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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불놀이, 송강松江 정철의 노래 / 도봉별곡

불놀이, 송강松江 정철의 노래 / 도봉별곡

 

 

 

태초유업太初有業, 업은 태초부터 있었나니

 

나는 불이다

불은 우주의 하나임을

알았을 때 안도감 느꼈다

 

타고난

격정을 이기지 못 한 불놀이

타오르는 불에 성욕 느꼈을 때 신성모독이었을까

 

나는 불이고 너희는 물이다

불이 활활 타고 있다

너희는 아래로 흐른다

물이 위에 있고 불이 밑에 있어야 세상은 조화롭다

 

정반합의 변증법을 버려두고 방기한 채

버릴 것과 채울 것들 간발의 차이로 불태워져

성욕을 채우고 난 뒤의 허황

 

송강, 다혈과 편협의 불

율곡, 차분과 이성의 물

상선약수上善若水, 수화기제水火旣濟, 그러나

물은 아래로 흐르고 불은 솟는 것

순혈과 다혈의 대립처럼 단호해져

변증을 버리고 돌아선 죄 훗날 불우로 남았다

지나가보니

격정을 이기지 못한 불놀이였어라 왕의 장난을 막지 못한 불놀이었어라

궤변을 늘어놓는 간군奸君 앞에 여지없이 훼절하는 신하들의 나라는 증발하여

그들은 함께 무너져 내리고 남는 것을 불변의 사리 아닌 회한의 재뿐

 

마지막 불은 남았다 다 태우지 못 하고 커져버린 폭발로 남았다

더러워져 닦을 수 없는 업으로만 남았다 성욕처럼

80노인의 불필요해진 성욕으로 남았다

 

가장 나쁜 일상은 아침에 부풀려진 풍선 같은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

머리를 조아리며 임금을 맞는 것은 비굴

명예와 부와 권력의 증발 후에 남는 덧없음

권력은 한계가 있고 부富는 뜬 구름

인생은 짧고 명예는 길다

환생하여

역사가 사실이라면 평생의 멍에 혁명의 정여립이 되고 싶다

 

어릴 적 친구들과 놀던

향리 전라도 담양 창평 서하당 식영정 뒤 대나무 밑

죽록천竹綠川은 송강松江의 수사修辭

 

정여립 모반사건의 위관委官되어

강직하고 청렴하나 융통성이 적고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성품 탓에 동서 붕당정치의 와중에 동인으로부터 간신이라는 평까지 들었다

그는 끝없이 님에게 구애했건만 마지막은 남은 것은 구차한 불우, 불우조차 버거워한 구차함, 업으로 남았다

정여립도 동인도 자기편도 업이었어라

 

불이 타고 소멸하여 증발하고 남는 것은 회한의 재, 희뿌연 재뿐

다 탄 불이 남긴 것은 작은 지옥일까

커다란 극락천당인가 해골인가 해골을 태우지 못하는 불

 

송강이 타고 흘러서 남긴 타고 남은 재는 <관동별곡>으로 동해에 출렁이고

타고 남은 사리는 <성산별곡>으로 조부의 무덤가에 뿌려지고

타고 남은 불우는 님 그리는 <사미인곡>으로 남아 님 그리는 마음 식고

타고 남은 원망은 <속미인곡>으로 겹치고

불은 술로 변해 <장진주사>가 되었다

 

간군의 절묘한 줄타기에 놀아난 광대가 되어

술과 불의 잔치가 끝나고 나니 격정을 이기지 못한 불놀이였어라

왕의 비열한 장난에 놀아난 불놀이였어라

물 들어도 검어지지 않는다던 친구 율곡의 죽음을 닮지 못 했음으로 남은 업

 

경국제민은 이상이요, 귀거래는 동경의 대상.

한 줄기만으로 곧게 흐르는 강은 없다

뫼비우스의 띠 – 영속적인 변화, 위태로운

내 삶은 마치 우화 같아 유희로 흐른다

매달린 절벽에서 입을 떼야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내가 술인가 술이 나인가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가

몰입과 초탈의 변증법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