심심하게 해달라는 부탁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오늘의 뒤풀이는 자기 관할구역이라고 우기는 조문형 친구와 아직은 신입의 테를 못 벗은 김일화 친구가 찬조하여 계산하였다. 두 친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또한 올해 애경사를 치르고 힘들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금일봉을 찬조해 준 한천옥, 정동준, 정해황, 이종진 산우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한다.

 

올해의 산행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전반기의 중요한 일정으로 5월의 원거리 선자령 산행과 6월의 울릉도 산행이 남아 있다. 선자령은 바람막이는 필요해도 일기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겠지만 울릉도는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 바다도 고요하고 육지도 평온하여 많은 친구들이 참가함으로서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일상생활에도 의미 있는 일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6.4.25 염재홍

 

3.오르는 산

대관령 가는 옛길을 따라 오르면 대관령 휴게소가 나온다. 거기가 들머리다. 왕복 10키로 길이니 3시간이면 충분하다. 고교시절 수학여행 때 대관령에 도착했는데 동해바다와 하늘의 색이 같아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철 바람이 부니 풍력발전소의 최적지이니 가는 길 내내 바람과 동해를 볼 수 있으니 바람 부는 바다 구경은 실컷 할 수 있다.

 

선자령을 넘어 강릉 쪽 계곡으로 내려가면 보현사라는 절이 나온다. 그곳에서 대학시절 휴교령 때문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선자령에서 흘러내린 물이 깊은 계곡을 이루어 무릉계곡을 부러워하지 않을 선경을 만들었다. 강릉 처녀들이 놀러와 심심치 않았으니 잠시 호사를 누렸었다. 훗날 오대산 월정사 주지를 지냈던 주지 도명 스님이 혼란한 세상으로 나가지 말고 자기 상좌를 하면 공부도 시켜줄 테니 부처님 모시고 불법을 펼치며 잘 살아보자고 꼬드겼고, 마침 날도 더워 머리를 삭발했다. 하산하는 날까지 스님은 내게 공을 많이 들였으니 막상 하산하는 날 아쉬워하는 스님의 마음은 지금까지 애잔하게 남아있다. 그때 출가했으면 내 삶은 어찌 되었을까. 개학한 날부터 나의 삭발에 대하여 학우들의 물음에 답하기 귀찮은 날들이 계속됐으니, 그 덕분에 궁금해진 학우들이 사준 막걸리는 많이도 마셨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연락을 끊지 말자면서 학교 옆의 절 연화사 주지인 사형을 소개시켜주었으니 그와의 불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알게 된 수현 스님은 젊은 날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오랜만의 장거리 산행이니 부디 많이 참석하여 동해의 바람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전하는지 듣고 와서 알려주면 고맙겠다.

 

4.동반시

선자령은 항상 바람이 부는 곳이니 바람을 주제로 한 산문시를 찾았다. 때로 산문시는 맛깔나는 맛이 운율시보다 더 하다. 문우들의 권유에 따라 바람에 관한 연작시를 지으려고 초안을 잡아놓은 것이 조금 있다. 시간이 있었다면 한 편의 바람시를 지을 뻔했다. 마침 좋아하는 시인의 훌륭한 바람시를 찾아 시간의 부담을 덜었다. 시인은 세속적으로 판단하면 분명 불우한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오히려 홀로 사는 삶과 시가 있어 만년에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자랑(?)하는 영락없는 저잣거리의 여인네다. 재산이 많아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강해서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으나 시가 있어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으니 스러지는 재산과 건강에 비해 영원히 썩지 않는 시는 분명 행복한 존재다. 시를 쓸 때 한가로운 산사보다는 사람들과 부딪치며, 어울리면서 짓는 것이 시상의 넓음과 깊음에 훨씬 도움이 된다. 그러 이유로 시와 도는 산속에 있지 않고 저잣거리에 있음이 분명하다. 남전 선사의 ‘평상심이 도다’는 구절을 떠올리는 비 오는 날의 오후다.

 

바람 부는 날 / 천양희

 

바람 부는 날입니다. 숲그늘이 어룽대면서 계곡이 웅성거립니다. 바위는 입을 다문 채 물끄러미 물길을 배웅합니다. 절벽들이 오래 산허리를 꺾고 나뭇잎들의 속이 파랗게 질려 있습니다. 바람 잘 날 없는 것들의 하루가 길어집니다. 이젠 잡목숲에 머무르는 것이 두려워지지 않습니다. 아직 귀가하지 못한 사람들이 산길을 쓸며 지나갑니다. 한때의 낙엽들 썩었던 거, 땅 끝 어디로 쓸렸는지 발 한쪽을 헛디딥니다. 언덕이 따라가는 산정은 높았으나 산 자락 끌고 내려가는 물은 평등합니다. 지금까지 우릴 지켜낸 건 마음끼리 튼 길 이었습니다. 슬픔도 친숙해지면 불행 속에서도 기뻐하는 자 있을 것입니다. 능선을 타고 골수까지 찌르르 내려오는 찌르레기 소리 골짜기만큼 깊어집니다. 제 깊은 속에 다 칭얼대는 새끼들을 품은 까닭입니다. 골이 너무 깊어 숨는 벌레들은 땅껍질을 뚫는 유지매미들을 모를 것입니다. 나는 둥근 새장 하나 등처럼 내다 걸고 기다립니다. 제 모양이 둥글어지길 기다리는 것이 너무 오래 기다린 사랑일 것입니다. 바람 부는 날입니다. 웅웅거리는 삶의 송전탑 위로 하늘이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마을로 내려갈 것입니다. 살아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2016. 5. 6.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봉별곡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